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다단계’ 워너비그룹 충격 실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4.05 10:17:41
  • 호수 1421호
  • 댓글 7개

목사가 대표이사 권사·장로가 간부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금융감독원이 워너비그룹을 불법 자금모집 업체로 지목했다. 누가 봐도 투자자가 사라져야 정상인 상황이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워너비그룹 B 대표는 한 교단의 담임목사로 재임 중이다. 워너비그룹 투자자들 역시 상당수가 교인이었다.

불법 다단계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불법 다단계는 강력한 사기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 피해자는 금전과 인간관계에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다.

금감원 주의
그래도 모집

문제는 가상자산을 이용한 신종 다단계 사기가 급증하면서 디지털 취약계층인 노년들이 타깃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 안정적인 경제력 등을 꿈꾸며 다단계 문을 두드렸던 노인들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불법 다단계 판매자는 주로 중년 이상의 남성이다. 반대로 피해자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고, 40대 이상 중년에게 주로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불법 다단계 사업 설명서에 가보면 60~70대 고령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지인이 “투자는 하지 않아도 된다. 와서 설명회만 들어봐라”는 말에 설명회장으로 향했다.

대부분 다단계 사업 설명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이곳에 오신 분들은 운이 좋다” “여기서 우리 모두 부자가 되자” “대표를 믿고 기다리면 다들 부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업체와 다르다. 최신 기술을 이용해 원금을 보장한다” 등의 말로 사업 설명회가 시작된다.


사업 설명회는 보통 일주일 단위로 강의가 열리고,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도 열린다. 이 같은 불법 다단계 업체 10여개가 강남의 한 빌딩에 모여 있다. 곳곳에는 사기 피해를 본 투자자의 고성이 들린다. 

이런 업체 중 이미 금융감독원의 주의가 있었음에도 투자자가 늘고 있는 업체가 있다. 지난 2월10일 금융감독원은 ‘유명 연예인을 내세우면서, 플랫폼, NFT 투자 등을 통해 고수익이 가능하다고 유학하는 불법 자금모집 업체를 주의하세요!’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해당 보도자료는 ‘A 그룹’을 예시로 설명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A 그룹은 1구좌(55만원)에 투자하면 매일 1만7000원을 지급해 월 수익이 100%에 달한다고 홍보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특히 A 그룹은 일반인의 신뢰를 얻기 위해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킨 TV 광고와 강남역 대형 옥외 간판 광고 및 전국적인 사업설명회 등으로 투자를 유도했다. 전국적인 사업설명회에도 불구하고 A 그룹은 사업구조 및 수익성에 대한 검증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였다.

‘유명 연예인’ 내세운 플랫폼 업체 
알고 보니 기독교 한 교단과 연계

그러나 자체 플랫폼 내 광고 이용권(NFT) 투자 시 고수익을 볼 수 있는 신사업이라고 홍보하면서 투자자를 현혹했다.

금융감독원은 “A 그룹은 판매수당을 별도로 지급하고 투자 금액에 따라 차등적으로 수당을 지급해 거액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수익성이 없을 경우 신규 투자금을 재원으로 하는 폰지사기(돌려막기) 형태일 수 있다”며 “A 그룹의 자금모집 수법은 과거 불법 유사수신업체 등의 수법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금융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A 그룹 가입자는 약 4만명, 피해 규모는 수천억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당국은 이와 관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금융감독원은 ▲고수익을 약속하며 자금을 모집한다면 유사수신·사기 ▲투자 전 반드시 제도권 금융회사인지 확인 ▲유사수신행위로 의심되면 신고하라고 조언했다. 

금융감독원 보도자료 발표 이후, 언론 매체들은 A 그룹이 ‘워너비그룹’이라고 밝혔다. 워너비그룹은 ▲메타버스 및 블록체인 임대 서비스 ▲줄기세포 배양 기술을 이용한 의약품·코스메틱 ▲글로벌 명품 유통 ▲온천 글램핑 ▲행사 기획 등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회사로 알려졌다.

과거에도
같은 행태

문제는 금융감독원의 ‘주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워너비그룹 투자자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런 투자가 가능한 이유가 있다. 워너비그룹 B 대표이사가 기독교 한 교단의 ‘담임목사’이기 때문이다.

이 사항은 해당 교단의 목사가 남긴 글과 기독교 대학교수가 남긴 SNS 글로 확인된다. 이 글에는 B 대표가 해당 교단에 ‘12억원’을 기부했는데 이 기부 사실을 신문사에 알렸는지에 대한 것과 워너비그룹에 대한 의문이 함께 적혀 있다.

C 목사에 따르면, B 대표는 해당 기독교 대학 88학번으로, 워너비그룹에 목사·권사·장로가 깊숙하게 개입돼있다.

그는 지난 1월27일 자신의 SNS를 통해 “B 대표이사가 자신은 보증금 2000만원, 월 70만원에 사는 빈털터리라고 주장하는데 회사에 돈이 있어 주주들을 설득해 12억원을 기부했다.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감동으로 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B 대표는 계속 자신의 선의를 알아달라고 한다. 그런데 워너비그룹은 유명 연예인을 내세운 광고에만 50억원을 썼다고 하고, 투자 회원만 4만명이라고 자랑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B 대표이사는 이미 2018년 워너비그룹의 전신인 C3W를 운영한 적 있다. 이때는 ‘자율순환 발전 플랫폼’을 내세워 ‘무한동력’을 실현했다고 주장했으나 현재 해당 회사는 폐업 상태다. 

