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학폭 논란 속 하차한 황영웅

‘트로트 왕’ 꿈 과거에 막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옛말에 때린 사람은 발 뻗고 못 자도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잔다고 했다. 말 그대로 ‘옛말’이 된 걸까? 가수 황영웅이 폭력적인 과거사가 드러난 뒤에도 오디션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 결승 1차전에서 1위 자리를 지켜냈다. 프로그램 막판 하차를 선언하긴 했지만, 명확한 사과나 자숙 의사는 밝힌 바 없다. 어린 시절에 휘둘렀던 폭력은 모두에게 비극이 됐다. TV를 보며 다시 가슴 졸인 피해자도, 과거에 발목잡힌 황영웅도 발 뻗고 잘 수 없는 날이 이어진다.

황영웅은 결국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그는 MBN 트로트 오디션 <불타는 트롯맨> 최종회, 결승 2차전 방영을 앞두고 프로그램 하차 의사를 직접 밝혔다. 황영웅은 결승 2차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사전 녹화분은 통편집됐다. 

최종 우승자는 황영웅이 아닌 손태진이었다. 손태진은 하차한 황영웅 대신 1차전 1위로 올라섰고, 2차전서도 호성적을 기록하며 최종 누적 상금 6억2967만7200원의 주인공이 됐다.

인생 역전
과거 발목

처음부터 대세는 황영웅이었다. 1984년생으로 울산 출신인 황영웅은 자동차 부품 하청업체에서 6년간 일하다 <불타는 트롯맨>에 출연했다. TV조선 <미스터트롯> 우승자 임영웅과 이름이 같아 이목을 끌었다. 노래 실력도 출중했다.

황영웅은 대표단 예심에서 진미령의 ‘미운 사랑’을 불러 본선에 직행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설운도, 이석훈 등 선배 가수에게 호평받은 무대였다. 


뒤이은 본선 1차 무대에선 나훈아의 ‘영영’을 불러 팀과 함께 우승했다. 본선 2차 라이벌전에서는 남진의 ‘빈지게’를 선곡해 승리했고, 이후 디너쇼 미션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준결승에 안착했다.

<불타는 트롯맨>과 황영웅은 함께 승승장구했다. <불타는 트롯맨>은 12주 연속 동 시간대 시청률 전 채널 1위 기록을 이어나갔고, 황영웅은 1주 차부터 국민응원투표 1위 자리에 안착하며 대세를 굳혔다. 

반전은 프로그램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터졌다. 황영웅이 과거 상해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지난달 22일 연예부 기자 출신 유튜버 이진호는 ‘<불타는 트롯맨> 황영웅의 두 얼굴…충격 과거 실체’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자신이 황영웅에게 폭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A씨 인터뷰가 담겼다.

그는 이진호와의 대화에서 “제 생일에 황영웅한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었다. 그는 황영웅 측이 어떤 식으로 보복할지 몰라 처음에는 제보를 피하려 했다고 밝혔다.

A씨는 폭행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10명이 모여 1차로 술집에서 생일파티를 하고, 술을 싫어하는 모임과 술을 마시는 모임이 나뉘어 놀기로 했다”며 “저는 술을 안 마시는 모임에 가려고 했는데, 황영웅이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해서 말다툼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때가 울산 모처에서 욕을 했다거나 실랑이가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다. 제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먹이 날아오더라. 그래서 내가 주먹에 맞고 쓰러졌는데 발로 제 얼굴을 찼다. 친구들은 황영웅을 말렸고, 제 얼굴에서 피가 나서 친구들이 피를 닦아줬다. 이후 경찰이 왔고 황영웅은 집으로 귀가했다”고 밝혔다.


<불트> 강력 우승 후보 거론됐지만… 
과거 폭행·학폭 의혹 불거져 결국 낙마

A씨 주장에 따르면 그는 사건 이후로 황영웅에게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 그는 “경찰이 저와 황영웅을 격리시킨 뒤 서로 대화는 하지 못했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황영웅 측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무고와 회유를 일삼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A씨는 황영웅이 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쌍방폭행을 주장했다고 폭로했다. 사건 현장 주변에 CCTV가 없었던 점을 활용해, 일방적 폭행을 쌍방폭행으로 둔갑시키려 했다는 것.

또 황영웅과 어머니가 동석했던 친구들을 만나 밥을 사 먹여가면서 회유했다고도 밝혔다.

