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 승객도 뿔난 ‘택시비 인상’ 속사정

불러도 오지 않는…돌고 도는 해결책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온갖 대책에도 요지부동이다. 서울시가 결국 떠난 택시 기사들을 돌려세우기 위해 ‘요금 인상’ 카드를 꺼냈다. 생활물가가 날로 치솟는 와중에 내린 고육지책이다. 시민 반발은 당연하다 해도, 기사들 역시 회의적인 것은 예상 밖이다. 게다가 서울시가 골몰한 복안이 점차 구색을 갖추는 와중에, 일각에선 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는 최근 ‘심야 승차난 해소를 위한 택시요금 조정안 의견 청취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택시 기본요금을 내년 기존 3800원에서 4800원으로 1000원 인상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3년 만에
요금 인상

조정안에는 기본거리를 현행 2㎞에서 1.6㎞로 줄이고 거리요금 기준을 132m당 100원에서 131m당 100원으로 1m 축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간요금도 31초당 100원에서 30초당 100원으로 조정됐다.

심야 택시 대란에 대한 별도 처방도 제시됐다. 심야 할증시간은 현재 자정부터 다음 날 오전 4시인데 이를 연말부터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로 2시간 늘린다는 방침이다. 20%로 일률 적용하던 심야 할증률을 시간대별로 20%에서 최대 40%까지 확대한다.

심야 탄력요금제 도입과 기본요금 인상 등을 묶으면 중형 택시요금은 기존 대비 19% 이상 인상될 전망이다. 이 같은 요금 인상안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불거진 ‘택시 대란’의 해결책으로 풀이된다.


코로나 유행으로 택시 수요가 줄면서 영업 수입이 급감하자 당시 많은 택시 기사가 배달‧택배업 등으로 전직했다. 특히 법인 택시 기사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택시 기사들이 심야 운행을 선호하는 경우는 드물다. 취객 손님 응대와 야간 운전 등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심야 택시 공급은 운행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개인택시보다 당번제로 기사를 배정하는 법인 택시가 대부분 도맡아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인 택시 기사가 대폭 감소하다 보니 심야 택시 공급은 주간에 비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유행이 정점을 지나면서 일각에선 다시 택시 공급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택시 수입은 코로나 유행 이전에 비해 떨어지고, 택시 업계는 계속해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서울 택시 평균 영업수입은 2019년 평시보다 9.5% 감소했다. 아울러 올해 상반기 기준 수도권의 법인 택시 가동률은 유행 이전과 비교해 30~40% 쪼그라든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서울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심야 부재 해제, 심야 전용 택시 확대, 각종 인센티브 제공, 임시 승차대 설치 등 다방면에 걸친 해결책을 시행한 바 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택시 공급은 코로나 이전 수준 대비 4000~5000대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시가 사실상 최후의 수단인 요금 조정안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문제는 서울시 조정안이 시민과 택시 기사, 그 어느 쪽에게도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금리와 물가가 폭등하는 이 시국에 요금을 올린다고 하니, 뿔난 시민과 조정안 효과에 회의적인 택시 기사 모두가 서울시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코로나 정점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기사들
장시간 노동·저임금 구조 해결에 사활 걸려

실제로 지난 5일 서울시가 택시 대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공청회에선 고성이 오가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발제와 패널 토론 후 질의응답을 진행하려 했지만 청중석에서 진행을 방해하면서 끝내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날 공청회엔 개인 택시 기사들과 법인 택시 관계자 등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모순적이게도 공청회에서 오간 발언들은 주로 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서인석 서울시 택시정책과장은 “심야전용 택시를 비롯해 공급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어서 다음 단계인 요금 인상을 고민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서 과장은 “기존 요금이 단거리 승객을 홀대하는 요금으로 설계돼있어 장거리를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며 “이를 개선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 과장에 따르면 심야할증은 택시 대란이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연말연시부터 적용된다. 기본요금 인상은 소비자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택시 수요가 적은 내년 2월부터 적용한다.

이날 발제를 맡았던 안기정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 선임연구원은 택시요금이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신규 인력 유입이 줄어 개인 택시가 먼저 고령화됐고, 법인 택시가 빠른 속도로 뒤쫓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안 연구원은 “개인 택시는 기존에 50대가 주축이었지만 60대 이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5년 이상에 걸쳐 진행된 반면 법인 택시는 불과 1~2년 사이에 이런 과정을 겪고 있다”며 “고령화는 단순히 개인 택시의 문제가 아니라 법인 택시 기사들이 빠르게 떠나가는 문제와도 연관돼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전액관리제, 원급제를 시행했지만 현재 법인 택시 처우는 근로시간을 근로기준법에 준하도록 한 택시발전법 11조의2를 위반하는 동시에 최저임금 위반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학계도 택시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며 입을 모았다.

