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사라진 한반도 '범' 이야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1.24 15:49:41
  • 호수 13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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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호랑이, 무섭지만 복도 준다

[일요시사 취재 1팀] 김민주 기자 = 2022년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다. 임인년의 임은 검은색, 인은 호랑이를 의미한다. 한국에서 호랑이는 용맹하고 강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2017년에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1위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야생 호랑이는 멸종됐다. 

한국 호랑이 기록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한반도는 산악지대가 대부분이라 호랑이가 살기에 좋은 지형으로, 예부터 한반도에 살아온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무서워하면서도 숭배했다. 호랑이에 관한 기록도 꽤 많은데 <조선왕조실록>에는 876회 호랑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472년의 조선왕조 역사를 담은 사서기 때문에, 호랑이에게 피해를 본 기록이 많다.

멀고도 친숙
친근한 얼굴

실록에 따르면, 영조 때는 호랑이가 궁궐에 3번이나 들어왔다. 세조 때는 말을 타고 호랑이 사냥을 즐겼고, 연산군은 간언한 환관을 호랑이 굴에 던졌다는 기록 등이 남아있다. 실록의 대부분은 호랑이를 잡아야 한다는 것과 잡아서 얼마나 포상을 했는지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 부조리하거나 난폭한 관원은 호랑이에 비유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에는 ‘조선은 1년의 절반이 호랑이 때문에 죽은 사람들 문상을 다녀야 하고, 1년의 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한국에는 호랑이가 많았고 호랑이가 끼친 피해도 막심했다. 

그렇다고 조선이 호랑이를 경멸의 대상으로 본 것은 아니다. 조선의 유명한 호랑이 그림은 김홍도와 그의 스승인 강세황의 합작해 그린 <송하맹호도>다.


이 그림에서 호랑이는 김홍도, 소나무는 강세황이 그렸다. 이 그림은 거친 나무껍질을 가진 노송 아래 긴장한 채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호랑이를 표현했다. 

<송하맹호도>에서 호랑이는 자신감과 위엄이 넘치는 눈과 당장이라도 뛰어오를 것 같은 몸짓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호랑이를 용맹함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민가에서도 호랑이 그림은 인기를 얻었다. 조선 후기에는 <까치 호랑이> 민화가 유행이었다. <까치 호랑이>는 익살스러운 얼굴을 한 호랑이와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서 울고 있는 작은 까치가 그려져 있다. 

까치는 소나무 가지 위에 비스듬하게 앉아서 호랑이를 향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호랑이는 입을 벌리고 까치를 위협하고 있지만 무섭고 강인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아이들도 가까이 할 수 있는 친근한 얼굴을 가졌다. 이 그림은 후에 ‘바보 호랑이’라고도 불렸다.

<까치 호랑이>에서 호랑이는 양반이나 권력을 가진 관리를, 까치는 서민을 상징한다. 지혜로운 까치가 힘이 쎈 호랑이를 이기는 장면이 표현된 이 그림은 당시 권력가들에게 겪는 부조리함을 해학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전혀 다른 해석도 있다. <까치 호랑이>는 액막이와 경사를 의미하는 새해맞이 그림으로,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두려움, 부정부패한 관리, 새해의 복 등을 상징했다. 육식동물인 호랑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존재였지만, 동시에 강하면서 멍청하고 복을 주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렇게 호랑이는 한반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계속된 수난으로 ‘멸종’

한국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조선 전기 200년은 호랑이의 세상이었다. 조선 정부는 매년 각 군현에 호피 3장을 진상하도록 했다. 그 당시 군현은 대략 330여개, 매년 1000마리의 호랑이가 죽은 것이다.

조선에는 호랑이를 포획하는 착호갑사가 성종 때는 400여명에서, 숙종 때는 1만1000명으로 늘어났다. 호랑이는 모피, 고기, 약재 등으로 비싸게 팔렸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득도 있었다. 영종 때는 호랑이 개체 수의 감소로 호피 진상 제도가 중단됐다.

호랑이 수난시대는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사람과 재산에 위해를 주는 해수(해로운 동물)를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야생동물의 퇴치와 포획을 장려했지만, 야생동물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 정책은 없었다.

