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가정의 달 신풍속도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4.26 14:44:12
  • 호수 1320호
  • 댓글 0개

나가지도 모이지도…답답한 5월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매년 5월은 부담스럽다. 각종 기념일마다 선물을 준비하고 어떤 계획을 잡아야 할지 고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선택의 폭이 줄어들었다. 이전과 달라진 가정의 달 세태에 대해 알아봤다.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여럿이 만나는 것보다는 비대면으로 안부를 묻거나 선물을 보내주는 문화로 바뀐 것이다. 코로나19가 지속되자 가정의 달인 5월도 변하고 있다. 5월5일 어린이날, 5월8일 어버이날, 5월15일 스승의 날 등 기념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대면이 일상화가 된 지금 과거와는 다른 기념일을 보낼 전망이다. 

나들이 없는
어린이날

지난해부터 지자체나 기관·단체 등은 매년마다 해왔던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취소했다. 집에서 ‘어린이날’을 보내는 어린이가 늘었다. 반면 행사 참여나 나들이를 대신해 선물 구입만 이뤄질 수 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휴원기간이 길어지는 곳도 있다.

사상 유례없는 감염병 사태로 바깥 외출이 쉽지 않았던 탓에 어린이날 선물을 사러 나오는 것보단 인터넷쇼핑을 할 가능성도 크다.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 시장과 가격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제품 위주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난감 체험 공간을 곳곳에 마련해서 어린이 손님을 공략할 전망이다. 


매년 5월 1년 중 복지 시설에 후원금과 후원품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달이었다. 하지만 경기도의 한 아동 생활 시설은 작년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선물을 ‘1인당 하나씩’도 주지 못했다. 어린이날 후원품이 코로나19 이전 어린이날과 비교했을 때 절반도 받지 못했다.

후원 자체가 금지된 건 아니지만 직접 방문을 막아놓으니 후원 체가 들어오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가 계속되자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지 않자 복지원 아이들은 선물 자체를 받지 못할뿐더러 복지원 재정 상황도 여유가 없다. 후원은 많이 줄었는데 학교나 어린이집에 나가지 못하니 식비가 더 나가는 상황이 연출됐다.

충남 서산의 한 보육원은 연례행사이던 어린이날 동물원·놀이공원 나들이를 조촐한 과자 파티로 대체했다. 

‘아픈 어린이’들도 별반 상황이 다르지 않다. 큰 병원의 경우 매년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열리지 않는다. 큰 대학병원의 경우 공연, 캐리커처 그리기, 타투 스티커 붙이기 등 크고 작은 행사를 열어 어린이들에게 놀거리를 제공했다. 

보육원 후원물품 급격히 줄어 
선생님께 영상감사 인사 전해

이런 어린이들에 대한 ‘심리 방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들이 계속 집안에만 있다보면 짜증이 늘고 예민해진다. 특히 남자아이 경우 외부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분출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되니 아이들끼리 힘겨루기로 인해 다툼이 날 수 있다. 


어버이날은 명절처럼 고향에 부모님을 뵈러 가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부모님을 만나 뵙지 못하는 모양새다. 서울에 사는 자녀들은 지방에 있는 부모님을 뵙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명절에 이어 부모님들도 내려오지 말라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아직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어버이날 풍경도 과거와 달라질 전망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부모들은 타향살이하는 자녀들이 걱정돼 “오지 말라”며 말리고, 자녀들은 나름대로 감염 우려 때문에 부모님을 만나 뵈러 갈지 고민하는 등 코로나19가 어버이날 가족 모임에까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각 지역 온라인 맘카페 등에서 “이번 어버이날에 어떻게 하시나요” “어버이날에 시댁 가실 건가요” “코로나19 때문에 어버이날에 부모님 댁에 가야 할지 고민이네요” 등 내용의 글이 여럿 올라왔다. 

코로나19 상황이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이자 부모의 만류에도 고향 등을 방문하겠다며 나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결혼한 직장인 A씨는 어버이날인 토요일에 양가 어른들을 뵙기 위해 KTX를 타고 고향에 다녀올 계획이다.

비대면 효도
어버이날

A씨는 “양가 부모님이 이런 시기에 꼭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결혼하고 맞는 처음 어버이날 얼굴을 뵙지 않으면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주말에 꼭 다녀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급여가 줄어드는 등 경제적 타격을 입은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는 올해 어버이날 선물도 부담이다.

