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째라 버티는’ 이상민 장관발 후폭풍 셋

날 새는 줄 모르고 ‘의리 타령’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의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모양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자신의 최측근이자, 수족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전히 ‘의리’로 지켜주고 있는 상황으로 이러다가는 거센 후폭풍은 물론 역풍도 배제할 수 없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2주가 흘렀다.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났지만 국민은 아직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그 사이 정치권에서는 책임 소재를 두고 의견이 갈리며,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용산경찰서장, 용산구청장, 소방서장까지 책임론이 가해지는 상황이다.

여야 모두
사퇴 의견

심지어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은 당시 현장에 있었음에도 재난 대응 2단계를 제대로 발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건된 상태다. 경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대상에 정부는 빠져 있다. 정치권에서는 도대체 누가 책임지느냐는 격앙된 목소리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 야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 장관은 참사 초기부터 지금까지 여러 발언들로 책임론에 시달리는 중이다. 당시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장관의 사퇴가 기정사실화됐을 정도다. 여러 언론에서도 이 장관이 정부의 책임자로 거론됐다. 일각에서는 사퇴 요구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으나 이 장관은 사퇴할 생각이 없는 모양새다.

이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대통령실로부터 사의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해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퇴 입장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이 장관 본인과 더불어 대통령실도 이 장관을 지키겠다는 기조가 느껴졌다.


이날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장관을 바꾸는 게 후진적으로 보인다”고 밝혀서다. 김 실장은 “국정상황실은 대통령 참모조직이지 대한민국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김 실장의 컨트롤타워 발언은 즉시 야당의 반발을 샀다. 여당 일각에서도 이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점점 이 장관의 책임론이 커지면서 점차 윤석열 대통령에게까지 책임론이 불붙기 시작했다.

이 같은 책임론을 조기에 종식시키고자 정부는 범정부 재난안전관리체계 개편 태스크포스(FT)를 구성했다. 국가재난안전시스템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겠다는 셈이다. 

윤 대통령은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이 장관을 공식적으로 꾸짖지 않는 대신, 윤희근 경찰청장의 면전에서 질타했다고 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이 장관을 상당히 아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장관은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의 최측근 중의 측근으로 불린다.

두 인물은 상당히 격의없는 사이로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4년 후배이자, 서울대 법대 법학과 직속 후배다.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을 사석에서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관계가 상당히 돈독한 것으로 여겨진다. 윤 대통령에게 답답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장관을 찾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정도다. 

구청장, 경찰서장, 소방서장만…꼬리 자르기?
경찰청장과 함께 경질론 확산 “바로 사퇴해야”

대선 기간에도 이 장관은 윤 대통령과 함께했던 사이다. 당시 그는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에서 경제사회위원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이 장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외협력특별보좌관으로 합류했다. 


당시 인수위는 이 장관에게 국민의 권익 향상과 윤리의식 제로를 위한 활동을 전개한 인물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지향했던 공정하고 정의로운 정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사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이 장관을 향한 믿음은 윤석열정부 첫 행정안전부 장관으로까지 임명시킨 배경이다. 이 장관은 취임 이후 줄곧, 경찰과 소방에 대한 행정안전부의 지휘 및 감독을 강화시켜왔다. 이 장관 체제에 들어서면서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 지휘 규칙이 신설됐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면서 책임론이 이 장관에게 향했다. 그의 책임론이 확산한 이유는 경찰 병력 등 몇 가지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참사 다음날 브리핑에서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발언했고 “우려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고도 했다.

이런 탓에 끊임없이 이 장관을 향한 사퇴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이 장관은 여전히 버티기 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한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은 “사퇴 같은 방식으로 책임질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며 “말로는 무한 책임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책임을 통감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탓에 점차 이태원 참사 책임이 윤 대통령에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이 장관이 물러나지 않거나 경질조차 되지 않는다면 추후 ‘대통령이 아끼는 사람은 무조건 감싼다’는 전례를 남길 수밖에 없다.

말로만 
무한 책임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지켜주는 탓에 이 장관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성역까지 생겼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앞으로 윤정부의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러도 이 장관처럼 경질하거나 사퇴 요구를 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대통령실이 이 장관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액션을 취하자 윤정부 책임론까지 확산하는 분위기다. 과거 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행동을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 여겼다.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재난이 발생했지만, 슬그머니 애도 기간으로 지정한 뒤, 슬그머니 발을 뺐다. 보통 국가적 참사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정부의 누군가는 책임지기 마련이다. 윤 대통령은 이 장관에게 ‘직접적인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게 단순히 법적 책임 관계만 따진다는 인식 때문이다. 윤정부 내각이 도의적인 부분은 안배하지 않고 법적 부분만 따지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앞으로 ‘검찰공화국’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여전히 대통령실을 비롯해 여러 정부부처에는 검찰 출신 및 윤석열 사단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경찰과 소방이 책임을 지지만 정부는 도의적 책임에 대해 여전히 회피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여전히 검찰총장 시절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다. 이 장관이 사실상 버티기를 하고, 대통령실에서도 선을 긋자 또 다른 대형 참사가 발생할 경우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번 참사를 두고 피해자들을 탓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윤정부가 참사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감이 낮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전 참사들과 달리 유난히 정부 책임론이 확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그날(이태원 참사 당시) 정부는 없었다”는 발언으로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말이 나오지만 바꿔 말하면 없던 책임은 있지만,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은 직접적으로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말실수를 가지고 경질시키지 않는다는 기조가 강하다”고 전했다.