A씨는 당시 황영웅의 폭행으로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다. “치열이 뒤틀릴 정도였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아울러 “현재 검찰까지 넘어간 상황에서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겠다. 합의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치료비 포함해서 300만원 정도 받았다. 하지만 돈은 필요 없었다”며 “공론화를 하게 된 이유나 배경은 ‘나를 친구라고 생각은 했나’라는 의문과 함께 사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분한테 응원과 사랑을 받고 있는 황영웅은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반성하며 살아가야 한다. 과거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성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맺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의 기초적인 사실관계가 A씨 주장과 부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A씨 폭로대로, 황영웅은 2016년 상해죄로 벌금형을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외에도 황영웅은 학교폭력, 데이트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 등에도 휘말렸다. 나름의 인증을 거친 뒤 이뤄진 폭로에, 그 진위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주장이 뒤엉키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이에 <불타는 트롯맨> 측 제작진이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3일 제작진은 “최근 일각에서 제기한 저희 측 참가자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전달드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제작진은 <불타는 트롯맨> 오디션 당시 참여를 원하는 이들의 동의를 얻어 결격 사유 여부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서약서를 받는 등 내부적 절차를 거쳐 모집을 진행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두 얼굴의
트롯맨

또 “논란이 된 참가자 또한 해당 과정을 거쳐 참가하게 되었으며, 이후 다른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꿈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으로 많은 이에게 울림을 주었기에 제작진 역시 과거사와 관련해 갑작스레 불거진 논란이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며 “제작진이 한 개인의 과거사를 세세하게 파헤치고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로 인해 사실 파악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 조속한 상황 파악 후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달이 바뀌도록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황영웅은 과거 논란이 불거진 와중에도 결승 1차전에 출전해 1위 자리를 수성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오후 방송분에서도 편집 없이 등장했다.

이날 방영된 결승 1차전 1라운드에선 ‘한 곡 대결’이 펼쳐졌다. 한 곡 대결은 2인1조로 자유 선곡한 한 곡을 나눠 부르고, 둘 중 한 명에게 투표하는 방식이다. 연예인-국민 대표단 점수를 합산한 현장 점수 결과, 황영웅은 공훈, 손태진, 민수현 등과 함께 각 대결 승자가 됐다. 

손태진이 250점을 획득하며 1라운드 현장 점수 1위에 올랐고, 황영웅이 그 뒤를 이었다.

이어 치러진 2라운드는 ‘신곡 미션’이었다. 히트 작곡가의 신곡을 나눠받은 결승 진출자들은 각자의 곡으로 무대를 꾸몄다. 이때 황영웅은 작곡가 송광호, 김철인이 만든 ‘안 볼 때 없을 때’ 무대에 올라 연예인 대표단 점수 1위를 차지했다.

2라운드 국민 대표단 점수와 실시간 문자 투표를 합산한 결승 1차전 최종 결과는 생방송으로 공개됐다. 이번에도 1위는 황영웅이었다. 생방송 중 황영웅은 자신의 논란을 의식한 듯 계속 굳은 표정을 보였다.

1위 소감으로는 “감사드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 주 최종 1위가 되면 상금에 대해서 사회에 기부를 하고 싶습니다. 이런 말씀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하차
늦은 사과

논란을 명확히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한 이날 발언은 되레 구설에 올랐다. 일부 시청자들은 “2라운드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우승을 논하며 기부 이야기를 꺼낸 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제작진의 편집 방향도 도마 위에 올랐다. 폭행 논란이 있는 출연자가 평소처럼 등장하는 게 온당하냐는 질타가 이어졌다. 실제로 황영웅은 이날 방영분에서도 얼굴 클로즈업, 미소 등의 장면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황영웅의 무대에 대한 호평과 찬사 등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비중으로 전파를 탔다. 

일각에서는 제작진이 고의로 ‘소극적 결단’을 내렸다는 의심이 나왔다. 황영웅이 프로그램 흥행을 이끈 주요 참가자다 보니, 제작진이 시청률 하락을 우려해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것이 아니냐는 것.

들불처럼 번진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황영웅은 지난 3일 새벽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하차 의사를 전했다.

그는 “결승에 들어간 상황에서 저로 인해 피해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지난 방송에 참여하면서 너무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일이라고 변명하지 않겠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오해는 풀고, 진심으로 사과하겠다”며 “저로 인해 상처받으셨던 분들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적었다. 

