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드디어 빛 발하는 이강인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7.20 10:20:57
  • 호수 14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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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바페·네이마르와 ‘슛∼’

[일요시사 취재2팀] 김성민 기자 =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PSG)에 입단한 이강인에 어울리는 수식어다. 2007년 그는 KBS 2TV 예능 <날아라 슛돌이>서 이목을 끌었다. 7세 이강인과 유상철 전 감독의 첫 만남도 그때 이뤄졌다. 당시 유 전 감독은 “성인을 축소해놓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의 선견지명은 틀리지 않았다. 췌장암으로 눈을 감기 직전에도 이강인을 응원했다. 유 전 감독은 2021년 유튜브를 통해 “건강하게 일주일을 보낼 수 있다면 강인이 경기를 현장서 보고 싶다”고 말했으나, 마지막 메시지가 됐다.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던 이강인의 바람이 실현되는 요즘이다.

파리 생제르맹(PSG)으로 이적하는 과정은 이강인에게 순탄치 않았다. ‘축구 신동’ 이강인은 2011년 스페인 발렌시아에 입단했다. 이후 2018~2019년 시즌 발렌시아 1군으로 데뷔했다. 그의 유럽 진출은 운이 아닌 실력으로 따냈다. 2019년 U-20 폴란드월드컵서 이강인은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구단주 피터 림은 그의 가능성을 엿봤다. 뺏기지 않으려 바이아웃을 걸고, 벤치에 묶어뒀다. 

운 아닌
실력으로

발렌시아에 10년을 바친 이강인은 만기 1년을 앞두고 방출됐다. 2021년 레알 마요르카는 그를 영입해 PSG행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렇다고 발렌시아가 이강인을 토사구팽한 건 아니었다. 그는 발렌시아를 대표하는 유망주였다. 10세에 유소년 아카데미에 들어온 유학파다.

당시 발렌시아는 그가 “아시아 축구 시장의 창구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숱한 유망주를 떠나보낸 발렌시아는 유소년 선수를 보호했다. 10대 이강인도 레알 마드리드를 비롯해 메이저 클럽의 제안을 받았다. 그는 2018년 스페인 국왕컵서 1군 무대 데뷔전을 치렀는데, 구단 역사상 최연소 데뷔 외국인 선수로 기록됐다.

한국 역사상 최연소 유럽 1군 데뷔 선수이기도 했다.


2019년 9월, 18세 나이로 스페인 라리가 데뷔골을 터트렸다. 이어 20세 이하(U-20) 폴란드월드컵서 2골 4도움을 올리며 준우승을 견인하는가 하면, 골든볼(대회 MVP) 수상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 보였다. 2019년 8월 말, 발렌시아는 이강인과 4년 재계약을 맺는다. 화려한 출발과 달리 출전 기회는 잡지 못했다. 당시 팬들은 그가 저평가되고 있다며 의아해했다. 

벤치는 물론 출전 명단서 제외되는 일이 잦았다. 2020년 시즌도 빛을 보지 못했다. 초반에는 주전으로 나섰지만, 점점 출전 시간은 줄었다. 그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기준 경기당 평균 출전 시간은 약 53분에 불과했다. 횟수로는 총 44경기 포함 총 62경기 출전에 그쳤다. 발렌시아의 기용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발렌시아는 이강인을 뺏기지 않으려 애썼다. 바이아웃으로 8000만유로(약1058억원)를 걸었다. 바이아웃은 일정 금액을 다른 팀이 채우면 소속 구단과 합의 없이 이적할 수 있는 제도다. 사실상 ‘팔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싱가포르 출신 구단주인 피터 림이 원흉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사업가인 피터 림은 2014년 1억유로에 발렌시아를 인수 했다.

운영 초기엔 구단의 채무를 갚아준 구세주로 보였으나 얕은 축구 경영 지식은 바닥을 드러냈다.

그는 팀 전체를 물갈이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코치부터 의료진까지 갈아치웠다. 팀을 소유물로 여기는 악덕 구단주의 모습이었다. 아시안 프랜차이즈 스타에 관한 욕심으로 이강인을 붙잡았다. 발렌시아 전 감독인 보르달라스의 이어진 폭로가 더욱 충격이었다.

2011년 발렌시아 입단…저평가 벤치 신세
마요르카서 날개 펴고 파리로 간 ‘슛돌이’ 

하루아침에 피터 림은 이강인을 내보내라고 압박했다. 17세 이강인을 적극 기용하라고 지시한 것도 그였는데 마치 존중을 상실한 서커스 단장 같았다. 