해수구제사업에서 가장 피해를 본 동물은 호랑이와 표범이었는데 모두 멸종됐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야생동물은 누구라도 포획할 수 있다’는 것을 원칙으로 수렵 규칙을 공포했다. 이후 사냥도구 사용은 수렵 기간에 수렵 면허를 받은 사람에게 한정했다. 수렵 금지구역 지정, 일출 전, 일몰 후의 총기 사용금지, 폭발물‧독극물‧총‧함정의 금지 등 수렵 규칙을 정했다. 

그러나 일본인과 조선인의 총기 소유는 큰 차이를 보였다. 1920년 일본인 총기 소유가 2만25개, 조선인 총기 소유는 1627개였다. 수렵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일본인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의 저자인 엔도 키미오는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조선인보다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야생동물 개체 수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921년 마지막
일본인이 사살

실제로 일본인들은 일본에서 조선으로 호랑이 사냥을 떠나오기도 했다. 사업가 야마모토 타다사부로는 큰돈을 내서 호랑이 몰이꾼과 사냥꾼을 고용했다. ‘정호군’이라고 이름 붙인 사냥팀은 함경남북도, 금강산, 전라남도로 보내 사냥을 지휘했다.

이 내용으로 <정호기>라는 서적을 출간했다. 이 책은 조선총독부의 해수구제정책을 내세우면서 부의 과시, 일본군 사기 진작,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확산 등 복합적으로 뒤엉켜 기술돼있다.

이렇게 호랑이들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말살당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호랑이는 언제 마지막으로 발견됐을까?


1921년 10월2일 오전 9시에서 10시쯤,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가 사살됐다. 인근에 거주하고 있던 25세 마을 주민 김유근씨는 나무를 하러 산에 오르다가 호랑이를 발견했다. 김씨는 호랑이의 공격으로 왼팔에 상처를 입었다. 

호랑이로부터 도망친 김씨는 경찰서에 보고해 일본인 순사인 미야케 요조우와 인근 도로 공사 현장의 인부들을 몰이꾼으로 동원해 호랑이를 사냥했다.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는 몸길이 173cm, 꼬리길이 56cm, 몸둘레 84cm이었다.

대책 없는 해수구제정책에 대해 일본인 역시 우려를 표했다. 조선 경성사범학교의 생물학 교사였던 우에다는 ‘사라져가는 조선의 호랑이’라는 글을 잡지에 실었다.

이 글에는 “조선에는 옛날부터 호랑이가 많아 사람과 가축에게 참혹한 해를 끼쳤다. 호랑이를 잡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지방관리의 중요한 행정과제였다”며 “지금은 호랑이가 너무 줄어서 북조선의 오지가 아니면 호랑이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이는 사람에게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 외에도 모피와 뼈로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조선의 호랑이는 전멸할 것”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호랑이는 1943년 이후 전혀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는 1996년 국제사회에 “남한에서 호랑이가 멸종됐다”고 공식 보고했다.

동물의 왕 
구경거리로


사라진 호랑이가 다시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 때문이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는 농악대의 상모를 쓰고 돌리고 있는 호랑이 캐릭터 ‘호돌이’다. 올림픽 마스코트가 결정된 것은 1986년으로, 호돌이는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서울을 뜻하는 ‘S’와 상모 돌리는 모습은 한국의 미를 제대로 알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각종 문구류‧과자‧음료‧생필품‧은행 통장에까지 등장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호돌이 마스코트와 휘장 사업으로 712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호돌이의 뒤를 이어 2018년 동계올림픽에서는 백호 ‘수호랑’과 반달가슴곰인 ‘반다비’가 마스코트로 선정됐다. 조직위는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호돌이의 연속성을 지키고, 백호가 한국 민속신앙에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신으로 등장하는 점에 착안해 올림픽의 신성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백호 수호랑은 흰색을 좋아하는 한국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얀 설원에서 펼쳐지는 동계올림픽과 조화를 이룬다는 평도 있었다.

한국 국제대회에서 호랑이의 데뷔는 전 세계로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을 알렸다. 이로써 호랑이는 한국인을 대표하는 동물이 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은 대중문화로도 이어졌다.

전통적인 판소리에 현대적인 팝 스타일을 조화시킨 음악으로 인기를 끈 밴드 그룹 이날치는 지난해 5월 앨범 수궁가를 발표했다. 이 앨범의 대표곡은 ‘범 내려온다’로 가사는 호랑이가 숲속에서 나오는 묘사를 주로 이룬다.