인천에 사는 주부 B씨는 남편이 다니는 회사가 지난 3월 열흘간 무급휴직에 들어가 월급이 30% 깎였다. B씨 부부는 매년 어버이날 양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 하지만 올해는 지갑 상황이 좋지 않아 드리지 않을 예정이다.

또 다른 부부는 코로나19로 인해 수입이 불안정해지자 양가 부모님 선물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저렴한 선물을 하자니 서운해 하실 것 같고 비싼 선물을 준비하자니 여윳돈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다.

지난해 스승의날 학생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 유치원생들은 두 팔로 하트를 만들며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영상을 찍어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전라도의 한 고등학생들은 ‘스승의 은혜’ 노래를 한 줄씩 이어 부른 것을 붙여서 ‘감사 노래 릴레이’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1년 대기한 뒤 올해 부임한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첫 스승의 날을 맞았지만 별 감흥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들쭉날쭉한 등교 일정으로 학생들 얼굴을 긴 시간 보지 못해서다.

화상으로
스승의 날


‘스승의 은혜’ 노래도, 카네이션도, 서툰 손편지도 없는 스승의 날을 보낼 예정이다. 학생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교사들은 학적정보 시스템에 올라와 있는 학생사진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그래도 매일 학생들과 통화하며 어려움을 공유하고 애틋한 마음을 나누고 있다. 일주일에 2번씩 20분가량 학급 학생 28명과 통화를 하다 보니 목이 쉴 정도다. 처음에는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어색했던 학생들도 이제는 쾌활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영상으로만 공부하다 보면 학습 능률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한 퀴즈도 나누면서 함께 복습하고 있다. 

수업 중에는 학생들의 집중력을 향상하기 위해 우쿨렐레 연주를 하고 구연동화 실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핵심 내용을 잘 잡아서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자료를 제작해야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파워포인트(PPT) 공부도 열심이다.

학교도 조용한 분위기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외부인 통제에 들어간 대부분의 학교는 졸업생들이 찾아올까 봐 스승의 날에는 교문 통제를 더욱 엄격히 하기로 했다. 

각 지역 맘카페에는 어린이집 스승의 날 선물을 고민하는 글이 여럿 올라오고 있다.


그냥 넘기는
부부의 날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두 살 아이를 보낸다는 한 주부는 “어린이집 측에서 스승의 날 선물을 챙기지 말라는 얘기가 달리 없는 상황이라 선물을 보내려는데 무엇을 사는 게 좋을지 고민”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선물하기 좋은 물품의 종류와 가격 등 정보를 공유하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5월21일은 둘이 하나가 되는 의미인 부부의 날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부부들은 외식대신 서로 집에서 식사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풍경으로 바뀔 전망이다. 지난해와 올해 자가 격리나 재택근무로, 부부간 물리적 거리가 훨씬 좁혀진 날들이 이어져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부인과의 접촉이 줄어든 것에 비례해 가족 구성원 간 접촉은 현저히 늘어났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지만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 상대 단점이 더 잘 보인다. 고립된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처음에는 잘 지내다가 사소한 일로 감정조절이 안 돼서 불안, 분노, 적대감이 커지고 극단적 상황까지 이르는 경우가 있다. 

남극에 파견됐던 사람들에게서 처음 발견됐다 해서 심리학에선 ‘남극형 증후군(winter-over syndrome)’이라고도 한다. 부부 역시 가정 내 관계 밀착변화는 피로감을 넘어 불만으로 때로는 불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반복되는 가사와 육아에 답답해 남편에게 바람 쐬러 가자고 했다가 시비가 붙어 아내가 폭행을 당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 불미스러운 사례가 속출하는가 하면, 폭력까지 가진 않더라도 ‘집안일과 육아를 남일 보듯 하는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게 된다’ ‘아내의 사사건건, 시시콜콜 잔소리에 미쳐버릴 것 같다’는 등 각자의 하소연이 온라인에 줄을 잇고 있다.

부부끼리 외식보다 홈술 대화 
대학서 주최하는 행사 사라져

물론 코로나 사태로 부부 사이가 나빠진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도 있다. 그간 일 때문에 바빠 소홀했던 남편, 혹은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결혼 생활이 더 행복해진 경우도 있다.

