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 기획> 초등생 스마트폰 중독 실태

빠지면 못나오는 손안의 늪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아이들이 스마트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돼있다. 초등학생 대다수가 이미 스마트폰의 노예로 전락한지 오래다.  

A씨는 초등학생 아들의 원격수업을 위해 스마트폰을 구매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넣은 아들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원격수업을 잘 듣고 있는지 확인을 위해 방문을 살짝 열어보면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고 있었다. 

“24시간도 
모자라요”

아들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A씨는 “수업 때만이라도 집중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은 A씨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엄마도 종일 스마트폰 하잖아요”라며 반문했다. 

학부모들은 스마트폰에 노출돼있는 자녀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원격수업에 접속한 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바로 유튜브를 본다” 등과 같은 하소연이 쏟아진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시간을 정해두고 사용했지만, 비대면 수업이 진행된 후부터는 수업을 핑계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딴짓이 늘었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아이의 스마트폰 과의존 때문에 진도가 뒤쳐질까 걱정이다. 또 다른 학부모는 “방에서 공부하고 숙제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한테 피드백을 받아보면 문제를 다 틀렸더라”며 “방에 CCTV라도 달아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했다”고 말했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우려스럽기는 매한가지다. 학생들이 원격수업에 참여해도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지까지는 파악할 수 없어서다. 한 현직 교사는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을 계속할 텐데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다.

온종일 손에 폰 끼고 사는 아이들  
음란물 쉽게 접근…범죄 노출 우려도

이처럼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전자기기를 활용한 원격수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초등학생들이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회피수단의 도구로 스마트폰을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에 비해 아이들의 외부활동이 현저히 줄었고, 스마트폰을 대체할 만한 놀잇감이 없는 점도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이 발생한 이유로 꼽힌다.

한 전문가는 “스마트폰으로 접근 가능한 콘텐츠가 다양한 데다 조작도 쉽다”며 “클릭 한 번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고를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선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 초등학교 4~6학년 2723명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학생의 87.7%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 10명 중 6명(59.7%)은 스마트폰을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이용한다고 응답했으며 ‘유튜브’(34.7%)와 게임(30.2%)을 스마트폰의 1순위 기능으로 꼽았다.


응답자 3명 중 1명(34.5%)은 “스마트폰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물건”이라고 답했다. 초등학생 10명 중 1명(11.8%)은 “유튜브를 보는 것이 가족과 여행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응답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5월 전국 학령 전환기(초 4학년, 중 1학년, 고 1학년) 청소년 129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이용습관 진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전체 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이 증가한 가운데 전년 대비 초등학생의 증가가 두드러졌고, 남자는 연령이 낮을수록 여자는 연령이 높을수록 과의존 위험군이 더 많았다.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청소년의 과의존 위험군이 증가했다. 학교별로는 중학생(8만5731명), 고등학생(7만5880명), 초등학생(6만7280명) 순으로 과의존 위험군이 나타났다.

초등학생의 경우 남녀 청소년 모두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율이 지난해에 비해 수치가 증가했다. 이들의 스마트폰 사용 유형은 동영상(영화, TV) 시청, 게임, 메신저 등의 순이었다. 

하루 평균 
2시간 이상

이처럼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초등학생이 겪고 있는 스마트폰 과의존 유형은 다음의 3가지로 나뉜다. 

사용 시간 조절능력 부족으로 인한 자제력 문제, 스마트폰 사용이 주요활동이 돼버리는 현상, 신체적·사회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하면서도 계속 이용하는 유형이다.  

스마트폰 과의존에 빠지게 되면 시간 구분이 모호해져 사용 시간을 조절하는 능력이 저하된다. 연령이 어릴수록 이 같은 조절 능력은 떨어진다. 초등학생은 충분한 인지적‧정서적 발달단계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터넷 게임 등의 유혹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탓에 쉽게 스마트폰에 빠져든다.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접속해 위안을 얻는다. 

보상심리를 추구하는 것도 자제력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과의존적 성격은 자기조절에 어려움을 보여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은 현실에서 느끼지 못한 욕구 해소를 경험하게 한다. 우울증이나 자존감 저하로도 이어진다. 자기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 집중하는 결과를 낳는다. 장시간 스마트폰의 활용은 인간관계 결핍을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또 초등학생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다음과 같은 여러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음란물 노출 =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로 초등학생이 음란물 등 유해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되기 쉽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초등학생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과거에 비해 음란물에 접근하기 용이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초등학생의 경우 성에 대한 인식이 완전하지 않아 음란물을 실제 현실과 혼돈할 우려도 있다. 이는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음란물에 접촉하게 되면 대부분 계속 보게 되고, 점점 빠져들게 된다. 빠져 나오고 싶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일부 초등학생은 음란물에서 본대로 실행하고 싶어 한다.

