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성 중립’ 화장실을 아십니까?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4.04 09:37:00
  • 호수 1421호
  • 댓글 7개

게이·레즈비언만 들어간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성 중립 화장실은 한국서 ‘모두의 화장실’로 불린다.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만들자는 인권에 초점을 맞춘 측면이 강했다. 시작 의도는 좋았으나 어두운 측면도 발생했다. 성 중립 화장실을 먼저 시작한 미국에서는 관련 성범죄가 보고되는 가운데 돌연 금지 법안도 나오고 있다.

사람의 성별은 엄마의 태 속에서 남성과 여성으로 나뉜다. 과거엔 자신의 성별을 부정하는 사례가 적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성별을 다양하게 나누면서 자신의 성별을 부정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남성이 여성을 좋아한다는 성 정체성에서 벗어난 레즈비언, 게이 등 동성연애자뿐 아니라 트렌스젠더 등의 등장으로 사회는 차츰 변하고 있다. 태초의 성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

오해할라

이들을 통틀어 ‘성소수자’로 일컫는다. 성소수자라는 단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 등을 외부에 알렸을 때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일부는 폭력 등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런 여건 속에서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공중화장실은 성소수자가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노인, 영유아 및 부모, 임산부 등도 상황에 따라 공중화장실 이용이 어렵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모두의 화장실’인 성중립 화장실이다. 모두의 화장실은 기존 공중화장실과는 달리 화장실 이용을 남녀로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의 화장실에는 남성, 여성 외 ▲치마와 바지를 반반 입은 사람 ▲아이 손을 잡은 사람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는 사람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의 픽토그램이 붙어있다. 이처럼 모두의 화장실은 트렌스젠더, 게이, 레즈비언뿐 아니라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등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화장실 내부도 공중화장실과 다르다. 남성 화장실 소변기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좌변기를 늘렸으며, 구획도 좌변기 칸 단위로 구분하지 않고 더 넓혔다. 어떤 곳은 생리컵 이용자가 편하게 쓸 수 있도록 1인용 세면대를 배치했다. 하지만 비용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지 못하고 칸 넓은 1인용 화장실을 만드는 데 그친 곳이 많다.

모두의 화장실을 가장 먼저 설립한 곳은 성공회대학교다. 지난해 3월16일 성공회대 새천년관 지하 1층에 모두의 화장실을 열었다. 지난해 12월 카이스트(KAIST)도 전산학부 건물에 모두의 화장실을 마련했고, 서울대학교는 리모델링을 앞둔 문화관 설계도에 모두의 화장실을 반영했다.

이중식 서울대 문화예술원장은 “해외 사례를 보면 문화시설에 제일 먼저 모두의 화장실을 마련한다. 서울대 역시 대학이자 문화시설인 만큼 (모두의 화장실을)마련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배려 vs 성범죄 우려
의도 좋으나 어두운 측면 공존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대학은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곳인 만큼 각자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꼭 학생들이 먼저 요구하지 않더라도 학교 차원서 나서서 설치한다면 학생들로서는 선택지를 하나 늘리는 것이라 문제될 게 없는 만큼 설치 움직임을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는 “다양한 성 정체성이 억압되는 대표적인 일상 공간이 공중화장실”이라며 “우리는 ‘공중화장실에 들어갈 때 어떤 문을 열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선택할 수 있는 보기는 대부분 여성 또는 남성”이라고 주장했다.


연대는 “성 중립 화장실은 이분법적 성별 구조에 따라 여러 개의 성 정체성이 외면당하거나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회구성원이 공생할 수 있는 도시공간을 확립해야 한다”며 강조했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모두가 모두의 화장실을 찬성하진 않는다. 일부 대학생들은 모두의 화장실의 취약한 안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 당초 성공회대 학생들은 모두의 화장실이 만들어지게 될 경우, 불법 촬영 범죄에 취약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남녀가 함께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면 대다수는 반대할 것이다. 우리가 모두의 화장실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곳이 성범죄의 온상이 될 위험이 다분하기 때문”이라며 “성 중립 화장실에서 성범죄가 발생한다는 것은 해외 사례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위험성이 실재하기 때문에 학생 안전을 위해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반대한다”고 규탄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시민단체서 모두의 화장실이 성범죄가 발생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뿐 아니라 화장실의 실효성도 문제다. 성공회대 교직원과 학생이 이용하는 건물 1층엔 모두의 화장실 한 곳이 전부다. 변기가 하나뿐이다 보니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용을 꺼리는 탓이다.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
다양한 정체성…대학서 시작

또 화장실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많은 관계로 이용이 힘들다는 점도 악재다. 정작 용변이 급한 사람은 2층으로 뛰어올라가야 한다.

카이스트에 재학 중이라는 김모씨(21‧남)는 “남성 화장실이 꽉 차 있을 경우 급할 때 사용하기에 편할 것 같지만, 선뜻 가기가 꺼려진다. 혹여나 여학생들에게 오해받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서로 눈치를 보는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재학 중인 이모씨(24‧여)는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서는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성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클 것 같아 굳이 쓰고 싶지 않고, 옆 칸에 누가 앉을지도 모르는데 무서울 것 같다”고 우려했다.

법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7조에는 ‘공중화장실은 남녀를 구분해야 하고, 연면적 660㎡ 미만인 공공건물 등만 예외로 인정된다’고 기재돼있다. 또 장애인·노인·임산부용 변기 등의 설치 규정도 따로 마련돼있다. 결국 대형 공공건물인 대학 내 모두의 화장실은 모두 법령을 어긴 셈이다. 

한편 성소수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모두의 화장실을 만든 미국은 돌연 “각종 범죄에 노출 후 결국 성 중립 화장실을 금하는 법안을 내는 추세”라며 입장을 바꿨다.

사용 부담

해당 보도자료에 따르면 미국 조지아주 초등학교 여성 화장실과 위스콘신주 고등학교 성중립 화장실에서 벌어진 성범죄 사례가 제기됐다. 이후 노스캐롤라이나주와 앨라배마주에는 성 소수자들이 따로 화장실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안이 제정됐다. 또 오클라호마주는 공립학교 도서관에 성이나 성적 활동에 초점을 맞춘 서적을 배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추진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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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