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철도청 차장, 한국철도대학 총장, 한국철도공사 사장,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최연혜 윤석열 캠프 정책자문단 총괄간사가 지난 12일,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 신임 사장으로 취임했다.
특이할만한 점은 가스공사 사상 첫 여성 CEO라는 점과 그의 이력 어디에도 ‘가스’나 ‘에너지’와 관련된 항목은 단 한 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사실 최 신임 사장은 1차 공모 면접심사에서 탈락했다. 에너지 관련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임 사장으로 발탁됐다. 가스공사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돌연 재공모를 결정하고 공모를 다시 받았기 때문이다.
최 신임 사장은 다시 공모해 압축된 5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재공모 덕분에 1차 관문을 통과한 셈이었다.
이후 가스공사는 지난 7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최 신임 사장의 선임 안건을 의결했고 이틀 뒤인 9일,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이창양)는 최 전 간사를 신임 사장으로 선임한다고 통보했다.
최 사장이 신임 사장으로 의결되자 가스공사 주주 6명이 공사와 최 신임 사장을 상대로 “판결 확정 전까지 최 사장 의결 효력을 정지하고 가스공사도 집행하지 말라”며 법원에 임시주총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가스공사 노조도 최 신임 사장의 선임에 “사장 1차 공모 면접서 에너지 관련 이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던 최 후보가 가스공사 사장이 된 것은 대선캠프 출신이라는 이유로 인한 명백한 보은 인사”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5일 “가스 에너지 위기 시대에 부적격한 사장 선임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가스공사 사장 공모 과정서 1차 면접 때 탈락한 후보가 재공모를 통해 단수 추천 인사로 받아들인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양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캠프서 일했던 사람을 낙하산으로 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는데 그렇게 되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같은 당 정일영 의원은 “임추위가 다시 작동됐는데 탈락시켰던 그 멤버(위원)들이 두 번째에는 단수 추천으로 통과시킨 것”이라며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러-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이 원활치 않으면서 에너지 의존도가 90%를 상회하는 등 비상인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발 금리인상 등 악재가 겹치면서 무역수지도 적자가 계속되고 있고 가스공사 손실금이 무려 1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난국인 상황서 전문가를 수장으로 앉혀도 모자랄 판에 에너지 이력이 전혀 없는 인사가 발탁되는 것은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차 면접서 탈락했던 그가 2차 면접을 통과한 부분도 석연치 않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우리 앞에 닥친 경제위기를 극복할 마음은 전혀 없이 콩고물 나눠주기만 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라며 “핵심 질문에 전혀 대답도 못했던 이가 몇 개월 만에 전문성이 생겼느냐”고 비꼬기도 했다.
앞서 한국수자력원자력공사는 지난달 초 사외이사의 자질 논란으로 이미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바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당원협의회 활동, 숙박업소 운영 등 발전 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경력이 논란이 되면서 결국 취임 9일 만에 스스로 자리서 물러났다.
당시 여권 내부서도 “한수원이 전력을 생산하는 회사로 알고 있는데 전력 생산보다는 ‘야놀자’와 경쟁하려느냐”며 비판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약속했던 “낙하산 인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공약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 신임 사장 이외에도 윤정부의 낙하산 인사들은 한국난방공사 등 여러 기관들로부터 목격된다.
18·20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은재 전 의원은 지난달 1일, 전문건설공제조합(공제조합)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공제조합에 따르면 이 이사장에 대한 선임안은 이날 공제조합 임시총회를 통해 153명 대의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임총서 투표를 통해 가결되긴 했지만 이 이사장도 ‘낙하산 인사’ 논란을 피하진 못했다. 그 배경에는 ▲건설업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던 이력 ▲투명성 및 전문성 제고를 위해 올해 최초로 이사장 선출에 공모제 도입 등이 거론됐다.
업계에 따르면 공제조합 이사장 공모에는 총 6명이 지원했다. 이들 중 건설이나 금융 분야에 전문성 없는 이 전 의원을 만장일치 찬성한 부분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왔다.
한 건설업계 인사는 “정권이 교체됐으니 낙하산 인사가 올 수 있겠다고 예상했으나 공식석상서 마구잡이로 일본어를 사용해 자질 논란을 불렀던 인물이 낙점돼 황당하다”고 의아해했다.
공제조합은 국토교통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기관으로 이전부터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이에 따라 올해 이사장 선임을 위해 공모제를 도입했지만 결국 유명무실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공모 자격 요건에는 ▲조합 업무 분야와 관련한 지식과 경험 ▲청렴성과 도덕성 등 건전한 윤리의식이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8년 20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 도중 3·1절을 앞둔 2월27일 “왜 겐세이(당구 용어로 상대 차례에 치는 것을 지능적으로 견제나 방해하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해?” 11월7일 “야지(누군가를 모욕하거나 조롱한다는 듯의 일본어 ‘야유’서 유래된 단어) 놓고 이런 의원은 퇴출시켜 주시기 바란다”는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 이사장은 건국대 정치대학 정치행정학부 교수 출신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위원회 등에서 활동했지만 건설이나 금융 분야 경력은 전무하다. 공제조합은 전문 건설사업자의 보증이나 대출, 공제 등 금융상품을 제공해주는 단체다.
전국 조합원 수가 6만여명에 달하고 자본금도 5조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전문 경영인이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들 외에도 정용기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에,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원장이었던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은 (사)대한석유협회 회장에 각각 취임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0월6일 “제가 집권하면, 그냥 놓겠다. 여기에다가 사장 누구 지명하고 이렇게 안 하고, 캠프서 일하던 사람을 시킨다? 저 그런 거 안 할 것”이라고 말했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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