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승부수 던진 나경원

윤, 또 골치 아프게 생겼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결국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따라갈까? 당권주자들은 총선 전략보다도 자신이 가진 윤심의 크기를 앞세운다. 여당은 윤심 반영을 위해 룰 변경마저 불사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다. ‘민심’을 넘으니 ‘당심’이 윤심을 막아섰다. 일찍이 정리한 줄 알았던 나경원 전 의원이 줄곧 당심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나 전 의원은 숱한 견제에도 출마를 강행할 분위기다. 친윤(친 윤석열)계가 ‘닭 쫓던 개’ 신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설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나 전 의원은 국민의힘에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직후 스스로 당권 도전을 시사한 바 있다. 아울러 지난해부터 실시된 당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줄곧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판사 출신
보수 중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반윤(반 윤석열)계 핵심’ 유승민 전 의원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당 지지층 대상 조사에서는 대부분 1위 자리를 지켜왔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룰은 변경 전에도 당원 선호도 70%·국민 여론조사 30%였다. 나 전 의원이 다른 당권주자들보다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다.

나 전 의원이 당심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배경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우선 나 전 의원은 20년이 넘도록 탈당 없이 국민의힘에서만 4선을 쌓은 중진 정치인이다. 이 때문에 전통적 지지층 사이에서 탈당 전력이 있는 유 전 의원이나 진영을 건너온 안철수 의원보다 선호도가 높다.

당원들 사이에서 나 전 의원이 ‘진짜 보수’로 인식되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나 전 의원이 강도 높은 발언을 거리낌 없이 이어오면서 강성 보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이 때문에 중도 확장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열성 당원 사이에서는 ‘사이다’ 발언으로 높은 지지를 얻어왔다.


오랜 정치경력으로 만들어진 높은 인지도나 여당에서는 드문 수도권 출신 중진이라는 점 역시 강점이다. 정치색과는 달리 계파색이 옅어 독자 세력 조직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반대로 당내에서 포괄적인 지지세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나 전 의원의 특성은 그가 밟아온 이력에서 잘 드러난다.

나 전 의원은 1963년 서울 영등포구(현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82학번으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원희룡 국토부 장관 등과 동기다. 이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나 전 의원은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고시원에서 서울대 법대 선배·동기들과 함께 하숙하며 시험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시반 대장 역할을 자처했던 이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79학번, 나 전 의원은 82학번으로 두 사람은 3살 터울의 선후배 사이다. 이들은 모두 수험생활이 상대적으로 긴 편으로, 오랜 시간 함께 공부하며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이후 윤 대통령은 검찰 재직 시절 나 전 의원이 17대 총선에 출마하자 “(나 전 의원이)나중에 대선에 출마하면 검사를 그만두고 지지 유세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나 전 의원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1995년 부산지방법원에 초임판사로 부임했다. 이어 인천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가 2002년 제16대 대선 때 판사직을 내려놓으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당시 나 전 의원은 이 후보의 여성특보를 맡아 정계에 입문했다.

2년 뒤인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7년 제17대 대선정국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변인을 맡아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나 전 의원은 이를 계기로 당내 입지를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당심’ 1위지만… ‘윤심’ 없어 고민
“곧 결단” 사실상 출마 결심 굳힌 듯

이듬해엔 18대 총선서 서울 중구에 출마해 재선 고지를 밟으며 당내 유력 여성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을 차차기 대권후보로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계속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던 그의 정치 행보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시작은 2011년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당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직을 걸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물러나면서, 선거 판세가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다. 불리한 상황에서 의원직을 던지고 출마한 나 전 의원은 이변 없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득표율 약 7%p 차이로 석패했다.

낙선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선거 과정에서 다른 논란들이 함께 불거진 것이었다. 선거캠프 대변인의 음주 방송 논란이 사실로 드러났고, 반대 진영서 주장했던 ‘호화 피부과 의혹’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 참여 의혹’ 등에도 내상을 크게 입었다.

결국 이듬해 치러진 제19대 총선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출마하지 못했다. 한동안 정계와 거리를 두고 변호사 생활에 전념했다.