10대 시절 미숙했던 이강인은 감독의 전술과 맞을 리 없었다. 당시 발렌시아의 감독이었던 마르셀리노는 지켜보자는 의미로 임대를 고려했다. 그러자 구단에서는 임대를 막아버리고 감독을 경질해버렸다. 마르셀리노 경질 후 감독이 계속 바뀌자 팀 상황은 불안정해졌다. 이에 피터 림은 팀 내 주요 자원도 헐값에 넘겨버렸다. 

팀 성적도 강등을 면치 못하자, 이강인을 언론의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결국, 정치질에 악용한 것이다. 계약 만료를 1년 앞둔 2021년 여름, 이적설이 터졌다. 라리가 선수 등록 규정도 영향을 끼쳤다. 스페인은 각 팀에 최대 3명까지만 비유럽(Non-EU) 선수를 보유할 수 있다.

당시 발렌시아에는 이강인을 포함해 막시 고메스(우루과이)와 오마르 알데레테(파라과이)가 있었다. 마르쿠스 안드레(브라질)까지 영입되자 이강인은 명단서 빠졌다. 활용할 수 없는 선수가 된 이강인은 방출 대상이 됐고, 재정난에 시달리던 발렌시아는 고민했다. 

돈이 없어 선수단에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피터 림이 선수단에 다음 해 9월 임금을 주겠다는 약속어음을 뿌리려 하자, 분노한 선수단은 “팔아치운 이적료로 확보한 돈은 대체 어디 갔느냐”고 항의했다. 라리가 측도 급여 지급이 되지 않을 경우 강등하겠다고 경고했다.

서커스 단장 
잘못 만나…

발렌시아는 이강인을 매각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이강인의 바이아웃 금액은 1000만유로(약 138억원) 정도였다. 코로나19로 이적시장이 얼어붙어 그를 찾는 곳이 없었다. 스와이프딜 대상으로 언급됐던 울버햄튼의 라파 미르가 세비야로 향하면서 물거품 됐다.

그나마 유력한 팀은 그라나다였다. 펩 보아다 디렉터가 직접적인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경기에 목말랐던 이강인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공격 보강을 노린 발렌시아는 미드필더 이강인과 목적도 달랐다. 이강인은 발렌시아와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뜻을 관철했다. 결국, 마요르카에 이적료를 받지 않고 보내는 쪽으로 결정됐다.

2021년 여름 이강인과 발렌시아는 결별했다. 발렌시아는 그해 8월 말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이강인의 미래에 행운이 있길 바란다”고 발표했다. 

발렌시아의 유소년 육성 정책을 향한 비난도 쏟아졌다. 스페인 현지 매체는 “잠재력을 갖춘 이강인은 21세도 되기 전에 버림받았다”며 일침을 날렸다. 또 다른 매체는 “이강인이 떠나게 되면서 발렌시아의 유소년 육성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고 비판했다.

이강인에겐 출전 경험이 필요했고 마요르카는 미드필더가 절실했다. 벤치서 좌절했던 이강인은 마요르카서 날개를 폈다. 첫 시즌, 선발과 로테이션을 오가며 30경기에 나섰다. 이어 2022~2023년 시즌은 눈부셨다.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은 이강인을 중용했다. 마요르카의 공격 전개는 그의 발에서 시작됐다.

시즌 내내 맹활약을 펼쳤고 리그 36경기 6골 6도움을 기록했다. 라리가 한 시즌 공격포인트 10개를 돌파한 한국 출신 최초의 선수가 됐다.


환호와 함께
물오른 기량

지난 4월24일 헤타페전에서는 본인의 프로 무대 첫 멀티골을 터트렸다. 드리블 실력과 정확한 패스는 이강인의 상징이 됐다. 특히 순간적으로 전환해 공격 루트를 바꾸는 모습도 훌륭했다. 베다트 무리키와 보인 호흡은 최고였다. 이강인의 패스를 받은 무리키가 헤더로 마무리하는 패턴이다.

공격포인트도 보여주는 에이스였다. 중원과 공격을 오가는 이강인 덕에 마요르카는 강등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났다. 10년 넘게 강등권서 허덕인 마요르카도 이번 시즌은 달랐다.

2012~2013년 시즌 이후 최고 성적을 얻어 9위로 마무리했다. 이강인은 마요르카 소속으로 73경기 7골 10도움을 기록했다. 프리메라리가 주간 베스트11에 이름을 올려 천재성을 증명했다. 올 시즌 프리메라리가 ‘올해의 팀’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페데리코 발베르데, 토니 크로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국 선수가 올해의 팀 후보에 오른 것도 이강인이 처음이다. 세계적 찬사와 함께 러브콜이 쇄도했다.

