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전문]
일본인의 영어는 알아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작문 혹은 독해 능력과는 별개로, 일본식 영어 발음이 원어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인데요.
특히 관사 ‘the’를 ‘쟈’로 발음하거나 ‘F’ 발음을 'ㅎ‘로 변환하는 점이 매우 특징적입니다.
즉 ‘커피(Coffee)’는 ‘코히’가, ‘피쉬(Fish)’는 ‘휫슈’가 됩니다.
심지어 그런 단어들을 임의로 조합해 아예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요.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재플리쉬(Japlish)’라고 일컫습니다.
‘Japanese’과 'English'의 합성어로, ‘문법이나 발음 등이 전부 일본식으로 변형되어 일본 내에서만 쓰이는 영어 표현’을 뜻하는 말이죠.
발음의 부정확성에 이어 정체불명의 외래어까지 더해지자, 일본인의 영어는 실제 영어와 점차 동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본인들도 이런 현상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튜브 조회수 1억뷰를 달성한 노래 ‘도쿄본 2020’에는 재플리쉬에 대한 통렬한 자학개그가 담겨 있는데요.
온갖 영단어가 난무하지만, 정작 미국인과 영국인은 아무도 못 알아듣는 웃픈 현상.
이런 사태는 일본어의 음운적 한계 때문입니다.
우선 가장 큰 원인은 ‘음소의 부족’입니다.
영어는 모음 11개, 자음 22개, 반모음 2개로 총 35개 음소를 가진 언어입니다.
하지만 일본어의 모음은 ‘아-이-우-에-오’로 총 5개에 불과하고, 이외에도 자음은 14개, 그외 반모음과 특수음소는 각각 2개씩 존재합니다.
즉, 총 23개의 음소로만 구성돼있는 언어인데요.
따라서 애초에 구현할 수 있는 음절 수가 적어, 타 언어와의 1대1 변환이 대부분 불가능한 것이죠.
반면 한국어는 모음 10개에 자음 19개, 반모음 2개로 총 31개 음소로 구성돼있으며 이를 이용해 구현할 수 있는 음절은 2000개를 훌쩍 넘어서는데요.
따라서 영어를 발음할 때도 훨씬 많은 소리를 원음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어는 자음과 모음이 반드시 짝을 이뤄야 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한국어에는 ‘받침’에 해당하는 구조가 없는 것인데요.
따라서 ‘맥도날드’의 일본식 발음은 ‘마-쿠-도-나-르-도’가 됩니다.
즉 일본어는 ‘음운의 부족’과 ‘구조적 딱딱함’으로 인해 다양한 소리를 담기 어렵고, 따라서 영어 발음의 왜곡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지금은 언어의 유연성과 호환성이 중요한 글로벌 시대입니다.
풍부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이 오늘따라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다만 한국에도 아직 ‘테레비’ ‘밧데리’ ‘난닝구’와 같은 일본식 영어 표현이 다수 남아있습니다.
이를 적절한 용어로 바꾸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
총괄: 배승환
기획: 강운지
구성&편집: 김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