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야당 쥐락펴락 ‘이핵관 오상시’ 정체

169명보다 5명이 더 세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중국 후한 말, 한나라 황제 곁에는 조정을 농락한 10여명의 환관들이 있었다. 이들은 황제의 눈과 귀를 가려 자신들 입맛대로 권력을 휘둘렀고, 결국 나라 전체를 도탄에 빠트렸다. 약 400년 역사의 한나라가 망하는 데는 수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야당의 대표는 수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야당이 국회 의석수를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다면 권력은 배가 된다. 정계는 그동안 정치력이 탁월한 거대 야당 대표가 의회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원내 1당의 대표가 내리는 결정은 나라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정계 전문가들은 정치인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귀를 더욱 열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의 의사결정 구조가 투명해야 균형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의사결정 구조가 ‘매우’ 폐쇄적이라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제보의 내용은 한결같았다. 이 대표가 소수의 최측근과만 소통하며 중요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린다는 볼멘소리였다.

이들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게 말이 되나 싶다. 당내 의원들과는 브리핑 수준의 회의만 진행하고, 의사결정 과정은 소수의 측근들과만 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일요시사>와 만난 다수의 민주당 내부 인사들은 쉽게 ‘성남 십상시’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뱉었다.


이 대표와 측근들을 보고 있자 하니 그 옛날 한나라를 멸망으로 몰아갔던 ‘아첨꾼’ 십상시가 떠오른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이 대표의 최측근들이 열 명이나 되지는 않는다. 이 대표 곁에는 성남시절부터 함께해온 비서진 ‘성남 3인방(정진상·김현지·김남준)'과 당내 권력을 움직일 수 있는 2인(박홍근·정청래)의 측근 의원이 포진돼있다. 굳이 말하면 그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사람들은 십상시가 아닌 ‘오상시’다.

이 대표의 의사결정 과정이 진짜로 폐쇄적일까? 그것에 대한 뚜렷한 해답은 본인만 알고 있겠지만, 이 대표가 그동안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결정을 종종 내려온 것은 사실이다.

그 출발은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출마였다. 이 대표가 대통령선거 패배 몇 주 만에 다시 정계로 복귀할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가 쏟아지자 민주당 의원들은 똘똘 뭉쳐 그의 출마를 말리려 애썼다.

대선에서 패배 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복귀한 전례가 없었고, 지방선거와 맞물려 있는 보선에 출마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선거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무엇보다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많은 비명(비 이재명)계 인사들이 실망했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이 의원이나 송영길 대표가 정말 당을 위한다면 (대선 패배에 대해)사과하고 전국 경청 투어를 6개월 동안 해줬어야 했다”고 일갈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 의원이 계양을에 나감으로 인해서 묶여버리는 역효과가 나버렸다”며 “만약 거기 묶이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전국 선거판을 좀 더 적극적으로 리드할 수 있었을 텐데 전략의 실패라는 생각은 든다”고 주장했다.

내부 분위기가 반대 의견으로 모아질 때 이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많은 의원이 이 대표에게 직간접적으로 불출마를 요청했으나, 귀담아 듣는 ‘시늉’만 하고는 늘 곧 출마하는 사람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해놓고 움직이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는 반대 의견을 내는 의원들과의 만남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당이 반대할 때마다 ‘무시’로 일관
듣는 시늉만…결국 결정 마음대로

이 대표는 이때 그들과의 만남으로 설득당할 생각은 없었지만, 보궐선거 당선 이후 당권까지 노리고 있었던 만큼 반대파 의원들까지 모두 품고 가려는 계산을 세웠다. 그는 출마 전 민주당 원로 인사들과 친문(친 문재인)계 의원들, 또 선대위에 참여했던 인사들까지 두루두루 만나며 여러 의견을 들었다.

하지만 결국 이 대표는 출마하고 당선됐다. 당선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 그의 다음 행보가 ‘대표 출마’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때의 반대는 보궐선거 출마 때보다 더 거셌다. 몇몇 친명 의원을 제외한 민주당 내부 인사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각종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를 저지하려 노력했다. 이때 뽑힌 대표가 다음 총선에서의 공천권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비명계와 중도 진영 인사들은 하나로 뭉쳐 이 대표에 대항했다.

