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 5월11일 전북 순창군에서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하던 50대 A씨가 사망했다. 사고 당시의 CCTV도 분석했지만 지형지물에 가리면서 사망 원인을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가족의 사망 외에도 유가족을 슬프게 하는 것이 있다.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대상이 모두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유가족은 여태까지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했다.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은 낙하산 활강과 행글라이딩의 원리를 포함한 항공 스포츠다. 패러글라이딩의 시작은 등산객이 등산 후에 빠른 하산을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패러글라이딩은 2016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즐기는 비행 스포츠 중 하나다.
매년 느는
안전사고
패러글라이딩 비행 계획을 세울 때 가장 고려해야 할 점은 날씨와 착륙장의 위치다. 패러글라이딩은 열기구 다음으로 장비 내구도가 약해서, 패러글라이딩 비행은 강풍 예보나 비행기 비행 일정이 있으면 바로 취소된다.
착륙장은 패러글라이딩의 저속과 착지라는 특징이 합쳐져 작은 편이라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터가 있으면 어디서든 착지가 가능하지만 전봇대 및 고압선이 지나가는 곳으론 절대 가면 안 된다. 또 패러글라이딩은 크기가 작아 하늘에서 찾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사고가 발생하기 쉽다.
실제로 패러글라이딩은 하늘에서 비행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착륙 거리가 짧아 착륙장 위에서 아래 쪽으로 고도를 떨어뜨려도 되고 천천히 직선 비행도 가능하다. 특히 산지가 70%인 한국은 패러글라이딩이 주요 레저 스포츠로 자리 잡아 있어 전국에 착륙장만 100개가 넘는다.
그만큼 패러글라이딩 안전사고도 많이 발생하는 실정이다. 특히 초보자의 경우 상급자 감독과 교육을 충분히 받고 비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무리한 이착륙을 시도하다가 사고가 발생한다.
흔하게 발생하는 패러글라이딩 사고는 ▲착륙을 시도하다가 지나가던 차에 치이거나 ▲비행 중 서로 충돌 ▲착륙 시 고압전선 걸림 등이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탑승자는 보조 낙하산을 타고 탈출해야 한다.
패러글라이딩 안전사고는 매해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경량·초경량 안전사고는 2019년 총 6회 발생했는데, 그중 패러글라이딩 사고가 4번 있었다. 2020년 항공 안전사고는 총 9회 발생했고, 이 중 패러글라이딩 사고는 8회였다. 지난해 발생한 경량·초경량 안전사고는 총 11건이고, 이 중 패러글라이딩 사고는 총 8건이었다.
대부분의 항공 레저 안전사고가 패러글라이딩 사고였다.
퇴사 후 회사가 부탁해 체험 진행했는데…
군·업체 모두 책임 회피…교관만 처벌?
통계로 나온 사고는 인명피해가 있는 것만 잡혀 있고, 인명피해가 없는 패러글라이딩 사고까지 조사하면 패러글라이딩 사고가 더 잦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처럼 빈번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패러글라이딩 안전·관리를 감독해야 할 주체가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지난 5월11일 오전7시10분 전북 순창군에서 동력 패러글라이딩을 타던 50대 남성 A씨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순창군 유등면의 한 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과 소방대원은 “논에 패러글라이더가 떨어져 있다”는 목격자의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이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A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해당 동력 패러글라이더 사고는 교관이 동승하지 않은 상태서 일반인이 동력 패러글라이더에 탑승해 벌어졌다. 사고는 당시 언론을 통해 짤막하게 보도됐다. <일요시사>는 사고 당시 교관으로 있었던 B 교관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취재했다.
B 교관은 사고 당시 순창군에서 동력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진행하는 M사를 퇴사한 상태였다. M사는 국내 최초로 장애인 액티비티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판매하는 여행 회사다. 순창군과 M사는 지난해 7월6일 ‘항공레저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순창군은 M사에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할 수 있는 이착륙장 부지를 제공했다.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여행상품에 넣으려면 회사는 항공사업자를 내야 하며 해당 자격증을 보유한 교관도 필수다. 교관은 패러글라이딩 비행 때마다 인근 공항에 비행 승인 신청을 받아야 하며 이·착륙도 돕는다.
B 교관은 비행 전, 인근 공항에 비행 승인 신청을 받았다. 보통 비행 시간은 일출 후와 일몰 전으로 예약돼있었고, 비행 후에는 항상 비행 일지를 기록했다. 비행 일지에는 ▲비행 일자 ▲비행 목적 ▲비행 구간 또는 장소 ▲비행 시간 ▲동승자 ▲기장 등의 정보를 적는다.
사람이
죽었는데…
문제는 사고 당시 B 교관은 M사의 직원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 항공교통본부 항공교통안전과가 M사에게 “항공사업자가 잘못됐으니 반납하라”고 했던 것이다. 이후 M사 대표는 항공사업자를 반납했다.
항공사업자가 없으니 M사는 동력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B 교관은 M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다. 사직서는 지난 5월2일에 제출됐고 바로 사직 처리됐다.
