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유서 깊은 골프장 둘러보는 테마 여정

살면서 한 번쯤은 찾아봐야 할 유서 깊은 골프장은 어떤 곳일까. 전 세계에 산재한 전통의 골프장을 찾아 테마 있는 여정을 떠나보자. 골프의 모든 출발은 물론 세인트 앤드루스의 올드코스이지만, 이번에는 그에 못지않은 유적지인 뮤어필드를 먼저 방문한다.

 

스코틀랜드 골프장에 감도는 4번 홀의 벙커와 전경이 올드 코스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하지만 이내 경외로움과 경배심에 숙연해지는 곳이다. 숨어있는 벙커도, 솟아오른 언덕도,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브라인드 샷이 있는 곳도 아니다.

남다른 코스

나무라고는 몇 그루밖에 없고, 워터해저드는 한 군데도 없다. 이곳은 골퍼들에게 정직한 샷을 요구한다. 고대 선조들의 영혼이 깃든 이곳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면 절대 코스를 정복할 수 없다.

300여년 전 최초의 골프동우회인 에딘버러협회가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리스 골프장을 거쳐 1891년 이곳 뮤어필드에 자리 잡은 이래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비밀스러운 조직답게 오직 회원들끼리만 공유하면서 디 오픈만 개최하는 다분히 폐쇄적인 골프장이다.

오세아니아, 낭만 가득 라운딩
아시아, 여전한 영연방 흔적

여성들은 게스트로만 입장이 허용돼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예외적으로 화·목요일에 한해 여성은 남성을 동반하는 조건으로 라운딩이 가능하다. 단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웃한 노던 아일랜드는 어떨까. 로리 맥킬로이와 그레엄 맥도웰 등 대형 선수들을 배출한 이곳은 스코틀랜드보다 오히려 더 수려함을 자랑한다. 로얄 카운티 다운클럽은 1889년 세워져 노던 아일랜드에서 최고로 오래된 골프장이다.

올드코스처럼 해안가를 끼고 있으며, 뒤로는 웅장한 모운산맥의 산봉우리에 감긴 초원 위의 골프장이다. 프라이빗으로 운영되지만 일반인들에게도 부분적으로 문호를 개방하며 성수기에는 200~300파운드의 그린피를 요구하고, 겨울철에는 60파운드밖에 들지 않는다. 다만 멀고 먼 나라여서 여행 경비가 더 드는 게 흠이다.

 

남유럽으로 이동하면서 세비 바예스테로스를 배출한 스페인의 남부 해안에 오래된 도시인 안달라시아로 향한다. 1974년에 세워진 발데라마클럽은 고풍스러운 참나무와 자연적으로 생성된 폭포가 절경을 이룬, 유럽 최고의 골프장으로 뽑혔다. 방문객에 한해 제한적으로 라운딩을 허락하지만 1인당 471달러는 내야 한다.

이번에는 예전의 영국인들이 그랬듯이 신대륙 미국으로 가면서 뉴욕의 쉬네콕 힐을 먼저 찾아야 한다. 1894년 미국골프협회를 창시한 5곳의 골프장 중 하나답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사설 골프장에다 일반인은 허락지 않는 곳이지만 유서 깊은 이 골프장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대신 인근의 뉴저지주에 위치한 파인밸리클럽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1913년에 세워진 이래 수십년간 세계에서 가장 골프를 치고 싶은 코스 1위를 고수한다. 930명의 엄선된 명망 있는 회원으로 구성됐지만, 여성 회원은 없다. 여성들은 일요일 오후에 한해 방문객의 자격으로 회원과 함께 겨우 코스를 구경할 수 있는 자격만 주어진다.

유럽, 곳곳에 포진한 유명 골프장
미국, 숙식하는 패키지 상품 발달

칠 수 없는 곳이기에 꼭 치고 싶은 코스 1위로 선정되는 것일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인 파인허스트는 일반인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고마운 골프장이다.

메이저 대회가 개최되는 넘버2 코스는 이 지방 특유의 상록수가 무성하다. 375달러의 그린피와 별장 숙박료 398달러를 내면 메이저 선수들처럼 이곳에서 라운딩이 가능하다.

이제 미국의 중부 지방으로 가보자. 위스콘신주에 위치한 미시간호숫가에 만들어진 링크스 코스인 위슬링 스트레이트도 가야할 곳 중 하나다. 영국의 갈대 언덕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700개가 넘는 벙커가 도사리는 난코스이다. 바로 옆의 블랙울프런코스는 박세리가 1998년 맨발의 투혼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갈 곳은 서쪽 태평양을 끼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페블비치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퍼블릭 골프장으로, 1919년에 만들어진 명문 골프장이다. 17마일 구간의 바닷가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안쪽에 자리 잡은 골프장에 이르게 된다.

 

내가 친 공이 바닷가로 빠지는 아찔함을 제공하는 이곳은 스파, 호텔 등 숙식을 함께하는 패키지로 20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골프라운딩만 고집한다면 450달러에 가능하다.

오세아니아 대륙은 어떨까. 호주에 있는 로얄 멜번 골프장은 빅토리아시대였던 1880년대 호주에 정착한 영국인들이 세운 호주 최초의 골프장이다. 지속적인 관리로 현재 동·서 18홀씩 36홀을 만들어 놓았다.

프라이빗 골프장이라 회원만 출입 가능하지만, 예외 조항이 있다. 해외 방문객들을 위해 특별히 월·화요일에 라운딩을 허용한다. 남녀 모두에게 핸디캡북을 요구하지만, 남성핸디 27과 여성핸디 36이어서 형식적이다.

만약 호주를 찾은 낭만 있는 여행객이나 열성 골프팬들은 호주 최초의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한번 해보는 것도 인생의 기억에 남는 일이다. 라운딩은 300호주달러 수준이다.

뉴질랜드의 케이프 키드내퍼는 이름 그대로 ‘납치봉’이란 뜻이다. 비교적 최근인 2004년에 만들어진 골프장이지만, 뉴질랜드에서 가장 명망 있는 사설 골프장이다. 뉴질랜드 동쪽 해안을 따라 자연경관을 그대로 놔둔 채 울퉁불퉁 골짜기를 따라 코스가 만들어졌다. 여차하면 볼은 45도로 경사진 굴곡을 따라 태평양 바닷속으로 빠져버린다.

아시아대륙은 어떨까. 인도에도 빠져서는 안 될 골프장이 하나 있다. 영국인이 타국에 세운 최초의 골프장으로 1829년에 만들어진 로얄캘커타이다. 여러 번 장소를 옮긴 끝에 현재 위치에 자리 잡았다. 인도의 동쪽 끝 방글라데시 인근의 웨스트벵갈주 콜카타시에 위치해 있다. 일반인들이 이곳을 찾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영국을 제외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이니 골프 유적지로서는 중요한 곳이 아닐까.

역사를 머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대륙에도 골프의 유적지는 존재한다. 1886년 빅토리아시대 영국인들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최대 관광지이자 유적지인 케이프타운에 세운 로얄케이프골프 클럽으로 희망봉 자연보호구역의 서쪽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샷을 하려고 티박스에 서면 산정상이 ‘식탁같이 평평하다’해서 붙여진 거대한 테이블 산맥이 페어웨이보다 먼저 눈앞에 다가와 그 위용에 주눅이 들고 만다. 유럽인들이 항해 중 희망을 봤다해서 붙여진 희망봉, 요하네스버그 등 말로만 듣던 아프리카 최남단에서도 여행만 가능하다면 20만원으로 라운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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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