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00일’ 끝나지 않은 쇼크

사람은 죽고 분열만 남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고로 3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사고 초기 아비규환 상태의 현장이 SNS 등을 통해 그대로 공개되면서 전 국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로부터 100일. 한국 사회에 또 한 번의 상흔을 남긴 사고 그 이후를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지난해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인파 사이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SNS 등을 통해 사고 현장이 ‘생중계’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는 일순간 패닉 상태에 빠졌다.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있는 사람, 이미 머리끝까지 천으로 덮여 있는 사람 등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몰린 인파
속수무책

언론 속보를 통해 현장 상황이 업데이트되기 시작하면서 사망자 집계가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이날 사고로 158명이 사망했고 이후 생존자 1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종 사망자 159명, 부상자 196명 등 35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참사라 불릴만한 대형사고였다. 

지난 13일 경찰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는 이태원 참사 원인과 책임 규명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1일 501명 규모로 특수본이 구성된 지 74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76일 만이다. 특수본은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 서울경찰청, 용산소방서 소속 공무원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특수본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는 폭 3m 남짓의 좁고 가파른 내리막 골목에 인파가 한꺼번에 빽빽하게 몰려 넘어지면서 발생했다. 참사 당일인 지난해 10월29일 오후 10시15분께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 밀집된 군중은 갑자기 빠른 속도로 해밀톤호텔 옆 T자형 좁은 골목으로 떠밀려 내려왔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넘어졌다. 뒤에서 따라오던 사람도 차례로 넘어지고 골목 아래쪽에선 사람이 빠져나가지 못했다. 골목 뒤편의 군중 밀집도가 높아지기 시작한 것.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해당 골목의 군중 밀도는 오후 10시15분께 ㎡당 7.72~8.9명에서 5분 뒤 ㎡당 8.06~9.04명으로 늘었다. 10분 뒤에는 ㎡당 9.07~10.74명까지 증가했다. 

앞에서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뒤에는 사람이 밀리는 상황이 10여분간 계속되면서 수백명이 겹겹이 쌓이고 끼이는 압사 상황이 벌어졌다. 참사 당시 현장은 ‘군중 유체화’로, 이른바 사람이 너무 몰려 물 등의 유체와 같은 상태가 될 정도로 과도한 밀집 상황을 보였다.

피해자의 사인은 압착성 질식사, 뇌부종(저산소성 뇌손상) 등으로 나타났다. 인파에 끼어 숨을 쉬지 못해 사망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특수본은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총 23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이 중 6명은 구속됐다.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가 관할 지자체와 경찰, 소방 등 재난안전 예방·대응 의무가 있는 기관이 사전 안전대책을 수립하지 않거나 부실한 대책을 수립하는 등 예방적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인재’라고 본 것이다. 

사상자만 300명 넘어 골목에서 넘어져 압사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특수본·국조특위 마무리


관심을 모았던 윗선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종결했다. 특수본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 등은 재난안전법상 특정 지역의 다중운집 위험에 대한 구체적 주의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발표하고 책임자 규명을 끝으로 해산 수순을 밟았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이하 국조특위) 활동도 마무리됐다. 지난 17일 국조특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활동 결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이날 보고서 채택은 국민의힘 위원이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야당 3당 합의로 이뤄졌다. 

국민의힘은 이상민 장관 등 책임이 담긴 결과보고서를 채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 이 장관, 한오섭 국정상황실 실장,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정현욱 용산경찰서 112운영지원팀장, 김의승 서울시 행정1부시장 등을 위증 혐의로 고발하고 이용욱 경찰청 전 상황1담당관을 불출석 및 국회 모욕죄 혐의로 고발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특수본 수사와 국조특위 활동이 마무리됐지만 이태원 참사의 여진은 현재진행형이다. 유족은 윗선이 제외된 특수본 수사 결과에 반발하고 있고 국조특위의 보고서 채택은 여당 없이 진행된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나오는 중이다. 이태원 참사가 정치쟁점화 되면서 진상규명은 뒷전이 됐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지난 18일 여당을 제외한 야당 3당은 이태원 참사 국조 결과 국민보고회를 열었다. 이날 보고회에서 야당 3당은 재발 방지책 수립 등을 위한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설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국조 기간 동안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관련 책임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종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주최자가 없는 지역축제여서 정부가 책임질 일은 없다는 변명은 싹 사라졌다”며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대규모 인파가 운집해 압사사고가 우려된다고 예측해 경비대 배치 등으로 대비해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대규모 인파가 운집해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을 예견하면서도 경비대 배치 등 사전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아 참사를 불러왔다는 점도 증명됐고 서울시도 대규모 인파를 예견하면서도 이태원 지하철역 무정차 등 인파 관리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유족 대표
“특검해야”

그러면서 “서울시와 경찰, 행안부 어느 하나 행정기관에서도 자체조사를 통해 참사 원인과 책임을 국회에 보고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면서 “유족이 묻고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해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상조사가 시작돼야 하며 결과에 따라 행정적 징계를 요구하고 형사적 책임을 질 사람에 대한 특검도 진행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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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