이 곡은 발매 후 한국관광공사 유튜브에 ‘Feel the Rhythm of Korea: SEOUL(한국의 흥을 느껴라: 서울)’이라는 제목의 뮤직비디오로 게재됐으며, 총 4823만7529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해당 조회 수는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채널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다. 이 곡을 들은 누리꾼들은 “수궁전의 호랑이 이야기가 이렇게 멋있을 수 있다니 놀랍다” “한국의 정서와 현대의 느낌이 잘 묻어난다” 등 긍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에도 불구하고, 호돌이가 마스코트로 채택되는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바로 우리 땅에 고유종인 한국 호랑이가 멸종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이다.

두려워하면서 숭배
강한 생명력의 상징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미국 미네소타 주 정부 교정국 수석행정관이었던 이희관 박사와 미네소타 한인회다. 이들은 1986년 6월 미네소타 세인트폴 동물원과 미네소타 동물원으로부터 백두산 호랑이 암수 한 쌍을 들여와 서울대공원에 안착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서울대공원 호랑이는 올해까지 총 54마리로 늘었고, 2007년에는 백두산 호랑이 암컷 4마리가 일본 후지 사파리 동물원에 수출된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호랑이의 번식을 성공적으로 이룬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호랑이 보전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맹수인 호랑이는 인간과 공존하기 어렵고, 행동반경이 400~1000km인데 비해 국내 사육시설은 너무 열악해서 호랑이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타 동물원과 교류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근친 교배를 하는 문제도 있다.

2001년 서울대공원에 태어난 한국 호랑이 ‘크레인’은 남매였던 아빠 ‘태백’과 엄마 ‘선아’ 사이에서 근친 교배로 태어났다. 크레인은 선천적 백내장과 송곳니 부정교합 등 안면기형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육사들의 손에 길러졌고,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어린 시절이 지나자 원주 드림랜드로 옮겨졌다.

그러나 2007년 경영난을 맞은 원주 드림랜드가 동물들을 방치하면서 동물단체 구조 후 서울대공원으로 다시 돌아와 여생을 마쳤다.

언론에서는 17년을 살고 사망한 크레인을 두고 천수를 누렸다고 표현했지만, 동물 삶의 질 측면으로 바라봤을 때 부족한 부분이 많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서울시에 선물한 호랑이 ‘로스토프’ 역시 마찬가지다. 로스토프는 2013년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사육사를 물어 죽였다. 당시 서울대공원은 공사 중이어서 로스토프는 호랑이사보다 절반 정도 좁은 여우사에서 생활했는데 이때 받은 스트레스로 로스토프가 사육사를 문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인의 호랑이 사랑에 비하면, 호랑이 보존 정책은 턱없이 부실한 실정이다. 이 문제에 관해 시민단체와 동물 관련 전문가들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세계 곳곳에서 서식지 파괴와 더불어 밀렵까지 성행해 호랑이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부속서 1’에 속하는 멸종위기종이 됐다”며 “국내에서 호랑이가 멸종됐지만 우리는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만난다. 심지어 실내 동물원에서도 호랑이와 같은 대형 포유류를 조형물처럼 전시한다”고 지적했다.

사육 시설
너무 열악

이어 “누군가는 동물원을 두고 야생에서 살기 어려워진 동물의 종 보전을 위해 필요한 방책이라고 주장하지만, 각자의 생태나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서식지 보존운동이나 전시 동물 처우 개선을 위한 활동에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백두산 호랑이 이동 거리는?

중국에 서식 중인 야생 백두산 호랑이는 하루 8.9km 이동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8일 <길림신문>에 따르면 중국 국가임업초국 고양이과동물연구센터가 야생에서 구조해 방목한 백두산 호랑이 ‘완다산 1호’를 8개월 동안 관찰한 결과 총 2063km를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 평균 8.9km를 이동한 것으로 이 호랑이의 활동 범위는 동서로 180km, 남북으로는 100km에 달했다.

연구센터는 작년 4월 헤이룽장성 밀산의 야산에서 이 호랑이를 구조했고, 한 달 뒤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백두산에 방목해 이동 경로를 관찰했다.

생후 7개월 된 이 호랑이는 정상적인 먹이 활동으로 건강상태가 양호했고, 민가에 접근하지 않고 야생생활에 잘 적응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 접경 지역은 야생 백두산 호랑이 집단 서식지로 야생 호랑이 개체 수는 50여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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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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