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완성형 신예 무진성

“8년 무명 생활, 불안감이 컸죠”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이른바 무명배우라 불리는 이들의 불안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작품 출연의 기회는 물론 오디션 기회조차도 적다. 작은 역할이라도 맡아 연기를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데, 정기적으로 일하는 자리를 얻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오디션 일정과 겹칠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에 출연한 신예 배우 무진성의 무명 기간도 무려 8년이 넘는다. 어두운 미래를 뚫고 영화 데뷔를 치렀다. 개봉 후 벌어지는 모든 일이 꿈만 같다고 한다. 

1988년생 무진성은 어렸을 때부터 똘똘했다. 공부를 잘해야만 거머쥘 수 있는 초등학교 전교 학생회장 출신이며, 중학생 때는 전교 학생 부회장을 역임했다. 늘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으며, 공부하는 게 즐거웠다고 한다. 

인생 바꾼 연극

토론을 즐겼고, 직업 적성검사를 하면 변호사나 검사가 1순위에 떴다. 가족들도 법조인이 되길 기대했다고 한다. 

그랬던 무진성의 인생을 바꾼 건 고등학교 1학년 겨울, 연극영화과를 지망하는 친한 친구의 소개로 한 편의 연극을 관람하면서다. 인천에 살고 있던 무진성은 친구와 2시간 넘게 걸려 연극 <사랑에 대한 다섯 가지 소묘>를 보러 간다. 너무 먼 길을 갔던 터라 투덜대면서, 짜증을 부렸다고 한다.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무대에 오른 배우들을 보자마자 느낀 건 ‘이건 신세계다’였다. 


학업에만 열중하던 그에게 배우들의 연기를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은 충격이 더 컸을 수 있다. 입이 떡 벌어진 채로 몰입해서 연극을 봤다고 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생소했어요. 당황도 많이 했어요. KO 펀치를 맞은 기분이었죠.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이 올라갔는데, 어떤 분은 슬픔이 차서 울고 계시고, 어떤 분은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고, 누군가는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어요.”

10대였던 어린 무진성의 뇌리에 스친 건 ‘내가 어떤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나를 모르는 사람이 손뼉을 쳐줄 직업은 무엇일까’였다. 연기하는 것 외에는 다른 직업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후로 바로 연기학원을 다닌다. 부모님도 흔쾌히 허락했다. 조건이 있었다. 단 한 달만 배워보기로 하는 것.

만약 적응이 안 되면 다시 학업에 열중하자는 제안이었다.

“아마 금방 적응 못하고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정말 재밌더라고요. 연기실습을 했는데, 성적도 잘 나왔어요. 그렇게 한 달이 몇 년이 됐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됐죠.”

그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 졸업한 뒤 곧바로 연예 기획사와 계약을 맺었다. MBC <투윅스>를 시작으로 SBS <열애> tvN <미생>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하지만 인지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연기를 보여줄 기회를 접하기조차 어려웠다.

외아들이라는 점에서 부모님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으며 20대를 보냈는데, 30대를 넘어가니 불안감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 성소수자 유진 역
“성숙한 가치관 가진 배우가 되겠습니다”

“서빙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곤 했죠. 연기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매니저분들이 명함을 주기도 했어요. <장르만 로맨스> 오디션을 보기 전까지 슬럼프가 심했어요. 아침마다 산에 다니면서 불안을 극복하려 했죠. 힘들었어요. 연기를 그만할까도 생각했는데, 연기 외에 하고 싶은 일은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막다른 길에 놓인 기분이 가득할 때 한 줄기 빛처럼 찾아온 게 <장르만 로맨스> 오디션이었다. 2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한다. 역할은 소설가이자 교수를 사랑하는 제자다. 이름은 유진이고 성소수자다.

아직도 국내 사회에서는 편견이 가득한 존재다. 특정 종교집단은 성소수자를 죄악으로 여기기도 한다. 

역할을 배정받으면 연기를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숙제에 놓이는 게 배우의 숙명이다. 무진성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성소수자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유진이라는 인물이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거나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가진 정서에 최대한 집중했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볼 수 있는 캐릭터로 여겼고요. 현(류승룡 분)을 사랑하는데, 남자 현이 아닌 인간 자체의 현을 사랑한다고 여겼어요. 개인적으로 꽂힌 대사가 ‘바라는 게 없는데 어떻게 상처를 받겠어요’였어요. 도대체 유진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바라는 게 없을 수 있나에 집중했죠. 성숙한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잖아요. 그 부분을 많이 생각했어요.”

배우는 ‘글에 쓰인 인물을 몸에 담는’ 직업이다. 시나리오에 쓰인 감정을 읽고 자신의 눈과 마음, 몸으로 표현한다. 경험이 적을수록 이른바 과한 연기로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진성은 매우 적절한 감정선을 유지한다.

신예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력을 드러내기 위해, 때론 과도하게 과잉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무진성의 연기에서는 담백하고 건조한 느낌이 일관된다. 무진성은 공을 류승룡과 조은지 감독에게 돌렸다.

“류승룡 선배께서 늘 기본을 놓치지 말라고 하셨어요. 액션이 아닌 리액션을 잘 하라고요. 상대가 어떤 연기를 하는지 보고 그에 맞는 연기를 하라고요. 처음에는 긴장도 되고, 여유가 없어서 리액션을 못했는데, 선배님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어요. 감독님도 연기자 출신이잖아요. 제 고민을 단번에 아시더라고요. 두 분 덕분에 비교적 절제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감사드리고 싶네요.”

<장르만 로맨스>는 사회적으로 통념되기 어려운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전 남편을 사이에 둔 현 부인과 전 부인의 관계, 이혼한 남편의 30년 지기 친구와 연인 관계에 있는 여인, 유부녀를 사랑한 고등학생,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등 말로 설명하기 복잡한 관계가 얼키설키 섞여 있다. 

사회적으로는 지탄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들여다보면 모두 진심이고 타인에 대한 존중이 있다. 우연히 발생한 인간의 감정을, 누군가의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남자를 사랑하는 유진은 특히 진정한 사랑을 보인다.

성숙한 생각


“진심으로 연기하고 싶었어요. 타인을 대하는 유진의 진심이 뭔지 정확히 표현하고 싶었어요. 최대한 담백하게 흘러가는 대로 그리고 싶었죠. 유진은 제가 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과연 나는 유진만한 그릇이 되는가에 대해 질문하면서 저를 돌아봤어요. 아마 우리가 모두 궁극적으로는 유진처럼 성숙한 인간이 되는 과정에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제가 첫걸음을 뗐는데요. 앞으로 유진처럼 성숙한 배우가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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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