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가정의 달 신풍속도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4.26 14:44:12
  • 호수 13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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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지도 모이지도…답답한 5월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매년 5월은 부담스럽다. 각종 기념일마다 선물을 준비하고 어떤 계획을 잡아야 할지 고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선택의 폭이 줄어들었다. 이전과 달라진 가정의 달 세태에 대해 알아봤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여럿이 만나는 것보다는 비대면으로 안부를 묻거나 선물을 보내주는 문화로 바뀐 것이다. 코로나19가 지속되자 가정의 달인 5월도 변하고 있다. 5월5일 어린이날, 5월8일 어버이날, 5월15일 스승의 날 등 기념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대면이 일상화가 된 지금 과거와는 다른 기념일을 보낼 전망이다. 

나들이 없는
어린이날

지난해부터 지자체나 기관·단체 등은 매년마다 해왔던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취소했다. 집에서 ‘어린이날’을 보내는 어린이가 늘었다. 반면 행사 참여나 나들이를 대신해 선물 구입만 이뤄질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휴원기간이 길어지는 곳도 있다.

사상 유례없는 감염병 사태로 바깥 외출이 쉽지 않았던 탓에 어린이날 선물을 사러 나오는 것보단 인터넷쇼핑을 할 가능성도 크다.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 시장과 가격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제품 위주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난감 체험 공간을 곳곳에 마련해서 어린이 손님을 공략할 전망이다. 


매년 5월 1년 중 복지 시설에 후원금과 후원품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달이었다. 하지만 경기도의 한 아동 생활 시설은 작년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선물을 ‘1인당 하나씩’도 주지 못했다. 어린이날 후원품이 코로나19 이전 어린이날과 비교했을 때 절반도 받지 못했다.

후원 자체가 금지된 건 아니지만 직접 방문을 막아놓으니 후원 체가 들어오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가 계속되자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지 않자 복지원 아이들은 선물 자체를 받지 못할뿐더러 복지원 재정 상황도 여유가 없다. 후원은 많이 줄었는데 학교나 어린이집에 나가지 못하니 식비가 더 나가는 상황이 연출됐다.

충남 서산의 한 보육원은 연례행사이던 어린이날 동물원·놀이공원 나들이를 조촐한 과자 파티로 대체했다. 

‘아픈 어린이’들도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다. 큰 병원의 경우 매년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열리지 않는다. 큰 대학병원의 경우 공연, 캐리커처 그리기, 타투 스티커 붙이기 등 크고 작은 행사를 열어 어린이들에게 놀거리를 제공했다. 

보육원 후원물품 급격히 줄어 
선생님께 영상감사 인사 전해

이런 어린이들에 대한 ‘심리 방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들이 계속 집안에만 있다보면 짜증이 늘고 예민해진다. 특히 남자아이 경우 외부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분출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되니 아이들끼리 힘겨루기로 인해 다툼이 날 수 있다. 


어버이날은 명절처럼 고향에 부모님을 뵈러 가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부모님을 만나 뵙지 못하는 모양새다. 서울에 사는 자녀들은 지방에 있는 부모님을 뵙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명절에 이어 부모님들도 내려오지 말라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아직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어버이날 풍경도 과거와 달라질 전망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부모들은 타향살이하는 자녀들이 걱정돼 “오지 말라”며 말리고, 자녀들은 나름대로 감염 우려 때문에 부모님을 만나 뵈러 갈지 고민하는 등 코로나19가 어버이날 가족 모임에까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각 지역 온라인 맘카페 등에서 “이번 어버이날에 어떻게 하시나요” “어버이날에 시댁 가실 건가요” “코로나19 때문에 어버이날에 부모님 댁에 가야 할지 고민이네요” 등 내용의 글이 여럿 올라왔다. 

코로나19 상황이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이자 부모의 만류에도 고향 등을 방문하겠다며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결혼한 직장인 A씨는 어버이날인 토요일에 양가 어른들을 뵙기 위해 KTX를 타고 고향에 다녀올 계획이다.

비대면 효도
어버이날

A씨는 “양가 부모님이 이런 시기에 꼭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결혼하고 맞는 처음 어버이날 얼굴을 뵙지 않으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주말에 꼭 다녀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급여가 줄어드는 등 경제적 타격을 입은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는 올해 어버이날 선물도 부담이다.

