94년 뉴월드호텔 살인사건 재구성

29년 만에 끝난 조폭 혈투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1994년 12월4일. 노태우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4년 뒤 ‘뉴월드호텔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서울 강서구 영산파와 광주 신양파는 강남 일대서 주름잡던 조폭 집단이었다. 영산파 두목은 1991년 팔레스호텔 살인사건 당시 신양파 일당에게 살해당했다. 이후 3년이 지나고 영산파가 신양파 일당에게 보복범죄를 저지른 것이 살인사건의 전말이다.

29년 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뉴월드호텔서 4명의 조직폭력배 사상자를 냈던 사건 수배범이 지난 11일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수배범은 공소시효 기간 해외로 도피한 흔적이 들통나자 검찰이 공개수배에 나서면서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4시30분쯤 관악구 소재의 한 호텔서 수배범 정동섭(55)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경찰은 숙박업소 주인으로부터 “퇴실 시간이 지났는데 손님 인기척이 없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적 압박
극단적 선택

현장에는 유서로 보이는 자필 문서와 전날 저녁 정씨가 혼자 입실한 점을 두고 극단적 선택에 무게를 두고 조사하고 있다.

정씨는 1994년 12월4일 뉴월드호텔 결혼식에 참석한 신양파 조직원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정씨는 당시 강서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영산파 행동대장으로 활동 중이었다. 정씨는 자신의 두목을 살해한 광주 신양파에 앙심을 품고 보복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12명의 가담자 중 10명은 검거돼 처벌받았다. 영산파 조직원 12명 중 10명은 붙잡혀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정씨는 사건 직후 도주해 2011년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고 국내서 살인죄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정상인처럼 생활해왔다.

사건의 또 다른 주범인 서모씨는 지난해 3월 영사관에 자진신고하고 귀국한 뒤 처벌을 피하려고 밀항 시점을 속였다가 적발돼 28년6개월 만에 구속 기소됐다. 중국으로 밀항했던 그는 지난해 갑자기 중국 영사관으로 찾아가 밀항 사실을 자수해 서씨의 신병을 넘겨받은 해경이 수사했다. 검찰은 그를 밀항단속법위반죄로 추가 기소했다고 밝혔다.

자수 후 1년간 전남 지역에 살던 서씨를 긴급체포한 검찰은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밀항 시기를 속였던 것을 밝혀냈다. 조사 결과 그는 1994년 사건 직후 도주해 숨어 지내다 2003년 가을 전북 군산서 선박을 타고 중국으로 밀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함께 검거되지 않았던 영산파 행동대장 정씨와 중국서 수차례 만나고, 가족까지 중국으로 불러들여 재회하는 등 대범한 도피 행각을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서씨 밀항 시기가 2003년이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 해당해 해외 체류 기간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12명 가담자 중 10명 검거…남은 2명은?
주범 서씨 구속 정동섭은 숨진 채 발견 

해외 도피 생활에 지친 서씨는 밀항 시점을 살인사건 공소시효가 끝나는 15년 뒤인 2016년으로 주장하면 살인죄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서씨는 1994년 살인범죄에 관한 공소시효가 만료된 15년 이후인 2016년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해경은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못한 채 밀항단속법 위반으로 서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2015년에는 살인죄와 관련 공소시효까지 폐지돼 서씨는 뉴월드호텔서 저지른 살인죄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 이전에 밀항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재수사를 벌여 서씨가 2016년이 아닌 2003년 중국으로 밀항한 행적을 찾아냈다. 해외에 머문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중단됐고 살인죄 공소시효도 폐지된 만큼 검찰은 서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이영남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살인사건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각오로 전면 재수사에 착수,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했다”고 말했다.

뉴월드호텔 살인사건 수사는 정씨가 사망하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종료될 예정이다. 검찰은 정씨와 서씨의 도피를 도운 이들을 향한 수사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당시 광주지검 관계자는 “서씨에 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될 무렵, 정씨가 재차 잠적해 소재가 불분명했다”며 “출석요구에도 응하지 않아 결국 지난달 26일 공개수배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뉴월드호텔 살인사건은 29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당시 서울 삼성동 뉴월드호텔 앞에서 자행된 집단살인사건은 범인들이 1991년 서울 팔레스호텔 조직폭력배 피살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사전에 치밀한 계획하에 조직적으로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남경찰서는 영산파 두목 이모씨와 행동대장 안모씨 등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 조직원 10명에 대한 검거에 주력했다.

대범한 
도피 행각

당시 경찰은 범인들이 이번 범행에 앞서 팔레스호텔서 영산파 조직원 최모씨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이던 박모씨의 출소일에 맞춰 그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강남 일대 조폭 간 세력다툼으로 인해 최씨가 박씨에게 살해당했다. 

행동대장 안씨는 부하 10명과 함께 박씨가 출소하는 광주교도소로 내려갔으나 살해 계획을 사전에 인지한 선배들의 만류로 일단 범행을 보류했다. 이후 12월4일 뉴월드호텔서 보복범죄를 계획한 후 박씨를 살해했다. 그러나 살해된 박씨는 같은 성씨의 다른 인물로 밝혀졌다.

뉴월드호텔 살인사건은 그 당시 파장이 컸다. 1990년 노태우정부는 범죄와 폭력 등 민생치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31 특별 선언인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노태우정부가 실제 민생치안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들고 나온 정책이 아니라 집권 4년 차를 앞두고 어지러운 정국과 사회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정책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첫 시행단계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경찰이 폭력 조직 검거 건수를 올리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선량한 시민을 체포한 사례가 증가했던 것이다. 경찰이 검거한 조직에는 13세 초등생이 있을 정도로 무차별적이었다.