매년 5월 셋째주 월요일 하면 ‘성년의 날’이 떠오른다. 이날은 성인이 된 청년들에게 사회인으로서 책임감을 생기게 하고 성인으로서 자부심을 보여주기 위한 기념일이다. 언젠가부터 대학가에서 이날을 ‘성인식’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장미, 향수 그리고 키스가 성년의날 선물로 유명하다. 서울의 대학가에서 성년의 날을 자축하고자 20세가 된 성인이 나왔다. 꽃과 케이크를 양손에 든 채 음식점으로 향하거나 카페에 가서 즐겁게 지냈다. 코로나19 전에는 술집이나 클럽에서 새로운 인연을 찾기도 했다.

갓 스무살이 된 사람들끼리 새로운 만남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성년의 날 풍경이 바뀌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학교에서 하는 행사는 사라지고 오후 10시 영업제한으로 영업으로 인해 이성 간의 즉석만남을 기반으로 하는 술집 영업이 힘들어졌다.

올해는 이날을 기념해 친구들끼리 랜선 술자리를 가진다. 평소 술자리는 안주 선택의 폭이 적지만 랜선 술자리는 자유롭게 원하는 메뉴를 주문해 먹을 수 있다. 갓 성인들은 각자 주문한 치킨 등을 자기 자리에 올려 먹으면서 대화한다.

랜선 술자리
성년의 날

집이라는 공간적인 특성으로 깜짝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영상 속에 부모나 반려견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럼 친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지기도 한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코로나19 이후…가정폭력 늘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가정폭력은 크게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가 늘어남에 따라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난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8월까지 범죄 신고통계를 집계한 결과 5대 강력 범죄는 모두 9만812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만6544건보다 8422건 줄었다.

반면 이 기간 아동학대 건수는 증가했다. 2019년 기준 2151건에서 지난해 2243건으로 신고 건수가 4.3% 증가했다.

잇따른 개학 연기와 비대면 수업 증가로 가정폭력 등 아이들 안전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학교가 가정 내 학대를 감지하기 어려워진 점 역시 가정폭력의 증가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온라인 수업에선 학생 대부분이 얼굴 등 신체 일부만 보여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신체학대도 발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아동학대 사건에서 학교 측이 피해 아동으로부터 학대 정황을 발견하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며 교육 당국의 현행 아동관리 시스템에 허점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지난해 5월 경남 창녕에서 불에 달군 쇠젓가락으로 발바닥을 지지고 물이 담긴 욕조에 머리를 담그는 등 초등학생 자녀를 상습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적 공분을 산 ‘창녕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학교 측은 아동학대 의심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피해 아동은 계부와 친모에 의한 학대가 가정에서 자행되고 있는 동안 온라인으로 진행된 원격수업에 매일 출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카메라를 켜는 화상 대면 수업이 아닌 탓에 학교 측은 학대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 교사는 50여 차례 아이의 부모와 문자 혹은 전화 등을 주고받기도 했다.

부모는 아이가 잘 있고 온라인 교육을 잘 받고 있다고 전했고 교사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집 머무는 시간 늘면서
아동학대 등 크게 증가

지난 2월 인천 중구에서 한 초등생 여아가 집에서 온몸에 상처와 멍이 든 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아이는 계속해서 온라인 원격수업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됐다.

등교 수업을 하는 날에 부모가 가정 학습이나 체험 학습을 하겠다며 학교에 관련 서류를 제출해 출석 인정을 받았다. 이에 아이는 교육부의 미인정결석 학생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피해 아동이 장기간 등교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 학교 측이 가정 방문을 요구했을 당시에도 부모는 여러 이유를 들며 가정방문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말이 돼서야 교사가 피해 아동과 통화를 할 수 있었지만, 학교 측은 통화만으로는 학대 정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며 가정 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도 크게 늘었다.

코로나19로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각종 불확실성이 생겨난 가운데 집에서 서로 밀접하게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이 폭력의 대상이 된 것이다.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를 통해 여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상담 건수는 3만9000건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정폭력 상담 비중도 큰 폭으로 늘었다.

2020년 총 상담 건수는 3만9363건으로 이중 가정폭력은 1만5755건으로 나타났다. 성폭력(1만8462건)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상담소는 지난해 1월 전체 상담 건수 중 26%를 차지한 가정폭력 상담 건수 비중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월부터 40%로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가정폭력 상담 건수 중 배우자가 가해자인 경우가 58.3%(277건)로 가장 많았으며 부모가 19.4%(92건)로 뒤를 이었다. 형제·자매인 경우는 6.1%(29건)로 확인됐다.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 친부모에 의한 폭력 피해는 90건, 계부모는 2건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코로나19 장기화로 가정폭력이 증가했지만 대개 집 안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의 특성상 발견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주위 이웃들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