인천에 사는 주부 B씨는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지난 3월 열흘간 무급휴직에 들어가 월급이 30% 깎였다. B씨 부부는 매년 어버이날 양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 하지만 올해는 지갑 상황이 좋지 않아 드리지 않을 예정이다.

또 다른 부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수입이 불안정해지자 양가 부모님 선물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저렴한 선물을 하자니 서운해 하실 것 같고 비싼 선물을 준비하자니 여윳돈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다.

지난해 스승의날 학생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 유치원생들은 두 팔로 하트를 만들며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영상을 찍어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전라도의 한 고등학생들은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한 줄씩 이어 부른 것을 붙여서 ‘감사 노래 릴레이’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1년 대기한 뒤 올해 부임한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첫 스승의 날을 맞았지만 별 감흥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들쭉날쭉한 등교 일정으로 학생들 얼굴을 긴 시간 보지 못해서다.

화상으로
스승의 날


‘스승의 은혜’ 노래도, 카네이션도, 서툰 손편지도 없는 스승의 날을 보낼 예정이다. 학생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교사들은 학적정보 시스템에 올라와 있는 학생사진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그래도 매일 학생들과 통화하며 어려움을 공유하고 애틋한 마음을 나누고 있다. 일주일에 2번씩 20분가량 학급 학생 28명과 통화를 하다 보니 목이 쉴 정도다. 처음에는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어색했던 학생들도 이제는 쾌활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영상으로만 공부하다 보면 학습 능률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한 퀴즈도 나누면서 함께 복습하고 있다. 

수업 중에는 학생들의 집중력을 향상하기 위해 우쿨렐레 연주를 하고 구연동화 실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핵심 내용을 잘 잡아서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자료를 제작해야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파워포인트(PPT) 공부도 열심이다.

학교도 조용한 분위기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외부인 통제에 들어간 대부분의 학교는 졸업생들이 찾아올까 봐 스승의 날에는 교문 통제를 더욱 엄격히 하기로 했다. 

각 지역 맘카페에는 어린이집 스승의 날 선물을 고민하는 글이 여럿 올라오고 있다.


그냥 넘기는
부부의 날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두 살 아이를 보낸다는 한 주부는 “어린이집 측에서 스승의 날 선물을 챙기지 말라는 얘기가 달리 없는 상황이라 선물을 보내려는데 무엇을 사는 게 좋을지 고민”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선물하기 좋은 물품의 종류와 가격 등 정보를 공유하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5월21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의미인 부부의 날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부부들은 외식대신 서로 집에서 식사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풍경으로 바뀔 전망이다. 지난해와 올해 자가 격리나 재택근무로, 부부간 물리적 거리가 훨씬 좁혀진 날들이 이어져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부인과의 접촉이 줄어든 것에 비례해 가족 구성원 간 접촉은 현저히 늘어났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만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 상대 단점이 더 잘 보인다. 고립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처음에는 잘 지내다가 사소한 일로 감정조절이 안 돼서 불안, 분노, 적대감이 커지고 극단적 상황까지 이르는 경우가 있다. 

남극에 파견됐던 사람들에게서 처음 발견됐다 해서 심리학에선 ‘남극형 증후군(winter-over syndrome)’이라고도 한다. 부부 역시 가정 내 관계 밀착변화는 피로감을 넘어 불만으로 때로는 불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반복되는 가사와 육아에 답답해 남편에게 바람 쐬러 가자고 했다가 시비가 붙어 아내가 폭행을 당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 불미스러운 사례가 속출하는가 하면, 폭력까지 가진 않더라도 ‘집안일과 육아를 남일 보듯 하는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게 된다’ ‘아내의 사사건건, 시시콜콜 잔소리에 미쳐버릴 것 같다’는 등 각자의 하소연이 온라인에 줄을 잇고 있다.

부부끼리 외식보다 홈술 대화 
대학서 주최하는 행사 사라져

물론 코로나 사태로 부부 사이가 나빠진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도 있다. 그간 일 때문에 바빠 소홀했던 남편, 혹은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결혼 생활이 더 행복해진 경우도 있다.

매년 5월 셋째주 월요일 하면 ‘성년의 날’이 떠오른다. 이날은 성인이 된 청년들에게 사회인으로서 책임감을 생기게 하고 성인으로서 자부심을 보여주기 위한 기념일이다. 언젠가부터 대학가에서 이날을 ‘성인식’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장미, 향수 그리고 키스가 성년의날 선물로 유명하다. 서울의 대학가에서 성년의 날을 자축하고자 20세가 된 성인이 나왔다. 꽃과 케이크를 양손에 든 채 음식점으로 향하거나 카페에 가서 즐겁게 지냈다. 코로나19 전에는 술집이나 클럽에서 새로운 인연을 찾기도 했다.