그러나 대낮 칼부림으로 이어진 뉴월드호텔 살인사건은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는 단초가 됐다. 당시 강남 번화가 일대를 지나던 행인은 칼부림 목격 후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폭력 조직을 향한 여론이 들끓자 조폭 소탕의 타당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1995년 서울중앙지검은 살인사건 주범 서씨와 정씨를 소재 불명으로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영산파 조직은 사실상 와해 수준으로 해체됐다.

팔레스호텔 
보복 계획

영산파는 20년 뒤 해외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영산파가 운영하는 캄보디아 도박장서 원정도박을 벌인 국내 기업인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이 벌인 도박판 규모는 무려 수십억원에 달했다. 한 판에 1억원이 넘는 돈을 베팅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캄보디아의 한 카지노서 원정도박을 알선한 혐의(도박장소 개설 등)로 폭력조직 영산파 행동대장 전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2014년 6월 전씨가 원정도박 브로커 문모씨와 함께 캄보디아의 한 카지노서 코스닥 상장업체 대표 오모씨를 유인한 혐의를 적용했다.

전씨는 오씨에게 60억원 상당의 도박 자금과 카지노칩 등을 제공했고, 오씨는 1회당 7000만원까지 베팅할 수 있는 바카라 도박을 수백회 했다. 전씨는 같은 방식으로 원정 도박자들을 유인한 뒤 카지노 업체 측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 도피와 관련 공소시효 정지에 관한 규정은 일반 공소시효에만 적용되고 재판 시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첫 판례가 나왔다. 재판 중인 범인이 해외로 도피하더라도 시효가 정지된다는 규정이 없다. 이처럼 재판 중 장기간 해외로 도피한 범인을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면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1995년 유흥주점 인수대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속여 5억6000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1997년 8월 기소됐다.

같은 해 11월 1심 첫 공판이 열렸지만 이후 A씨가 1998년 4월 미국으로 출국해 다시 입국하지 않아 재판이 진행되지 못했다.

공소시효 계산 실수로 입국했다 붙잡혀
해외 도피 끝까지 심판 ‘김봉현 방지법’

1심 재판부는 “공소제기 후에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국외로 도피한 피고인을 처벌할 필요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고, 또한 공소제기 전에 국외로 도피한 피의자의 경우와의 형평을 고려하면 공소제기 후에 국외로 도피한 피고인에 대해서도 ‘공소시효완성 간주’(재판 시효)의 시효를 정지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피고인에 대한 처벌의 필요만으로 공소시효 정지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이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에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형사처벌에 관한 법규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유추하거나 확장 해석하는 것으로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날 우려가 있다”고 결정했다.

국내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판결은 판사가 판결을 내릴 때 참고하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이다. 대법원 판례는 1심 2심 재판부가 판결할 때 참조 판례로 제일 인용을 많이 한다. 법무부가 재판 시효 규정을 개정하기로 한 배경에는 해외 도피 피고인에 대해선 공소시효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한 대법원 판결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법무부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재판 중인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해외로 도피하더라도 재판 시효(25년)가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정지돼 끝까지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현행법상 형사소송법이 정한 재판 시효는 25년이다. 공소제기 후 25년이 지나도록 확정판결이 나지 않으면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본다. 수사를 받고 있거나 형이 확정된 이후 해외로 도피하면 공소시효나 형 집행시효가 정지되는 반면, 재판 중인 피고인은 해외로 도피해 25년이 지나면 처벌할 방법이 없다.

이번 법 개정으로 수사나 형 집행 단계 시효정지 제도의 불균형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라임 사태 주범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보석으로 불구속 재판을 받던 도중 도주해 이에 대한 사각지대가 우려됐다. 이른바 ‘김봉현 방지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이 통과된 후 김 전 회장이 해외로 나갔다면 신병 확보 후 처벌이 가능하다.

법무부는 입법 예고 기간 해당 법안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개정안을 확정할 계획이지만, 도주 48일 만에 검거된 김 전 회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소위 ‘김봉현 방지법’ 적용은 피해가게 됐다.

해체된
영산파

해당 개정안은 부칙서 아직 공소시효가 완료되지 않은 범죄에도 적용한다고 규정한다. 향후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해외로 도피한 피고인에게 적용될 수 있다. 만약 수사 과정서 김 전 회장이 도피 기간 중 해외에 출국했던 사실이 드러나면 적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후 개정안에 대한 각계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서 통과돼야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범죄자들이 아무리 오래 해외로 도피하더라도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의 공백을 메우는 취지”라고 말했다.

<ojh34522@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밀항한 살인범
19년 지나 처벌 이유?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따지던 내연녀 남편을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뒤 19년 만에 나타나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우겼던 40대 남성 A씨가 범행 이후 1년5개월 뒤 밀항한 사실이 들통나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됐다.

해당 남성은 추궁 끝에 1998년 4월 밀항 사실을 자백했으며 피해자는 A씨 내연녀의 남편이었다.

외도를 눈치챈 피해자가 여성를 때렸고, A씨가 이 사실을 알고서 피해자를 찾아가 다툼 끝에 살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성은 피해자의 시신을 불에 태워 유기한 후 이들은 2015년 주중 영사관을 찾아가 밀항을 자수했다.

현지서 여권법 위반으로 붙잡힌 두 사람은 2016년 1월 한국으로 압송됐다.

한국으로 건너온 남성은 “살인죄 공소시효가 지난 2014년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주장했으나 조사 결과 1998년 밀항했던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이들은 한국서 재판에 넘겨져 A씨는 살인죄로, 내연녀는 여권위조죄로 법정에 서게 됐다.

이들은 중국서 은신하면서 투옥과 비슷한 삶을 살았기에 선처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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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