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만나다> 정의로움을 입은 배우 엄지원

“‘발연기’라고 욕먹을까 걱정했어요”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좀비물이나 스릴러 장르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캐릭터가 있다. 이른바 작품의 화자 역할이다. 대부분 주인공이다. 이런 경우 최대 분량을 차지하지만, 소위 ‘따 먹을 게 없는’ 장면만 그득하다. 연기를 잘해도 티가 나지 않고, 혹시나 감정선이 어긋나면 바로 티가 난다. tvN 드라마 <방법>에 이어 크로스오버로 영화화까지 이어진 <방법:재차의>에서 이 같은 역할을 맡은 배우는 엄지원이다. 많은 배우들이 어려워하는 역할을 연기 고수 엄지원은 훌륭히 소화해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좋은 친구들>의 지성이 연기한 현태, 2015년 SBS에서 방영된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의 문근영이 분한 소윤, 2020년 개봉한 영화 <반도>에서 강동원이 맡은 정석. 장르적 특성이 강한 작품 속 세 캐릭터는 작품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른바 화자다. 

이야기 끄는
주인공 화자

장르물의 경우 사건이 빠르게 진행돼야 할 뿐 아니라, 설명할 거리도 많고 인물도 다수 등장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이야기 전개하는 막중한 역할로 늘 바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색다른 경험을 한다. 대사량도 많다. 주변 캐릭터뿐 아니라 관객들에게 작품 속 상황의 정보를 전달한다.

정보 전달은 매우 이성적인 영역이라 현실성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캐릭터 색감이 대체로 옅다. 대중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흔한 인물인 경우가 많다. 태생적으로 밋밋하다. 색감이 너무 짙은 인물이 정보를 전달하면, 현실성이 무너질 확률이 높아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신도 거의 없고, 전반적으로 절제된 연기를 선보여야 한다. 이 캐릭터들이 현실성을 부여하면서 색감이 뚜렷한 다른 캐릭터들이 도드라진다. 작품을 위해 희생하는 역할이다. 

정보 전달자는 기본적으로 분량이 많다. 분량이 많다는 건 시험대에 오르는 장면이 많다는 것. 관객의 매서운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현실성이 높은 인물은 감정선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연기 이상한데?’라는 느낌을 준다.

상상력이 가미된 인물이면 오히려 ‘그럴 수 있지’라고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데, 현실성이 높은 인물은 작은 실수라도 고스란히 보인다. 수많은 슈퍼세이브를 했더라도 결국 결승골을 뺏기면 죄인이 되는 골키퍼와 비슷한 포지션이다.

배우는 고뇌에 빠진다. 작품에 희생하면서도 인물의 능동성을 이미지화해야 한다는 숙제가 주어져서다. 안정적인 연기는 기본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진은 이러한 인물을 캐스팅할 때, 주인공 자리임에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제안한다. 

이 같은 역할을 맡는 배우는 연기력뿐 아니라 작품을 대하는 태도도 훌륭해야 한다. 혹여 배우의 욕심 때문에 작품 전체가 어그러질 수 있어서다. 

크로스오버 영화 <방법:재차의>
절제된 감정·현실적인 이미지 

tvN 드라마 <방법>에서 엄지원이 연기한 임진희가 언급한 역할에 해당한다. 신문사에서 탐사보도를 맡은 기자인 그는 현실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현상과 늘 맞닥뜨린다. 온몸이 꼬여서 죽은 시신을 발견하거나, 주술로서 사람을 죽이는 장면도 본다.


임진희는 관객 대신 새로운 현상에 반응하는 인물이다.

이후 방법사 백소진(정지소 분)과 함께 악신을 이용해 대다수 사람을 죽이려 하는 진종현(성동일 분)과 그 일당을 퇴치한다. 

영화 <방법:재차의>는 드라마에서 확장된 크로스오버 작품이다. 드라마 속 전반적인 인물과 세계관은 같은데 다른 형태의 사건이 벌어졌을 뿐이다. 드라마 속 인물을 영화에서 다시 보여주는 건 다른 배우들도 해본 적 없는 값진 경험이다. <방법>에서 작가의 페르소나이자 이야기의 화자인 엄지원이 그 중심에 있다. 

