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 기획> 초등생 스마트폰 중독 실태

빠지면 못나오는 손안의 늪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아이들이 스마트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돼있다. 초등학생 대다수가 이미 스마트폰의 노예로 전락한지 오래다.  

A씨는 초등학생 아들의 원격수업을 위해 스마트폰을 구매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넣은 아들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원격수업을 잘 듣고 있는지 확인을 위해 방문을 살짝 열어보면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고 있었다. 

“24시간도 
모자라요”

아들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A씨는 “수업 때만이라도 집중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은 A씨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엄마도 종일 스마트폰 하잖아요”라며 반문했다. 

학부모들은 스마트폰에 노출돼있는 자녀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원격수업에 접속한 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바로 유튜브를 본다” 등과 같은 하소연이 쏟아진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시간을 정해두고 사용했지만, 비대면 수업이 진행된 후부터는 수업을 핑계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딴짓이 늘었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아이의 스마트폰 과의존 때문에 진도가 뒤쳐질까 걱정이다. 또 다른 학부모는 “방에서 공부하고 숙제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한테 피드백을 받아보면 문제를 다 틀렸더라”며 “방에 CCTV라도 달아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했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우려스럽기는 매한가지다. 학생들이 원격수업에 참여해도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지까지는 파악할 수 없어서다. 한 현직 교사는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을 계속할 텐데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다.

온종일 손에 폰 끼고 사는 아이들  
음란물 쉽게 접근…범죄 노출 우려도

이처럼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전자기기를 활용한 원격수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초등학생들이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회피수단의 도구로 스마트폰을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에 비해 아이들의 외부활동이 현저히 줄었고, 스마트폰을 대체할 만한 놀잇감이 없는 점도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이 발생한 이유로 꼽힌다.

한 전문가는 “스마트폰으로 접근 가능한 콘텐츠가 다양한 데다 조작도 쉽다”며 “클릭 한 번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고를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선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 초등학교 4~6학년 2723명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학생의 87.7%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 10명 중 6명(59.7%)은 스마트폰을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이용한다고 응답했으며 ‘유튜브’(34.7%)와 게임(30.2%)을 스마트폰의 1순위 기능으로 꼽았다.


응답자 3명 중 1명(34.5%)은 “스마트폰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물건”이라고 답했다. 초등학생 10명 중 1명(11.8%)은 “유튜브를 보는 것이 가족과 여행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응답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5월 전국 학령 전환기(초 4학년, 중 1학년, 고 1학년) 청소년 129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이용습관 진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전체 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이 증가한 가운데 전년 대비 초등학생의 증가가 두드러졌고, 남자는 연령이 낮을수록 여자는 연령이 높을수록 과의존 위험군이 더 많았다.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청소년의 과의존 위험군이 증가했다. 학교별로는 중학생(8만5731명), 고등학생(7만5880명), 초등학생(6만7280명) 순으로 과의존 위험군이 나타났다.

초등학생의 경우 남녀 청소년 모두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율이 지난해에 비해 수치가 증가했다. 이들의 스마트폰 사용 유형은 동영상(영화, TV) 시청, 게임, 메신저 등의 순이었다.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이처럼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초등학생이 겪고 있는 스마트폰 과의존 유형은 다음의 3가지로 나뉜다. 

사용 시간 조절능력 부족으로 인한 자제력 문제, 스마트폰 사용이 주요활동이 돼버리는 현상, 신체적·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하면서도 계속 이용하는 유형이다.  

스마트폰 과의존에 빠지게 되면 시간 구분이 모호해져 사용 시간을 조절하는 능력이 저하된다. 연령이 어릴수록 이 같은 조절 능력은 떨어진다. 초등학생은 충분한 인지적‧정서적 발달단계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터넷 게임 등의 유혹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탓에 쉽게 스마트폰에 빠져든다.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접속해 위안을 얻는다. 

보상심리를 추구하는 것도 자제력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과의존적 성격은 자기조절에 어려움을 보여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은 현실에서 느끼지 못한 욕구 해소를 경험하게 한다. 우울증이나 자존감 저하로도 이어진다. 자기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 집중하는 결과를 낳는다. 장시간 스마트폰의 활용은 인간관계 결핍을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또 초등학생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여러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음란물 노출 =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로 초등학생이 음란물 등 유해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쉽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초등학생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과거에 비해 음란물에 접근하기 용이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초등학생의 경우 성에 대한 인식이 완전하지 않아 음란물을 실제 현실과 혼돈할 우려도 있다. 이는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음란물에 접촉하게 되면 대부분 계속 보게 되고, 점점 빠져들게 된다. 빠져 나오고 싶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일부 초등학생은 음란물에서 본대로 실행하고 싶어 한다.

