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의 함정’ 설날 특수 사기주의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16 15:31:04
  • 호수 14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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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라 들떠…눈 뜨고 코 베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민족의 명절 설날이 찾아왔다. 그리운 가족과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일상생활에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는 시간이다. 이번 설 연휴는 총 4일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이 주말이어서 오랜만에 찾아온 연휴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을 망치는 불청객이 있다. 바로 명절마다 나타나는 사기꾼들이다.

오는 22일은 추석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인 설날이다. 이날은 일가친척을 만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에게 세배를 하는 것이 전통이다. 설날은 음력설 당일을 기준으로 전날과 다음 날을 포함해 총 3일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올해 설 연휴는 대체 공휴일을 포함해 1월21일부터 24일까지로 결정됐다.

치밀한 
시나리오

처음부터 설날이 ‘설날’이었던 건 아니다. 설날은 1989년 공휴일로 지정됐고, 3일 연휴제가 시행했다. 이때부터 설날에 고향을 방문하는 귀성행렬이 시작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설날이 되면 고향에 못 내려가더라도,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을 찾아 덕담을 나누고 선물을 주는 문화가 있다.

설날이 ‘대목’이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들은 ‘설날 감사 선물세트’ ‘전통주 세트’ ‘설날 명절맞이 기획전’을 기획 상품으로 내놨다. 설 명절 베스트 선물도 온라인에선 화제다. 추천 선물로 ▲건강식품 선물세트 ▲수산물 세트 ▲육류 세트 ▲과일 세트 ▲와인 및 술 세트 ▲육가공류 세트 ▲기름 세트 ▲상품권 및 현금 ▲화장품 및 세면도구 ▲커피 세트가 있다.

올해는 대목이 사라진 설날이라고도 하지만, 그만큼 정부나 지자체는 지원금을 배포해 소비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5일 성수품 물가안정을 위해 ▲20만8000만톤 성수품 공급 ▲300억원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 ▲대형 유통업체 연계 할인 및 우체국·공영홈쇼핑 등 할인행사 ▲신속통관·운송 지원 및 성수품 수급 안정 대책반 일일 운영을 지원했다.

이 밖에도 중소·소상공인 근로자를 위해 ▲중소·소상공인 대상 39조원 규모 명절 자금 공급 ▲노인, 청년 등 취업 취약계층을 위한 조속한 고용 여건 개선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말 그대로 명절은 국가적 잔칫날이 되는 것이다. 반면 ‘잔칫날 맏며느리 앓아 눕는다’는 말이 있다. 가장 중요한 때 일해야 하는 사람이 탈이 나서 눕게 된다는 말이다. 명절만 되면 극성인 사기꾼들 때문에 명절선물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설날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명절 전, 각 지자체와 지역 소속 경찰청이 범죄 취약지 점검과 강력 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 조치를 발표한다. 지역별로 범죄 현황을 분석하고 범죄 다발 지역의 상가·주택 등 대상으로 방범 진단을 해 취약 요소에 대한 보완을 당부한다.

경찰은 순찰 중에 만나는 주민의 안부를 직접 확인하기도 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해 치안 시책에 반영하는 등 주민과 접촉을 강화해 세밀한 순찰활동을 강화한다.

선물 샀더니 벽돌 배송·먹튀도 당해
대부분 “선착순이니 빨리 입금부터”

이런 상황에도 막을 수 없는 것은 SNS를 통한 사기다. 설날에 가족과 친구의 선물을 많이 사는 사람이 당하기 쉬운 사기 유형이다. SNS와 중고거래 사이트에 ‘설날’ ‘설 선물’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설 선물 저렴하게 판매합니다” “설 연휴 숙박권 양도합니다” 등의 판매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좋은 기회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개인과 개인 간의 온라인 거래로 판매가 이뤄지는 만큼 돈만 받고 물건을 보내주지 않는 ‘먹튀’와 하자가 있는 상품을 보내는 행위 등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사기행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생 A씨는 이 같은 사례를 경험했다. 명절 연휴 동안 국내 유명 관광지를 여행할 예정이었던 A씨는 SNS에 올라온 숙박권 반값 양도 글을 발견했다. 숙박권 판매자는 “연휴 기간 개인사정으로 인해 숙박권을 급하게 처분하는 중이다. 선착순이니 빨리 입금하라”고 A씨를 재촉했다.

급한 마음에 A씨는 곧바로 숙박권 가격을 판매자에게 입금했다. 하지만 입금이 확인되자 판매자는 연락이 두절됐다. 문제는 개인정보를 주고받은 것이 아닌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사용해서 사기꾼의 개인정보를 추적하기 어려웠다.