3일이 지난 뒤 M사는 B 교관에게 전화해 “기존 동력 패러글라이딩 체험은 다 취소했는데, 취소 못한 건이 2개 있다. 이것만 해달라”고 사정했다. 하지만 항공사업자 없이 비행하면 불법이다. B 교관은 “비행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져달라”는 조건으로 M사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5월11일 예약돼있었던 비행은 순조롭게 끝났다. 이날 오전 7시쯤 순창군 마을 이장이 B 교관을 찾아와 “한 명만 더 태워달라”고 부탁했는데 바로 A씨였다.
B 교관에 따르면 이런 식의 부탁은 흔한 일이었다. 패러글라이딩 체험은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 있을 수밖에 없고, 동네서 밉 보일 경우 사업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순창군에는 이장이 14명이나 되고, 대표 이장이 따로 있었다.
속된 말로 이들이 갑이었다. 심지어 이장이 데려온 손님들은 체험비도 받지 않았다.
B 교관은 A씨의 비행을 도왔다. 비행 장소 주위에 강이 있어 구명조끼를 입히고 헬멧도 씌웠다. B 교관 헬멧은 동력 패러글라이더와 4~5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자신의 헬멧을 가지러 간 순간, A씨가 타고 있던 동력 패러글라이더가 이륙했다.
얼마 비행하지 못한 동력 패러글라이더는 인근 논으로 추락했다. B 교관은 추락 장소로 달려가 A씨를 끌어내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이미 사망한 후였다.
알 수 없는
이륙 미스터리
이날 교관도 없이 이륙한 동력 패러글라이더는 추락했고 탑승자는 추락과 동시에 사망했다. B 교관은 “가만히 있었던 동력 패러글라이더가 왜 작동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력 패러글라이더는 일반 패러글라이더와 다르게 프로펠러가 장착돼있어 엔진 힘으로 추진력을 얻는 구조다. 덕분에 산이 아닌 평지에서도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엔진이 장착된 동력 패러글라이더는 자동차처럼 직접 기계를 ‘작동시켜야’ 출발할 수 있다. 비행 장소에는 CCTV가 설치돼있었다. 경찰은 CCTV를 수거해 이날 사고를 조사했지만, 동력 패러글라이더가 이륙하는 순간은 인근 둑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항공사고철도조사위원회 관계자 역시 A씨가 탄 동력 패러글라이더가 교관 없이 이륙해버린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유가족은 단 한 곳에서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관리·감독의 주체인 순창군도, M사도 마찬가지였다. 순창군은 모든 책임이 M사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M사는 사건 당시 B 교관이 회사에 사직서를 낸 상황이었기 때문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순창군 관계자는 “순창군에서 안전사고를 대비해 든 5000만원 보험이 있다. 보험회사에 서류를 접수해보니 이번 사고는 해당이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M사와 업무협약서를 쓸 때 안전사고 책임은 M사가 지기로 했다”고 밝혔다. 즉 순창군은 M사와 업무협약을 했지만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순창군과 M사의 ‘항공레저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서’에는 ▲순창군은 항공레저스포츠 운영을 위한 이착륙장 부지 제공 ▲M사는 항공레저스포츠 및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공동 홍보 및 모객 지원 ▲상호 간 공동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 ▲항공레저스포츠 안전을 위해 현장 상황 및 안전기준에 적합한 조치를 취함 ▲항공레저스포츠 사업 운영에 따른 사고 발생 책임은 M사에 있다고 적혀 있다.
항공사업자 반납했는데 영업?
일반인이 혼자 왜 동력 탑승?
협약서 내용에 따르면 이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M사에 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순창군이 패러글라이딩 체험에 있어서 안전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민법 제756조에 해당한다. 민법 제756조에는 ‘수인(직접 서명한 문서)이 공동의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연대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기재돼있다.
그렇다면 M사는 어떤 입장일까. <일요시사>는 M사에 전화했지만, M사 측 관계자는 “당시 입사자가 아니어서 잘 모른다. 상사들은 모두 출장 갔다. 언제쯤 출근하는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이후에도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일요시사>는 M사 이메일로 지난 5월11일 패러글라이딩 사망사고의 책임 소재에 대해 물었다. M사는 메일을 즉시 확인했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다만 B 교관을 통해 M사의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B 교관은 “M사는 현재 이미 폐업한 상태고, 내가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며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그 회사에서 일한 것은 비행 일지 기록 등으로 다 나와 있다”며 “내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죄를 받아야지. 그런데 순창군이든, M사든 전부 죄가 없다고 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유가족은 이번 사고로 인해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가족 C씨는 “너무 억울하다. 사고가 나고 아무도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장례식에도 찾아오지 않았고, 그저 법대로 하라고만 한다”며 “M사의 수익을 순창군이 어느 정도 가져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순창군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폭탄 돌리기
법적 대응
그는 “그런데 모두 교관에게만 책임을 지라고 한다. 사고의 근본 원인은 순창군도 M사도 제대로 된 관리·감독을 하지 않은 것”이라며 “사고가 발생해서 사망자가 생겼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어 “유가족 입장에서 보면 운영주체는 빠지고 직원만 나쁜 사람 된 것 아니냐. M사와 순창군이 이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 두 곳 다 법적으로 하자고 하니, 우리도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