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일시멘트의 향후 경영권 승계 방식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선대의 ‘형제 경영’이 후대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일단 정통성을 타고난 창업주의 장남 일가가 경영권을 유지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일찌감치 꼭대기를 점유한 게 힘의 원천이다.
한일시멘트는 고 허채경 창업주가 1961년 12월 설립한 한일시멘트공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창업주는 1969년 수도미생물약품(현 녹십자)을 인수하며 제약업에 진출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도 공을 들였고, 이를 계기로 한일시멘트는 그룹사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바뀐 구도
창업주의 자식들은 1990년대 초부터 경영 일선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사업영역을 나눠 맡으며 보폭을 넓혔고, 1995년 8월 창업주가 세상을 떠나자 그룹은 본격적인 계열분리 수순을 밟게 됐다.
삼남 허동섭 전 회장은 한일건설, 사남 허남섭 전 회장은 한덕개발(옛 서울랜드)를 운영하는 게 계열분리의 골자였다. 차남 허영섭 회장과 오남 허일섭 회장은 녹십자를 경영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룹의 모체 격인 한일시멘트는 창업주의 장남인 허정섭 명예회장이 물려받은 방식으로 승계가 이뤄졌지만 나머지 형제도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실제로 삼남 허동섭 회장은 2003년 3월 장남으로부터 한일시멘트 회장직을 넘겨받았고, 2012년 3월에는 사남 허남섭 명예회장이 회장직을 넘겨받는 절차가 뒤따랐다.
‘장남→삼남→사남’ 순으로 이어진 한일시멘트 형제 경영 체제는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사실상 종식됐다. 허정섭 명예회장의 장남인 허기호 회장이 숙부에 뒤를 이어 회장에 오르면서 오너 3세 체제가 가동된 게 분수령이 됐다.
창업주의 장손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허기호 회장은 완벽한 정통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후 2005년 1월 한일시멘트 대표에 올랐고, 2016년 3월 공식적으로 회장에 선임됐다.
‘정·동·남’ 이후 1인 체제 구축
꼭대기 점유한 채 지배력 행사
재계에서는 향후 한일시멘트 회장직을 허기호 회장 집안에서 독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숙부들의 자손이 허기호 회장에 이어 회장직을 수행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희박하다는 계산이다. 일단 허기호 회장이 한일시멘트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 있다는 점이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허기호 회장은 2017년 3월 한일시멘트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무렵 허기호 회장은 부친인 허정섭 명예회장에게 한일시멘트 주식 10만주를 증여받고 2만5725주를 장내매수하면서 결과적으로 총 71만4725주를 추가 취득했다. 지분율은 9.47%로 확대됐다.
반면 허기호 회장에게 증여하기 전까지 주식 60만주를 보유했던 허정섭 명예회장은 주식 보유량이 50만주로 줄었다. 지분율 역시 6.63% 낮아지면서 2대주주로 내려앉았다.
이후 허기호 회장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지배력을 더욱 키웠다. 한일시멘트는 2018년 인적 분할 이후 존속법인인 한일홀딩스와 신설회사인 한일시멘트로 나뉘었는데, 한일홀딩스가 지배구조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구조다. 현재 허기호 회장은 한일홀딩스 지분 31.2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다만 허기호 회장 슬하의 자식들이 경영 일선에 자리 잡기 전까지는 ‘허기호→허기수’로 이어지는 형제 승계가 뒤따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허기호 회장은 한일홀딩스를 맡고 있으며, 핵심 계열사인 한일시멘트와 한일현대시멘트는 허기호 회장의 동생인 허기수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확고부동
형제 간 지분 격차를 감안하면 허기수 부회장이 회장직을 넘겨받더라도 계속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허기수 부회장의 한일홀딩스 보유 지분율은 1.15%에 불과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