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야당 쥐락펴락 ‘이핵관 오상시’ 정체

169명보다 5명이 더 세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중국 후한 말, 한나라 황제 곁에는 조정을 농락한 10여명의 환관들이 있었다. 이들은 황제의 눈과 귀를 가려 자신들 입맛대로 권력을 휘둘렀고, 결국 나라 전체를 도탄에 빠트렸다. 약 400년 역사의 한나라가 망하는 데는 수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 야당의 대표는 수많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야당이 국회 의석수를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다면 권력은 배가 된다. 정계는 그동안 정치력이 탁월한 거대 야당 대표가 의회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원내 1당의 대표가 내리는 결정은 나라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정계 전문가들은 정치인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귀를 더욱 열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표의 의사결정 구조가 투명해야 균형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의사결정 구조가 ‘매우’ 폐쇄적이라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제보의 내용은 한결같았다. 이 대표가 소수의 최측근과만 소통하며 중요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린다는 볼멘소리였다.

이들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이게 말이 되나 싶다. 당내 의원들과는 브리핑 수준의 회의만 진행하고, 의사결정 과정은 소수의 측근들과만 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일요시사>와 만난 다수의 민주당 내부 인사들은 쉽게 ‘성남 십상시’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뱉었다.


이 대표와 측근들을 보고 있자 하니 그 옛날 한나라를 멸망으로 몰아갔던 ‘아첨꾼’ 십상시가 떠오른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이 대표의 최측근들이 열 명이나 되지는 않는다. 이 대표 곁에는 성남시절부터 함께해온 비서진 ‘성남 3인방(정진상·김현지·김남준)'과 당내 권력을 움직일 수 있는 2인(박홍근·정청래)의 측근 의원이 포진돼있다. 굳이 말하면 그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사람들은 십상시가 아닌 ‘오상시’다.

이 대표의 의사결정 과정이 진짜로 폐쇄적일까? 그것에 대한 뚜렷한 해답은 본인만 알고 있겠지만, 이 대표가 그동안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결정을 종종 내려온 것은 사실이다.

그 출발은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출마였다. 이 대표가 대통령선거 패배 몇 주 만에 다시 정계로 복귀할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가 쏟아지자 민주당 의원들은 똘똘 뭉쳐 그의 출마를 말리려 애썼다.

대선에서 패배 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복귀한 전례가 없었고, 지방선거와 맞물려 있는 보선에 출마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선거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무엇보다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많은 비명(비 이재명)계 인사들이 실망했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이 의원이나 송영길 대표가 정말 당을 위한다면 (대선 패배에 대해)사과하고 전국 경청 투어를 6개월 동안 해줬어야 했다”고 일갈했다. 고민정 최고위원은 “이 의원이 계양을에 나감으로 인해서 묶여버리는 역효과가 나버렸다”며 “만약 거기 묶이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전국 선거판을 좀 더 적극적으로 리드할 수 있었을 텐데 전략의 실패라는 생각은 든다”고 주장했다.

내부 분위기가 반대 의견으로 모아질 때 이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많은 의원이 이 대표에게 직간접적으로 불출마를 요청했으나, 귀담아 듣는 ‘시늉’만 하고는 늘 곧 출마하는 사람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해놓고 움직이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는 반대 의견을 내는 의원들과의 만남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당이 반대할 때마다 ‘무시’로 일관
듣는 시늉만…결국 결정 마음대로

이 대표는 이때 그들과의 만남으로 설득당할 생각은 없었지만, 보궐선거 당선 이후 당권까지 노리고 있었던 만큼 반대파 의원들까지 모두 품고 가려는 계산을 세웠다. 그는 출마 전 민주당 원로 인사들과 친문(친 문재인)계 의원들, 또 선대위에 참여했던 인사들까지 두루두루 만나며 여러 의견을 들었다.

하지만 결국 이 대표는 출마하고 당선됐다. 당선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 그의 다음 행보가 ‘대표 출마’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때의 반대는 보궐선거 출마 때보다 더 거셌다. 몇몇 친명 의원을 제외한 민주당 내부 인사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각종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이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를 저지하려 노력했다. 이때 뽑힌 대표가 다음 총선에서의 공천권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비명계와 중도 진영 인사들은 하나로 뭉쳐 이 대표에 대항했다.