추상호 홍익대 교수는 “원가 상승을 반영해 택시요금을 조정해야 한다”며 “총운행 시간과 요금 인상에 따른 수요 감소를 함께 분석해서 요금 인상폭을 결정해 인건비와 원가 상승, 처우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용주 국민대 교수 역시 “택시요금이 낮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데 이번 인상 폭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탓에 요금을 올려도 공급이 늘지 않을 수 있다”며 “원가 반영으로 요금이 올라가기 때문에 서비스가 개선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장시간 노동
최저임금뿐?

반면 현장의 승객과 기사 사이에선 이번 서울시 조정안에 대해 주로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택시요금 인상을 비판하는 승객들은 “인상 시점이 적절치 않다”거나 “승차 거부 등 불친절한 서비스 수준은 그대로면서 가격(요금) 인상만 요구한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반응에 일부 기사들은 이미 부담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한 개인 택시 기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택시 업계에 대한 국민 여론이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인상 논의가 더욱 여론을 악화시키진 않을지 걱정”이라며 “막상 따져보면 (조정안이)수입을 크게 늘려주지도 않는다. 부담은 부담대로 지고, 수입은 거기서 거기인 상황을 누가 반기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번 조정안이 택시 추가 공급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개인과 법인 택시를 가리지 않고, 본질적인 공급 감소 원인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일침이 이어졌다.

그는 “개인 택시 기사들이 겪는 고충은 제도의 경직성에 있다. 야간과 달리 주간에는 여전히 부제가 시행되고 있으니 심야에 운행할 생각이 들어도 잘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또 플랫폼 택시와 비교해 요금 탄력성이 너무 떨어진다. 플랫폼 대형 택시는 지금도 심야에 많게는 두 배, 세 배까지 요금을 받게 두면서, 우리는 기껏해야 40%로 늘려주겠다고 하니 ‘역차별’이란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법인 택시에 대해선 “운행요금 인상 폭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뿐더러, 이 몫을 회사가 대부분 가져가게 둔다면 결국 기사 수입은 제자리 아닌가. 이 부분을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업계로)돌아오는 기사가 드물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서울시는 요금 인상 이외에도 택시 공급 확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일부가 과거에 폐지됐거나 사장된 제도를 부활시키는 방향인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앞서 논란이 불거져 사라진 제도를 단순히 공급 부족을 명분으로 다시 가져오는 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택시 공급 부족 사태를 해결할 열쇠로 ‘택시리스(임대)제’ ‘인센티브제 부활’ 등을 꼽았다. 이 중 택시리스제(법인 택시업체의 면허임대업)는 현행법상 위법이지만, 규제샌드박스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재도입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규제샌드박스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해주는 제도다.

실제로 최근 서울시가 ‘택시리스제’ 추진의 일환으로 준비한 ‘사용자인증택시’는 규제샌드박스 승인의 마지막 단계라고 볼 수 있는 ‘관계부처 조율’과 ‘심의위원회 심의’ 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자인증 택시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 가접수된 시기는 지난 5월 말. 통상 규제샌드박스가 기본 검증 절차에만 5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진행이 일사천리인 셈이다. 

중고 제도
해법 될까?

사용자인증 택시는 야간 택시 대상 안면인식·음주측정을 거쳐야만 택시의 시동이 걸리는 기술을 법인 택시에 접목한 아이템이다. 사용자인증 택시가 규제샌드박스 승인을 받는다면 그동안 법으로 금지됐던 택시리스제가 부활할 길이 열린다.

서울시는 택시리스제 재도입을 통해 경제적 이유로 택배나 음식 배달업 등으로 이동한 법인 택시 기사들을 불러 모으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오 시장은 지난 8일 연합뉴스TV <뉴스17>에 출연해 “택시요금 인상만으로는 (택시대란 해소에)충분할지 알 수 없다”며 “본질적인 해법은 택시수입금 전액관리제(월급제)를 옛날의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수입금 전액관리제란 법인 택시 기사가 하루 종일 번 모든 돈을 회사에 입금하고, 실적과 무관하게 정해진 급여를 받도록 한 일종의 ‘월급제’로 2020년 1월부터 시행됐다.

