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후퇴' 몸 사리는 검찰 플랜B

면죄부 주고 본게임 나중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대선판의 중심에 서는 듯했던 검찰이 슬그머니 뒤로 빠지고 있다. 거대 양당의 유력 대선후보를 손바닥에 놓고 주무르나 했더니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가는 모양새다. 최근 검찰 행보를 두고 과거 17대 대선을 연상케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부터 대선후보에 대한 검찰 고발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다 보니 검찰은 역대 대선에서 늘 주역을 맡았다. 검찰이 국내 정치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시기도 대선 때다. 검찰의 사건 수사 속도, 방향은 대선 기간 내내 초미의 관심사다. 검찰의 ‘보이지 않는 손’은 어떤 후보에겐 면죄부로, 어떤 후보에겐 치명타로 작용했다. 

대선 때마다
검찰의 시간?

대선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냈던 검찰은 17대 대선에서 특히 크게 부각됐다. 17대 대선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경선이 본게임이라고 할 정도로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 튀기는 혈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두 후보를 둘러싼 의혹이 쏟아졌고 검찰 고발로까지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이 전 대통령의 BBK 주가 조작 의혹이다. 1999년 설립된 투자자문회사 BBK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한 사건으로, 이 전 대통령이 개입돼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그해 대선판을 뒤흔들었다. BBK에 거액을 투자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이 불거진 것.

이와 함께 서울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도 함께 떠올랐다. 


결론적으로 이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다 표차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BBK 주가 조작 의혹 사건으로 처벌을 받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대선 과정 중 검찰이 이 전 대통령에게 준 ‘면죄부’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의 흠으로 여겨졌던 ‘사법 리스크’를 제거해 준 셈이다.

당시 검찰은 두 차례에 걸쳐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7년 8월13일 한나라당 대선 경선을 일주일 앞두고 검찰은 “이상은(이 전 대통령의 큰형)씨 명의의 도곡동 땅은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전 대통령 측으로선 불의의 한 방을 맞은 셈.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이후 대선 경선에서 박 전 대통령에 근소한 승리를 거뒀다.  

그로부터 4개월 뒤 검찰 수사 결과가 180도 달라졌다. 2007년 12월5일 대선을 2주 앞두고 검찰은 다스를 이 전 대통령의 것이라고 볼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수사팀은 중간 수사 결과 때나 최종 때나 변동이 없었지만 결론은 정반대였던 것.

대선 직전 BBK 사건 무혐의 
13년 만에 실체 드러나 처벌

다스 실소유주 의혹에서 벗어난 이 전 대통령은 무난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대선을 이틀 앞두고 통과된 ‘이명박 특검법’에 따라 임명된 정호영 전 특검의 결론도 다르지 않았다. 고법원장 출신 변호사인 정호영 전 특검은 당시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취임 직전 특검팀은 도곡동 땅이 이 전 대통령의 큰형 이상은씨의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다스 실소유주라고 판단했다. 검찰과 특검의 무혐의 처분 이후 무려 13년 만이다. 대법원 2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의 상고심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000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스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점에서는 1심부터 이견이 없었다.  

정호영 전 특검은 한 시민단체로부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특수직무유기, 일반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발당했지만 2018년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돌고 돌아 법의 단죄를 받았지만 13년 전 그를 수사했던 검찰, 특검팀은 끝내 면죄부를 받은 셈이 됐다. 

최근 검찰의 행보를 두고 17대 대선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력 대선후보를 향한 검찰의 칼끝이 처음에는 날카롭나 싶더니 선거가 가까워 올수록 무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대선의 특징 중 하나는 거대 양당의 후보가 모두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두 후보가 모두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있는 초유의 사태다. 

책임 안 진
그때 그 사람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아내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코바나컨텐츠 대기업 협찬 의혹’ 등의 논란에 휩싸여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사건에서 ‘윗선’으로 의심받는 중이다.

두 후보와 윤 후보의 아내 김씨에 대한 검찰 조사가 이뤄질 것인지 여부는 이번 대선의 관전 포인트다. 

최근 검찰이 두 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덜어주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검찰은 지난 6일 김씨가 고발된 코바나컨텐츠 협찬 의혹 사건 중 공소시효가 임박한 전시회 부분을 무혐의 처분했다. 윤 전 총장도 함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16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한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전’이다. 당시 도이치모터스 등 23개 기업이 협찬했다. 검찰은 김씨를 서면으로 조사한 뒤, 코바나컨텐츠 직원, 협찬 기업 관계자 등을 전방위로 조사했지만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사항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는 윤 후보가 2019년 검찰총장으로 지명될 무렵 주관한 전시에 협찬금 후원사가 늘어나는 등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남은 다른 전시 협찬 부분은 계속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코바나컨텐츠는 2018년 ‘알베르토 자코메티전’과 2019년 ‘야수파 걸작전’을 주관했으며 대기업 10곳과 17곳이 각각 협찬했다.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에도 연루돼있다. 그는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주가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전주’ 역할을 담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2013년 도이치모터스의 자회사인 도이치파이낸셜이 설립될 당시 약 2억원의 주식을 액면가에 매입했다는 의혹도 있다. 