회사 관계자와 투자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는 방치된 상태다. 투자자로 보이는 유저가 “운영하지 않느냐”고 묻자 다른 유저는 희망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곳 역시 다단계 형태로 투자자들을 모집했으나, 제품은 출시되지 않았다.

결국 B 대표이사는 불법 다단계 업체를 운영했고, 이 업체가 희망이 없자 곧바로 워너비그룹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말로만
이웃사랑


C 목사는 “2021년 교단서 문제를 일으켜 제명된 김모씨가 ○○교회 건축대금 3억5000만원을 빼돌려 몰래 투자한 회사가 B 대표이사의 C3W다. 당시 ○○교회 장로가 추궁해 B 대표이사는 차용증을 써주기도 했다. 결국 C3W는 사기로 판명 났다”고 B 대표이사의 과거 행적을 설명했다.

결국 B 대표이사는 C3W 사업이 기울자 워너비그룹을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 기독교 대학 D 교수는 워너비그룹서 운영하는 캥거루재단에 의문을 표했다.

D 교수는 “워너비그룹의 캥거루재단이 뭐하는 곳인지 이해가 안 된다. 보통 재단이라는 곳은 무엇을 돕기 위해 마련된다. 그래서 비영리재단을 생각한다. 그러나 문체부에 등록된 비영리재단 중 캥거루라는 이름의 비영리법인은 없다. 캥거루재단 홈페이지 연혁을 보면 최근 2년간 워너비그룹 내용만 있다”고 주장했다.

교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해당 글에 댓글을 남겼다. “자신도 교회서 워너비그룹에 관해 들은 적 있다” “오늘 지인이 젊은 개척교회 목사를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이거였다. 알려준 사람에게 전화해서 이 사실을 알려줘야겠다” 등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후 해당 교단은 총회장 목사의 명의로 “최근 교단 목회자와 교회(성도)를 대상으로 금융(폰지)사기에 대한 접근이 있어 유의‧당부드린다. 일부 교단 기관에 거액의 후원금을 기부하는 등 모 그룹의 행태가 문제가 돼 후원금을 반환하는 등의 혼란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며 금융사기 주의보를 발표했다. 

이어 “목회자뿐 아니라 성도들도 깊이 개입돼있어 적극적인 피해 예방을 위해 거리를 둘 것을 요청한다. 금융사기의 특성상 뒤늦게 피해자가 나타나고, 피해자가 소송까지 가는 일이 쉽지 않아 사전에 대응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NFT 투자로 높은 수익 보장”
고수익 신사업 투자자 현혹
“집 담보로 대출받아 이사직”

아울러 “매우 허술한 구조인데 당장의 수익에 현혹돼 투자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변에 다른 지인까지 끌어들이는 행태가 반복되면 안 된다. 주변에 이와 관련한 금융(폰지)사기에 연류된 분이 있다면 주의와 탈퇴를 부탁한다. 다시 한번 경계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워너비그룹 카톡 채팅방은 여전히 희망적이다. 이 카톡 채팅방 이름에 참여한 사람만 700명이다. 

이곳 회원은 “소리 없이 우는 아이들을 돕는다는 취지가 너무 좋아 집을 대출받아 이사직급을 가졌다. 빵 공장서 주야로 12시간 교대근무를 했다. 희망이 없었는데 희망을 밝혀준 워너비그룹에 큰 감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주일이라 교회서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이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냐는 대목이 꼭 내 이야기 같아서 많이 울었다”고 글을 남겼다.

결국 해당 글은 금융감독원과 소속 교단의 경고가 있음에도 워너비그룹에 지속적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비단, 워너비그룹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배의 장이 돼야 할 종교시설들이 사업을 위한 사람을 모으는 장소로 전락한 모양새다. 

교회는 왜 불법 다단계를 막을 수 없을까? 교회서 한때 청년부 사역을 했다는 E씨는 교회의 ‘이웃사랑’ 정신이 이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E씨는 “특정 종교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분명히 사기꾼들이 자기 마음대로 말하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측면이 있다. 3년 전 가족 중 크게 유행한 불법 다단계 업체에 돈을 넣은 사람이 있다”며 “말렸는데 계속해서 이상한 불법 다단계 업체를 이야기했다. 피해자 가족을 보면 유난히 교회가 많이 언급된다. 연령대를 보면 전형적으로 장로‧집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왜 이런 정보를 줬냐고 하면 ‘이웃사랑’으로 합리화한다. 내가 알게 된 정보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이라며 “또 한국 교회 커뮤니티가 워낙 끈끈해서 이런 불법 다단계가 침투하기 쉬운 구조”라고 부연했다.

묵묵부답
연락해도…

한편, <일요시사>는 워너비그룹 B 대표이사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해당 그룹은 홈페이지도 없는 데다, 워너비그룹 소속인 캥거루재단에 기재돼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B 대표이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세종시 소재의 한 교회 역시 홈페이지가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B 대표이사는 최근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해당 교회 담임목사인 것과 캥거루재단을 운영한다고 밝혔지만 워너비그룹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다만 해당 교회 유튜브 채널에는 4개월 전부터 B 대표이사의 설교가 올라오고 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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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