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의혹’ 쌍방울 비선 실세 추적

“짠돌이 회장이 변호사비 대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지난 17일, 입국했다. 1년 가까이 해외 도피를 이어갔으나 검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사실상 일부러 잡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전 회장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관계를 부인하면서 검찰이 두 사람 간 확실한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는 관측에도 무게가 실린다. 김 전 회장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인물들은 회사 내 비선 실세가 따로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은 타인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맡기지 않는 ‘짠돌이’로 유명하다. 특히 경제 관련 지식이 얕다 보니 회사 경영과 자금흐름 등 조언을 해준 인물이 따로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보다 10살 어린 A씨다. 쌍방울 내에서 대장동을 설계한 정영학 회계사와 비슷한 역할을 해왔다는 게 김 전 회장 측근들의 주장이다.

회장님
그림자

쌍방울그룹 실소유주인 김 전 회장은 전북 남원 출신으로 전주 지역을 연고로 활동하다 2000년대에 상경해 대부업을 시작했다. 주가조작 세력에게 자금을 대는 방식으로 자산을 키워온 김 전 회장은 2010년 위기를 겪던 쌍방울 인수에 성공했다.

이후 과거부터 깊은 친분을 유지해온 배상윤 KH그룹 회장과 거래를 이어왔다. 배 회장은 김 전 회장의 돈을 빌려 쌍방울을 인수하려 했으나 이를 갚지 못하고 지분을 대신 넘겼다. 쌍방울은 KH와 전환사채(CB)를 주고받으며 무자본 인수합병(M&A)을 상호 지원해왔다.

이 때문에 쌍방울 사업과는 관계없는 특장차 제조사와 연예기획사 등을 계열사로 끌어들이며 순환출자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쌍방울을 키운 이후 검사와 정치인 보좌관 출신 인사들을 쌍방울 본사 및 계열사 사외이사 또는 고문으로 대거 영입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김 전 회장이 향후 있을 검찰 수사에 대비해왔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이화영 전 국회의원이 경기도 평화부지사 역임 시절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를 등에 업고 대북 사업까지 노렸다. 계열사 나노스(현 SBW생명과학)의 사업 목적에 해외자원 개발업을 신설하고 북한으로부터 희토류 등 북한 광물에 대한 사업권을 약정받은 것이다.

지난해 5월 말 쌍방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김 전 회장은 싱가포르로 도주했다. 호화로운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김 전 회장은 최근 태국 빠룸타니에 위치한 골프장에서 8개월 만에 양선길 회장과 함께 검거됐다. 김 전 회장은 지난달 24일 횡령·배임 등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이달 초 김 전 회장을 기소할 방침인 가운데 각종 의혹을 규명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수원지검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는 사실상 명절 휴가를 반납하고 김 전 회장을 둘러싼 각종 혐의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김 전 회장은 ▲4500억원 상당의 배임 및 수백억원에 이르는 횡령 ▲200억원 전환사채 허위 공시 등 자본시장법 위반 ▲500만달러(약 60억원) 대북 송금 의혹 ▲이 전 의원에 3억여원 뇌물공여 및 정치자금법 위반 ▲임직원들에게 PC 교체 등 증거인멸 교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을 받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큰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타입”
김성태 오른팔 격…투자·자금흐름 등 책사 역할


검찰은 김 전 회장이 계열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CB를 발행하고 이를 매각, 매입하면서 불법적인 자금흐름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 비자금이 대북 송금 또는 이 대표 변호사비로 쓰였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특히 북한에 거액의 달러를 보낸 배경에 당시 경기도 사업과 연관성은 없는지 따져보고 있다. 김 전 회장은 2019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 인사에게 500만달러(약 60억원)를 전달했는데, 그 이유를 대북 경제협력 사업권 대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또 ‘경기도가 주기로 한 스마트팜 조성 사업비 50억원을 (쌍방울이)내달라’는 북한의 요구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기소 전까지 대북 송금의 정확한 배경을 밝혀낼 계획이다.

