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문건’ 조현천 봐주기 의혹

꽉 막힌 ‘윗선’ 뚫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계엄 문건’ 의혹의 중심에 선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더디다. 해외 도주 후 입국한 지 석 달이 됐으나 추가 소환조사조차 없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포함한 ‘윗선 수사’가 활발해질 것이라던 관측은 저물었다. 일각에선 대통령실이 김 전 장관을 품으면서 검찰도 손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책임질 게 있다면 책임지기 위해 귀국했다.” ‘계엄 문건’ 의혹의 핵심 인물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지난 3월 말 해외로 도주했다가 5년 만에 귀국해 한 말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귀국을 두고 정권이 바뀐 게 배경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솜방망이 처벌’을 기대한 걸까? 실제 조 전 사령관을 향한 검찰의 칼끝은 녹이 슬어가고 있다.

해외 도주 후
5년 만에 왜?

검찰은 지난 3월 인천공항 입국장서 조 전 사령관의 신병을 확보하고 멈췄던 수사를 재개했다.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 동향을 보고받고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관제 집회를 열게 한 혐의로 조 전 사령관을 재빠르게 기소했다. 그러나 계엄 문건 작성 혐의는 현재까지 제자리걸음 상태다.

군·검 합동수사단은 2018년 당시 계엄 문건 수사 개시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성과를 냈었다. 수사단은 기무사 요원들이 “비상사태로 보기 어려운 상황서 병력을 동원해 집회 시위 등 국민 기본권과 입법·행정·사법·언론 기능을 제한하는 계엄 문건을 작성했고, 문건의 상당 내용이 기무사 직무범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수사단은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 청와대 안보실장이던 김관진 전 장관 등 주요 인사들과의 공모 여부 등을 입증하기 위해 조 전 사령관 본인 조사가 꼭 필요하다며 수사를 잠정 중단해왔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수사단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조 전 사령관에 대한 소환조사를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도 잠잠하다. 법조계에선 조 전 사령관의 귀국이 ‘윗선 수사’의 물꼬를 틀 것이라는 관측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계엄 문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도 사그라들고 있다. 국방부를 담당하는 100기무부대장 출신 민병삼 전 대령은 최근 언론 인터뷰서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은 단순 검토 문건이었지만 정치적으로 악용돼 기무사가 해편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자들과의 만남에선 “계엄이 발령됐을 때 기무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검토한 것”이라며 “1년에 2번 하는 검토다. 문제가 되면 파기했을 텐데, (문제가 없어)나중에 활용할 목적으로 정식으로 (시스템에 비밀로)등재했다”고 말했다.

계엄 문건 사건은 단순히 조 전 사령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를 고리로 박 전 대통령, 황교안 전 국무총리, 김 전 장관, 한 전 장관 등 박근혜정부의 주요 인사 여럿이 얽혀 있다. 이들 모두 수사단의 수사 대상에 올랐었다.

귀국 석 달…추가 수사 지지부진
갑자기 김관진 품은 정부 비호?

조 전 사령관의 귀국 직전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실태조사 태스크포스(TF)는 계엄 문건과 관련해 문재인정부의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힘 측은 계엄 문건이 단순 검토보고서여서 불법성이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기무사가 내란음모를 꾸민 것처럼 송 전 장관 등이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눈에 띄는 건 국민의힘 TF에 소강원 전 기무사 참모장도 민간위원으로 참여했었다는 점이다. 그는 조 전 사령관의 지시로 계엄 문건 작성에 관여해 합수단의 수사를 받았다. 조 전 사령관이 귀국하면서 그도 다시 수사 대상이 됐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해 7월 TF의 1차 회의서 “과거 기무사 참모장 시절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태를 앞두고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검토한 계엄령 사안에 대해 쿠데타 등 정치적 몰이를 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밝혔다.

계엄 문건 작성을 내란음모죄로 처벌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다툼의 여지가 남아있다. 다만 조 전 사령관은 문건 작성 과정서의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기무사의 정치 관여 활동, 기무사 자금 유용 등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또 수사단은 수사 당시 조 전 사령관의 자금 사용처가 담긴 ‘장부’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기무사는 2017년 2~3월 8쪽 분량의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과 여기에 딸린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 자료’를 작성했다.

박정부 인사
여럿이 얽혀

2016년 12월 국회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데 이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시점이었다. 문건에는 탄핵 선고 이후 전망되는 상황이 서술돼있다. 여기에는 ▲대규모 시위대의 청와대·헌재 진입 및 점거 시도 ▲화염병 투척 등 과격양상 심화 ▲사이버상의 유언비어 난무 ▲집회·시위 전국 확산 등이 핵심이다.

중요시설과 광화문·여의도 등 집회 예상 지역 2곳에 기계화사단 6개, 기갑여단 2개, 특전사 6개 이상 등 병력을 배치하는 계획도 담겼다.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시도를 무력화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문건에 포함됐다.

내란음모가 성립하려면 2명 이상이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는 구체적인 합의와 실질적인 위험성이 인정돼야 한다. 계엄 문건이 실제 실행을 위한 계획이라는 점도 입증돼야 한다. 수사단의 수사 결과 계엄 문건이 실행을 위해 작성됐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우선 기무사는 계엄 문건 작성 과정서 TF를 구성했는데, ‘미래 방첩수사 업무체계 발전방안 연구’로 계엄 문건과는 전혀 무관한 이름이다. 이 TF로 인사명령을 내고 예산도 책정했다. 부대원들은 인터넷과 인트라넷이 연결되지 않은 별도의 컴퓨터로 작업했다.