같은 날 제작진은 공식 입장문을 내고 “어젯밤, 참가자 황영웅씨가 경연 기권 의사를 밝혀옴에 따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자진 하차를 받아들이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간 파악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바탕으로 가능한 한 모든 경우의 수를 숙고했고, 최선의 경연 진행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어 “마지막까지 공정하고 투명한 오디션이 되도록 만전을 기할 것을 약속드린다”며 “앞으로 제작진의 공정성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의혹과 사실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빗발치는 하차 요구 속 결승 1차전 강행 
결국 “용서 구한다” 입장문…뒤늦게 하차

제작진은 지난 7일 방영된 결승 2차전 방영분에서도 황영웅 논란과 관련해 재차 사과했다. 이날 MC 도경완은 “프로그램과 관련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제작진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드린다. <불타는 트롯맨> 전 출연자와 제작진은 끝까지 공정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방송 종영 시점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황영웅은 오디션 종료 후 예정된 참가자 전국 투어 콘서트에서도 빠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당장의 논란은 황영웅과 제작진이 종영 직전 하차를 선택하면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여론은 수많은 피해담 사이에서 여전히 옥석을 가려내고 있다. 제기된 의혹 중 몇 가지가 더 사실로 확인되면 황영웅은 추후 활동 가능성조차 불투명해진다. 

더군다나 황영웅은 이미 자숙 없이 활동을 이어가려는 낌새를 보이며 대중의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지난 7일 이진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자진하차 황영웅 <불타는 트롯맨> 결단 비하인드 | 김갑수 옹호에 분노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영상에서 “공교롭게도 <불타는 트롯맨>의 우승자보다 황영웅의 비하인드를 궁금해하시는 분이 많다. 그래서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를 전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영상에서 황영웅이 하차 당시 게시한 글 일부를 분석했다. 이진호는 “사과문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저는 이제 경연을 끝마치려고 한다’”라며 “통상적으로는 ‘활동 중단’이라는 글귀가 들어간다. 하지만 피해자분들이 가장 화가 났던 게 자숙이라는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그러니까 이 글귀의 뜻은 ‘내가 결승전에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과오를 씻겠다’는 거다. 자숙? 없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하겠다고는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직접적인 연락은 없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발 뻗고
못 잔다

그는 ‘황영웅이 완전 퇴출됐다. 권선징악이라고 보는지’라는 누리꾼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잘라 답했다. 이진호는 “실제로 황영웅은 팬들을 상대로 팬미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황영웅이) 방송에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 동정 여론이 일었다”며 “팬미팅이라도 진행되면 황영웅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타는 트롯맨’ PD 전작 살펴보니…학폭 ‘얼룩’ 여럿

대중은 황영웅의 과거사와 함께 <불타는 트롯맨> 제작진의 과거 이력에도 주목하고 있다.

연출을 총괄한 PD가 과거 맡았던 프로그램에서 출연자 학교폭력 의혹이 수차례 일었기 때문이다. 

해당 PD는 2013년 방영된 SBS 예능 <송포유> 제작에 참여했으며, 이후 2020년 방영된 <미스트롯2>, 올해 방영된 <불타는 트롯맨> 등을 연출했다. 

아울러 프로그램들이 해당 출연자들에 대한 ‘깔끔한 대처’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비판 대상이다.

해당 PD를 둘러싸고 “학교폭력 피해자에 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우선 <송포유>는 일진과 비행청소년으로 팀을 꾸려 합창대회에 나가고, 이를 통해 이들의 ‘개과천선’을 꾀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방영 당시 출연자에 관한 여러 논란이 터졌고, 프로그램은 ‘일진 미화 논란’에 휘말렸다.

특히 이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이들이 방송에 나온 모습을 보고 “2차 가해를 당해 고통스럽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미스트롯2> 역시 재소환됐다.

이번 황영웅 사태와 마찬가지로, 당시 유력 우승 후보였던 진달래 또한 학교폭력 가해 의혹이 불거지면서 자진 하차했다.

이때도 제작진의 편집 방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방송 통편집이 대신, 학폭 가해자가 프로그램에 피해가 가면 안 된다는 선의를 보이며 하차하는 모습을 담았다는 지적이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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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