지난 6월 있었던 민주당 워크숍이 그 분위기를 잘 드러냈다. 민주당 의원들의 단합 목적으로 마련된 워크숍 자리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차례대로 이 대표에게 찾아가 불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그의 대표 저지를 위해 민주당이 하나 된 마음을 표출하는 듯이 보였다. 물론 그 선봉장에는 친문계 좌장 역할을 하던 의원들이 있었다. 

친문계는 전당대회가 당내 계파싸움으로 번질 기미가 보이자 일찌감치 후보를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누구를 후보로 내세울지 고심하던 친문 측은 역으로 불출마를 택했고, 이 카드로 이 대표를 거세게 압박했다. 

친문계 좌장 홍영표 의원은 워크숍에서 이 대표와 만난 뒤 “이번 전당대회에서 우리 당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고,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과연 이재명 후보나 내가 출마하는 것이 도움이 될지 우리가 판단해 보자며 (이 대표에게)이야기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굳이 이 대표를 찾아가 만나고, 구태여 이런 제안을 기자들에게 말하는 것은 이 대표를 계속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홍 의원은 당시 이 대표가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대신 전했다.

홍 의원에 이어 또 다른 친문 좌장 전해철 의원도 전당대회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권 쥐고 
흔드는 세력


그는 본인의 SNS에 “연이은 선거 패배로 당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금, 당을 정상화하고 바로 세우는 일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이번 전당대회에 불출마하고, 민주당의 가치 중심으로 당을 이끌어나갈 당 대표와 지도부가 구성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선언했다.

친문계 두 명의 의원이 빠지자 압박은 현실화됐다. 당내 의견은 ‘계파 싸움’ 종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곧 이 대표에 대한 불출마 요구로 이어졌다. 재선·초선 의원 약 30명은 전당대회 전 한자리에 모여 이 대표의 불출마를 제안하는 공동 의견서를 이 대표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심지어 친명으로 분류되던 강훈식 의원도 이 대표를 말리고 나섰다. 강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에 일찌감치 이재명 선거위원회로 들어가 그의 대통령 당선을 도운 바 있다. 그는 경선 기간 중 내내 중립지대에 머물러 있다가 이 대표가 민주당의 최종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자 비서실 정무조정실장 자리에 들어가 이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겼다.

이 대표가 대장동 의혹으로 국민의힘으로부터 숱하게 뭇매를 맞을 때도 강 의원은 언론 전면에 등장해 대신 방패 역할을 하곤 했다.

강 의원은 “전모를 잘 모르기에 내가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녹취록 전체를 들어보니 ‘이 대표 때문에 (대장동 관련)일이 잘 안 된다’는 뜻으로 들렸다”며 그를 옹호했다. 비교적 친문색이 짙고 어느 한편에 서서 도움을 주지 않았던 그가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자 일각에서는 그를 ‘친명계’로 분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 이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는 반대했다.


그의 당선을 막기 위해 직접 뛰어든 전당대회를 앞두고 강 의원은 “이재명이 대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출마도 안 했다”며 “대표는 통합과 신뢰의 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내 분란의 원흉으로 꼽히는 이 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비명계, 중립지대, 심지어 친명계 의원들이 반대하는데도 이 대표는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면서도 불출마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그는 당시 오히려 지지자들을 두루 만나고 전당대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지역 당협위원장들과 대의원들을 만나며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진행 중이었다.

반대를
무시로

이 같은 행보를 쭉 지켜봐왔던 한 민주당 인사는 “이 대표와 의미있는 회의를 하는 인사는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그는 “겉으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소통하는 행보를 해왔지만 그들의 의견이 이 대표의 결정을 바꾸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이들의 설득 과정이 그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들의 증언은 대표 당선 후에도 이어진다. 보궐선거와 전당대회 출마 강행 때의 모습이 대표 당선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김건희 특검법 강행이 증언의 골자였다.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수완박’법을 강행 처리하며 대중의 비판을 샀던 바 있다. 검찰개혁에 대해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지만,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처리하는 민주당표 검수완박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당내 의석수를 무기로 검찰개혁을 무리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간이 없었던 탓이다. 민주당은 법안을 최종 공포하기 위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켜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다면 그가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을 무력화시킬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패스트트랙’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존 방식대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으니 최대한 빠르게 법안을 통과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수많은 편법이 동원됐다. 법사위원들의 투표에서 민주당은 제3지대 의원의 표가 하나 필요했다.

