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에스테이트 갑질  <단독 보도> 그 이후…

다 끝난 일? 멈추지 않는 ‘피눈물’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석 달 전, KT에스테이트 직원의 ‘갑질’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청업체 직원인 피해자는 사건을 폭로하고 해당 직원의 징계를 요구했다. 인사위원회 개최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다. 사측은 “이젠 끝난 일”이라지만, 피해자 생각은 다르다. 징계 과정과 결과에 잡음이 있다는 주장이다. 정신적 고통도 여전하기에, 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 5월 중순 불거진 KT에스테이트 직원 갑질 사건(1382호 <단독> KT에스테이트 직원 갑질 고발)이 여전히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연루된 직원들의 징계가 결정된 이후에도, 사측과 피해자 A씨 측은 ‘장외전’을 이어가며 연신 충돌하는 모양새다. 

갑질과 폭언
뒤늦은 대응

사건의 발단은 단연 KT에스테이트 직원 B씨의 갑질이다. 고용노동부는 갑질을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우월적 지위에서 비롯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해 상대방에게 행하는 부당한 요구나 처우’로 정의한다.

구체적 판단 기준으로는 ▲사적 이익 요구 ▲부당 인사 ▲비인격적 대우 ▲업무 불이익 등을 제시했다.

A씨가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B씨의 행동은 이 중 최소 3가지 이상에 해당된다. A씨는 KT에스테이트 소유 빌딩 시설관리인이고, B씨는 센터장(사옥관리자) 직급이다. A씨는 평소 B씨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왔다. 


앞선 <일요시사> 보도를 종합하면, A씨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B씨에게 ▲업무와 무관한 사적 지시 ▲무리한 작업 지시 ▲폭언 등 다양하고도 지속적인 갑질을 당해왔다.

우선 B씨는 메신저를 통해 A씨에게 물고기 밥을 줄 것을 지시했다. 본 물고기는 B씨가 사옥에서 개인 취미로 키우는 것으로, 시설관리업무와는 무관한 일이다.

이외에도 B씨는 그에게 어항 구입·청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지시·요구했다. A씨는 자신의 업무 범위 밖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항의 한 번 못한 채 지시에 따랐다. 평소 B씨가 재계약 문제를 지속적으로 언급했던 게 압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A씨는 1년짜리 ‘계약직’이다. 당시 B씨는 센터장으로서 A씨의 계약 갱신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업무 내용으로 갈등을 빚은 이후로는 무리한 작업 지시와 폭언이 이어졌다. A씨 기억에 특히 남은 일화는 ‘한겨울 낙엽 청소’다. A씨는 지난 2월 “폐쇄된 테니스장의 낙엽을 모두 치우고, 고사목을 자르라”는 B씨 지시를 받았다. A씨 외에도 건물 경비원·미화원이 함께 동원됐다. 이들은 꼬박 닷새 동안 엄동설한 속에서 작업에 열중했다. 

겨우 일을 끝낸 이들에게 B씨는 “화단 너머의 낙엽도 모두 치우라”고 지시했다. 30년 동안 쌓인 낙엽을 고령의 직원 세 명이 처리하라는, 상식적으로 무리한 지시였다. 결국 낙엽 청소는 인력 7명이 투입돼 마대자루 24개가 가득 차고서야 끝이 났다.

피해 신고했지만…징계 결과 못 본다?
피해자 억울함 풀 길, 법에 가로막혀


당장 급했던 작업도 아니었다. 날이 풀릴 때까지, 테니스장과 그 주변이 달리 활용되는 일은 없었다.

B씨는 A씨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과정에서 “전화 받는 태도가 그게 뭐냐” “말대꾸하지 말라” “하려면 하고, 하지 않으려면 말아라. 하려면 제대로 하고 못 하겠으면 뻗든가” 등의 폭언을 일삼았다. B씨는 A씨보다 5살가량 어린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A씨는 KT에 1978년 입사한 이래 약 40년간 회사에 몸담았다. 앞서 KT에스테이트에서도 약 2년간 근무하고 퇴직한 뒤, 용역업체를 통해 시설관리인으로 재취업했다. 굳이 따지자면 A씨는 B씨의 선배뻘 퇴직 사우인 셈이다.

A씨는 둘 사이 갈등이 번진 이유로 ‘B씨의 소관 외 업무지시’를 지목했다. B씨가 종종 A씨에게 소관 밖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가 있었고, A씨가 지시에 항의하면서 갈등이 촉발됐다는 설명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B씨는 실제로 A씨에게 다양한 소관 외 업무를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취재 과정에서 파악된 소관 외 업무는 ▲개나리 조경작업 ▲KT텔레캅 보안시스템 정비 ▲타 통신사 케이블 관리 ▲야간 화재감지기 경보 관리 ▲임차인 훼손 시설 복구 ▲철거품 야적장 설치 등이다.

이 중 보안시스템 정비와 야간 화재감지기 경보 관리는 다른 KT 계열사 KT텔레캅의 업무다. 다른 통신사의 케이블과 임차인이 훼손한 시설에 대한 관리 보수를 지시한 것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A씨는 “휴일 근무 4일을 신고한 뒤 그 수당으로 재료를 구매해 야적장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주장이 사실이라면 ‘부당 지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견디다 못한 A씨가 B씨 등 일부 직원을 KT에스테이트 윤리경영실에 제보한 시점은 지난 5월 중순. 이후 회사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주, 가해자를 징계하기 위해 인사위원회를 열기까지는 약 두 달이 걸렸다.