공수처만
안간힘 중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권 회장과 이미 처분된 인물들을 포함, 총 5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은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등이 지난해 4월 김씨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관련 인물들의 신병이 확보되면서 김씨의 소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검찰은 김씨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불기소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 상태다.

코바나컨텐츠 대기업 협찬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이 마무리되는 수순을 밟으면서 검찰이 윤 후보와 그 주변을 겨냥한 수사는 일단락되는 형국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수사 중인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판사 사찰 문건 의혹 등만 남은 것이다. 


그나마 고발 사주 의혹은 공수처에서 핵심 피의자로 지목한 손준성 검사(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표류 상태에 빠졌다. 공수처는 체포영장, 구속영장 2회 등 총 3차례에 걸쳐 손 검사의 신병 확보에 나섰지만 연달아 기각돼 망신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아마추어’라고 표현하는 등 수사력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공수처는 판사 사찰 문건 의혹으로 활로를 찾으려는 모양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판사 사찰 문건 의혹은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2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등 주요 사건 재판부의 판결 내용, 세평 등을 수집해 취합한 뒤 문건을 작성해 반부패강력부 등에 전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사가 담당 재판부에 대한 분석 없이 공판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직무유기라는 의견이 나온다. 사건 담당 판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부분에 있어서 범죄 혐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 수사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또 다른 윤 후보 관련 사건으로 전환해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두 유력후보 사법리스크
윤, 먼저 아내 의혹 벗어

민주당 이 후보가 연루돼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사건도 첩첩산중이다.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 등 4명이 기소된 상태다. 

하지만 ‘윗선’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특히 검찰에서 윗선 수사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던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지난 10일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유 전 본부장은 2014년 8월 김만배씨 등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민간업자들로부터 한강유역환경청 로비 명목으로 2억원의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는 더 진척이 더디다. 화천대유 측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거액을 받았거나 받기로 약속했다는 이른바 50억 클럽은 그 멤버로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박영수 전 특검, 권순일 전 대법관,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이들을 연달아 소환조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부분도 곽 전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곽 전 의원은 2015년 1~3월경 김만배씨의 청탁을 받고 하나금융지주 측에 영향력을 행사에 하나은행이 화천대유 컨소시엄에 그대로 남도록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곽 전 의원은 의혹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서보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일 곽 전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구속 사유, 필요성, 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게 기각 사유다. 곽 전 의원에 대한 수사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던 와중에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다른 50억 클럽 멤버에 대한 수사도 차질을 빚게 됐다. 

끝내 안 닿는
윗선 수사?

이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에서는 대장동 사건과 이 후보 간의 연관성을 줄곧 부인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라디오에 출연,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그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대규모 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민간업체가 과도한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장동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석열 또 다른 측근 리스크?

지난 8일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이 구속됐다.

윤 전 서장은 2017년~2018년 불법 브로커 활동을 하며 세무 당국에 청탁 명목으로 부동산 개발업자로부터 1억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윤 전 서장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측근인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의 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후보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던 시절 윤 전 서장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이 있다면서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윤 후보가 윤 전 서장 사건에 어떠한 관여도 한 사실이 없다고 맞섰다.

일각에서는 윤 전 서장의 구속으로 윤 후보의 사법 리스크가 재점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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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판 흔들 건진 게이트 추적