지난 6월 있었던 민주당 워크숍이 그 분위기를 잘 드러냈다. 민주당 의원들의 단합 목적으로 마련된 워크숍 자리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차례대로 이 대표에게 찾아가 불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그의 대표 저지를 위해 민주당이 하나 된 마음을 표출하는 듯이 보였다. 물론 그 선봉장에는 친문계 좌장 역할을 하던 의원들이 있었다. 

친문계는 전당대회가 당내 계파싸움으로 번질 기미가 보이자 일찌감치 후보를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누구를 후보로 내세울지 고심하던 친문 측은 역으로 불출마를 택했고, 이 카드로 이 대표를 거세게 압박했다. 

친문계 좌장 홍영표 의원은 워크숍에서 이 대표와 만난 뒤 “이번 전당대회에서 우리 당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고,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과연 이재명 후보나 내가 출마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우리가 판단해 보자며 (이 대표에게)이야기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굳이 이 대표를 찾아가 만나고, 구태여 이런 제안을 기자들에게 말하는 것은 이 대표를 계속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홍 의원은 당시 이 대표가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대신 전했다.

홍 의원에 이어 또 다른 친문 좌장 전해철 의원도 전당대회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권 쥐고 
흔드는 세력


그는 본인의 SNS에 “연이은 선거 패배로 당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금, 당을 정상화하고 바로 세우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이번 전당대회에 불출마하고, 민주당의 가치 중심으로 당을 이끌어나갈 당 대표와 지도부가 구성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선언했다.

친문계 두 명의 의원이 빠지자 압박은 현실화됐다. 당내 의견은 ‘계파 싸움’ 종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곧 이 대표에 대한 불출마 요구로 이어졌다. 재선·초선 의원 약 30명은 전당대회 전 한자리에 모여 이 대표의 불출마를 제안하는 공동 의견서를 이 대표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심지어 친명으로 분류되던 강훈식 의원도 이 대표를 말리고 나섰다. 강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에 일찌감치 이재명 선거위원회로 들어가 그의 대통령 당선을 도운 바 있다. 그는 경선 기간 중 내내 중립지대에 머물러 있다가 이 대표가 민주당의 최종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자 비서실 정무조정실장 자리에 들어가 이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겼다.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으로 국민의힘으로부터 숱하게 뭇매를 맞을 때도 강 의원은 언론 전면에 등장해 대신 방패 역할을 하곤 했다.

강 의원은 “전모를 잘 모르기에 내가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녹취록 전체를 들어보니 ‘이 대표 때문에 (대장동 관련)일이 잘 안 된다’는 뜻으로 들렸다”며 그를 옹호했다. 비교적 친문색이 짙고 어느 한편에 서서 도움을 주지 않았던 그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자 일각에서는 그를 ‘친명계’로 분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 이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는 반대했다.


그의 당선을 막기 위해 직접 뛰어든 전당대회를 앞두고 강 의원은 “이재명이 대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출마도 안 했다”며 “대표는 통합과 신뢰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내 분란의 원흉으로 꼽히는 이 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비명계, 중립지대, 심지어 친명계 의원들이 반대하는데도 이 대표는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면서도 불출마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그는 당시 오히려 지지자들을 두루 만나고 전당대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지역 당협위원장들과 대의원들을 만나며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진행 중이었다.

반대를
무시로

이 같은 행보를 쭉 지켜봐왔던 한 민주당 인사는 “이 대표와 의미있는 회의를 하는 인사는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그는 “겉으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소통하는 행보를 해왔지만 그들의 의견이 이 대표의 결정을 바꾸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이들의 설득 과정이 그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들의 증언은 대표 당선 후에도 이어진다. 보궐선거와 전당대회 출마 강행 때의 모습이 대표 당선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김건희 특검법 강행이 증언의 골자였다.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수완박’법을 강행 처리하며 대중의 비판을 샀던 바 있다. 검찰개혁에 대해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처리하는 민주당표 검수완박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당내 의석수를 무기로 검찰개혁을 무리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간이 없었던 탓이다. 민주당은 법안을 최종 공포하기 위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다면 그가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을 무력화시킬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패스트트랙’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존 방식대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법안을 통과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수많은 편법이 동원됐다. 법사위원들의 투표에서 민주당은 제3지대 의원의 표가 하나 필요했다.

