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인하대 사건’의 사회적 파장은 상당했다. 대학교 안에서 준강간치사라는 믿기 어려운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장은 차분하면서도 긴박하다. 추모와 재발 방지책 마련, 피의자 여죄 추적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온라인 반응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는 여전히 이번 사건을 핑계로 자신의 분노 표출에 몰두하고 있다.
피의자는 지난 15일, 인천 인하대학교의 한 건물에서 또래 학생을 성폭행하고 건물에서 추락해 숨지게 했다. 범행 직후 도주했던 피의자는 현장에 두고 간 휴대전화에 덜미를 잡혔다. 피의자는 성폭행 혐의는 인정했지만, 피해자를 건물 밖으로 민 것은 부인했다. 경찰은 피의자를 준강간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불쏘시개
학교 안팎으로 피해자에 대한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학교 안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는 피해자에게 보내는 추모 쪽지가 빼곡하게 붙었다. 130여개에 달하는 추모 화환이 줄을 잇기도 했다.
교육부와 인하대는 재발방지를 위한 각종 조치를 발표했다. 교육부는 지난 18일 “피해 학생의 명복을 빌며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폭력에 대한 단호한 대응과 함께 안전한 캠퍼스를 만들어가기 위해 해당 학교(인하대)와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구체적인 대책으로는 학생 대상 성폭력 예방 교육·야간 출입통제 강화·순찰 및 CCTV 증설 등을 내놨다. 이외에도 상황 수습을 위해서 2차 피해 방지, 학내 구성원 안정을 위한 상담 등 심리 안정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추모 대신 2차 가해·신상 털기 범람
유족 뜻 반하는 무책임한 분노 표출
학교 측은 지난 20일부터 피의자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사실상 퇴학 처분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렇듯 현실에서는 피해자 추모, 사회적 반성 등의 활동이 주를 이룬다. 반면 온라인 공간에서는 일명 ‘방구석 분노’가 거세다.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되는 분노가 사건을 뒤덮은 탓에 정작 추모와 반성은 뒷전이다.
사건에 대한 분노는 성찰과 개선의 동력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2차 가해와 갈등 확산의 불쏘시개가 된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가 인하대 사건을 본인의 화풀이 대상으로 소비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에는 도리어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는 2차 가해성 댓글이 높은 빈도로 목격됐다. 피의자의 범행을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왜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느냐” “거길 왜 따라갔느냐”는 등의 반응이었다.
‘신상 털기’도 이어졌다. 피의자의 인적사항과 사진, SNS 등이 확산된 것을 시작으로 피의자 가족의 연락처까지 공유됐다.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는 피의자 가족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한 사실을 인증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행동들이 도리어 피해자 유족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유족은 장례를 마친 뒤 주변에 ‘2차 가해가 우려되는 만큼, 사건에 관한 관심이 잠잠해지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측은 유족의 의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지난 19일 추모 화환을 철거했다.
하지만 신상 털기로 사건에 관한 관심이 계속 환기됐다.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피해자와 그 유족의 의중보다는 개인적인, 무용한 분노가 앞섰다는 자성론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라도 개인의 피해를 가져올 수 있기에 일종의 범죄가 될 수 있다”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라는 걸 인지하고 규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남 vs 여’
정치인 ‘갈라치기’ 발언이 기름 부어
하지만 온라인상의 갈등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몇몇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사건에 성별 대립구도가 투영되면서다.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여자라서 죽었다’와 같이 ‘강남역 살인사건’ 때와 유사한 주장이 펼쳐졌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는 쪽에서는 고유정, 이은해 등 여성 살인범을 반례로 들며 역공에 나선 모습이다.
이들의 충돌은 혐오 발언 재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우려되는 이유다. 일부 정치인의 ‘갈라치기’ 발언이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도대체 대한민국에 여성이 안전한 공간이 있기는 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 공동체가 여성을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사회적 합의는 하고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며 “정치인·대통령·법원이 모두 이 사건의 공범”이라고 적었다.
국민의힘 신주호 대변인은 “이건 또 무슨 궤변인지 모르겠다”고 받아쳤다. 신 대변인은 “그토록 국민의힘을 향해 갈라치기 정당이라고 비난했지만, 공적 담론장에서 관련 발언을 제일 많이 하며 언론의 집중을 받고 표를 결집하려는 시도는 좌파 정당에서 이뤄지지 않나”라며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니. 이건 그냥 개인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누굴 위해?
본 사건으로 촉발된 사회 갈등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으면서 학교 측도 추가 대응에 나섰다. 인하대는 지난 20일 “피해자와 재학생에 대한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도용, 악성 루머 유포 등 추가 피해에 대처하기 위해 법무법인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추후 교내 감사팀과 사이버대응팀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을 계획이다. 위법 행위가 발견되면 즉시 민형사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기사 속 기사> ‘인하대 사건’ 살인죄 적용 못 하나?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준강간치사 혐의로 구속한 ‘인하대 사건’ 피의자를 지난 22일 검찰에 송치했다.
당초 가능성을 열어뒀던 살인죄 적용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치사죄는 살인 고의성이 없을 때 적용하는 죄목이다.
피해자는 건물 3층에서 추락한 뒤 1시간30분가량 방치됐다.
오전 3시49분 행인에게 발견돼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피해자는 발견 당시 약하지만 맥박이 뛰고 자가호흡도 가능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추락 직후 구조됐다면 생존 가능성도 있었던 셈이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살인 혐의 적용을 검토했지만 피의자는 피해자가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살인 고의성은 부인했다.
피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를 밀지 않았다”면서도 피해자가 추락한 뒤 119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에 경찰은 현장에서 다양한 상황을 가정한 실험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결국 피해자가 추락 직전 위력에 의해 밀쳐진 흔적은 끝내 찾지 못했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피해자가 추락한 구체적인 경위는 파악했지만,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의 불법 촬영 시도 정황이 드러난 만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를 추가했다.
경찰은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는 음성만 녹음돼도 적용할 수 있다는 법률 전문가 의견과 판례를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