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6·1 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각 정당은 그동안 밀린 청구서를 받아야 한다. 늘 그래왔듯 선거 이후엔 검찰의 시간이 시작된다. 선거 국면에서 숨죽이고 있던 검찰이 다시 칼을 뽑아 들었다.
윤석열정부 출범 22일 만에 열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뒀다. 4년 전 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완패를 당했던 수모를 고스란히 갚아준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에서 민주당에 큰 승리를 거둔 데 이어 교육감 선거에서도 선전했다.
여당 완승
동력 얻어
국민의힘은 시장·도지사 선거에서 12석을 차지해 5석에 그친 민주당을 압도했다. 2018년 지선에서 민주당은 14곳에서 승리했지만 불과 4년 만에 9곳을 잃었다. 그나마 경기도에서 민주당 김동연 후보가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에 8000여표 차의 신승을 거두면서 체면치레한 수준이다.
226석을 두고 진행된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145석을 차지했다. 나머지는 민주당 63석, 무소속 17석, 진보당 1석 등으로 나뉘었다. 서울과 경기 지역으로 좁히면 민주당의 참패 수준은 더욱 적나라하다. 민주당은 이번 서울 구청장 선거에서 25개구 중 8곳에서만 승리를 거뒀다.
4년 전 1곳(서초구)을 제외하고 24곳에서 승리했던 게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경기 기초단체장 31석 중에서도 민주당은 9곳에서만 이겼다. 4년 전, 민주당은 29곳에서 승리해 경기도 기초단체장을 싹쓸이한 바 있다. 당시 국민의힘(자유한국당)은 2곳(연천군·가평군)에서만 겨우 이겼다.
3·9 대선의 연장전 격으로 치러진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견제보다는 국정 안정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10일 출범한 윤석열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과 민주당의 내홍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결합한 결과라는 것.
민주당은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쇄신보다는 ‘밥그릇 싸움’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 2020년 총선까지 전국 단위의 대형 선거에서 잇따라 패하면서 궤멸 직전에 몰렸던 보수정당은 올해 대선과 지선에서 연달아 승리하면서 완벽하게 부활했다.
국민의힘의 이번 승리로 윤정부 또한 국정운영의 동력을 얻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성숙한 시민의식에 따라 지방선거가 잘 마무리돼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더 챙기란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 “서민의 삶이 너무 어렵다”며 “경제 활력을 되살리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 앞으로 지방정부와 손을 잡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선거사범 수사부터 고삐
본격적인 ‘검찰의 시간’
반면 탄핵 정국 이후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도 크게 패하면서 거대한 후폭풍에 직면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계파 갈등이 당권 경쟁과 함께 드러나면서 날선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이 국회의원 계양을 보궐선거에서 이기자 “한 명 살고 다 죽었다”(이석현)는 공개 비판이 나오는 등 내부 갈등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지방선거의 후폭풍은 정치권을 넘어 검찰로 향하고 있다. 대선 이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법무부 장관 지명, 깜짝 인사 등으로 주목받은 검찰이 전면에 등장할 기세다. 당장 선거사범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검찰은 업무 부담이 가중되더라도 선거사범에 대한 수사를 바짝 조이겠다는 각오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이번 선거와 관련해 당선인 51명을 포함한 878명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이미 검찰은 지난달 31일까지 선거사범 1003명을 입건하고 이중 8명을 구속한 바 있다. 입건된 이들 가운데 32명이 기소됐고 93명을 불기소 처분한 뒤 나머지 800여명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
입건된 사람 중에는 선거 기간에 상대 후보로부터 고발을 당한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인 등 광역단체장 당선인 3명,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교육감 당선인 6명, 기초단체장 당선인 39명이 포함됐다.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관련해서도 당선인 3명을 포함해 41명이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다. 이재명 상임고문, 국민의힘 안철수 국회의원 당선인 등도 이름을 올렸다.
이미 검찰은 지난 2일 서울 중구청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선거사범에 대한 강제 수사에 돌입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서울 중구청 구청장실과 비서실 등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구청에서 개최한 행사 관련 자료 등을 확보했다.