TF 운영 종료 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초기화했다. 이는 계엄 문건 작성을 은폐하기 위해 비밀리에 움직였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계엄 문건의 본래 제목은 언론에 공개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시행방안’이 아니라 ‘현 시국 관련 대비계획’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조 전 사령관은 2017년 2~3월 계엄 문건서 ‘계엄임무 수행군’으로 편성된 20사단장과 8사단장을 만나기도 했다.

내란음모
처벌 가능?

기무사는 2017년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당일에 해당 문건을 온라인시스템에 훈련 비밀로 등재하려 했으나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수사단은 문건을 훈련비밀로 등록하면 훈련 때 다른 부대원들이 열람할 수 있기 때문에 문건의 존재가 탄로날까봐 우려했다고 판단했다.


박근혜정부 청와대가 문건 작성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도 나왔다. 계엄 문건은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도록 했다. 그러나 현행 계엄 관련 계획에는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 역할을 수행토록 한다고 돼있다. 계엄 문건에는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했을 때 체포 등 대응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계엄 문건 작성에 앞선 2016년 10월 김 전 장관은 국방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에게 북한 급변 사태를 가정해 계엄을 선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행정관은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지정하는 방안,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에 대응하는 방안 등도 김 전 실장에게 보고했다.

특히 육군본부 작전과도 2017년 2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조 전 사령관도 부하 간부에게 “계엄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하고 국회가 계엄 해제를 건의할 경우 국회를 해산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

수사단은 이 지시가 실제 계엄 문건에 실제 반영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조 전 사령관은 2016년 11월~2017년 2월 모두 네 차례 청와대를 방문했다. 세 번은 김 전 장관을 만나 대북 관련 보고 등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계엄 문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기무사 실무진들은 “장관이 현 위중한 상황을 고려해 위수령과 계엄 절차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장관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고 한 전 장관을 배후로 지목했다.


조 전 사령관 역시 미국서 보낸 우편 진술서를 통해 “한민구 장관의 구체적 지시에 따라 위수령과 계엄을 검토했다”고 진술했다고 검찰이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국방부 장관은 계엄 선포 건의 권한을 갖고 있기도 하다.

국힘 TF 활동하던 소강원 유죄 판결
조, 기소 넘어 집유 이상 가능성 ↑

그러나 한 전 장관은 2018년 검찰 조사에서 “당시 국회서 위수령에 대한 질의를 두 번 받았는데 일관된 답변을 하지 못해, 전반적으로 검토시키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자 조현천이 그 얘길 듣고 먼저 ‘그럼 저희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고, 그래서 ‘그럼 한 번 해보라’고 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둘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 전 사령관은 실무진에게 정치인 가택연금 상황과 계엄 선포 뒤 발생할 20여 가지 상황을 상정하고, 심지어 수도권 군부대 통제계획까지 작성 지침을 주고 계엄 문건을 작성시켰다. 당시 국회서 질의한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 <시사인>과의 인터뷰서 “위수령을 폐지할 의지가 있는지를 물었는데, 민간을 상대로 군을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검토했다는 얘기”라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차 수사에서 검찰은 조 전 사령관의 청와대 방문 당시 김 전 장관을 만나거나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다. 김 전 장관은 계엄 문건을 보고받은 적도 없어 관련이 없다고 진술했다.

검찰 수사가 더디지만 조 전 사령관이 기소를 넘어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재판부가 계엄 문건 핵심 인물로 분류되는 소 전 참모장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서부지법은 소 전 참모장에 대해 군사법원의 무죄 판결을 깨고 유죄,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소 전 참모장은 “간첩 대응 방안을 연구하는 TF를 만들었다”며 예산을 타냈는데, 재판부는 “계엄 문건의 위법 가능성을 알고 조직을 숨기려 했다”고 판단했다. 어느 부대가 시위대를 통제할지, 국회 반발은 어떻게 막을지 검토한 것 모두 직무를 벗어난 위법이라고 봤다.

조 전 사령관의 책임도 분명히 했다. 2심 재판부는 “사령관 지시에 따라 ‘계엄 문건’ TF가 구성·운영됐다”며 “문건을 사령관에게 네 차례 보고했고 사령관이 3차례 수정 보완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정권교체 뒤 계엄령 검토 문건을 훈련 비밀인 척 급조해 은폐한 부분도 사실로 인정했다.

“피하긴
힘들 것”

소 전 참모장은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돌연 취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함께 기소된 부하 1명은 군사법원 판결이 대법원서 확정됐고, 예편한 대령 1명은 현재 민간법원서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소 전 참모장은 세월호 유족 사찰 혐의로도 유죄 판결을 받고 지난 2월 법정 구속됐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1심 군사법원 판단이 2심서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며 “사실관계와 법리가 일치한다는 검찰의 판단을 인정한 것이다. 판결문에까지 조 전 사령관의 책임 문제가 적시된 만큼 조 전 사령관이 유죄를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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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