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차와 함께 ④하동 정금차밭

차밭에서 보낸 느긋한 하루

다향 그윽한 차밭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흩뿌린 물감처럼 점점이 번지는 초록 세상도 멍하니 바라보며 느린 여행을 만끽하자. 게으른 상춘객의 팔자 좋은 소리라 해도 상관없다. 가끔 게으름 부리며 보낸 시간이 더 소중하게 기억되기도 하니까.

하동은 우리나라 최대 야생 차 생산지다. 화개면과 악양면에만 야생 차밭 300여곳이 있다. 그 면적이 무려 627ha. 이들 차밭에서 연간 1020t이 넘는 차를 생산한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차의 30%에 이르는 양이다. 섬진강 물길 따라 화개면에 들어서면 하동십리벚꽃길로 유명한 화개천 너머로 야생 차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야생이라는 이름처럼 형태도, 위치도 제각각이다. 물길 옆 너른 평지에 자리한 차밭이 있는가 하면, 섬마을 다랑논처럼 산기슭에 계단식으로 축대를 쌓아 조성한 차밭도 있다.

최적의 조건

지리산과 섬진강에 인접한 화개·악양 일대는 안개가 많고 다습하며, 찻잎을 따는 시기에 일교차가 커 차나무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평가받는다.

하동 야생 차는 이런 독특한 환경과 재배법으로 2015년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으며, 2017년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정금차밭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방면으로 4km쯤 떨어진 산비탈에 자리한다. 하동군이 자랑하는 다원10경 가운데서도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정금삼거리에서 완만한 고갯길을 약 800m 올라가야 한다.

정금정이 있는 정상까지 편한 걸음으로 15분 남짓이면 닿는다. 차량 운행이 가능한 포장도로지만, 두 대가 오가기에는 길이 좁고 주차 공간도 협소해 도보로 이동하기를 권한다.

정상에 서면 산비탈에 조성한 야생 차밭 너머로 화개면 일대가 한눈에 담긴다. 차는 눈으로 한 번, 향으로 한 번, 입으로 한 번 마신다더니, 눈앞에 드러난 풍경으로도 차 서너 잔은 마신 듯 기분이 상쾌하다. 차나무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찻잎 따기에 여념이 없는 주민의 모습도 이즈음 정금차밭에서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찻잎은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이 윤택해진다는 곡우(양력 4월20일경) 무렵부터 6월까지 따는데, 곡우 전에 딴 찻잎으로 만든 녹차가 우전(雨前)이다. 일찍 딴 찻잎이 귀한 대접을 받는 까닭은, 햇빛을 그만큼 덜 받아 떫은맛이 없기 때문.

올해 하동에서는 높은 기온 덕에 곡우보다 하나 앞선 청명(양력 4월5일경) 전에 찻잎 따기를 시작해, ‘너무 귀해서 임금께도 진상하지 않는다’는 명전(明前)을 맛볼 기회가 생겼다.

우리나라 최대 야생 차 생산지
풍경 바라보며 즐기는 차 한잔

호젓한 차밭에서 차 한잔 마시는 호사를 누리고 싶다면, 사회적 기업 놀루와가 대여하는 ‘차마실 키트’를 이용해도 좋다. 하동 야생 차 2종과 다기 세트, 온수가 든 보온병과 설명서 등을 꼼꼼히 갖춰 초보자도 쉽게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다. 차마실 키트는 원하는 장소에서 수령이 가능하며, 오후 6시까지 반납하면 된다. 4인 세트 2만원.


여유가 되면 정금차밭에서 천년차후계목, 신촌차밭을 거쳐 하동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경남기념물 61호)에 이르는 ‘천년차밭길’을 걸어보자.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는 하동과 야생 차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다.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나무 종자를 828년(흥덕왕 3), 왕명에 따라 이곳에 심었다.

정금차밭에서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까지 편도 2.7km, 어른 걸음으로 50분쯤 걸린다. 자가운전자는 주차하기 쉬운 하동야생차박물관(쌍계사 차나무 시배지 앞)에서 걷기 시작하면 된다.

쌍계사는 하동 야생 차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724년(성덕왕 23) 대비와 삼법이 창건했으며, 진감선사가 중창하면서 가람의 면모를 갖췄다. 진감선사는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나무 종자를 왕명으로 심은 뒤, 차밭을 조성하고 보급한 인물이다.

쌍계사 대웅전(보물 500호) 앞 진감선사탑비(국보 47호)에는 진감선사의 차 생활을 짐작게 하는 글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차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외에도 쌍계사 승탑(보물 380호)과 쌍계사 마애여래좌상(경남문화재자료 48호) 등 문화재가 많다.

스타웨이하동은 하동의 떠오르는 곳이다. 별 모양 스카이워크와 카페, 리조트, 컨벤션 등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며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다. 특히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스카이워크는 아찔함만큼이나 멋진 풍광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두 곳에 마련된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 일대가 한눈에 담긴다.

스타웨이하동

금오산전망대는 하동의 동남쪽 해안을 조망하는 최고의 전망대다. 해발 849m 금오산 정상까지 자동차로 올라가, 멋진 해안 풍경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금오산 일출과 다도해는 하동10경 가운데 첫손에 꼽힐 만큼 아름답다. 아시아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하동짚와이어가 이곳에서 출발한다. 전망대 옆 금오산 하동해맞이공원은 현재 케이블카 공사로 입장이 불가하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화개장터→정금차밭→쌍계사→스타웨이하동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화개장터→정금차밭→쌍계사→스타웨이하동 
둘째 날: 평사리 최참판댁→삼성궁→금오산전망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하동문화관광 www.hadong.go.kr/tour.web
- 쌍계사 www.ssanggyesa.net
- 스타웨이하동 www.starwayhadong.com

문의 전화
- 하동군청 관광진흥과 055)880-2378
- 놀루와 055)883-6544
- 쌍계사 055)883-1901
- 스타웨이하동 055)884-7410 


대중교통
[버스] 서울-화개,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7회(06:40~19:30) 운행. 약 3시간25분 소요. 화개공영버스터미널에서 하동-칠불사 농어촌버스 이용, 정금 정류장 하차, 정금차밭까지 도보 약 600m.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txbus.t-money.co.kr 화개공영버스터미널 055)883-2793

자가운전
순천완주고속도로 구례화엄사 IC→산업로 구례 방면 우회전, 7.8km→냉천교차로에서 하동 방면 오른쪽 도로, 14.9km→화개삼거리에서 쌍계사 방면 좌회전→화개교 건너 좌회전→정금대비길 방면 우회전→정금삼거리 좌회전→정금차밭

숙박 정보
- 올모스트홈스테이 하동(한국관광 품질인증업소): 악양면 평사리길, 055)882-5094, www.kolonmall.com/Special/214114
- 켄싱턴리조트 지리산하동: 화개면 쌍계로, 055)880-8290, www.kensington.co.kr/rhd 
- 아름다운산골: 화개면 범왕길, 010-6273-7743, www.harmony-pension.co.kr 
- 섬진강호텔: 금성면 산업로, 055)884-8071

식당 정보
- 쉬어가기좋은날(산채더덕구이정식·재첩정식): 화개면 쌍계사길, 055)883-4375
- 청운식당(참게탕): 화개면 쌍계사길, 055)883-1666 
- 혜성식당(재첩국정식): 화개면 화개로, 055)883-2140 
- 벚꽃경양식(수제돈가스): 화개면 화개로, 055)883-4007

주변 볼거리
하동편백자연휴양림, 하동레일바이크, 하동 백련리도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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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