김 전 회장의 최측근들 사이에서는 김 전 회장이 사실상 일부러 잡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요시사>와 만난 김 전 회장의 최측근들은 그가 한 달에 여러개의 대포폰과 차명계좌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해왔다고 강조했다.

쌍방울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온 B씨는 “붙잡히기 전까지 김 전 회장과 연락한 적은 없지만 도피 과정에서 여러개의 대포폰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마음만 먹으면 잡히지 않았을 양반”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과 수십년간 알고 지낸 C씨도 “이재명 대표 때문에 잡혀준 게 아닌 건 명확하다. 본인이 꾸려온 사업에 대한 문제점과 법적 리스크를 털 준비가 됐기 때문에 아무런 저항 없이 잡힌 것”이라고 말했다.

C씨는 “김 전 회장이 이 대표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는데 그게 사실이다. 둘이 아는 사이라는 것은 이름만 전해 들었다 정도이지, 소문이 난 것은 쌍방울 내에서 이 대표에게 줄을 대려한 인물들이 많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 측근들은 ‘쌍방울 비선 실세’로 불릴 만큼 회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따로 있다고 강조했다. 쌍방울 내에서 대장동을 설계한 데 이어 검찰에 핵심 물증을 전달한 정영학 회계사와 비슷한 역할을 해온 인물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투자업계
인맥왕

A씨는 쌍방울 경영과 자금흐름·투자분석과 관련해 김 전 회장에게 조언하는 등 책사 역할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음지 출신인 김 전 회장에게 투자 관련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게 김 전 회장 측근들의 주장이다.

무자본 M&A 대가로 소문난 A씨는 여러 코스닥 상장사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 유명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해외 증권사를 거쳐 금융투자업계에서 큰손으로 불릴 만큼 인정받은 인물이다.

김 전 회장 측근들의 말이 사실이었을까? A씨는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지금까지 쌍방울과 KH와 연관된 인물들의 이름은 거의 다 나왔으나 A씨의 이름은 언론에서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며 “자기관리가 굉장히 확실하다. 문제가 되지 않을 선까지만 투자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손을 떼는 성향”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A씨에게 쌍방울 투자와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해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으나 유의미한 진술을 받아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A씨와 같이 여러번 조사받았다고 털어놓은 B씨는 “대부분의 인물이 구속 기소되거나 언론에 이름이 나왔다. A씨가 철저했거나 대장동 핵심 인물 중 유일하게 구속을 피한 정영학 회계사처럼 검찰과 거래를 하는 ‘플리바게닝’ 방법을 쓴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A씨의 이름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들여다봐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 쌍방울 계열사인 비비안 100만주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는 언급이 되지 않을 정도다. 비비안은 쌍방울 핵심 계열사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 연루된 나승철 변호사와 이태형 변호사는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와 비비안의 사외이사직을 맡았었다.

일부러
잡혔다?


이 대표의 최측근인 이 전 의원은 2017년 3월 쌍방울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지난해 9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된 그는 쌍방울 사외이사직을 마친 뒤 경기도 부지사를 역임한 2018년 8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이어 킨텍스 대표를 맡은 2020년 9월부터 3년여간 쌍방울로부터 법인카드와 외제차 등 차량 3대를 받는 등 뇌물 2억5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이어 자신의 측근을 쌍방울 직원으로 허위 기재해 임금 9000여만원을 수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전 의원은 2018년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부임한 뒤 경기도의 대북사업 창구 역할을 맡았던 아태협에 쌍방울과 KH는 17억원 상당의 기부를 했다. 2018년 쌍방울이 6억원, 쌍방울 계열사인 나노스가 3억원을 기부했다. 2019년에는 쌍방울 및 계열사 3곳에서 현금 2억1300만원과 7600만원 상당의 의류를 지원했다.

2020년 쌍방울 및 KH 계열사가 기부금 4400만원과 1억4000만원 상당의 현물을 아태협에 제공했다.

쌍방울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이어지기도 한다. 천화동인1호 대표 이한성씨는 이 전 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다. 이와 관련해 화천대유 최대주주인 김만배씨는 검찰 조사에서 “19대 총선 당시 이화영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8000만원을 지원했다”고 진술했다.

