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1년 보육사업 안내 책자 채용방법 규정에는 ‘3·1절이 근로제공 의무가 없는 공휴일이므로 근로계약 체결 시 해당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을 원칙으로 함’이라는 규정이 올해 신설됐다. 그러나 이는 규정사항이기 때문에 구청과 보건복지부는 근로계약서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며 노동청에 문의하라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한 보육교사모임 카페에는 원장이 연차 사용 날짜 등의 이유로 근로계약서 날짜를 3월2일로 작성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365일에서 하루가 모자라 퇴직금을 받을 수 없고,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면 보육교사는 호봉책정과 승급까지 문제가 된다.
구청도 모르는 규정
보육교사는 3월 새 학기 시작 전 원아 명단관리와 게시판 환경 등을 조성한다. 보육교사들은 자신이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게 될까봐 근로계약서 작성 시 문제점을 발견해도 원장에게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근로기준법 34조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퇴직급여제도에 관해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1년 이상 근속한 경우는 고용형식에 관계없이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보육교사는 3월2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듬해 2월28일에 퇴직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겉으로는 문제가 전혀 없는 계약이지만, 어린이집 같은 교육시설은 학기가 있기 때문에 일반기업과 달리 3월1일부터 2월28일까지를 1년으로 정한다.
원장은 보육교사와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면 구청이나 지자체에 임면보고한다.
일부 보육교사는 올해 보육사업 채용방법 규정이 변경됐음에도 원장의 지시로 근로계약서 날짜를 3월2일로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한 어린이집은 보육교사가 아이를 돌보고 있을 때 근로계약서를 체결하기도 한다.
원장들이 근로계약서 내용을 보여주지 않고 사본을 제공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양쪽이 협의해 꼼꼼하게 확인해야하는 근로계약서를 원장이 퇴직금 지급을 하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보육교사가 근로계약서의 날짜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원장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음에도 해당 교사가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를 빌미로 해당 보육교사를 사전 통보 없이 해고하는 경우도 있다. 해고된 보육교사는 원장들 사이서 공유하는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해당 교사는 인근 어린이집에서 일할 수 없다. 3월2일로 계약했지만 실제 일한 날짜는 그 이전부터라 퇴직금을 받게 된 사례가 있긴 하지만 호봉 상승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호봉 책정 기준 날짜 역시 3월1일부터 2월28일을 기준으로 하는데, 실제 일했던 기간이 2월부터였어도 근로계약서상 날짜가 3월2일이기 때문이다. 호봉 책정 기준인 365일 중 하루가 모자라 하루를 채우려고 보육교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일해야 한다.
구청 직원도 규정 바뀐 사실 몰라
호봉책정, 승급에서도 문제 발생
함미영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지부장도 과거 어린이집에서 근무한 적 있다. 개학 준비를 위해 2월부터 어린이집에 출근했지만 그는 3월1일이 금요일인 법정공휴일이라며 어린이집에서 임면 날짜를 3월4일로 보고해 그만둘 때 1년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퇴직금을 받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실제 일한 것을 근거로 구청과 지자체 등에 끊임없이 민원을 넣고 나서야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또 한 어린이집에서는 한 번에 7명의 보육교사가 퇴사했다. 그중 6명이 실제 근로했던 날짜와 다르게 3월1일자가 아닌 다른 날짜로 구청에 임면보고 돼 퇴직금을 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함 지부장은 “최저시급을 적용해도 6명의 퇴직금이 1000만원 이상인데 원장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고 돈을 어떻게 사용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구청에 보고된 임면 날짜는 수정이 가능하지만 과정이 복잡하다고 보육관계자들은 전했다.
구청 관계자는 “임면 날짜는 공문을 통해 수정이 가능하다”며 “구립의 경우 임면보고를 3월2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민간의 경우 퇴직금이나 인건비 부분에서 지원받는 부분이 적다보니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원장들이 잘 몰랐거나 착각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구청에서는 지난해까지 3월2일 날짜로 임면보고 된 근로계약서 중 원이 구청에 수정사항이 있다고 전달하지 않는 한 따로 확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근로계약서가 서로 합의해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3월2일로 체결해 문제가 발생하고 해당 사실이 밝혀져도 이에 대해 구청은 행정처분을 내릴 수 없고 지도만 가능하는 것이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보육사업의 바뀐 규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구청 관계자는 “규정이 추가된 사실을 이제야 인지했고, 앞으로 원장들에게 근로계약에 있어 현장지도를 더 강조하겠다”며 “문제가 된다면 노동청에 보육교사가 직접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해당 사항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보건복지부가 어린이집을 관리하지만 노동법에 근거해 규정을 제정한 것”이라며 “보건복지부는 시정명령과 행정처분만 내리기 때문에 근로계약서 문제에 대해 따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함 지부장은 “3월1일을 포함한 규정이 지침에 반영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날짜 변경을 보육교사가 아닌 원장이 직접 하기 때문에 보육교사가 직접 수정하도록 요청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3월2일에 임면보고 된 사항에 대해 수정사항 요청이 없더라도 지자체 및 보건복지부가 사전에 파악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함 지부장은 “보육교사가 기본권을 주장하면, 원장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이니 희생과 봉사를 강요한다”며 “보육교사가 원장에게 물품을 사달라고 하면 사주지 않고, 교사들은 쓰레기통을 뒤지며 아이들의 교구를 만들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희생과 봉사만 강요
요즘 보육교사는 아동학대 등으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실정이다. 보육교사의 처우개선을 통해 부모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으로 탈바꿈하고, 보건복지부가 규정을 악용하는 사례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