정부도 초등학생들의 음란물 접촉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일각에서는 초등학생이 음란물에 대한 과의존 상태가 발생하면 정상적인 성장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 사춘기를 겪게 되면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음란물 과의존이 채팅 애플리케이션 사용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성매매 노출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기 몸을 찍어서 채팅방에 보내기도 한다. 해당 채팅방에는 조건만남을 매개하는 업체가 상당히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계기로 성매매, 조건만남까지 이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어른도 민망
음란물 넘쳐

▲자극적 콘텐츠 =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 높은 개인방송의 시청과 과금 문제도 심각하다. 대부분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으로 개인방송을 시청한다. 

초등학생이 자극적인 영상 등에 노출되면 폭력적‧선정적인 콘텐츠를 그대로 따라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한다. 해당 방송의 문제점이 뭔지도 모른 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어’처럼 문제의 발언들을 사용하기도 한다는 점도 문제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해에는 한 학생이 스마트폰 라이브 앱에 접속해 1억3000만원을 결제하는 일도 벌어졌다. 스마트폰은 어머니 통장과 연동돼있었다. 해당 금액은 전세보증금으로 넣어둔 돈이었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으로 이용하는 인터넷 개인방송 및 동영상 사이트의 경우, 방송 플랫폼 사업자가 규제 정책을 만들어 관리한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 정책이 초등학생을 차단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이버폭력 = 스마트폰 과의존은 사이버폭력 문제도 발생시킬 여지가 있다. 사이버폭력은 SNS 등을 활용해 피해자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학폭의 경우 하교를 하면 물리적인 가해 행위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사이버폭력은 시공간의 경계가 없다. 어디서든 폭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종류도 다양하다. 채팅방에서 한 명을 집단으로 욕설하는 ‘떼카’, 채팅방에서 나간 학생을 끊임없이 초대해 욕하는 ‘채팅 감옥’, 피해 학생만 두고 모두 나가는 방식인 ‘방폭’ , 데이터를 빼앗는 ‘데이터 셔틀’ 등이 있다.

대부분의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사이버폭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데 익명성과 비대면성에 의존해 발생하는 점이 특징이다. 

초등학생이 사이버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잘못된 행동’임을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주목해야 할 점은 초등학생의 사이버폭력이 스마트폰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가상현실의 폭력이 현실 상황과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부모님보다 더 믿고
선생님보다 더 따라

스마트폰을 활용한 초등학생의 사이버폭력은 현재도 만연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고학년일수록 사이버폭력의 경험 비율이 높아진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사이버폭력으로 자살충동을 느끼는 학생까지 나타난다는 점이다. 비도덕적인 행동 경험이 초등학생들에게 도움을 미친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게다가 초등학생 스스로도 고학년이 될수록 사이버폭력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이 될 수 있고, 피해 학생도 가해 학생이 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사이버폭력은 피해자의 고통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가해 학생을 따라 쉽게 가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자극적인 콘텐츠들은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가만히 거기에 반응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못 하는 게 없는 세상은 어른들이 만들었다. 손에 쥐어 준 것도 어른이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빠져 산다면 아이들은 결국에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도 잊는다. 학교 교육은 치유적인 활동을 더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압수하는 것으로는 스마트폰 과의존을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전문가는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방법은 실질적 효과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거나 왜 조절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못 느끼면 교육에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과의존은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예방과 치료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들은 초등학생에게 일정한 교육을 적절한 시기에 제공함으로써 스마트폰 과의존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지’ 인지할 필요성이 있으며 불필요하게 무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이 요구된다. 

초등학생 시기는 가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때다. 전문가들은 부모와 자녀 간 원활한 관계가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에 준다고 강조한다. 스마트폰 과의존에 탈피하게 하려면 아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스마트폰 사용에 부모가 관여할 수 있는 여지와 개입 효과를 키워야 한다.

그냥 이대로 
놔둘 것인가

한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아동·청소년들의 놀이문화이자 소통 수단이라는 점을 부모세대가 우선 인식해야 한다”며 “스마트폰 문제가 자녀만이 아니라 가족 공동의 문제라는 인식이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아동·청소년 스마트폰 과의존 해결에 누군가가 강제하는 ‘외적 강제’보다는 스스로 과의존을 회피하고자 노력하는 ‘내적 동기’가 중요하다”며 “학교나 가정에서 아동‧청소년에게 내적 동기를 부여하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스마트폰에 빠진 ‘스몸비족’

서울시민 10명 중 7명이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스몸비족’인 것으로 조사됐다. 스몸비족이란 스마트폰과 좀비를 합성한 단어로 스마트폰 화면을 보느라 길거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는 사람들을 빗댄 말이다.

서울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빅데이터와 딥러닝 활용한 서울시 보행사고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69%가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보행 중 타인의 스마트폰 사용으로 충돌 위험을 겪었다는 시민도 74%로 나타나 인식 개선 및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령별로는 30대의 보행 중 스마트폰 이용률이 86.8%를 기록해 가장 높았다. 20대가 85.7%, 15~19세 84.0%로 뒤를 이었다. 50대는 55.6%로 나타났으며, 60세는 50.0%를 나타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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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