길었던 절차
합리적 의심

A씨는 업무 분리가 이뤄지지 않은 3주 동안 하청업체 간부들의 화해 종용, B씨의 압박성 메신저 등 2차 가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 이후 인사위원회가 개최되기 전까지는 혹시 사측이 징계 절차를 뭉개지는 않을지 불안에 떨었다.

지난 6월 KT에스테이트 관계자는 업무 분리가 즉각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배경을 두고 “신고가 들어왔어도 의혹만으로 업무 중인 직원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며 “처음부터 분리를 고려했던 것도 아니었고, 업무 대체인력을 마련하는 대로 분리했다. 그러다 보니 3주 정도 소요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뭉개기 의혹’에 대해서는 “신고된 내용이 워낙 다양해서 각각 살피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며 “회사 입장에서도 유야무야할 수 없는 사안이라 더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다. 조사가 끝나는 대로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사측은 지난달 말 B씨 등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직원들을 징계하고 재발 방지 교육을 진행했다. B씨는 근무지를 지방으로 옮기는 것 외에 다른 징계도 함께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그 ‘다른 징계’가 무엇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A씨는 회사에 “징계 수위 등 인사위원회 세부 결과를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A씨에 따르면 당초 사측은 “징계 수위를 통보할 의무가 없다”고 설명했다. A씨가 인사위원회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고, KT 임직원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A씨는 징계 수위 등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는 “내가 신고자이자 사건 당사자인데,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정도는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게다가 조사 과정이 탐탁지 않았던 만큼, 회사에서 제대로 (사건을)처리한 게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A씨는 지금까지도 회사로부터 구체적인 결과를 통지받지 못했다. 그는 사내에 떠돌던 풍문으로 징계 결과를 얼추 추측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
약물 치료

그 풍문에 의하면 B씨는 현 지역단 소속을 유지하면서, 관할 구역 내 다른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A씨는 사측이 약속했던 ‘충분한 분리’가 이뤄지지 않은 듯해 불안했다. 이에 사측에 따져 물었지만, 사측 관계자는 “보호조치는 이미 충분히 이뤄졌다”고 답했다.


A씨는 “결국 여전히 같은 지역단 안에 속해있다면, 안심할 수 없다는 생각”이라며 “혹여나 다시 돌아오기도 쉬울 테고, 직간접적으로 내게 영향을 줄 가능성도 원천 차단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이어 “회사가 지난 5월 가해자 분리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던 일을 여전히 기억한다”며 “‘피해자 보호 조치를 잘 해뒀다’는 사측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사측은 A씨를 배려해 이미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입장이다. KT에스테이트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A씨의 문제 제기를 정면 반박했다.

그는 B씨 거취에 대해 “애당초 A씨와 B씨가 소속된 지역단은 수도권 일부부터 강원도 전역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은 지역을 관리하고 있다”며 “B씨는 지방으로 발령이 난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A씨를 직접 찾아가 상세히 설명했다. 각종 조치에 대한 고지가 있었고 ‘불편사항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달라’고도 전했다. 당시에는 A씨도 모두 납득했다”고 덧붙였다.

A씨의 우려에 관해서는 “회사에서도 재발 방지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징계 세부 결과 공개 거부 결정에 대해서는 “A씨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한때 회사 법무팀이 공개 여부를 검토한 바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어 끝내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사내 징계 결과는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공개할 수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징계 과정·결과가…비공개 결정
“할 만큼 다 했다” “끝까지 간다”

회사 관계자는 ‘그렇다면 징계 당사자들이 A씨에게 결과를 알리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그들도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법조계 역시 A씨가 회사에 징계 세부 내용 공개를 요구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고 봤다. 복수의 노동법 전문 변호사들은 “징계 세부 내용 공개는 사측 주장대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본 사건은 형사처벌이 아니고, 회사 내부의 징계일 뿐”이라며 “(징계 결과를)A씨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이 관련 법 제정 취지에도 맞는 일이라고 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A씨가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며 “소송 중에는 법원 명령에 따라 회사가 세부 내용을 공개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여지를 남겼다.

실제로 A씨는 법적 검토를 받고 나서, 소를 제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적법한 경로를 통해 징계 세부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재판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가 발견된다면, 이 역시 책임을 다투겠다는 생각이다. A씨는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겠다”고 힘줘 말했다.

앞서 KT에스테이트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며 “더는 이슈될 일이 아닌데 우리로선 당황스럽다”고 심경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A씨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A씨에게 그 이유를 직접 물었다.

그는 “회사는 다 끝났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다”라며 “여전히 갑질을 당했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그 모욕감으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등 괴로운 나날을 버텨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달 중순부터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소송전 예고
장외전 돌입

이어 “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도 상관없다”며 “평생을 바쳐 이 회사에서 일했는데, 돌아오는 대우는 이런 식이니 절망스럽다. 내 일이 널리 알려져 비슷한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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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