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대명천지 21세기 초현대 사회 속의 산적 소굴!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진실을 호흡해야 한다. 비록 그 공기가 오염물질로 혼탁해져 있더라도!! 자유란 그런 것이다, 내가 내 생명을 호흡할 수 있는 것! 철의 장막, 암흑의 장막 속엔 ‘순수의 독가스’가 자유라는 거짓 이름으로 사람의 숨통을 조르고 있다! 인민이여, 진정한 자유를 향해 투쟁하라!!!…’
어그러진 믿음
토요일인데 6시가 되어서야 업무가 끝났다. 여기저기서 책상을 정리 정돈하며 일과를 마친 감흥을 북한 사투리로 지껄여대기도 하고 기지개를 켜기도 했다.
과연 무슨 일을 했기에 저토록 뿌듯할까? 의문스럽기도 했으나, 인간 노동의 가치를 함부로 재단할 필요까진 없다고 여겨졌다.
“자, 모두 빡쎄게 일했으니깐두루 이제부터 신나게 놀아봅세그려.”
“얼쑤~ 좋구~”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어떤 유흥 시간이 준비돼 있는 모양이었다. 모두 사무실을 나서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피에로 씨의 권유에 못 이긴 척 나도 결국 따라붙었다.
옥상으로 나가자 매연에 찌든 서울의 바람이나마 시원스런 느낌을 안겨 주었다. 옛날 옛날 한 옛날, 이곳 사람들이 예사롭게 평양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이북 사람들이 서울로 내려오기도 하고 또 경평[京平] 축구 시합에 벌어지곤 하던 시절엔 아마 숨쉬기가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여름 삼복 더위에도 휴전선 부근에만 가면 살인적인 냉기가 떠도는 수상쩍은 이 상황이 좋은가, 치고 박고 싸우다가도 평양냉면 한 그릇 나눠 먹은 후 웃으며 악수하는 게 좋은가?’
그런 상념도 떠올랐다. 그 자리의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시멘트 바닥에 돗자리를 깔곤 둘러앉았다. 어느새 무쇠 솥뚜껑 위에서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어 가고 상추와 풋고추, 마늘, 김치 등속이 준비되었다. 시원한 막걸리, 소주, 맥주가 취향대로 가득 찬 잔을 들어 올린 사람들은 건배를 외쳤다.
“우리의 선덕여왕님을 위하여!”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휘날릴 그날을 위해서!”
“통일의 역군인 우리 탈북 국민들의 꿈을 위하여!”
이북 사람들의 기질 때문인지, 혹은 서울이라는 특이한 도시의 마약성에 감염된 탓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빠르게 마시고 성급하게 취하고 과격하게 흥겨워졌다.
모든 대도시가 그렇겠으나 특히 서울은 초보자로 하여금 불합리한 과대망상과 몽상과 환상에 젖어 들뜬 채 허위적거리게 만드는 성싶다.
그 밑바닥 구덩이 속엔 순화되지 못한 욕망, 오히려 병들어 왜곡된 원초적 본능의 불이 너울거린다. 하지만 그걸 지적하는 건 결코 예의가 아니다.
극우파, 좌파 빨갱이…극좌파, 수구 꼴통 비하
박쥐 닮은 양다리 걸치기 “이제 중도는 없다”
남한 사람은 자본주의 공해에 찌들어 추악하고 북한 사람은 자연성을 간직한 채 아직 순진하다는 생각은 유치하고 시시껄렁한 관념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도 오해이거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공산주의 독재와 물질적 궁핍을 견디고 살아나온 사람들은 결코 만만치 않으며 의외로 영악스럽고 위선적일 수도 있다.
발랑 까졌다고 자부하는 남한 사람일지언정 막상 북한 사람과 맞붙여 놓으면 당해내기 어려울 터이다. 남북 정상회담이나 실무자급 회의를 보면 우리 쪽은 왠지 당당함과 지혜가 부족한 성싶다.
왜 그럴까?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론 비겁한 점이 우리 내부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남한 자체의 분열상이리라.
여야당 정치꾼 나부랭이들은 국리민복보다 사리사욕에 미쳐 초딩생들도 비웃을 만큼 저열한 광견 투쟁이나 벌이며 민의의 전당을 허구헌날 개판으로 만들고 있다.
아직도 그 광견들을 자기네의 대표라고 착각하는 하인 근성 지닌 사람을은 역시 패를 나눠 광견의 앞잡이 꼭두각시 놀음을 벌인다. 극우파는 상대를 종북 좌파 빨갱이라 욕하고 극좌파는 상대방을 향해 수구 꼴통 얼간이라 비하한다. 중도(中道)는 없다.
어중간한 타협이나 박쥐 닮은 양다리 걸치기가 아닌, 극우와 극좌의 폐해를 버리고 초월하여 참다운 진보와 보수의 미덕을 대한민국 용광로에 넣고 삼칠일 동안 푹 고아 진국을 우려내어 맛깔나게 조화시킨 진짜 중도 통일탕.
그걸 국민들이 한 그릇씩 훌훌 마시고 심신이 건강해진다면 사이비 선동꾼들이 설쳐대더라도 바른 길을 의연히 걸어 나갈 수 있을 텐데…. 만일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 대표들이 북한이나 미국 혹은 일본 등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더라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국리민복을 위해 능력을 십분 발휘하련만….
그렇게만 된다면 월드컵에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골을 펑펑 터트리듯 아니꼬운 북한과 미국 대표들의 어거지를 콘소리쳐 물리치고 우리의 합리적인 이익을 챙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정치적 싸움
자, 이제 공상은 접어두고 현실로 돌아가자.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술자리의 취흥은 점차 무르익어 갔다. 약간 억지스러웠던 서울 말투는 차츰 사라지고 이북 어투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좀 요란벅적하긴 해도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말의 내용이야 어떻든 간에, 고향 사투리를 타고 가슴속 정서와 삶의 희비애락이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는 열성적으로 보였던 업무상의 얘기는 쑥 들어가 버리고, 머나먼 고향의 추억과 객지 생활의 애환이 얽혀 희비 쌍곡선을 이루었다.
중국의 현정세와 그곳에서 겪은 고생담 틈틈이 ‘통일’이란 낱말이 무슨 환청인 양 들려오기도 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