대선판 흔들 건진 게이트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전부터 주목받았던 무속인 건진법사를 둘러싼 의혹이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지역 시장 공천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범죄 의혹은 의원직은 물론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을 가리지 않고 진행됐다.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씨에 대한 검찰 조사에 속도가 붙고 있다. 검찰이 전씨에게 금품을 줬다는 진술과 더불어 현금 뭉치, 대량의 명함을 확보하면서 이른바 ‘건진 게이트’가 슬슬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탁 명목 금품 수수? 전씨에 대한 수사는 지난 1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공천을 미끼로 거액을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시작됐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지난 2018년 1월 자신의 법당서 사업가 이모씨가 데려온 영천시장 선거 출마 예정자 정모씨와 그의 조력자 A씨를 만났다. 현재 이씨는 가상자산 퀸비코인의 개발업체 운영자로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횡령)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17년에 다른 사람 소개로 전씨와 알게 된 사이라고 한다. 전씨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이하 가상자산범죄합수단)서 이씨 혐의를 수사하다가 전씨의 혐의를 포착해 수사 대상이 됐다. 당시 정씨 등이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자 전씨는 ‘국회의원 B씨를 통해 공천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그 자리서 전씨가 B에게 전화한다고 하면서 통화 상대방에게 ‘정씨 공천을 도와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어 하루 뒤 A씨가 전씨의 법당서 1억원을 전씨에게 건넸다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그 자리에도 이씨가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 이틀을 앞둔 지난 1월10일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전씨 공소장에는 검찰이 아직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 법조계에서는 재판 과정과 추가 수사를 통해 전말이 드러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소장에는 전씨가 정씨에게 ‘국회의원 B씨를 통해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 ‘B씨에게 전화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전씨가 실제로 통화한 사람에 대해 공소장에는 ‘상대방’이라고만 돼있다.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전씨의 통화 기록을 검찰이 확인했다면 상대방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공소장에 상대방이라고만 했으니 실제로 B씨와 통화했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 대기업 임원, 법조인, 검·경 인사… 돈 받고 ‘용산’ 연결고리 브로커 역할 의심 또 전씨가 정씨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의 행방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검찰 조사 내용대로 전씨가 국회의원 B씨에게 공천 청탁을 하고 돈을 받았다면 이후 돈 흐름도 밝혀져야 한다. 검찰 수사 과정에 전씨는 B씨에게 돈을 건넨 적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도 전씨에게 돈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법조인은 “불법 자금 수사는 돈의 출발점부터 종착점까지 밝혀내는 게 기본”이라고 말했다. 전씨에게 다른 혐의가 있는지의 여부도 밝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씨가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 친분을 과시하며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 등이 있다. 검찰 출신인 한 변호사는 “혐의를 입증하기 힘든 큰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입증이 상대적으로 쉬운 사건을 먼저 수사해 피의자를 압박하는 경우가 있다”고 제언했다. 검찰은 이 같은 지적을 의식했는지 전씨의 지방선거 공천 헌금 의혹을 발판 삼아 전씨의 모든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검찰은 전씨가 받은 금품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통일교) 측 관계자의 휴대전화서 확보된 문자메시지가 시발점이 됐다. 전씨가 당시 통일교 본부장 윤모씨와 나눈 문자 내용에는 “큰 그림 함께 만들어보셔요. 그리고 PF(프로젝트파이낸싱)를 두고 산업은행 등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의견 교환하겠습니다” 등이 포함됐다. 윤씨가 ‘산업은행 PF’를 언급한 것은 산은의 부산 이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5월 윤석열정부 출범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산은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국가균형 발전과 글로벌 금융 중심지 육성을 도모한다는 취지에 따라 대통령실과 국토교통부 등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왔다. 공소 의문 수사 확대 그러나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를 기점으로 제동이 걸렸고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현재는 사실상 좌초 상태다. 이 밖에 전씨는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과의 만남도 주선했다. 그는 먼저 2022년 12월22일 오후 5시쯤 향후 예정된 윤 의원, 대한체육회장과의 점심 자리에 윤씨를 초대했다. 윤씨는 이를 사양한 후 윤 의원을 따로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실제로 윤씨는 2022년 12월27일 점심 자리에 윤 의원도 초대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윤 의원에게 말해 보겠다”고 답한 전씨는 16분 만에 “윤 의원 참석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상황서 윤씨는 전씨에게 고문료 명목의 돈을 건넸다. 전씨는 이에 대해 “(내 인맥을 이용해)대통령 내외에게 접근하기 위한 차원은 아니었다”며 “윤씨가 이쪽(윤정부) 정권에 가까운 사람을 만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힘없는 나를 잘못 골랐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전씨는 윤 전 대통령 부부 등을 윤씨에게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12월 윤씨의 사무실과 자택, 전씨의 법당과 거주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비슷한 시기 진행된 서울 강남구 소재 전씨의 은신처 압수수색에서는 현금 1억6500만원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중 5000만원어치 신권은 한국은행이 적힌 비닐로 밀봉돼있었으며, 비닐에는 기기 번호, 담당자, 책임자, 일련번호와 함께 윤 전 대통령 취임 3일 후인 2022년5월13일이란 날짜가 찍혀있었다. 