“매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는 정말 좋았어요. 드라마에서 구축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영화로 넘어올 때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이나 배우들 간의 친밀감, 연기적인 합을 맞추는 기간도 짧았어요. 영화가 저의 고향 같은 곳이고, <방법> 제작진이 영화 팀이 모여 만든 드라마여서 고향에 온 기분이었어요.”

초현실적인 세계를 글과 말로 전달한 기자 진희는 영화에서 신문사를 퇴사하고 보도 채널을 따로 개설한다. 보도 형태만 조금 바뀌었을 뿐, 기자로서 불의와 맞서는 정의로운 성향은 더욱 견고해졌다. 

정의로움을 드러내는 인물은 사실 매력이 없다. 때로 그 정의로움이 위선으로 비춰 ‘오지랖’이라는 비호감을 주기도 된다. 감정 변화의 폭도 좁고, 오직 정의로움이라는 틀에 갇힌 리액션과 대사만 있을 뿐이다. 궁금증을 유발하기보다는 궁금증이 될만한 존재를 발견하는 게 주 임무다. 능동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수동적으로 반응한다.

그 안에서 진취적인 기자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 엄지원은 맡은 배역을 표현하기 어려워 매우 괴로웠었다고 토로했다.
 
“<방법> 드라마나 영화나 연기하기 정말 힘들었어요. 제일 힘든 게 ‘정의로운 기자’였어요. 인물을 정의로움으로 정의한 거예요. 도대체 정의로움이 뭐냐고요. 활동적이거나, 화가 많거나라는 식으로 구체화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정의로움은 너무 모호해요. 어떻게 정의로움을 표현해야 할지 어려웠어요.”

정의란
무엇인가

감독과 작가에게 계속 정의로움의 의미를 질문했다. 무엇이 진정한 정의냐고 물었다. 작품에 임할 때마다 스스로 답을 구할 때까지 질문하고, 자신의 성향과 인물의 성향을 적절히 섞어가며 새로운 이미지를 탄생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정의로움’은 끝내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연기하면서 ‘정의로움이라는 덫에 갇혔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정의롭다는 건 곧 매력이 없다는 얘기기도 해요. 매번 보편적으로 올바른 모습만 보이잖아요. 옳긴 하지만 매력은 없어요. 매력이 있어야 흥미가 끌리는 건데. 결국 감독님도 대답하지 못했어요. 정의로운 기자가 나오는 작품은 평가가 좋지 않다는 속설이 있어요. 그건 정의로운 인물이 매력이 없어서인 것 같아요.”

정의로움의 뜻은 풀어내지 못했다고 했지만, 영화를 보면 엄지원은 정의로우며 진취적인 임진희를 구현해낸다. 진실을 좇는 데 늘 앞장서고, 주위에 희생하며 불의 앞에서 매서운 질문을 던지는 그의 얼굴에는 정의가 서려 있다. 

누군가 지시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찾고 위험한 순간을 굳이 피하지 않는 강단도 엿보인다. 태생적으로 단편적이고 밋밋할 수 있는 임진희는 작품의 화자 역할을 충분히 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연기 못했다는 말, ‘발연기’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연기를 잘해도 드러나지 않고, 못하면 바로 티 나는 인물이 진희거든요. 걱정 많이 했어요. 그래도 그렇게 연기를 못하진 않았나 봐요. 진희는 사실 태생적으로 한계가 분명해요. 건조하달까요. 스토리는 빠르게 이어지는데, 그 안에서 진희로 뭔가 연기를 하고 싶어도 뭐가 없어요. 뻔한 모습이 너무 많은 거죠. 이 뻔한 것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풀어내냐가 큰 숙제였죠. 연기의 결을 미세하게 잡아가려고 했어요. 순간의 점을 잡아내고 이 점들을 이었을 때 전체적으로는 능동적으로 보였으면 했어요.”

희생적 태도
현실적 연기

엄지원이 현실적인 톤을 잡아주자, 초현실적인 설정인 ‘재차의’가 실감 나게 받아들여진다. 재차의는 시나리오를 집필한 연 감독이 새롭게 설정한 것으로, 주술을 통해 조종당하는 시신이다. 고서 <용재총화>에 나오는 전통 요괴 재차의에, 인도네시아 흑마술을 포개 새로운 괴생물체를 만들어냈다.

<부산행>의 좀비보다는 비교적 느리지만,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 팔목을 부러뜨려야만 행동을 멈춘다. ‘스토리 마스터’로 불리는 연 감독의 상상력이 또 한 번 커다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초현실적 설정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엄지원을 비롯한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 덕분이다.