갓 스무살이 된 사람들끼리 새로운 만남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성년의 날 풍경이 바뀌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학교에서 하는 행사는 사라지고 오후 10시 영업제한으로 영업으로 인해 이성 간의 즉석만남을 기반으로 하는 술집 영업이 힘들어졌다.

올해는 이날을 기념해 친구들끼리 랜선 술자리를 가진다. 평소 술자리는 안주 선택의 폭이 적지만 랜선 술자리는 자유롭게 원하는 메뉴를 주문해 먹을 수 있다. 갓 성인들은 각자 주문한 치킨 등을 자기 자리에 올려 먹으면서 대화한다.

랜선 술자리
성년의 날

집이라는 공간적인 특성으로 깜짝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영상 속에 부모나 반려견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럼 친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지기도 한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로나19 이후…가정폭력 늘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가정폭력은 크게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가 늘어남에 따라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난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8월까지 범죄 신고통계를 집계한 결과 5대 강력 범죄는 모두 9만812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만6544건보다 8422건 줄었다.

반면 이 기간 아동학대 건수는 증가했다. 2019년 기준 2151건에서 지난해 2243건으로 신고 건수가 4.3% 증가했다.

잇따른 개학 연기와 비대면 수업 증가로 가정폭력 등 아이들 안전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학교가 가정 내 학대를 감지하기 어려워진 점 역시 가정폭력의 증가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온라인 수업에선 학생 대부분이 얼굴 등 신체 일부만 보여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신체학대도 발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아동학대 사건에서 학교 측이 피해 아동으로부터 학대 정황을 발견하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며 교육 당국의 현행 아동관리 시스템에 허점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지난해 5월 경남 창녕에서 불에 달군 쇠젓가락으로 발바닥을 지지고 물이 담긴 욕조에 머리를 담그는 등 초등학생 자녀를 상습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적 공분을 산 ‘창녕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학교 측은 아동학대 의심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피해 아동은 계부와 친모에 의한 학대가 가정에서 자행되고 있는 동안 온라인으로 진행된 원격수업에 매일 출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카메라를 켜는 화상 대면 수업이 아닌 탓에 학교 측은 학대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교사는 50여 차례 아이의 부모와 문자 혹은 전화 등을 주고받기도 했다.

부모는 아이가 잘 있고 온라인 교육을 잘 받고 있다고 전했고 교사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집 머무는 시간 늘면서
아동학대 등 크게 증가

지난 2월 인천 중구에서 한 초등생 여아가 집에서 온몸에 상처와 멍이 든 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아이는 계속해서 온라인 원격수업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됐다.

등교 수업을 하는 날에 부모가 가정 학습이나 체험 학습을 하겠다며 학교에 관련 서류를 제출해 출석 인정을 받았다. 이에 아이는 교육부의 미인정결석 학생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피해 아동이 장기간 등교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 학교 측이 가정 방문을 요구했을 당시에도 부모는 여러 이유를 들며 가정방문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말이 돼서야 교사가 피해 아동과 통화를 할 수 있었지만, 학교 측은 통화만으로는 학대 정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가정 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도 크게 늘었다.

코로나19로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각종 불확실성이 생겨난 가운데 집에서 서로 밀접하게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이 폭력의 대상이 된 것이다.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를 통해 여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상담 건수는 3만9000건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정폭력 상담 비중도 큰 폭으로 늘었다.

2020년 총 상담 건수는 3만9363건으로 이중 가정폭력은 1만5755건으로 나타났다. 성폭력(1만8462건)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상담소는 지난해 1월 전체 상담 건수 중 26%를 차지한 가정폭력 상담 건수 비중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부터 40%로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가정폭력 상담 건수 중 배우자가 가해자인 경우가 58.3%(277건)로 가장 많았으며 부모가 19.4%(92건)로 뒤를 이었다. 형제·자매인 경우는 6.1%(29건)로 확인됐다.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 친부모에 의한 폭력 피해는 90건, 계부모는 2건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코로나19 장기화로 가정폭력이 증가했지만 대개 집 안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의 특성상 발견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주위 이웃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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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