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삼영 후폭풍’ 경찰 속수무책 속사정

그럼 그렇지∼ ‘까라면 까야죠’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류삼영 총경에 대한 중징계가 확정됐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직접 중징계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 내부 불만이 급속도로 퍼지는 분위기다. 윤 청장이 ‘경찰 대표자’가 아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오른팔’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사태를 해결할 묘수가 없다.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도 윗선 수사를 시작하지 못한 상황. 특히 이 장관에 대한 직접 수사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류삼영 총경의 중징계 소식을 접한 경찰 대부분은 윤희근 경찰청장에 대한 신뢰를 내려놨다.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가 윗선 수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개입 의혹 수사조차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분노는 커지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게 현실인 셈이다.

중징계 확정
청장이 요청

경찰청 중장징계위원회(이하 징계위)는 지난 13일 류 총경에게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앞서 류 총경은 지난 7월23일 경찰국 설치에 반대하는 총경회의 주최를 주도했다가 상부의 해산명령을 즉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경찰공무원 징계 규정상 정직은 파면·해임·강등 다음으로 무거운 중징계에 해당한다. 징계위는 류 총경이 징계위에 회부된 언론 인터뷰를 이어나간 행보를 문제 삼은 것으로 파악됐다. 복종·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취지다.

류 총경은 서장회의를 중단하라는 경찰청장의 명령은 정당한 지시가 아니고, 언론 인터뷰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총경에 대한 중징계 처분에는 윤 청장의 강한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경찰청 시민감찰위원회는 지난 9월 경징계를 권고했다. 그러나 윤 청장은 시민감찰위 권고와 달리 류 총경에게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경찰청 중앙징계위원회에 요구했다.

류 총경은 징계위 결정에 대해 즉각 불복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류 총경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국가인권위원장도, 경찰인권위원장도, 경찰 내부에서도 계속 (저를)징계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는데도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며 “권력을 쥔 소수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류 총경은 징계에 불복해 소청심사를 청구하고, 구제받지 못하면 법원에 징계 결정 취소소송도 낼 계획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류 총경의 ‘중징계’를 요구한 윤 청장을 향해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경찰 내부망 ‘폴넷’에는 ‘윤희근 경찰청장님이 부끄럽다’는 글도 올라왔다.

언론 수차례 접촉…품위 위반 정직 3개월
윤희근·이상민 등 윗선 향한 분노서 그쳐

작성자 A씨는 “청장은 내정자 시절 수많은 부하직원들의 반대만 아니라 (경찰국 신설에)법률적 하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찰국 설치에 찬성했다”며 “정작 경찰국 논의를 하겠다는 류 총경에게는 중징계를 의뢰했는데, 저는 당시 정치권으로부터 류 총경을 보호하기 위한 청장의 묘수인 줄만 알았다”고 했다.

A씨는 ‘이태원 참사’ 국면에서 윤 청장이 보인 모습까지 비판하며 “청장 자리는 부하직원들의 과실에 대해 칼질을 해대는 자리가 아니라 무한대의 책임을(지는 것)”이라고 했다. 윤 청장이 지난달 1일 “(참사)현장 대응이 미흡했다”고 발표하자 경찰 내부에선 “책임을 일선 경찰관들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A씨는 “경찰청장이라는 자리는 부하직원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대통령의 은혜를 입은 자리가 아니다”며 “저는 윤 청장이 우리의 수장이라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윤 청장을 향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경찰직협은 “당시 회의(총경회의)는 휴일에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된 것으로서 이를 중단하라는 직무명령이 적정했는지 의문이고, 과거 검사회의와 비교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라며 “류 총경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가능한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과 윤 청장에 대한 일부 경찰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 윗선을 향한 특수본의 칼날이 더욱 날카로워져야 한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올 정도다. 우선 특수본은 지난 13일 오전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받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과 증거인멸 혐의가 적용된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 등 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박 전 부장은 용산경찰서 정보과가 생산한 핼러윈 인파 급증 예상 보고서를 서울시내 31개 정보과장이 참여한 단체대화방에서 삭제하도록 취지의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는다. 김 전 과장은 이 지시를 받고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직원을 회유·종용한 혐의로 입건됐다.

묘수?
꼼수?

특수본은 보고서 삭제에 가담한 용산경찰서 정보과 직원 A씨 역시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기기로 했다. 특수본은 A씨의 경우 위계에 의해 본인 직무 밖의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 삭제 과정에서 김 청장이 관여한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 특히 이번 참사의 핵심인 현장 책임자들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혐의를 받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 5일 기각되면서 전반적인 수사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이후 특수본은 두 피의자를 세 번째 소환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기 위한 보강수사에 열을 올렸다. 이번 주 중 두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신청한다는 계획도 잡았다.