“촬영 현장에서는 재차의 군단이라고 했어요. 평소 이름도 알고 친하게 지냈어요. 그러다 촬영 들어가면 고강도 액션을 하면서 대립했죠. 그 배우분들은 사실 댄서예요. 관절을 이용한 춤을 잘하시는 분들이 맡아주셨어요. 중반부에 100명의 재차의 군단이 뛰어오는 데 정말 멋있더라고요. 새로운 영화가 탄생할 거라는 기대감이 그 순간에 확 들었어요.”

엄지원이 영화 시나리오를 받은 건 드라마 <방법>이 끝난 직후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했던 그는 시나리오를 읽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주술사와 주술사의 대립을 그린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부산행>과 같은 좀비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 감독이 집필하고 김용완 감독이 연출한 <방법:재차의>는 촘촘한 스토리 라인을 바탕으로 볼거리 넘치는 화면이 가득하다. 상업 영화로서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다. 

“연 감독님은 정말 엄청난 이야기꾼인 것 같아요. 그 수 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있다는 게 놀라워요. 게다가 작업 속도도 엄청 빨라요. 다른 분들이 몇 년에 걸쳐 할 것을 한 달 만에 완성하시기도 해요. 추진력과 에너지, 열정도 대단해요.”

“그런 모습이 제게 좋은 자극이 됐어요. 이분이랑 옆에 있으면서 함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용완 감독님은 물 같아요. 차분하고 꼼꼼해요. 밀도 있는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 같아요. 상반된 두 스타일이 시너지를 내서 좋은 영화가 나온 것 같아요.”

“도대체 정의로움이 뭐냐고요…괴로웠어요”
“진심을 담아 가슴으로 하는 연기가 철칙”

배우에게 주어진 숙명 중 하나가 직업에 대한 이해다. 인물의 직업이 정해지는 순간 의상과 말투, 삶에 대한 태도가 정해진다. 같은 직업군이라고 해도 부서마다 특성이 다르고, 대사에 쓰인 성향과 겹쳐지면서 새로운 인물이 탄생한다. 배우는 그 인물에 자신을 부여하거나 빼면서 연기한다. 

엄지원이 맡은 역할은 탐사보도 기자다. 이슈의 현장이나 주어진 출입처를 오가는 기자가 아닌, 숨어있는 진실을 발굴하는 기자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봐온 기자들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어떤 직업을 연기하게 될 때 작든 크든 간에 조사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해요. 필요에 따라서는 참관을 하기도 하고요. 기자들은 친근한 편이에요. 진희는 탐사보도 기자인데요. 연기하면서 느낀 건 또 다른 사명감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펜으로 뭔가를 만드는 데다가, 단어의 소중함을 아는 직업군이라고 느꼈어요. 작업 후에 애정이 많이 생겼죠. 저도 이제 기자 출신이에요.”

벌써 데뷔 20년 차다. 2002년 MBC <황금마차>로 시작해 여러 작품에서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냈다. 어떤 연기든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다. 감정의 폭이 크든 작든, 서민이든 귀족이든, 선이든 악이든, 그가 못해낸 연기는 없다. 

“연기할 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시나리오나 대본의 허점을 먼저 찾아내요. 캐릭터가 가진 개연성의 문제점을 발견해내려고 해요. 그 다음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죠. 그리고 저를 그 인물에 섞는 작업을 해요. 제가 그 삶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 내면의 어떤 점과 인물의 공통점을 찾아서 반반 정도 믹스하는 과정을 거쳐요.”

“제가 그 속에 있어야 보시는 분들도 편하거든요. 엄지원만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새로운 부분을 넣으려고 하죠. 꼭 지키려고 하는 게 있어요. ‘이 연기가 진심인가?’라는 부분이요. 적어도 가짜로 연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슴으로 연기하고 있는가가 제 철칙이에요.”

적지 않은 고뇌와 노력으로 매우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도 4단계로 격상됐다.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의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새로운 인물
탄생의 과정

“텐트폴 시장에 영화를 개봉하는 건 처음인 거 같아요. 여름 시장에 영화를 개봉해서 의미가 남달라요. 전통적으로 이 기간에 개봉하면 다 잘됐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었겠지만, 이번에는 참 쉽지 않네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저희뿐 아니라 이번에 개봉하는 작품 모두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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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