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저자의 책에서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오디오북 같았다. 저자가 책을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고조가 크지 않은 목소리로 반복해서 말했다. 애도받을 권리와 애도할 권리에 대해.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권리에 대해.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한다. 김민석 팀장은 나눔과나눔에서 장례 지원, 언론 대응, 상담 응대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직원이 4명이라 나눔과나눔에서 진행 중인 모든 일에 관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음 뒤에
지난해 9월 나눔과나눔 사무실이 있는 건물 지하 커피숍에서 김 팀장을 만났다. 텀블러에 커피를 채우고 아이패드를 보면서 기자와 이른바 ‘상견례’를 했다. <일요시사>가 취재하려는 내용이 무엇이고, 어떤 내용의 자료가 필요한지 등을 설명하고 자문을 구하는 자리였다.
이날 취재진에 각인된 단어는 ‘애도’였다. 나눔과나눔은 애도받을 권리와 애도할 권리가 모두에게 보장되는 사회를 만든다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단체다.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공영장례 지원은 그 수단이다. 이를 위해 4명의 직원은 서울시립승화원에 마련된 공공추모장소인 ‘그리다’로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다.
대부분의 무연고 사망자는 안치실서 바로 화장장으로 이동하는 직장 형태의 장례로 ‘처리’되곤 했다. 사망자 가운데 ▲연고가 없거나 ▲연고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할 때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다. 전체 무연고 사망자의 약 70%가 연고자의 시신 거부와 기피로 ‘만들어진다’.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단 경제적인 이유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경우가 있고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에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관계가 없을 경우에도 고인은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 생전에 고인과 얼마나 가까웠든 경제적 여유가 있든 그건 중요치 않다.
법 해석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고인을 배웅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지난해 10월 정식 인터뷰를 위해 다시 만난 김 팀장은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 ‘제도가 만들어낸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굉장히 고리타분하고 협소한 기준으로 낙인찍힌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지원
지난해 서울에서만 1000여명
그는 “무연고 사망자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가 굉장히 세다. 고인이 굉장히 외롭고 쓸쓸하게 또 빈곤하게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한다. 하지만 실제로 장례 현장서 보면 생전에 많은 관계를 맺었고 또 삶을 누린 고인도 많았다. 죽은 이후에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그 협소한 범위의 연고자가 없다는 딱 하나의 이유로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영장례는 낙인찍힌 채 떠나는 무연고 사망자를 위해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절차다. 서울시립승화원에 마련된 공영장례 빈소에는 고인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불쑥 찾아와 애도의 뜻을 전하는 일도 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면서 음식과 술을 올리고 종교인이 기도를 건넨다.
이후 화장장으로 이동해 고인은 한줌의 재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3시간 남짓 동안 김 팀장은 애도의 시간을 갖는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위한 구청의 공문 속에만 남아 있던 고인은 생전 관계를 맺었던 지인, 일면식도 없던 이의 애도를 받으며 마지막 길을 떠난다.
나눔과나눔에 따르면 서울시는 2020년 665명, 2021년 856명의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렀다. 지난해는 그 숫자가 1000여명을 넘어섰다.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면 3000여명 이상이 무연고 사망자다.
김 팀장과 나눔과나눔이 주목하는 것은 고인의 숫자만이 아니다. 고인을 둘러싼 관계다.
김 팀장은 “장례를 치른다는 의미는 고인을 존엄하게 배웅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고인과의 관계를 전환하는 일종의 순간이라 생각한다”며 “그 전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여러 학술지서 이야기하는 ‘박탈된 애도’를 경험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주 보수적으로 계산해 고인당 3~4명의 인연이 있다고 가정하면 고인을 알던 사람, 고인을 애도하려 했던 사람 등 1만~1만2000명의 관계가 있는 셈이에요. 무연고 사망자가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직장 형태로 ‘처리’된다면 1만명이 훌쩍 넘는, 이른바 ‘박탈된 애도’를 경험하는 사람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죠.”
김 팀장은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현실을 지적했다.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공영장례 관련 조례가 제정되고 장례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서울시는 그나마 상황이 낫다고 했다. 공영장례 조례가 없거나 시행되지 않고 있는 지자체도 많다는 것.
사회적 안전망 부재
보편적 영역이 돼야
그는 “서울시의 시스템으로 서울시만큼 하고 있는 곳은 전국서 서울시가 유일하다”고 전했다.
나눔과나눔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장례 분야를 보편적인 사회보장제도로 기능하는 데 기여하길 바라고 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슬로건 중 하나인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고 싶은 바람이다.
김 팀장은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데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에 격차가, 그것도 굉장히 큰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가 그런 사회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하지 못할 정도의 경제적 수준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12월에 책이 나온다고 조심스럽게 소개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후로 지난달 10일, 김 팀장은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죽은 자와 남겨진 자의 슬픔을 위로하는 마음’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에는 2020년 2월 나눔과나눔에 입사한 그의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고인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인터뷰 때는 말을 아꼈던 실제 사례가 김 팀장의 각색을 거쳐 소개됐다. 무표정하게 준비된 원고를 읽듯이 건조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던 김 팀장이 ‘인간 김민석’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여러 차례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쓰고 싶지 않았다’는 책의 첫 문장에서 김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면 과언일까?
남겨지는
“당신이 누구이든, 고인과 어떤 관계이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애도의 웅덩이에 뛰어들어도 됩니다. 그것이 우리를 힘든 시간 속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주진 못할 테지만, 적어도 언제든 뛰어들었다 빠져나올 수 있는 웅덩이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웅덩이는 온전히 나의 것이니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요.”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 김민석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