김 전 회장은 3년 전부터 법조계 인사들을 회사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쌍방울 간부였던 한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A씨만 김성태 회장에게 조언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김 전 회장이 유독 A씨의 말은 깊이 있게 들었다”고 말했다. A씨가 김 전 회장에게 향후 있을 검찰 수사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던 걸까?

쌍방울 관계사에 검사·판사·변호사 등 법조인이 사외이사로 재직한 경우는 꽤 많다. 대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원만 23명이다. 이들이 A씨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중 11명은 검사나 판사 경력이 없었고, 검사 출신인 경우가 무려 9명(판사 출신 3명)이었다. 또 검사 출신 인사들 대부분은 최근 3년 동안 집중적으로 쌍방울그룹에 영입됐는데, 그중 7명이 2021년 1월∼2022년 9월 사이 자진사임했다.

무자본 M&A 대가로 알려져…인수 진두지휘
3년 전부터 특수통 출신 변호사 대거 포진

지난해 9월 공시 기준 검사 출신 현직 사외이사는 1명이다. 이들 중에는 검사 시절 김 전 회장 측을 직접 수사했거나 과거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 등에서 김 전 회장 측을 변호한 경우도 있었다.

사법연수원 29기인 김영현 변호사는 금융감독원 법률자문관, 서울동부지검 부부장검사, 대검 방위사업비리합동수사단 2팀장, 전주지검 정읍지청장,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 대구고검 검사 등을 역임했다. 2021년 3월 변호사 개업을 했고, 같은 달 비비안 사외이사로 선임됐다가 2022년 9월 자진사임했다.

사법연수원 38기인 김인숙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광주지검 순천지청, 청주지검, 서울동부지검, 대전지검 등에서 검사로 일했다. 2020년 8월 변호사 개업을 했고, 2021년 3월 디모아 사외이사로 선임됐다가 2022년 2월 자진사임했다.

송찬엽 변호사는 대전지검 특수부장, 대검 공안1과장, 부산지검 1차장, 서울중앙지검 1차장, 서울고검 차장, 대검 공안부장, 서울동부지검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 변호사 개업을 했고, 2017년 2월 SBW생명과학 사외이사로 선임됐다가 2022년 9월 자진사임했다.

양재식 변호사는 광주지검 부부장,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의정부지검 형사2부장, 서울남부지검 형사1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2011년 3월부터 변호사로 일하다가 그해 8월 쌍방울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박영수 전 특검이 국정 농단 특별검사로 임명되기 전까지 대표변호사로 있었던 법무법인 강남에서 2013년부터 일했다.

2016년 박 전 특검과 함께 국정 농단 특검보로 일하면서 2016년 12월 사외이사직을 자진사임했다.

이들 중 우선 눈에 띄는 인물은 양 변호사다. 그는 박영수 전 특검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대장동 민간개발업체에 1000억원이 넘는 대출을 알선한 브로커 조우형의 변호를 박 전 특검과 함께 맡았다. 특히 양 변호사는 사외이사 신분으로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 당시 김 전 회장 측 변호를 직접 맡았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2010년 3월∼4월에 이른바 주가 조작꾼들과 김 전 회장이 짜고 차명계좌를 이용한 통정매매 등으로 시세 조종을 해서 300억원대 부당이득을 취한 사건이다. 2013년 6월 금융감독원의 긴급 조치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출범한다.

당시 수사단에 합류한 이가 바로 김 변호사다. 인천지검 부부장검사 시절 서울중앙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팀장으로 파견돼 김 전 회장 등에 대한 직접 수사를 진행했다. 김 전 회장은 구속 기소됐고, 2018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자기
배를 가를까”

최근까지 수원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한 쌍방울 출신 관계자는 “검찰이 쌍방울 수사를 제대로 하려면 자기 배를 갈라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며 “이재명 대표와의 관계에만 수사를 몰두하고 있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 의심은 되지만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공소 내용도 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A씨가 보통 짜놓은 판에는 불법으로 규정하기 애매한 게 많다. 검찰도 자금흐름을 추적하다 머리가 상당히 아픈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