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서초구 소재 페리지갤러리에서 박선민 작가의 개인전 ‘메아리와 서리의 도서관’을 준비했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커다랗고 비정형적인 책상의 위아래에 놓인 여러 조형물과 장치를 마주하게 된다.
책상 위에는 여러 형태의 얼음덩어리가 놓여 있다. 자연스럽게 녹았다가 얼기를 반복하면서 만들어진 반질반질하거나 울퉁불퉁한 표면을 관찰할 수 있다. 얼음 사이에는 책을 엎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A형 텐트 같기도 한 형태의 유리판이 놓여 있다.
이질적인 것
각기 다른 곳에 그어진 중첩된 직선은 박선민이 읽은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문장이나 단어에 밑줄을 그은 뒤 글을 제외하고 선만 옮겨온 것이다. 책상 여기저기에는 관람객이 두고 간 커피잔과 커피를 흘린 흔적이 남아있다. 책상 아래 드리워진 커튼 안쪽에는 누울 수 있는 자리와 헤드폰이 준비돼있다.
헤드폰을 쓰고 누우면 무엇인가 타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열대우림의 소리 같은 것이 음악에 뒤섞여 들린다. 냉각장치서 나오는 소리와 진동, 약간의 온기, 바람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위와 아래, 수평과 수직, 그리고 곡선의 서로 다른 형태와 리듬을 가진 시공간을 만날 수 있다.
글은 제외하고 선만
소리 진동 온기 바람
도서관은 복수의 시간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서로 다른 속도와 지속성을 가진 것의 집합체다. 박선민이 추구하는 미래의 도서관은 명확한 길로 인도하는 항구적인 공간이 아니라 다층적인 정보의 층위 사이를 자유롭게 휘저으며 끊임없이 길을 잃고 무너져 내리고 새로 만들어지는 곳이다.
이 새로운 도서관은 원시 밀림처럼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무질서한 세계로 보인다. 그 속을 파고들어 탐험한다면 숨겨져 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풍부한 공간이자 안식처다. 이렇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탐험의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며 어떤 것에 대해 깊게 정주해 탐구하는 지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이 도서관에서 우리는 고정된 체계와 규칙을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한다. 그것이 박선민에게는 감각과 지식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그 사이를 반복해서 미끄러지듯 걷는 일이다. 책을 읽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연구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복수의 시간이 교차하는 곳
예상 어려운 무질서한 세계
박선민의 수행은 서로 이질적인 것이 상호작용하는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 어떤 이야기 속에 잠재된 부분을 발견하는 것, 과거의 것을 현재에 다시 들춰내고 어떤 징후를 발견하는 일로 이어진다. 박선민의 작품은 어떤 대상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또 다른 흔적을 남기고 수집된 정보는 언어에서 시작되지만 작가에 의해 사물과 이미지로 옮겨간다.
페리지갤러리 관계자는 “박선민이 도서관을 통해 다루는 것은 인류가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면서 해결하고자 했던 물리·문화·정신적 삶의 근본적인 문제”라며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온 관념은 잠재돼있다가도 어느 순간 특별한 분절점을 만나면 솟구쳐 올라 그 존재를 다시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상호작용
이어 “박선민은 이러한 관념과 현재 육체적 실존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어긋남이 어떤 방식으로 접촉되고 해제되는지 보여준다”며 “전시 제목인 메아리는 몸으로 경험하게 되는 실존에 대한 반향이며, 서리는 관념적인 것이 응축된 순간을 기록하는 언어 같은 것이 서로 밀착돼있음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고 덧붙였다.
[박선민은?]
▲학력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 마이스터 슐러(Meisterschueler) 석사(2004)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1996)
서울여자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물학과 수학(1991)
▲개인전
‘메아리와 서리의 도서관’ 페리지갤러리(2023)
‘A Walk into You’ 원앤제이 갤러리(2022)
‘버섯의 건축’ 비아아트 대동호텔 아트센터(2018)
‘고속도로 기하학’ 윌링 앤 딜링(2015)
‘이미지의 침묵’ 독일문화원(2013)
‘Versus 6’ 갤러리팩토리(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