전씨는 검찰 조사 당시 “(이를 포함해 기도 명목으로)돈을 사람들이 뭉텅이로 갖다준다”고 진술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보통 한국은행 거래는 신권을 받을 때 한다”며 “이번처럼 ‘사용권’이라고 기재되고 비닐로 밀봉된 돈이 은행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본 적이 없어 이례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명함만 수백장 한국은행 측은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에 “발행일자, 책임자, 일련번호로는 출처를 파악할 수 없고, 어느 금융기관으로 나간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검찰은 해당 뭉칫돈의 출처를 추적 중이다. 또 전씨의 계좌 추적 과정서 수상한 자금흐름을 포착하기도 했다. 10년간 직업이 없던 전씨 아내 김모씨 계좌에 거액의 돈이 입금된 것이다. 지난 2017년 7월부터 지방선거가 있었던 2018년까지 김 전 여사 명의 계좌로 입금된 수표와 현금은 모두 6억4000만원으로, 이 가운데 1000만원 이상의 현금이 입금된 경우는 모두 13차례였다. 총 4억7000여만원에 달했고 한번에 1억6000만원짜리 수표가 입금되기도 했다. 또 검찰은 전씨가 통일교 간부로부터 김건희 전 여사의 선물 목적으로 고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금품을 받은 정황도 수사하고 있다. 가상자산범죄합수단은 지난 20일 전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전씨 휴대전화인 이른바 ‘법사폰’ 포렌식 과정서 윤씨로부터 ‘김 여사 선물’이라며 고가 목걸이를 받은 정황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조사에서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윤씨는 앞서 통일교 내부 행사에서 윤 전 대통령을 2022년 3월22일 만나 1시간 독대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씨는 이에 대해 “윤씨가 도움을 주겠다고 해 500만원씩 두 차례 받았다. 구체적인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고문료일 뿐, (윤씨가) 대통령 내외에 접근하기 위한 차원은 아니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씨가 2022년 대통령선거 때 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본부 조직인 ‘네트워크본부’ 고문 활동 전후로 공천과 인사를 청탁받은 정황도 조사하고 있다. 청탁 의혹을 받는 윤 의원은 지난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씨의 공천 요구나 인사 청탁을 들어줄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전씨가 윤 의원과의 친분을 이용해 돈을 받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씨는 ‘기도비’ 명목으로 돈을 받았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윤 의원도 “전씨가 공천 장사를 했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해 왔다. 윤정부 막후 실세 의혹…국정에도 개입? 통일교 ‘김건희 선물’ 다이아 목걸이 포착 하지만 전씨와 윤 의원의 교류 정황이 나오고 있다. 의혹은 전씨의 인사 청탁에 그치지 않는다. 윤 의원이 2021년 12월15일 네트워크본부와 관련한 부정적 내용을 전씨에게 공유한 후 “권성동 의원과 제가 완전히 빠지는 게 후보에게 도움이 될까요”라고 하는 등 전씨에게 조언을 구하는 문자 등이 다량 확인됐다. 두 사람의 인연을 추정케 할 만한 자료도 검찰 수사 과정서 확보됐다. 전씨 일가의 광산 사업과 관련한 자료다. 전씨는 2012년부터 광산 사업을 추진했다. 배우자 명의로 경기도 가평 소재 산에 대한 광산 채굴권을 따내는 게 골자였다. 다만 전씨 측은 2012~2017년 경기도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허가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해 전씨의 ‘광산 채굴권’ 관련 서류서 윤 의원이 전달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시지 인쇄물이 발견됐다. “12월 초 광업등록사무소의 공문을 받고 청문 절차에 따라 소명하면 1년 추가 유예하는 것으로 사무소와 맞춰놨다”는 내용이다. 이는 채굴권 첫 등록 후 6년이 지난 시점인 2017년 11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전씨 측의 광산 사업은 경기도가 2018년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실패했다. 그러나 광업등록사무소는 2017년 전씨 배우자 명의의 개인사업자에 대해 2019년까지 유예해줬다. 검찰이 확보한 내용대로 ‘1년 추가 유예’가 된 셈이다. 이에 대해 광업등록사무소 측은 “특정인이 산자부와 말을 맞출 수는 없는 구조”라고 전제하면서도 “그간 담당자가 바뀌어 당시 상황을 설명해 드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앞서 전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던 중 “윤 의원이 과거 전씨의 석산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는 게 보좌진의 설명”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광산 채굴과 관련한 문건(2017년)과 공천 헌금 사건(2018년) 당시 윤 의원은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주요 당직을 맡고 있었다. 윤 의원 측은 이 역시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윤 의원은 여러 의혹에 대해 수사 의뢰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를 둘러싼 의문은 친윤(친 윤석열)계 의원에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도 그럴 것이 검찰이 전씨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서 명함 수백여장이 모여있는 ‘명함 묶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법당과 주거지서 각각 확보한 명함 묶음은 그간 전씨를 찾아왔던 전·현직 대기업 임원, 국회의원 등 정치권 관계자, 검사 등 법조인, 경찰 간부 등의 것으로 알려졌다. “모르는 사람 없어” 일부 대기업 임원들은 윤석열정부 들어 회장 연임을 청탁하기 위해 전씨를 직접 찾았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대기업 대표도 전씨 법당을 자주 찾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씨 법당에는 인사를 앞두고 검찰 간부와 지방경찰청 총경 등도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검찰 조사 과정서 “대기업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검찰은 전씨의 휴대폰인 이른바 ‘법사폰’과 압수한 명함을 대조해 관련자 수사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