이를 위해 법사위 소속이었던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자진 탈당하는 꼼수를 감행했다. 민 의원의 탈당으로 검수완박 패스트트랙 처리에 충분한 동력이 생겼고, 이는 결국 최종 공포됐다. 검수완박 법안 발의부터 최종 공포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이때 국민들은 민주당에 많은 비판을 가했다. 검찰의 수사권 박탈이라는 무거운 법안을 너무 ‘가볍게’ 처리했다는 비판이었다. 국민들은 이 불만을 지방선거에서 표로 보여줬다. 이로써 민주당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대부분의 권력을 국민의힘에 빼앗기며 대패했다.

이번 김건희 특검법 또한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민주당은 본회의로 상정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패스트트랙’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전반기 국회보다 법안 처리가 더 어려운 상황이다.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차지하고 있고, 제3지대 인물인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공식적으로 특검법 발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검법이 이 대표 검찰 수사에 대한 ‘보복조치’로 평가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의 일부 의원은 특검법 강행처리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행 가능성이 현저히 적을뿐더러 지금 시기에 검 여사에 대한 수사를 굳이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브레인’ 김현지·김남준·정진상
‘게이트 키퍼’ 박홍근·정청래

그러나 이 대표는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지는 않은 모양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본인에 대한 수사가 끊이지 않는다면 특검법 카드를 버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법에 반대하는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거(특검법) 포기 안 할 것으로 보인다. 포기하는 순간 이 대표가 쓸 수 있는 수단 하나가 사라지기 때문”이라며 “분명히 몇 명 의원이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들었는데, 지도부의 판단에 영향을 주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안마다 의원들의 의견을 두루 듣는 시간을 종종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민주당 인사는 여의도 정치의 경험이 없는 이 대표가 ‘귀를 열려고’ 하는 모습을 최대한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종 결정에는 성남 ‘5상시’만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2000년대 초반 성남지역 시민단체 시절부터 이 대표와 함께한 김현지 보좌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때도, 경기도지사 때도, 지근 거리에서 그의 모든 의정활동을 지원했다.

김 보좌관은 성향이 매우 공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특히 이 대표가 정적들과 육탄전을 펼칠 때 작전을 세우고 실질적인 공격을 도맡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지 보좌관이 이 대표의 ‘입’이라면, 김남준 보좌관은 이 대표의 ‘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남준 보좌관은 성남지역 언론 기자 출신으로, 이 대표가 직접 영입을 제안해 대변인으로 스카우트된 인물이다.

그는 이 대표의 의중을 가장 빠르게 파악하고 언론에 잘 대응하는 인력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와 소통하는 언론이 항상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도 그 덕분이라고 전해진다.

이 대표와 함께 전략을 구상하는 ‘브레인’ 정진상 정부조정실장도 있다. 그는 대선 기간 때부터 꾸준히 언급돼온 이 대표의 복심 중의 복심이다. 정 실장은 이 대표가 대표에 취임하기 전까지 아무런 직책을 맡고 있지 않았음에도 민주당의 또 다른 ‘실세’로 꾸준히 평가받아왔다.

이 대표의 모든 정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대표가 정 실장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제보에 따르면, 이 대표가 의견을 자주 듣는 측근 중 민주당 원내인사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박홍근 원내대표와 정청래 최고위원이다.

간신?
충신?

이들은 사실상 이 대표의 ‘게이트 키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유일한 견제기구라는 평가도 이어지지만, 이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견제보다는 협력이 많았다. 이 대표 측근 5인방이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간 ‘간신’으로 기록될지, 훌륭한 성군을 모신 ‘충신’으로 기록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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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