이 장관 사퇴는 야당만 요구하는 게 아니다. 여당에서도 꾸준히 언급해오고 있다. 몇몇 국민의힘 관계자는 “참사의 책임은 주무부처를 소관하는 장관의 책임”이라며 이 장관 책임론에 불을 지폈다. 그동안 윤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입장을 보여왔던 홍준표 대구시장마저 “이 장관의 사퇴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사고 날라


과거 박근혜정부 내각에서 근무하던 한 고위직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장관이 충분히 지시를 할 수 있는 위치인데, 왜 장관이 대통령만 바라보고 일하는지 모르겠다”며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만 보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참사 책임을 누군가는 내각에서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이 장관의 버티기 논란은 ‘경찰국’ 논란으로까지 불거지는 양상이다. 이 장관은 경찰을 직접 지휘할 수 있는 인물로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직접 경찰 지휘권이 없다”던 자신의 과거 발언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형국이다. 

그는 정부조직법 규정에 따라 행정안전부 장관이 치안 업무를 직접 수행하지는 않지만, 경찰청의 업무를 수시로 확인하고 지휘 및 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던 바 있다.

또 경찰국 출범을 앞두고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의 경우 직접 수사를 지시하겠다고도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윤 대통령이 경찰에 대한 책임론을 물고 늘어질수록 이 장관도 함께 부각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수사는 경찰의 윗선으로 향해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불신의 목소리가 높다. 행정안전부는 법리적 검토만 했기 때문이다. 경찰청 특수수사본부(이하 특수본)가 윤희근 경찰청장실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장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행위로 해석한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정부의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야당에서는 국정조사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국정조사는 국회 재적 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추진할 수 있다. 특별위원회 또는 상임위원회가 특정사안에 관해 조사를 시행하는 제도다.

앞서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윤정부에 대한 국정조사 카드를 꺼냈으나 역풍을 맞아 자제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소수당인 기본소득당, 정의당도 함께 참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모처럼 야당이 뜻을 같이해 야권 연대가 이뤄진 셈이다.

윤심 측근들 책임 있어도 성역?
아직도 총장 시절 버릇 남았나?

총 181명 의원들이 동참한 ‘용산 이태원 참사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는 지난 9일, 국회 의안과에 제출됐다. 해당 요구서를 제출한 이들은 참사의 발생 원인, 참사 전후 대처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규명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재발방지 대책을 반드시 마련해 국민의 미래 안정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조사 범위는 ▲참사 발생 전후의 서울시와 용산구 등 지방자치단체 및 소방청·경찰청,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국무총리실, 대통령실 등 정부의 상황 대응과 관련해 재난안전관리체계의 작동 실태 조사 ▲참사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사실관계 은폐와 축소, 왜곡 의혹의 규명 등이다.

이 밖에 희생자와 피해자 및 유가족, 현장 수습 공무원, 시민 등에 대한 정부 지원대책의 적절성 및 후속 대책 점검도 포함시켰다. 국조 특위는 교섭단체 및 비교섭단체의 의석 비율로 선임하고 국조 위원을 포함해, 총 18명으로 구성하는 특별위원회로 구성한다.

지난 9일 국회의장 정례회동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번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반대 여부와는 관계 없이 국회 본회의서 통과 시 국정조사권은 즉시 발동된다.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이유는 경찰 수사(특수본)에 몰두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국정조사를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국정조사가 실제로 이뤄질 경우 윤정부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를 수 있다. 국조 이후 야당은 반드시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있는 결론을 내려고 할 것이고, 특검을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또다시 야권이 뭉치는 빌미를 윤 대통령이 제공하게 되는 꼴이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윤 대통령과 정부에는 책임론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엔 가능
지금은 불가?

만일 특검법이 도입돼 국회서 해당 특검법이 통과될 경우, 윤 대통령은 즉시 거부권을 행사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로 인한 여론 악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국회로 법안이 돌아오지만 야당 입장에서는 오히려 호재다. 본회의서 과반수가 출석하고 이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특검 가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경찰에게만 책임을 묻고 장관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 행동을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과연 이것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결정일지 윤 대통령이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부 이태원 책임론 기름 부은 김은혜·강승규

이태원 참사를 두고 윤석열정부와 여당이 경찰 책임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정부 책임론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 8일 국정감사장에 참석한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의 메모지 적힌 ‘웃기고 있네’ 라는 글귀가 한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됐다.

해당 메모는 김은혜 홍보수석이 강 수석의 메모지에 작성한 것이었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즉시 “국회 모독”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고, 강 수석과 김 수석이 곧바로 사과했다.

김 수석은 “강 수석과 제가 다른 사안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적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주호영 운영위원장이 대화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밝힐 것을 요구했으나 강 수석은 “사적 대화”라며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거부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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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