A씨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너무 자연스럽고 친절하게 이야기해서 사기일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개인 간 거래 사이트인 네이버 중고나라 사례는 더 심각하다. 30대 직장인 B씨는 설 선물로 전복을 구매했는데 전복 대신 벽돌 두 개를 배송받았다. B씨는 “처음에 택배를 받아보고 무게감이 있어 눈치를 못 챘는데 열어보니 벽돌이었다”고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개인 간의 거래가 아닌 사기를 당한 경우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현금결제를 유도한 뒤 돈만 챙기고 챙기고 사라지는 사기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업계 1위로 불리는 온라인 쇼핑몰 XX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몰이 대응을 잘하지 못해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불청객 접근
사기꾼 극성

C씨는 온라인 쇼핑몰에 올라온 121만원짜리 TV를 구매했다. 제품 설명에는 한정판매 특가상품이라며, 별도로 재고 문의를 해달라고 적혀있었고 문의는 카카오톡으로 가능했다.

C씨가 카카오톡으로 문의하자 판매자는 C씨에게 “XX 판매는 종료됐다. 사고 싶으면 다른 오픈마켓서 현금으로만 살 수 있다”며 계좌이체 사이트를 보냈다. ‘저렴한 가격에 TV를 구매할 수 있다’는 기대에 급하게 돈을 입금한 C씨는 곧 이런 방식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느낌이 이상해서 ID 1234, 비밀번호 5678 이렇게 로그인을 했다. 로그인이 되고 입금계좌가 다 똑같이 나오더라. 어처구니없이 속았다”고 허탈해했다.

C씨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곧바로 피해 사실을 해당 온라인 쇼핑몰에 알렸지만, 사측은 “담당 부서가 없다. 휴일 지나 처리하겠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는 “내가 미숙해서 사기를 당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이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날 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 항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온라인 쇼핑몰의 대응은 황당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주말 사이에 추가 피해는 계속됐다. 처음부터 C씨에게 TV를 판매한다고 사기 친 아이디는 다른 판매자의 것으로, 이 판매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아이디를 도용당했다. 주말 내내 해당 판매자에게 문의와 항의 전화가 폭주했다.


해킹당한 판매자는 “아이디를 해킹한 것 같다. 나는 TV를 판매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말에 전화만 80명 넘게 왔던 것 같다. 전화 때문에 일도 못하고, 경찰서만 왔다 갔다 했다”고 밝혔다.

명절에 기차표를 구매하지 못한 귀성객들을 상대로 하는 티켓 사기도 여전하다. 명절을 앞두고 고향으로 가는 열차 승차권이나 항공권을 구매하지 못한 사람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명절이 다가오면 기차표나 항공권의 수요가 급증한다. 먼저 구입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한 소비심리가 작용해 사기 피해를 보기 쉽다”고 조언했다.

최근 비교적 잠잠했던 백화점 상품권 사기도 다시금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피해자가 주로 생성되는 곳은 지역구 기반의 플랫폼인 당근마켓이나 지역 커뮤니티였다.

저렴한 물건
미끼로 유인

D씨는 명절을 맞이해 백화점 상품권 구매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아파트 커뮤니티 카페에 “3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2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온 것을 확인했다. D씨는 곧바로 오픈 채팅방을 열고 판매자를 초대했다.


판매자 아이디는 아파트 동호수까지 기입돼 아파트 주민인 것처럼 보였다. 판매자는 은행 계좌번호를 전달해 “남편 계좌로 입금 부탁한다. 우리도 명절 선물로 받았던 건데, 사용하지 않아서 판매한다”며 “필요 수량이 어느 정도냐? 더 구매해도 되는데 많이 판매하니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 구매할 수 없어도 다른 백화점 상품권도 구매할 수 있다. 상품권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연락줘도 된다”고 설명했다. 

D씨는 판매자의 말을 믿고 돈부터 입금했다. 판매자는 D씨에게 “고맙다. 연락처를 남겨주면 바로 문자 발송을 해주겠다. 5분 안에 문자가 갈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후 판매자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또 다른 피해자인 E씨는 시세보다 싸게 백화점 상품권을 판다는 당근마켓 글을 보고 구매했다가 피해를 봤다고 호소했다. 다른 점은 D씨는 돈을 지불하고 상품권조차 받지 못한 사례였고, E씨는 상품권을 받았다는 점이다. 다만 문제는 종이로 출력한 백화점 상품권 이미지였다.

