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44년 푸르밀 설익은 오너 책임론

도련님이 말아먹은 우유 명가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푸르밀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오너 2세 체제가 가동된 직후부터 휘청거리더니, 적자를 이겨내지 못한 채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꼭대기에 앉은 황태자가 헛발질을 계속하는 사이 탄탄했던 회사는 순식간에 망가졌고, 피해는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 형국이다. 

유제품 전문 기업 푸르밀이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지난 17일 푸르밀은 사내 이메일을 통해 400여명에 달하는 직원에게 사업 종료와 정리해고를 통지했다. 푸르밀 측은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내부 자구 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다”며 “하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날치기
수순

잇따른 매각 무산이 사업 종료 결정을 내린 이유였다. 푸르밀은 경영난 해소를 위해 매각을 추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약화된 경쟁력 역시 푸르밀의 새 주인 찾기가 실패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유업계 경쟁사들이 건강기능식품 및 케어 푸드 등으로 외연을 확장하며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신경 쓴 데 반해, 푸르밀은 유제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업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푸르밀의 갑작스러운 사업 종료 통보로 인해 그간 원유를 공급해왔던 낙농가와 협력업체들은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푸르밀과 자체 브랜드 상품 공급계약을 체결했던 대형 유통업체들도 대체 업체 물색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직장을 새로 찾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푸르밀 임직원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임직원들은 임금 삭감마저 감내하면서까지 사측에 협조했지만, 이 같은 노력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사측에서 통보한 사업 종료 및 정리해고일은 내달 30일이다.

몇몇 직원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사측의 일방적인 사업 종료 및 해고 통보를 저지하고자 결집하는 모습이다. 지난 20일 푸르밀 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직원들의 가정을 파탄시키며 죽음으로 내모는 살인 행위”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노조는 “소비자 성향에 따른 사업 다각화 및 신설라인 투자 등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했으나 안일한 주먹구구식의 영업을 해왔다”며 “해고 통보 전 임직원들과 일절 협의가 없었고 보상 방안도 없이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불법적인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푸르밀의 사업 종료 결정을 오너 경영 체제의 실패라고 규정짓고 있다. 푸르밀의 가파른 하향세가 오너 경영 체제로의 회귀 시점과 맞물린다는 점에 주목한 시각이다. 사실상 ‘신준호·신동환’ 책임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책임은
누가?

푸르밀은 1978년 4월 설립된 롯데우유를 모태로 하는 ‘범롯데’ 기업이다. 롯데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건 신준호 푸르밀 회장과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간 얄궂은 인연에 기인한 탓이다.

신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인 신 회장은 롯데건설·롯데제과 대표이사, 롯데햄·우유 부회장 등을 거치며 롯데그룹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하지만 신 회장은 1990년대 중반 형제 간 분쟁을 거치며 그룹의 모든 직위서 해임됐다.


이런 신 회장에게 롯데우유는 재기의 발판이 됐다. 신 회장은 2007년 4월 롯데햄으로부터 롯데우유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독자생존을 모색했고, 롯데그룹의 브랜드 사용금지 요청을 계기로 사명을 2009년 1월 푸르밀로 변경하면서 완벽한 선긋기에 돌입했다.

롯데라는 우산을 벗어 던진 푸르밀은 2009년부터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렸다. 무엇보다 2009년 남우식 대표이사를 내세운 전문경영인 체제가 신의 한 수였다. 남 대표 취임 첫해에 거둔 매출 2000억원 돌파와 분사 이래 첫 흑자라는 결과물은, 푸르밀의 홀로서기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후 푸르밀은 유업계서 확실한 영역을 구축해나갔다. 매출은 2012년 3000억원을 찍은 뒤 조금씩 내림세를 나타냈지만, 흑자 행진은 2017년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꾸준히 순이익을 발생시킨 덕분에 남 대표 취임 직전 해인 2008년 130억원에 달했던 결손금은 2012년부터 이익잉여금으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2017년에는 이익잉여금이 272억원에 달할 만큼 내실이 탄탄해졌다.

하지만 남 대표 체제는 2017년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유업계 경쟁 심화와 유류 소비 하락이라는 악재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까닭이다.

실제로 푸르밀은 남 대표의 마지막 임기였던 2017년에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수준인 15억400만원으로 떨어졌고, 순이익은 10억원 밑으로 주저앉는 등 2008년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창립 40주년을 앞두고 있던 만큼 눈앞에 닥친 수익성 악화를 이겨낼만한 탈출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일방적 사업 종료·해고 통지
후계자 오고 귀신같이 미끌∼

변혁을 꾀하고자 꺼낸 카드는 오너 경영 체제로의 회귀였다. 남 대표가 사임한 2017년 12월31일에 곧바로 신 회장이 후임 대표이사직을 넘겨받았고, 사흘 뒤 신동환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부자 공동 경영 체제가 갖춰졌다.