특수통
전진 배치
앞서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서양호 중구청장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청 직원들에게 자신이 참석하는 행사의 발굴, 개최를 지시하고 해당 행사에 참석해 선거구민을 상대로 자신의 업적을 반복적으로 홍보했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지난 4월 검찰에 고발했다.
서 구청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김길성 후보에 밀려 연임에 실패했다.
검찰은 선거사범 수사와 함께 그동안 묵혀놨던 ‘민감한’ 사건에 대한 수사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본격적인 ‘검찰의 시간’이 시작된 셈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 직후 검찰 인사를 통해 특수통 검사를 전진 배치했다. ‘뭉개기 의혹’까지 제기된 문재인정부 관련 수사에 고삐를 잡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유동규·김만배·남욱·정영학·정민용 등 이른바 ‘대장동 5인방’은 이미 재판을 받고 있다.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정진상 당시 정책실장 등 ‘윗선’에 대한 수사 여부다. 특검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수사가 미진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고발 사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이첩 사건, 삼성웰스토리 부당 지원 의혹 등도 서울중앙지검에서 담당하고 있다.
전국 지검
동시다발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은 2019년 청와대 관계자가 연루된 ‘버닝썬’ 사건을 덮기 위해 법무부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재수사를 권고했다는 내용이다. 곽상도 전 의원이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을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수사 중이다.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은 2009년 사업가 신혜선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이상호 우리들병원 원장의 전처와 사업을 시작하며 신한은행에서 260억원을 대출받은 것부터 시작됐다. 신씨와 이 원장이 연대보증인에 함께 이름을 올렸는데, 이 원장이 2012년 KDB산업은행에서 1400억원을 대출받으면서 연대보증에서 빠져나왔다.
이후 신씨가 자신의 동의 없이 이 원장이 연대보증에서 빠지는 바람에 신한은행 대출 채무를 모두 떠안게 됐다며 2016년 신한은행 지점장 등을 사문서 위조와 사금융 알선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최근 서울고검은 해당 재판에서 위증한 혐의로 고소됐다가 불기소 처분을 받은 은행원에 대해 재기수사 명령을 내렸다.
신씨의 항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서울남부지검은 라임·옵티머스 투자 사기 사건 재수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 장관이 취임하면서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부활했고 첫 수사 대상으로 라임·옵티머스 사건이 떠오른 것. 사건 당시 여권 관계자들의 이름이 오르내렸으나 그에 대한 수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문정부 관련 사건 수사 재개
변수는 이재명 국회의원 당선
서울동부지검은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이다. 핵심 인물로 지목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출석이 가시권에 들었다. 이 사건 역시 청와대까지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전지검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시민단체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사건도 수사 대상이다.
수원지검은 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 관련 사건을 쥐고 있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분당 백현동 판교 아파트 용도 변경 특혜 의혹 등이다. 이 중 성남FC 사건과 백현동 특혜 의혹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보완 수사를 요구해 각각 분당경찰서와 경기남부경찰청이 들여다보고 있다.
변수는 이재명 고문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은 회기 중 불체포특권이 있는 만큼 검찰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크게 이긴 만큼 검찰 수사 역시 동력을 얻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검찰의 의지에 달렸다는 것.
그와 동시에 법무부는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대검찰청 차장검사, 서울중앙지검장 등 굵직한 검찰 인사를 진행한 법무부가 내친 김에 실무를 담당하는 중간간부 인사까지 하겠다는 것.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법무부는 일선 검찰청에서 부장급으로 근무 중인 사법연수원 32기 검사들로부터 인사검증 동의서 관련 서류를 받았다. 인사 검증에 통상 1~2개월이 걸리는 만큼 검사장 이상의 대검 검사급 인사는 이달 말경, 차장·부장검사 등 고검 검사급 인사는 다음 달쯤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중간간부
인사 돌입
일각에서는 검찰총장 인선보다 중간간부 인사가 빠른 만큼 ‘식물 총장’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검찰총장 인선을 위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로 알려졌다. 검찰총장 인사에 최소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인선 작업 중에 중간간부 인사가 날 가능성도 있다. 검찰총장 없이 고위간부, 중간간부 인사가 모두 진행되면 취임 이후 지배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