E씨는 “10% 할인된 가격으로 백화점 상품권을 판매 중이었다. 블로그에 댓글도 많고 카카오톡으로 상담해보니 괜찮아 보였다. 사업자등록증을 보내줬는데, 대표자와 통장 계좌주 이름이 동일했다”며 “인증한다고 이것저것 보내주니 믿고 입금했고, 퀵 발송했더니 종이로 출력한 백화점 상품권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무슨 배짱으로 사업자등록증까지 보여주면서 사기를 치는지 모르겠다. 이번 명절 선물로 보내려고 백화점 상품권 200만원을 샀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피해 사실 인지 후 곧바로 당근마켓에 신고했다. 그러나 수일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통장 거래정지를 위해 경찰에 전화도 했지만 보이스피싱 거래가 아니라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백화점 측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해 그간 경찰에 수사 의뢰, 피해 주의 공지 등을 지속해서 진행했다. 하지만 뾰족한 예방법이 없는 게 문제다. 백화점 관계자는 “안전하게 백화점 상품권을 구매하려면 백화점이나 공식 상품권 숍을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으로 낚시질
연휴 스미싱 비율 전체 건수 42%

개인 간 거래로 인한 사기가 명절 사기의 보편적 방법이라면, 최근 급상승하는 방법은 피싱 사기다. 실제로 최근 설날 연휴를 앞두고 대출 등 금융 지원 안내, 택배 배송 등을 사칭한 스미싱(문자메시지와 피싱의 합성어)과 지인 명절 인사 등으로 위장한 메신저 피싱이 증가했다.

이에 각 은행은 고액 현금 인출 시 보이스피싱 피해가 없는지 확인을 강화하는 한편, 각 사가 개발한 금융 사기 탐지 기술을 활용해 피해 예방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9월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9년~2021년 동안 스미싱은 매년 설날과 추석이 있는 1·2·9월 명절 기간에 발생하는 비율이 전체 건수의 42.4%에 달했다. 

특히 2021년에는 50.4%로 절반을 웃돌았다. 이들은 악성 앱 주소가 포함된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전송해 이용자가 악성 앱을 설치하거나 전화하도록 유도해 금융 정보·개인정보 등을 탈취하는 수법을 이용한다.

스미싱에는 대표적으로 5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로는 명절에 가장 흔한 ‘택배 관련 스미싱’이다. 문자가 “[배송조회] 1/31 고객 주소가 잘못되었습니다. 택배가 반송되었습니다. 배송 주소 수정 uuuu.ne/FgMRD7” “[○○택배] 설날 배송 물량 증가로 배송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배송 일정을 확인하세요. http://nene.you/MKin78”이런 식으로 오면 대부분 택배 스미싱이다.

두 번째는 공공기관을 사칭하는 스미싱이다. 공공기관 사칭은 “[생활불편신고] 귀하에게 민원이 접수되어 통보 드립니다. 민원 확인 http:/bit.ly/2Hh9vp9” “고객님께서는 아래 상품 승인 대상자입니다. 상품 내용 : 정부 지원 서민금융상품 http.365.com”이라고 문자가 온다.

세 번째는 지인 사칭·선물 관련 스미싱이다. 이 스미싱은 친근한 메시지를 보내 속이는 게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0^) 설날 잘 보내시고 2023년에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http://woz/kr/mhgd” “설날 선물 도착 전 상품 무료 배송! 할인쿠폰 지급 완료! 즉시 사용 가능! 확인 : http://yno.kr/ncnqbH” “○○○님 설날 명절 선물로 모바일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확인 바랍니다. http:/hpbl.are/nbaBl” “설 명절 직접 찾아뵈어야 하는데 영상으로라도 인사드립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http://mnon.it/Pnti1” 등 형태로 스미싱 문자다.

코로나19 정부 지원금 사칭 관련 스미싱도 있다. 스미싱은 “손실보상금 지원을 위해 아래에 접속 후 신청해주십시오. http://sxxxs.xyz/?phogcd” “지원금 신청이 접수됐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http://mxxxt.xyz/ldxxdz” “[긴급재난자금] 상품권이 도착했습니다. 확인해주세요. http://bit.ly/3xxxMel” “2월 추가 코로나19 재난지원금 www.coroona-19.net 신청”이다.

마지막으로 스미싱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피해다. 이런 문자는 “[Web] 발신 ㈜XOXXXOXX 주문하신 안마의자 57만2000원 결제됐습니다. 문의번호 : 02-○○○○-○○○”라고 온다.

신고하라고?
무용지물

이런 문자를 받는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문자를 바로 삭제하는 것이다. 만약 스미싱·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했다면 ▲경찰서에 피해 내용을 신고하기 ▲경찰서에 발급받은 ‘사건사고 사실 확인원’을 이동통신사, 게임사, 결제대행사 등 관련 사업자에 제출하기 ▲핸드폰의 악성 파일을 삭제하기 ▲핸드폰에 저장돼있는 공인인증서를 즉시 폐기하고 재발급받아야 한다.

결국 은행이 피해를 막기 위해 힘쓰고 있더라도, 결국 개인이 받은 문자가 ‘스미싱’인지 알아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명절 연휴 중 사기 의심 문자메시지를 수신했거나 악성 앱 감염 등이 의심되는 경우 국번 없이 118 상담센터에 신고하면 24시간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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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