신 회장의 둘째 아들인 신 대표는 사실상 회사의 후계자였다. 롯데우유 계열분리 과정서 지분 100%를 인수한 신 회장은 인수 직후 우리사주조합에 10%가량을 주고 나머지 90%를 보유해왔다. 신 회장은 2012년 7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가운데 30%를 아들과 딸, 손자들에게 증여하며 승계 작업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말 기준 신 회장이 푸르밀 지분 60%를 보유한 최대주주고, 2대 주주는 딸 신경아 푸르밀 이사(12.6%)다. 신 대표는 지분 10%를 보유한 3대 주주지만, 두 아들인 재열·찬열군이 각각 보유한 지분 4.8%와 2.6%를 더하면 사실상 2대 주주다.

표면상 두 명의 대표가 지휘하는 형태였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푸르밀이 사실상 오너 2세 경영 체제로 진입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31일자로 신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완벽한 단독 경영 체제가 확립됐다.

신 대표는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리자마자 곧바로 신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1998년 롯데제과 기획실에 입사해 롯데우유 영남지역담당 이사, 푸르밀 부사장 등을 거친 신 대표는 본인이 직접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등 신제품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이 같은 노력이 빛을 발하며 신 대표 취임 첫해에 신규 출시한 가공유 제품만 30개에 육박했다. 다른 유업체들이 신제품 출시를 머뭇거리는 모습과 사뭇 다른 행보였다. 신 대표가 불러온 신선한 바람이 회사 수익으로 연결되는 건 시간문제쯤으로 여겨졌다.

기막힌
내리막

그러나 신동환호 푸르밀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신제품 출시가 매출 확대로 이어지기는커녕 주요 실적 지표에서 급격한 하향세가 뚜렷해진 것이다. 

신 대표 취임 직전년도에 2575억원이던 푸르밀의 매출은 2019년 2000억원을 겨우 넘기는 수준으로 떨어진 진 데 이어, 이듬해 180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푸르밀이 1000억원대 매출을 찍은 건 2009년(1700억원) 이래 처음이었다.

수익성 악화는 한층 심각했다. 2008년(영업손실 75억원)을 끝으로 흑자전환했던 푸르밀은 신 대표 임기 첫해였던 2018년에 영업손실 15억원을 기록하며 10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2019년에는 영업손실이 전년 대비 6배 가까이 불어났고, 이듬해 113억원, 지난해 124억원 등 최근 3년간 연평균 영업손실이 109억원에 달했다. 2018년 580억원이었던 판관비 지출을 지난해 523억원 수준으로 줄였음에도, 같은 기간 매출총이익이 566억원에서 400억원으로 낮아지는 바람에 적자 폭이 한층 커진 모양새다.


거듭된 적자 행진은 제법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던 푸르밀의 재무상태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신 대표 취임 직후부터 본격화된 현상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7년 102.8%에 불과했던 푸르밀의 부채비율은 2020년 223.4%로 두 배 이상 높아졌고, 지난해에는 급기야 507.4%로 치솟았다. 통상적인 적정 부채비율(200% 이하)과는 현격한 격차가 발생한 셈이다.

심각한 총자본의 감소가 부채비율 급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2017년 657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찍었던 푸르밀의 총자본은 적자 지속의 여파로 지난해 말 기준 143억원으로 줄었다. 흑자 행진에 힘입어 2017년까지 271억원이 쌓였던 이익잉여금이 실적 부진의 여파로 2020년에는 결손금 107억원으로 전환됐고, 결손금 규모가 한 해 만에 240억원까지 확대된 게 뼈아팠다.

총자본이 줄어든 가운데 총부채는 나날이 증가하면서 재무상태에 부담을 더했다. 2018년 572억원이던 푸르밀의 총부채는 4년 새 723억원으로 150억원가량 불어났다.

외부에서 차입한 자금이 확대되면서 부채가 덩달아 커진 형국이다. 2017년 202억원이던 푸르밀의 총차입금은 2년 만에 100억원가량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498억원으로 불어났다. 차입금 증가의 영향으로 재정건전성의 척도로 인식되는 차임금의존도(적정 수준 30% 이하)는 2017년 16.5%에서 지난해 57.5%로 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 차입금 항목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총차입금의 89.8%가 1년 내 상환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단기차입금이 408억원으로 비중이 가장 컸으며, 장기차입금 중 만기도래를 앞둔 유동성장기차입금이 40억원이었다. 상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본전도
못찾고…

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올해 초 퇴직금 30억원을 챙기는 등 오너 일가는 챙길 건 다 챙겼고, 정작 임직원들만 피해를 보게 된 양상”이라며 “신 대표가 경영권을 잡은 이후 업황이 딱히 좋다고 보긴 힘들었지만, 오너 경영 체제에서 회사가 급격히 기울어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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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