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박원순 다큐’ 실상

‘2차 가해’ 도 넘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사망 3주기에 발맞춘 헌정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온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사실 억울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가득 담겨 나올 예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은 그의 성희롱·추행적 언동이 실재했다고 판단했지만,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기어이 상업적 기록으로 남게 됐다.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칭하던 이들은 이제 ‘억울 호소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너희가 그렇게 질문할 게 뻔하니까. (그래서)돌아가신 거야.” 영화 <첫 변론>의 1차 예고편 말미. ‘박원순은 왜 죽었는가’라는 자막을 실은 제작진은 이같이 자문자답한다. 제목 그대로다. <첫 변론>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비위 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오는 7월 개봉 예정이다. 

사실 부정

박 전 시장이 관련 의혹에 휘말려 극단적 선택을 한 날로부터 정확히 3년이 되는 시점에, 그를 옹호하는 영화가 세상의 빛을 보는 셈이다. 

영화 제작위원회인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은 지난 2일 영화 포스터를 공개했다. 포스터에는 “세상을 변호했던 사람. 하지만 그는 떠났고, 이제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를 변호하려 한다”는 글귀가 담겼다. 이날 위원회는 지난 8일을 기준으로, 4000여명에게 후원금 2억원 이상을 모금한 사실도 함께 알렸다. 

영화는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가 2021년 발간한 책 <비극의 탄생> 내용을 토대로 제작됐다. 박 전 시장 재임시절 서울시장실서 근무한 이들의 증언을 담아낸 책이다. 발간 당시 박 전 시장을 옹호하고, 피해자 증언 일부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2차 가해’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위원회는 이번 영화로 2차 가해 논란을 정면 돌파할 의도로 보인다. 이들은 유튜브에 첫 예고편을 공개하며 “진실을 바라는 시민의 마음이 모였을 때, 2차 가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침묵을 이길 수 있다”고 전했다.

예고편에 등장한 김주명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은 피해자 측의 ‘반복적 성폭력 피해’ 주장에 관해 “전혀 그런 일 없었다. (피해자는)오히려 비서실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고 발언했다. 뒤이어 손 기자는 “당사자가 이미 사망해서 더 이상 반론을 펴지 못하는 상황에 (범죄자라고)마음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성비위 의혹의 진위 여부가 사정당국에 의해 직접적으로 가려진 바는 없다. 사건 당사자인 박 전 시장이 사망하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대신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와 법원 등은 해당 의혹을 사실로 판단했다. 

“박 변론할 것” 사망 3주기 다큐 영화
논란에도…“진실 바라는 시민” 강조

2021년 1월, 인권위는 약 반년간의 조사 끝에 “박원순 시장이 한 행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결정문에 따르면 위원회는 피해자 주장 중 ▲런닝셔츠 입은 셀카를 보낸 것 ▲네일아트한 피해자의 손과 손톱 등을 만진 것 ▲여성의 가슴이 부각된 이모티콘을 보낸 것 등 크게 세 가지 부분을 사실로 봤다. 이외에 ▲셀카를 찍자며 원치 않는 접촉을 한 점 ▲무릎 입맞춤 및 포옹 요구 ▲성적인 문자메시지 등은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인권위는 제기된 의혹의 절반만으로도 “박 전 시장이 부하 직원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적 굴욕감‧혐오감 등을 느끼게 했다”고 인정했다. 


박 전 시장의 부인 강난희씨와 유족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 인권위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1심에서 유족 측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참고인들의 진술과 복구된 일부 텔레그램 메시지 내용을 고려하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망인의 행위는 성적 언동에 해당하고 피해자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이르러 성희롱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상황에서는 성희롱 피해를 받은 이후에도 자신의 피해를 숨기고 직장 내에서 망인과의 관계를 고려해 어느 정도 친밀감을 드러낸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피해자의 대응 방식은 직장 내 성희롱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성희롱 있었다” 인권위·법원 판단 외면
“범죄 미화 느와르” “왜곡 시 배상하라”

이날 재판부는 유족 측이 주장한 인권위의 ‘절차적 위법’이나 ‘심판 범위 초과’ 논리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강씨는 지난달 20일 열린 항소심 변론기일에 출석해 “성희롱 피해자인 망인이 오히려 가해자로 설명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전 시장의 성희롱 행위를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관련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영화 제작위원회와 박 전 시장의 유족 등은 단순히 피해자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기관의 조사 결과와 법원 판결 또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이들은 2차 가해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관련한 비판은 정치권을 넘어 시민사회에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9일 국민의힘은 이에 대한 논평을 내고 “민주당식 범죄 미화 느와르물”이라고 맹폭했다.

국민의힘 배윤주 상근부대변인은 논평서 “가히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뻔뻔하게 눈 가리고 아웅하는 민주당식 피해자 코스프레의 전형적 시나리오라 할만하다”며 “덮고자 하면 더욱 드러난다는 욕개미창이란 말이 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덮고 미화한다면 결국 추악한 진실이 더 밝게 드러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피해자 측에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피해자 변호를 맡아온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는 지난 8일 <조선일보>와의 통화서 “(영화에 관해)아직 피해자와 이야기해본 건 없다”면서도 “이런 식이라면 결국 피해자가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욕개미창”


김 변호사는 “이건 사이비 종교 수준”이라며 “박 전 시장 다큐를 만든다면 그의 무책임한 행동과 잘못, (성희롱이 맞다는)국가인권위원회 결정도 제대로 조명해야 한다. 다큐를 통해 왜곡된 내용이 전파된다면 이로 인한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상해야 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jeongun15@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