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야당 쥐락펴락 ‘이핵관 오상시’ 정체

169명보다 5명이 더 세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중국 후한 말, 한나라 황제 곁에는 조정을 농락한 10여명의 환관들이 있었다. 이들은 황제의 눈과 귀를 가려 자신들 입맛대로 권력을 휘둘렀고, 결국 나라 전체를 도탄에 빠트렸다. 약 400년 역사의 한나라가 망하는 데는 수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야당의 대표는 수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야당이 국회 의석수를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다면 권력은 배가 된다. 정계는 그동안 정치력이 탁월한 거대 야당 대표가 의회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원내 1당의 대표가 내리는 결정은 나라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정계 전문가들은 정치인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귀를 더욱 열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의 의사결정 구조가 투명해야 균형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의사결정 구조가 ‘매우’ 폐쇄적이라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제보의 내용은 한결같았다. 이 대표가 소수의 최측근과만 소통하며 중요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린다는 볼멘소리였다.

이들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게 말이 되나 싶다. 당내 의원들과는 브리핑 수준의 회의만 진행하고, 의사결정 과정은 소수의 측근들과만 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일요시사>와 만난 다수의 민주당 내부 인사들은 쉽게 ‘성남 십상시’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뱉었다.


이 대표와 측근들을 보고 있자 하니 그 옛날 한나라를 멸망으로 몰아갔던 ‘아첨꾼’ 십상시가 떠오른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이 대표의 최측근들이 열 명이나 되지는 않는다. 이 대표 곁에는 성남시절부터 함께해온 비서진 ‘성남 3인방(정진상·김현지·김남준)'과 당내 권력을 움직일 수 있는 2인(박홍근·정청래)의 측근 의원이 포진돼있다. 굳이 말하면 그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사람들은 십상시가 아닌 ‘오상시’다.

이 대표의 의사결정 과정이 진짜로 폐쇄적일까? 그것에 대한 뚜렷한 해답은 본인만 알고 있겠지만, 이 대표가 그동안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결정을 종종 내려온 것은 사실이다.

그 출발은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출마였다. 이 대표가 대통령선거 패배 몇 주 만에 다시 정계로 복귀할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가 쏟아지자 민주당 의원들은 똘똘 뭉쳐 그의 출마를 말리려 애썼다.

대선에서 패배 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복귀한 전례가 없었고, 지방선거와 맞물려 있는 보선에 출마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선거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무엇보다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많은 비명(비 이재명)계 인사들이 실망했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이 의원이나 송영길 대표가 정말 당을 위한다면 (대선 패배에 대해)사과하고 전국 경청 투어를 6개월 동안 해줬어야 했다”고 일갈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 의원이 계양을에 나감으로 인해서 묶여버리는 역효과가 나버렸다”며 “만약 거기 묶이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전국 선거판을 좀 더 적극적으로 리드할 수 있었을 텐데 전략의 실패라는 생각은 든다”고 주장했다.

내부 분위기가 반대 의견으로 모아질 때 이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많은 의원이 이 대표에게 직간접적으로 불출마를 요청했으나, 귀담아 듣는 ‘시늉’만 하고는 늘 곧 출마하는 사람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해놓고 움직이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는 반대 의견을 내는 의원들과의 만남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당이 반대할 때마다 ‘무시’로 일관
듣는 시늉만…결국 결정 마음대로

이 대표는 이때 그들과의 만남으로 설득당할 생각은 없었지만, 보궐선거 당선 이후 당권까지 노리고 있었던 만큼 반대파 의원들까지 모두 품고 가려는 계산을 세웠다. 그는 출마 전 민주당 원로 인사들과 친문(친 문재인)계 의원들, 또 선대위에 참여했던 인사들까지 두루두루 만나며 여러 의견을 들었다.

하지만 결국 이 대표는 출마하고 당선됐다. 당선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 그의 다음 행보가 ‘대표 출마’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때의 반대는 보궐선거 출마 때보다 더 거셌다. 몇몇 친명 의원을 제외한 민주당 내부 인사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각종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를 저지하려 노력했다. 이때 뽑힌 대표가 다음 총선에서의 공천권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비명계와 중도 진영 인사들은 하나로 뭉쳐 이 대표에 대항했다.