나 전 의원은 2014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복귀한다. 당시 동작구을 지역구의 현직 의원이었던 정몽준 전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했고, 나 전 의원이 공석을 메우기 위해 낙점됐다. 당시 그는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정의당의 고 노회찬 의원을 상대로 단 1.3%p(929표 차) 앞서는 진땀승을 거뒀다. 

결국 19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연속 3선에 성공한 정치인이 됐다. 중진 반열에 올라선 그는 후반기 외교통일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2016년 치러진 제20대 총선서 연속 4선 기록에 도전했다. 앞서 당선됐던 동작구을 지역구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새누리당은 원내 1당 자리를 빼앗기는 등 고전한 선거였지만, 나 전 의원은 무난하게 4선에 성공했다. 어려운 선거에서 수도권 4선 고지를 밟은 나 전 의원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커졌다.

이를 바탕으로 원내대표 경선에 두 번 도전하지만, 모두 친박(친 박근혜)계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두 번째 경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치러졌다. 이때 나 전 의원이 낙선하면서 친박계가 주도권을 지켜내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이는 비박(비 박근혜)계 의원들의 집단 탈당 사태를 초래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하지만 정작 나 전 의원은 탈당 대열에 합류하지 않아 비판 여론이 일었다. 보수 지지층 일각에선 “나 전 의원이 개인적인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과정에서 대의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당적을 지킨 나 전 의원은 2018년 원내대표 경선에 재출마했다. 앞선 선거에서는 친박계에 맞서 낙선했지만, 이때는 오히려 친박계의 지지에 힘입어 무난하게 당선됐다. 나 전 의원은 야당 원내대표로서 여권을 상대로 한 강성 투쟁에 앞장섰다.

하지만 강성 투쟁 일변도 실리를 챙기지 못했고, 중도층 등 지지층 확장에도 실패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문빠’ ‘달창’ 등 여권 지지자들을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뒤늦게 사과하는 등 개인적 구설도 잇따랐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본인의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지만, 황교안 전 대표가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이를 막았다. 나 전 의원은 자신에게 언질도 주지 않고 재신임 논의를 끝낸 것에 격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기점으로 나 전 의원의 정치 행보는 다시 수난기에 접어들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5선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정치 신인급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전반적으로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선거이긴 했어도 나 전 의원은 이미 자신이 2번이나 당선된 지역구에서 정치 신인에게 7%p 득표율 차이로 패배했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더 큰 굴욕을 맛봤다.

그는 낙선 후 정치권과 잠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권에서 다시 나 전 의원의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2020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임기 중 성추문 의혹을 받고 사망하면서다. 나 전 의원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자로 거론됐다.


약 10년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불리한 구도가 형성돼있었지만, 이때는 반대로 낙승이 예견됐으므로 구미가 당길만한 기회였다. 

‘윤심’ 보다 
‘민심’ 이다?

실제로 나 전 의원은 2021년 1월13일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결국 오 시장에게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다. 경선 결과 발표 직후 나 전 의원은 “결과에 승복한다. 국민의힘 승리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은 당시 오 시장의 선거유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아울러 동시에 진행되던 부산시장 선거 지원유세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나 전 의원은 2주 동안 총 65회의 후보 지원유세 일정을 소화했다.

나 전 의원은 숨 고를 새도 없이 당권 도전을 선언해 이준석 전 대표와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민심에서는 이 전 대표가, 당심에서는 나 전 의원이 앞서는 양상이었다. 두 사람은 후보 토론회 등에서 날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민심은 계속 벌어졌고, 당심은 계속 좁혀졌다.

결국 2021년 6월 전당대회서 이 전 대표에게 6%p 득표율 차이로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전체 70%를 차지하는 당원 득표에서는 아슬아슬하게 1위를 차지했지만, 여론조사의 격차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이로써 나 전 의원은 불과 1년 사이에 치른 세 번의 선거에서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이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외연 확장과 중도층 포섭에 난항을 겪는 모습을 잇달아 보이면서 정치인으로서의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은 전당대회 이후 미국으로 출국하며 대권 레이스와 거리를 뒀다. 이후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윤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을 캠프에 참여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은 “선대위에 내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내 작은 자리라도 내어놓고 싶다”며 “그 자리가 한 표라도 가져올 수 있는 외연 확대를 위한 인사 영입에 사용되길 소망한다”며 거부 의사를 에둘러 밝혔다.