오 시장은 “택시 대란의 본질은 택시영업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택배 일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커서 택배업으로 옮겨간 택시 기사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며 “시장원리에 따라 돈을 더 벌 수 있게 하면 택시영업 숫자가 늘어날 테니 요금을 올리기로 한 것이지만, 그 요금이 다 기사들에게 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기사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 현재의 고장 난 인센티브 시스템을 옛날 방식으로 바꾸자고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는데, 국토부는 아직도 월급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택시 월급제 개선을 국토부에 건의하는 한편 자체 실태조사에도 착수했다. 서울시 소재 일반택시(법인)업체 254개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문제점과 개선사항을 모아 이달 말 국토부에 추가로 의견을 전할 예정이다.

그는 “택시리스제도 제안했는데, 국토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일단 연말까지 국토부가 내놓은 해법대로 해보고 안 되면 내년에 (서울시의 제안을)검토한다는 것인데, 서울시는 모든 방법을 동시에 동원해야 대란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힘줘 말했다.

서울시, 고심 끝에 각종 복안 꺼냈지만
기사도 승객도 모두 입 모아 부정 평가 

업계에선 일찌감치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도 어려운 택시 기사들의 여건이 더욱 악화되고, 오히려 떠난 기사들의 복귀가 더욱 더뎌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들은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법인 택시 리스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심야 택시난 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법은 택시요금체계 개선이고 택시리스제는 대안이 될 수 없는 ‘택시업계 죽이기’에 불과하다”며 제도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추진하는 ‘과거식 해법’이 택시 업계의 과거 고질병 재발에 일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오 시장이 제안한 ‘인센티브제’는 곧 ‘사납금 제도의 부활’로 풀이된다. 이렇게 된다면 승차 거부·난폭운전 등의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납금제는 택시업계의 가장 고질적인 악습 중 하나다. 택시 운행 실적과 무관하게 택시회사는 매일 기사에게 정해진 돈을 떼간다. 회사는 고정된 수익을 얻고, 기사는 해당 금액을 뺀 수익을 가져간다. 만약 택시 기사가 사납금을 채우지 못한다면 주 40시간 기준 최저임금 수준으로 책정된 기본급에서 미달 금액을 공제한다.

실적에 따른 수익 감소 부담은 온전히 택시 기사가 짊어지는 불공정한 구조가 두드러진다.

과거 일부 택시 기사들은 사납금 제도 아래서 승차 거부‧난폭 운전 등의 문제를 일삼았다. 근무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함이다. 이에 정치권은 2019년 택시 사납금을 불법화했다. 택시 운행에 따른 영업 부담을 회사와 기사가 함께 지는 구조를 구축해 택시 문제를 줄여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현장의 전언에 따르면 불법화된 사납금은 지금도 이름만 바뀐 채 남아있다. 과거엔 하루 5.5시간의 소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책정되던 기본급이 주 40시간 기준으로 변경돼 늘어나자, 택시회사들은 일제히 사납금을 대폭 올렸다. 과거 하루 13만원 수준이던 사납금이 현재는 20만원 안팎까지 치솟았다.

변형된 사납금은 법원과 노동청 등에서 지속적으로 무효 판단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적발이 쉽지 않은 탓에 여전히 암암리에 시행된다는 설명이다.

한 법인 택시 기사는 “불법으로 규정해놔도 편법으로 이어가며 기사들을 쥐어짜는데, 이를 합법화하면 대놓고 착취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과거 택시리스제가 금지된 맥락도 살펴야 한다는 의견이 줄을 잇는다. 택시리스제는 계약체결자와 운행자가 동일인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 같은 허점 때문에 임대 택시는 과거 살인이나 성폭력 등 강력 범죄에 수차례 악용된 바 있다.

결국 택시리스는 금지됐고, 현행법상 이를 위반한 택시회사는 영업정지·감차 등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공급 부족만으로는 명분이 떨어지고, 되레 위험도만 높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구제 방안일까
악습 부활일까

한 업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앞서 이런 제도들이 사라진 데엔 질 낮은 서비스 제공·범죄 위험성 등의 이유가 있었다”며 “단순히 공급이 부족하다고 다시 살릴 순 없다. 논의에 앞서 문제에 대한 해결책부터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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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