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노동자 사망 이후…경동건설 꼼수 논란

“망자에 책임 떠넘기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서정 기자 = 지난 2019년, 경동건설에서 하청노동자로 근무하던 정순규씨는 건설현장에서 추락사로 사망했다. 정씨 유족은 산재사고를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동건설과 법적 공방을 벌여왔다. 그러던 중 최근 경동건설 변호인 측이 재판부에 제출한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찾았다. 사측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취지로 사측이 제출한 자료였다. 해당 문서에 표기된 서명은 평소 아버지 필체와 달랐다. 필적감정을 맡긴 끝에 필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건설현장 사고 대부분은 추락 사고다. 건설현장 사망자 대다수가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국토교통부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간(2019년 7월~2021년 6월) 발생한 건설현장 사고는 총 95건이고, 이 중 절반가량(39건)이 추락 사고였다. 같은 기간 사망자 수는 총 109명으로, 이 역시 절반 가까운 사망자(42명)가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추락사

고 정순규씨는 지난해 10월30일 경동건설이 시공하는 ‘문현동 리인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했다. 부산 지역 중견 건설사인 경동건설의 하도급업체인 제이엠건설 소속 건설근무자였던 정씨는 옹벽에 설치된 비계에서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당시 노동부는 2m 이상 높이의 외부 비계 2단 작업 발판 위에서 난간대 사이로 나와 비계 외측 단부에 설치된 수직 사다리로 내려오는 도중 정씨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며 경위를 검찰에 밝혔고, 이에 검찰은 경동건설을 기소했다.

발판에서 떨어진 정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안전모를 썼음에도 결국 두개골 골절로 인한 산소공급 부족으로 뇌사 판정을 받아 이튿날 사망했다.


사건 이후 경동건설 측은 빈소에 찾아와 벌금형에 그칠 것이라며 합의를 종용하다 유족 측이 반발하자 협박성 발언을 일삼기도 했다. 또 현장엔 사고 당시에 없던 안전망이 설치되는가 하면 사고 직후 친 폴리스라인(경찰통제선)이 무단 훼손됐으며 클램프 등 여타 부품들이 새 제품으로 교체되고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수직 사다리가 철거되기까지 했다.

고인의 아들인 정석채씨는 “아버지의 사건이 발생할 당시 공사 현장의 비계 안쪽에 난간대가 설치돼있지 않았으며 이는 추락사 사인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됐다”면서 “특히 경동건설 측은 사고현장의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면서까지 사고 당시 없었던 안전망을 설치하는 등 현장상태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고 이후 조사에 나선 부산지방고용노동청도 CCTV, 차량 블랙박스, 목격자가 없음에도 경동건설의 증언만으로 조사를 진행했고, 심지어 산업재해조사표조차 유족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고 일갈했다.

문현동 신축공사 
비계서 추락 사망

현재 경동건설 측이 보인 비윤리적인 행태에 분노한 유족 측은 진실규명을 위해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양측의 진실공방이 이어지면서 결국 법적 다툼으로 비화됐고, 추락사로 숨진 정씨의 유족은 항소심 기일을 기다리는 중이다.

앞서 지난 6월 부산지방법원 동부지법에서 진행된 1심에서는 집행유예 판결이 선고됐다. 

유족 측은 최근 진행된 1심 재판에서 경동건설 변호인 측이 재판부에 제출한 ‘관리감독자 지정서’가 위조된 문서라고 주장했다. 


문제의 관리감독자 지정서에 기재된 이름과 서명이 평소 정씨의 필체, 사인과 전혀 다르다는 이유로 유족 측은 지난해 공인 필적감정 전문기관을 통해 필적감정을 의뢰했고, 그 결과 필적감정 전문가는 정씨의 ‘ㅈ’자, ‘ㅅ’자, 숫자, 싸인 모든 것이 위조라고 판단했다.

유족 측은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재판부에 지정서의 필적은 고인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감정 결과를 공인문서로 제출하고 경동건설 측에 사문서 위조 관련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동건설 측의 ‘관리감독 지정서’의 필적을 검증한 전문가는 고인의 여권, 수첩 등에 쓴 글자와 비교해 관리감독자 지정서에 적힌 글자와 숫자, 서명 등은 모두 고인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동건설 측은 최근 인터뷰에서 “사인이야 대신하는 거 뭐 법적으로 문제 있습니까?” “위조된 사인이라는 게 따로 있습니까” 등의 발언을 했다.

지난 4월 진행된 1심 재판에서 검사 또한 ‘관리감독자 지정서’에 대해 공격적인 심문을 펼쳤다. 유족 측과 함께 재판에 참여한 노동운동가에 따르면 경동건설 측 증인으로 참석한 하청업체 소장은 사문서 위조 관련 검사 측 신문에 제대로 된 답변조차 하지 못했다. 

이에 정씨는 당초 관리감독자 지정서와 관련한 신문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애초 경동건설에 면죄부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유족 측 “조직적 증거 은폐·훼손” 주장
필적이…‘관리감독 지정서’ 위조 의혹도

유족 측은 “재판부에 알리기 위해 유족이 발벗고 나서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형 건설사들은 산업 현장에서 사망한 고인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서류까지 위조하고 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경동건설 측의 악행은 다시는 반복되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씨의 딸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역시 “사실 일반인이 공인 전문기관을 찾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발로 뛰며 기관을 찾았고 서류를 맡겼다. 그후 명백한 위조임을 증명하는 공인 근거 서류를 제출했다”며 “그럼에도 재판부는 경동건설 측 주장이 옳다고 하는데 이유조차 알 수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 지조차 모르겠다. 부산지원 재판부가 경동건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법조계와 건설 관계자 역시 경동건설 측 변론의 근거 문서인 ‘관리감독자 지정서’는 위조된 사문서로, 자신들의 책임을 고인에게 떠넘기려는 꼼수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정씨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경동건설이 안전관리에 관한 모든 책임을 고인에 전가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관리감독자 지정서’ 사문서를 위조하고, 이를 형사재판의 근거 문서로 제출한 것은 ‘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자세”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부산 해운대구에서 경동건설 측이 현재 공사를 진행하는 현장에서 또다른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고인의 사고가 난 현장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 언론에 따르면 해당 현장은 비계 안전 조치가 없고 수평 낙하물 방지망도 없어 노동자는 물론 지나다니는 시민들과 차량들마저 위험에 노출돼있다.


경동건설은 아파트 창문이 떨어진 사건을 비롯해 이케아 동부산점 공사현장 임금체불 사건, 부실공사를 지적한 조합장 사건, 리인 아파트 부실 창호업체 공사 갑질 사건 등 크고 작은 논란에서 이렇다 할 제재 없이 경영을 유지해왔다. 

법적 공방 

한편 경동건설 측은 유족 측의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회사 관계자는 사문서 위조 의혹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아는 직원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이후 입장과 반론을 추가로 듣기 위해 여러 번 연결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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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