이를 위해 법사위 소속이었던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자진 탈당하는 꼼수를 감행했다. 민 의원의 탈당으로 검수완박 패스트트랙 처리에 충분한 동력이 생겼고, 이는 결국 최종 공포됐다. 검수완박 법안 발의부터 최종 공포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이때 국민들은 민주당에 많은 비판을 가했다. 검찰의 수사권 박탈이라는 무거운 법안을 너무 ‘가볍게’ 처리했다는 비판이었다. 국민들은 이 불만을 지방선거에서 표로 보여줬다. 이로써 민주당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대부분의 권력을 국민의힘에 빼앗기며 대패했다.

이번 김건희 특검법 또한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민주당은 본회의로 상정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패스트트랙’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전반기 국회보다 법안 처리가 더 어려운 상황이다.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차지하고 있고, 제3지대 인물인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공식적으로 특검법 발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검법이 이 대표 검찰 수사에 대한 ‘보복조치’로 평가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의 일부 의원은 특검법 강행처리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행 가능성이 현저히 적을뿐더러 지금 시기에 검 여사에 대한 수사를 굳이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브레인’ 김현지·김남준·정진상
‘게이트 키퍼’ 박홍근·정청래

그러나 이 대표는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지는 않은 모양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본인에 대한 수사가 끊이지 않는다면 특검법 카드를 버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검법에 반대하는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거(특검법) 포기 안 할 것으로 보인다. 포기하는 순간 이 대표가 쓸 수 있는 수단 하나가 사라지기 때문”이라며 “분명히 몇 명 의원이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들었는데, 지도부의 판단에 영향을 주진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안마다 의원들의 의견을 두루 듣는 시간을 종종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민주당 인사는 여의도 정치의 경험이 없는 이 대표가 ‘귀를 열려고’ 하는 모습을 최대한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종 결정에는 성남 ‘5상시’만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2000년대 초반 성남지역 시민단체 시절부터 이 대표와 함께한 김현지 보좌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직 때도, 경기도지사 때도, 지근 거리에서 그의 모든 의정활동을 지원했다.

김 보좌관은 성향이 매우 공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특히 이 대표가 정적들과 육탄전을 펼칠 때 작전을 세우고 실질적인 공격을 도맡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지 보좌관이 이 대표의 ‘입’이라면, 김남준 보좌관은 이 대표의 ‘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남준 보좌관은 성남지역 언론 기자 출신으로, 이 대표가 직접 영입을 제안해 대변인으로 스카우트된 인물이다.

그는 이 대표의 의중을 가장 빠르게 파악하고 언론에 잘 대응하는 인력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와 소통하는 언론이 항상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도 그 덕분이라고 전해진다.

이 대표와 함께 전략을 구상하는 ‘브레인’ 정진상 정부조정실장도 있다. 그는 대선 기간 때부터 꾸준히 언급돼온 이 대표의 복심 중의 복심이다. 정 실장은 이 대표가 대표에 취임하기 전까지 아무런 직책을 맡고 있지 않았음에도 민주당의 또 다른 ‘실세’로 꾸준히 평가받아왔다.

이 대표의 모든 정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대표가 정 실장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제보에 따르면, 이 대표가 의견을 자주 듣는 측근 중 민주당 원내인사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박홍근 원내대표와 정청래 최고위원이다.

간신?
충신?

이들은 사실상 이 대표의 ‘게이트 키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유일한 견제기구라는 평가도 이어지지만, 이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견제보다는 협력이 많았다. 이 대표 측근 5인방이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간 ‘간신’으로 기록될지, 훌륭한 성군을 모신 ‘충신’으로 기록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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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