이강인을 둘러싼 잡음은 환호와 함께 커졌다. 마요르카는 그를 이적료 없이 영입하면서도 처우는 낮았다. 연봉은 50만유로(한화 약 7억3000만원)에 그쳤다. 열정페이가 따로 없었다.


한 현지 언론은 “이강인의 연봉은 마요르카서도 10위 안에 들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춘 베다트 무리키의 연봉 380만유로(약 56억원)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어 “그의 영입을 원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서도 지금 이강인보다 연봉보다 더 적게 받는 선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서 가장 적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백업 골키퍼 이보 그르비치다. 그는 이강인보다는 2배 많은 100만유로(약 15억원)를 받고 있다. 50만유로는 시즌 6골 5도움으로 맹활약한 이강인에게 턱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월클’ 선수들과 어깨 나란히 
훈련 등 현지 적응 100% 완료

그가 레알 마요르카를 떠나야 할 이유는 명확했다. 그럼에도 이강인은 최선을 다했다. 그가 활약한 올 시즌엔 스페인 라리가 9위까지 올라섰다. 

그는 PSG로 이적하기 직전까지 마요르카와 대립했다. 바이아웃이 또 문제였다. 마요르카는 이적료로 2000만유로를 책정해 묶어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적극적으로 이강인을 원했다. 현지 매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세계서 가장 유망한 선수 중 한 명(이강인)과 계약하기 위해 기꺼이 노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적을 막아선 마요르카에 화가 난 이강인은 SNS를 끊으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 9일 이강인은 미련 없이 PSG로 이적하면서 세계 최고 구단 중 한 곳에서 뛰는 명예와 함께 상당한 부를 얻게 됐다. 셀 온 조항 덕에 이적료 일부도 챙겼다. 셀 온 조항이란 선수의 이적료 일부를 선수 본인 또는 전 구단이 받도록 한다는 조항이다.

2021년 8월 발렌시아를 떠나 마요르카에 합류하면서 셀 온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 이에 따라 이적료 20%를 요구했다. 현지 매체가 추산하는 이강인의 PSG 이적료는 2200만유로(약 311억원)다. 0원으로 데려온 이강인이 2200만유로를 마요르카에 안겨준 것이다. 조항에 따라 이적료의 20%(약 63억원)를 자기 몫으로 받는다. 

셀 온 조항이란 선수가 다른 구단으로 이적할 때, 발생한 이적료의 일부를 선수 본인 또는 전 구단이 받도록 하는 것이다. 연봉도 올랐다. 이강인은 PSG서 400만유로(약 57억원)의 연봉을 받게 됐다. 앞서 이강인이 마요르카서 받던 연봉(50만유로)과 비교하면 무려 8배나 급등한 셈이다.

마요르카는 SNS를 통해 한글로 “강인 선수, 고마워요! 건승을 빌어요! 마요르카는 항상 강인을 반길 거예요”라고 공지했다. 지난 8일, PSG는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이강인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PSG는 “22세의 공격형 미드필더인 이강인은 PSG에 입단한 첫 한국 선수가 됐다”고 밝혔다. 

등번호 19번을 받은 이강인은 2028년까지 PSG서 뛴다. 공식 입단 발표가 나오자 이강인 유니폼은 동이 났다. 파리 시내 PSG 공식 스토어 2곳 모두 품절이 됐다. PSG로 간 이강인의 플레이는 국내서 볼 수 있다. 이번 달 일본 투어를 떠나는 PSG는 내달 1일 인터밀란(이탈리아)전을, 이틀 뒤인 3일엔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서 K리그 전북 현대와 친선전이 예정돼있다. 

스승 유상철
또 다시 인연

한편, PSG는 2부 리그로 강등되지 않은 파리를 대표하는 클럽이다. 창단 초기부터 파리 시내에 ‘파르크 데 프랭스’를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이 경기장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유상철이 벨기에전서 동점골을 터뜨린 장소기도 하다. 조별리그 최종전에 나선 한국은 유상철의 골로 1대1 무승부를 거뒀다. 유 전 감독과 각별한 이강인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 12일 PSG서 첫 훈련에 나선 이강인의 모습도 전해졌다. 네이마르와 나란히 있는 모습은 국격마저 상승시켰다. 이제야말로 라리가서 저평가됐던 그의 진가를 발휘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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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