정부도 초등학생들의 음란물 접촉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일각에서는 초등학생이 음란물에 대한 과의존 상태가 발생하면 정상적인 성장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 사춘기를 겪게 되면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음란물 과의존이 채팅 애플리케이션 사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성매매 노출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기 몸을 찍어서 채팅방에 보내기도 한다. 해당 채팅방에는 조건만남을 매개하는 업체가 상당히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계기로 성매매, 조건만남까지 이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어른도 민망
음란물 넘쳐

▲자극적 콘텐츠 =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 높은 개인방송의 시청과 과금 문제도 심각하다. 대부분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으로 개인방송을 시청한다. 

초등학생이 자극적인 영상 등에 노출되면 폭력적‧선정적인 콘텐츠를 그대로 따라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해당 방송의 문제점이 뭔지도 모른 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문제의 발언들을 사용하기도 한다는 점도 문제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해에는 한 학생이 스마트폰 라이브 앱에 접속해 1억3000만원을 결제하는 일도 벌어졌다. 스마트폰은 어머니 통장과 연동돼있었다. 해당 금액은 전세보증금으로 넣어둔 돈이었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인터넷 개인방송 및 동영상 사이트의 경우, 방송 플랫폼 사업자가 규제 정책을 만들어 관리한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 정책이 초등학생을 차단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이버폭력 = 스마트폰 과의존은 사이버폭력 문제도 발생시킬 여지가 있다. 사이버폭력은 SNS 등을 활용해 피해자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학폭의 경우 하교를 하면 물리적인 가해 행위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사이버폭력은 시공간의 경계가 없다. 어디서든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종류도 다양하다. 채팅방에서 한 명을 집단으로 욕설하는 ‘떼카’, 채팅방에서 나간 학생을 끊임없이 초대해 욕하는 ‘채팅 감옥’, 피해 학생만 두고 모두 나가는 방식인 ‘방폭’ , 데이터를 빼앗는 ‘데이터 셔틀’ 등이 있다.

대부분의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사이버폭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데 익명성과 비대면성에 의존해 발생하는 점이 특징이다. 

초등학생이 사이버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잘못된 행동’임을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주목해야 할 점은 초등학생의 사이버폭력이 스마트폰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가상현실의 폭력이 현실 상황과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부모님보다 더 믿고
선생님보다 더 따라

스마트폰을 활용한 초등학생의 사이버폭력은 현재도 만연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고학년일수록 사이버폭력의 경험 비율이 높아진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사이버폭력으로 자살충동을 느끼는 학생까지 나타난다는 점이다. 비도덕적인 행동 경험이 초등학생들에게 도움을 미친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게다가 초등학생 스스로도 고학년이 될수록 사이버폭력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이 될 수 있고, 피해 학생도 가해 학생이 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사이버폭력은 피해자의 고통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가해 학생을 따라 쉽게 가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은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가만히 거기에 반응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못 하는 게 없는 세상은 어른들이 만들었다. 손에 쥐어 준 것도 어른이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빠져 산다면 아이들은 결국에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도 잊는다. 학교 교육은 치유적인 활동을 더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압수하는 것으로는 스마트폰 과의존을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전문가는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방법은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거나 왜 조절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못 느끼면 교육에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과의존은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예방과 치료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들은 초등학생에게 일정한 교육을 적절한 시기에 제공함으로써 스마트폰 과의존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지’ 인지할 필요성이 있으며 불필요하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이 요구된다. 

초등학생 시기는 가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때다.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녀 간 원활한 관계가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에 준다고 강조한다. 스마트폰 과의존에 탈피하게 하려면 아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스마트폰 사용에 부모가 관여할 수 있는 여지와 개입 효과를 키워야 한다.

그냥 이대로 
놔둘 것인가

한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아동·청소년들의 놀이문화이자 소통 수단이라는 점을 부모세대가 우선 인식해야 한다”며 “스마트폰 문제가 자녀만이 아니라 가족 공동의 문제라는 인식이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아동·청소년 스마트폰 과의존 해결에 누군가가 강제하는 ‘외적 강제’보다는 스스로 과의존을 회피하고자 노력하는 ‘내적 동기’가 중요하다”며 “학교나 가정에서 아동‧청소년에게 내적 동기를 부여하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스마트폰에 빠진 ‘스몸비족’

서울시민 10명 중 7명이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스몸비족’인 것으로 조사됐다. 스몸비족이란 스마트폰과 좀비를 합성한 단어로 스마트폰 화면을 보느라 길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들을 빗댄 말이다.

서울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빅데이터와 딥러닝 활용한 서울시 보행사고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69%가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보행 중 타인의 스마트폰 사용으로 충돌 위험을 겪었다는 시민도 74%로 나타나 인식 개선 및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령별로는 30대의 보행 중 스마트폰 이용률이 86.8%를 기록해 가장 높았다. 20대가 85.7%, 15~19세 84.0%로 뒤를 이었다. 50대는 55.6%로 나타났으며, 60세는 50.0%를 나타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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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