지난 6월 있었던 민주당 워크숍이 그 분위기를 잘 드러냈다. 민주당 의원들의 단합 목적으로 마련된 워크숍 자리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차례대로 이 대표에게 찾아가 불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그의 대표 저지를 위해 민주당이 하나 된 마음을 표출하는 듯이 보였다. 물론 그 선봉장에는 친문계 좌장 역할을 하던 의원들이 있었다. 

친문계는 전당대회가 당내 계파싸움으로 번질 기미가 보이자 일찌감치 후보를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누구를 후보로 내세울지 고심하던 친문 측은 역으로 불출마를 택했고, 이 카드로 이 대표를 거세게 압박했다. 

친문계 좌장 홍영표 의원은 워크숍에서 이 대표와 만난 뒤 “이번 전당대회에서 우리 당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고,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과연 이재명 후보나 내가 출마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우리가 판단해 보자며 (이 대표에게)이야기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굳이 이 대표를 찾아가 만나고, 구태여 이런 제안을 기자들에게 말하는 것은 이 대표를 계속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홍 의원은 당시 이 대표가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대신 전했다.

홍 의원에 이어 또 다른 친문 좌장 전해철 의원도 전당대회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권 쥐고 
흔드는 세력


그는 본인의 SNS에 “연이은 선거 패배로 당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금, 당을 정상화하고 바로 세우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이번 전당대회에 불출마하고, 민주당의 가치 중심으로 당을 이끌어나갈 당 대표와 지도부가 구성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선언했다.

친문계 두 명의 의원이 빠지자 압박은 현실화됐다. 당내 의견은 ‘계파 싸움’ 종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곧 이 대표에 대한 불출마 요구로 이어졌다. 재선·초선 의원 약 30명은 전당대회 전 한자리에 모여 이 대표의 불출마를 제안하는 공동 의견서를 이 대표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심지어 친명으로 분류되던 강훈식 의원도 이 대표를 말리고 나섰다. 강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에 일찌감치 이재명 선거위원회로 들어가 그의 대통령 당선을 도운 바 있다. 그는 경선 기간 중 내내 중립지대에 머물러 있다가 이 대표가 민주당의 최종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자 비서실 정무조정실장 자리에 들어가 이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겼다.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으로 국민의힘으로부터 숱하게 뭇매를 맞을 때도 강 의원은 언론 전면에 등장해 대신 방패 역할을 하곤 했다.

강 의원은 “전모를 잘 모르기에 내가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녹취록 전체를 들어보니 ‘이 대표 때문에 (대장동 관련)일이 잘 안 된다’는 뜻으로 들렸다”며 그를 옹호했다. 비교적 친문색이 짙고 어느 한편에 서서 도움을 주지 않았던 그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자 일각에서는 그를 ‘친명계’로 분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 이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는 반대했다.


그의 당선을 막기 위해 직접 뛰어든 전당대회를 앞두고 강 의원은 “이재명이 대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출마도 안 했다”며 “대표는 통합과 신뢰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내 분란의 원흉으로 꼽히는 이 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비명계, 중립지대, 심지어 친명계 의원들이 반대하는데도 이 대표는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면서도 불출마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그는 당시 오히려 지지자들을 두루 만나고 전당대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지역 당협위원장들과 대의원들을 만나며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진행 중이었다.

반대를
무시로

이 같은 행보를 쭉 지켜봐왔던 한 민주당 인사는 “이 대표와 의미있는 회의를 하는 인사는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그는 “겉으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소통하는 행보를 해왔지만 그들의 의견이 이 대표의 결정을 바꾸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이들의 설득 과정이 그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들의 증언은 대표 당선 후에도 이어진다. 보궐선거와 전당대회 출마 강행 때의 모습이 대표 당선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김건희 특검법 강행이 증언의 골자였다.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수완박’법을 강행 처리하며 대중의 비판을 샀던 바 있다. 검찰개혁에 대해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처리하는 민주당표 검수완박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당내 의석수를 무기로 검찰개혁을 무리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간이 없었던 탓이다. 민주당은 법안을 최종 공포하기 위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다면 그가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을 무력화시킬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패스트트랙’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존 방식대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법안을 통과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수많은 편법이 동원됐다. 법사위원들의 투표에서 민주당은 제3지대 의원의 표가 하나 필요했다.