앞서 특수본은 지난 11일 오전 10시 수사본부가 차려진 서울청 마포통합청사로 이 전 서장을 소환해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5일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엿새 만이자, 이 전 서장만 총 세 번째 소환 조사다. 이 전 서장에 대한 첫 번째 구속영장 청구 때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만 적시됐다.

당시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망할 우려에 대한 구속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피의자의 충분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반면 이번 소환 조사에서는 이 전 서장이 참사 당일 현장에 도착한 시간을 허위로 기재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서장은 참사 당일 실제 오후 11시5분쯤 현장에 도착했지만, 상황 보고서에는 오후 10시17분에 도착한 것으로 기재돼있었다.

이와 함께 특수본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와 관련해서는 ‘공동정범’을 적용하는 방향으로도 법리 검토를 진행 중이다. 과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때도 ‘과실의 공동정범’ 법리가 받아들여진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서장의 단독 과실로 참사가 발생했다고 한다면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지만, 경찰·구청·소방·교통공사 등 관련 기관들의 과실이 중첩돼 참사가 발생했다고 법리를 구성하면 인과관계 입증이 수월해진다는 게 특수본 설명이다.

다만 이 같은 법리 구성을 하게 될 경우 업무 과정에서 사소한 과실이 있는 공무원도 전부 포함될 수 있다. 특수본 관계자는 “수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법원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 업무상과실치사상 공동정범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숨 돌린
수뇌부

결국 특수본이 이 전 서장에 대한 영장 재신청 시 공동정범 여부 등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관한 보강수사는 물론,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도 추가 분석해야 하는 등 해결 과제는 늘어나게 됐다.

특수본이 이 전 서장과 송 전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윗선 수사에도 속도감이 생길 수 있다. 행안부와 서울시 등 상급기관 고위 공무원들에 대해 같은 혐의를 적용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두 피의자는 참사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던 책임 주체로서 비교적 과실이 뚜렷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들에 대해 무혐의 또는 재판부의 무죄 판단이 나오면 김 청장이나 윤 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


구속 지연은 경찰 외에 소방이나 구청 등에 대한 수사에도 줄줄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수본은 지난주 이 전 서장과 송 전 실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곧바로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한 영장을 신청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이 입건한 이태원 참사 관련자 대다수가 이 전 서장, 송 전 실장과 같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다는 점이다.

특수본은 피의자들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과 소방·구청 등의 미흡한 대처, 즉 과실이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해 피해를 키웠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기초적 수사 스탠스가 초반부터 흔들리게 되면 한 달이 지난 특수본의 수사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노력에도 이 전 서장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다면 수사 동력을 잃는 등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이 전 서장의 신병을 확보한다고 해도 윗선 수사가 더 큰 난제다. 행안부와 서울시 등 상급 기관 수사는 발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고 담당 공무원에 대한 직무유기와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 적용도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기댈 곳은 특수본뿐인데…용두사미 조짐
헛도는 수사…업무상과실치사상 적용 어려워

게다가 최근 협의회가 출범하면서 유가족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수사 결과가 유가족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 경우 정치적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부담이 뒤따를 수 있다.

특수본 소속 경찰관들은 엄청난 부담감을 안고 수사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일요시사>와 만난 복수의 경찰 간부들은 “특수본 관계자들이 유족의 눈높이에 맞는 성과를 내려 애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청 한 간부는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에도 혐의 입증을 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어제 특수본 후배를 만났는데 정말 힘들어 한다. 윗선 수사에 미적거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정말 억울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인과관계 입증이 쉬운 일이 아니다. 물적 증거와 논리가 퍼즐처럼 들어맞아야 한다. 또 다른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워 무혐의 처분을 할 수도 없어서 애쓰고 있다”며 “유족들이 실망하지 않을 결과를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믿고 지켜봐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유가족과 경찰 내부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은 이 장관을 버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12일 이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 건의에 대해 “해임은 진상이 명확히 가려진 후에 판단할 문제”라고 밝혔다. 진상 확인과 실체 규명이 이뤄져야 책임 소재도 가려낼 수 있다는 방침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이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은 이날 인사혁신처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수사와 국정조사 이후 확인된 진상을 토대로 종합적인 판단을 하겠다”며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적어도 현 단계에서 도의적 책임이나 야당의 공세를 이유로 경질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부끄럽다”
비판 확산

그러면서도 대통령실은 해임 건의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는 ‘이상민 문책론’을 부정하는 듯 비쳐 자칫 유가족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 부대변인이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해서는 진상 확인과 법적 책임 소재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며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최대의 배려이자 보호”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출근길에서 국회 해임 건의에 대한 질문에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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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