윤정부 출범 전후로는 입각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인수위 출범 초기 외교부 장관 내정설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 환경부 장관 등의 하마평에 지속적으로 언급됐다.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도 거론됐다. 하지만 약 반 년간 ‘내정설’이 수차례 돌았음에도 실제로 성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13일, 나 전 의원은 부총리급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내정됐다. 다음 날 바로 임명장이 수여되면서 정식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같은 달 18일에는 기후환경대사에 임명됐다, 불과 나흘 사이에 정부 고위직 두 자리를 얻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의 갑작스러운 중용 배경을 두고 대통령실의 ‘당권 교통정리’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른바 윤심을 받는 친윤 주자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다른 유력 주자들을 정리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나 전 의원은 “(받은 자리가)비상근이기 때문에 어떤 제한이 있지는 않다. 당적을 내려놔야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당권과 관련해 배제되거나 배척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자리를 받았음에도 당권 도전 의사를 당장 접을 생각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게다가 마치 유 전 의원을 겨냥해 변경한 듯한 ‘당원투표 100%’ 선거방식은 당 지지층 선호도 1위를 달리는 나 전 의원에게 큰 호재로 다가왔다.

친윤 파상공세 버티고 당선될까? 
되든 안 되든 막대한 파장 예고

‘동상이몽’ 아래 미묘하게 이어지던 갈등은 이달 초 폭발했다. 지난 5일 나 전 의원이 출산 시 부모의 대출 원금을 탕감하는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하자, 대통령실이 “실망스럽다” “납득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처사” 등의 표현으로 나 전 의원을 직격했다.

이후 대통령실에서는 나 전 의원을 향해 해촉까지 시사하는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정책을 명분 삼아 과도한 비판이 가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표면적인 이유는 나 전 의원이 정부와 상의 없이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나 전 의원이 교통정리를 거부하고 당권 행보를 계속 이어간 것에 대한 대통령실의 불만이 깔려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당 안팎에서는 나 전 의원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윤심 후보’로 꼽히는 김기현 의원과  친윤계에서는 “전당대회에 나온다면 ‘제2의 유승민, 이준석’ 프레임으로 정리하는 수밖에 없다”며 나 전 의원을 압박했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 및 친윤계 의원들과 극한 갈등을 빚은 끝에 대표직에서 축출된 바 있다.

나 전 의원 입장에선 대통령실의 비토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만일 나 전 의원이 윤심을 등지고 출마해 당선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일 수도 있다. 계파색이 옅어 세력이 약한 나 전 의원이 사실상 ‘식물 대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은 쉽게 물러날 수 없는 입장이다. 앞선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하면서 정치력을 지나치게 소모했기 때문이다. 당심의 큰 지지를 받으면서도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정치적 타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번 대표 출마가 나 전 의원이 부활할 마지막 기회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단 나 전 의원은 저자세 전략을 택했다. 그는 지난 10일 “대통령께 저출산위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저출산위 부위원장직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뜻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이미 높은 지지율을 확보한 나 전 의원이 대통령과 악화된 관계를 먼저 풀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만 해도 동정표를 꽤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사의는 서면으로 표명해야 한다는 입장 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나 전 의원은 지난 13일 오전 서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는 대통령실에 사실상 자신의 거취를 조속히 정리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결국 대통령실은 같은 날 오후 나 전 의원을 저출산위 부위원장과 기후대사 직에서 해임했다.

당초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의 사의를 오는 21일 전에는 받지 않을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깔끔한 정리에 실패한 상황에서, 나 전 의원에게 일방적인 핍박을 가하는 구도가 오래 지속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낙장불입  
절치부심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한결 자유로워진 나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이 올라간 점 또한 문제다. 결국 나 전 의원의 출마를 막지 못해 윤심 후보가 낙선한다면, 정권 초기부터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에 큰 타격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 전 의원 측은 출마 여부 발표 시점을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복귀 시점으로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이 출마를 결심한다고 하더라도 사직서 제출 직후나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입장을 밝히면 자칫 ‘항명’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14일 출국한 윤 대통령은 오는 21일 귀국할 예정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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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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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