이를 위해 법사위 소속이었던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자진 탈당하는 꼼수를 감행했다. 민 의원의 탈당으로 검수완박 패스트트랙 처리에 충분한 동력이 생겼고, 이는 결국 최종 공포됐다. 검수완박 법안 발의부터 최종 공포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이때 국민들은 민주당에 많은 비판을 가했다. 검찰의 수사권 박탈이라는 무거운 법안을 너무 ‘가볍게’ 처리했다는 비판이었다. 국민들은 이 불만을 지방선거에서 표로 보여줬다. 이로써 민주당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대부분의 권력을 국민의힘에 빼앗기며 대패했다.

이번 김건희 특검법 또한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민주당은 본회의로 상정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패스트트랙’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전반기 국회보다 법안 처리가 더 어려운 상황이다.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차지하고 있고, 제3지대 인물인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공식적으로 특검법 발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검법이 이 대표 검찰 수사에 대한 ‘보복조치’로 평가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의 일부 의원은 특검법 강행처리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행 가능성이 현저히 적을뿐더러 지금 시기에 검 여사에 대한 수사를 굳이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브레인’ 김현지·김남준·정진상
‘게이트 키퍼’ 박홍근·정청래

그러나 이 대표는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지는 않은 모양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본인에 대한 수사가 끊이지 않는다면 특검법 카드를 버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법에 반대하는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거(특검법) 포기 안 할 것으로 보인다. 포기하는 순간 이 대표가 쓸 수 있는 수단 하나가 사라지기 때문”이라며 “분명히 몇 명 의원이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들었는데, 지도부의 판단에 영향을 주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안마다 의원들의 의견을 두루 듣는 시간을 종종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민주당 인사는 여의도 정치의 경험이 없는 이 대표가 ‘귀를 열려고’ 하는 모습을 최대한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종 결정에는 성남 ‘5상시’만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2000년대 초반 성남지역 시민단체 시절부터 이 대표와 함께한 김현지 보좌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때도, 경기도지사 때도, 지근 거리에서 그의 모든 의정활동을 지원했다.

김 보좌관은 성향이 매우 공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특히 이 대표가 정적들과 육탄전을 펼칠 때 작전을 세우고 실질적인 공격을 도맡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지 보좌관이 이 대표의 ‘입’이라면, 김남준 보좌관은 이 대표의 ‘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남준 보좌관은 성남지역 언론 기자 출신으로, 이 대표가 직접 영입을 제안해 대변인으로 스카우트된 인물이다.

그는 이 대표의 의중을 가장 빠르게 파악하고 언론에 잘 대응하는 인력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와 소통하는 언론이 항상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도 그 덕분이라고 전해진다.

이 대표와 함께 전략을 구상하는 ‘브레인’ 정진상 정부조정실장도 있다. 그는 대선 기간 때부터 꾸준히 언급돼온 이 대표의 복심 중의 복심이다. 정 실장은 이 대표가 대표에 취임하기 전까지 아무런 직책을 맡고 있지 않았음에도 민주당의 또 다른 ‘실세’로 꾸준히 평가받아왔다.

이 대표의 모든 정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대표가 정 실장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제보에 따르면, 이 대표가 의견을 자주 듣는 측근 중 민주당 원내인사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박홍근 원내대표와 정청래 최고위원이다.

간신?
충신?

이들은 사실상 이 대표의 ‘게이트 키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유일한 견제기구라는 평가도 이어지지만, 이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견제보다는 협력이 많았다. 이 대표 측근 5인방이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간 ‘간신’으로 기록될지, 훌륭한 성군을 모신 ‘충신’으로 기록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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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