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풀지 못한 구미 사건 미스터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3.22 13:20:32
  • 호수 13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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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바뀌고 아빠 어디로?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막장드라마 줄거리보다 더한 사건 전모가 드러났다. 경북 구미의 한 빈집에 6개월 동안 방치됐다가 숨진 3세 여아의 친모가 최초 발견자였던 외할머니로 밝혀졌다. 정작 당사자는 DNA 검사 결과를 부인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친모가 자신이 낳은 딸과 비슷한 시기에 출산 외손녀를 바꿔치기했다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 구미 3세 여아 살인 사건과 관련해 DNA 검사 결과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석모씨. 석씨는 외조모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검사 결과 친모인 것으로 드러난 상태다.

지난 2월10일 경북 구미시 한 빌라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3세 여자아이인 보람양이 숨져 있는 것을 건물 아래층에 있는 외할머니인 석모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집주인은 보람양의 어머니인 김모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석모씨에게 집 방문을 요청했다. 집을 찾아간 석모씨는 숨진 지 오래된 외손녀 보람양을 발견한 것이다.

3세 여아
반미라 상태 

사건이 벌어지기 약 6개월 전 김모씨는 딸을 두고 혼자 8월경에 이사했다. 이후 홀로 버려진 아이가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조하고 밀폐된 곳이었기 때문에 시신이 완전히 부패하지 않아서 반미라 상태로 발견됐다고 보도됐지만, 사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딸과 함께 살았던 김모씨는 몇 달 전 먹을 것도 남기지 않고, 아이만을 집에 내버려 둔 채 다른 곳으로 떠났다. 수사당국은 전기도 끊긴 상황에서 혼자 남겨진 아이가 아사하고,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뒤 발견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지난달 19일 경찰은 김모씨를 살인, 아동복지법· 아동수당법·영유아보호법 위반 등 4개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김모씨는 진술을 통해 “이사 후 빈집에 아이를 두고 왔다. 아마 죽었을 것”이라며 “전 남편의 아이라 보기 싫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방치돼 반미라 상태가 될 때까지 몰랐던 것은 석모씨와 김모씨가 서로 왕래를 하지 않은 까닭으로 전해진다. 또 보람양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석모씨도 아이의 죽음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아이가 질병이나 폭행, 상해, 학대 등으로 이미 기력을 잃은 상태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김모씨는 남편과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갖고 결혼했다. 지인들에 의하면, 김모씨의 외도로 지난해 4월 이혼했다. 남편과 떨어져 살게 된 김모씨가 아이를 양육하게 된 것이다. 또 김모씨는 지난해 8월 초 딸을 빌라에 남겨둔 채 혼자 재혼할 남성 집으로 이사했다.

당시 한전의 단전 조치로 집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한국전력공사 구미지점에 따르면 A씨가 전기요금 5개월치를 내지 않아 지난해 5월20일 단전 조치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김모씨는 혼자 집을 나선 8월 초까지 2개월 반 동안 전기 없이 딸과 함께 생활한 것이다.

지난해 8월 딸만 두고 이사
2개월 동안 전기 없이 생활


빌라 아래층에 친정 부모가 살고 있었지만, 왕래를 전혀 하지 않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보람양은 제대로 씻지 못하고 영양 공급도 받지 못해 아사 직전의 비참한 모습이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달 25일 한국전력공사 경북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5월경 김씨와 3세 딸아이가 함께 살던 빌라에 전기요금이 3개월간 체납돼 전류제한기를 설치했다. 빌라는 가구당 월평균 1만2000원정도 전기를 사용하는 미니 투룸 형태다.

전류제한기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주택용 전기에 한해, 최소한의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660와트(W)의 전기를 제공하는 조치로 흔히 ‘단전’으로 알려져 있다. 한전은 전류제한기 설치 후 곧바로 보건복지부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에 단전 사실을 알렸으며, 이후 6월과 7월 두 차례 더 연속해서 단전 사실을 전했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은 단전, 단수 등 공공·민관 기관의 빅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복지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는 사회 취약계층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복지 지원을 돕는 장치다.

▲ 김한탁 구리경찰서장

하지만 보건복지부에서는 한전이 단전 사실을 알린 지 4개월이 지난 9월에야 해당 자치단체인 구미시에 이런 사실을 ‘행복이음시스템’으로 전달했다. 보건복지부는 2개월에 한 번꼴로 단전 등의 자료를 수집해 해당 지자체에 복지 사각지대 대상자들을 통보하고 있다.

구미시가 김모씨의 가정을 위기 가구로 지정하려고 했지만, 김모씨의 거짓말로 무산됐다. 구미시가 해당 절차에 따라 통보받고 동사무소로 통지했다. 동사무소 공무원이 실태조사를 위해 김모씨 집으로 찾아갔지만 사람이 없어 안내문을 현관문에 붙인 뒤 돌아왔다.

안내문을 본 김모씨는 동사무소에 연락해 “나는 현재 근로소득으로 생활하고 있고 남편도 소득이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동사무소 직원들은 간단한 안내만 한 뒤 조사를 마무리했다. 김모씨의 거짓말로 인해 동사무소 직원들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960만원
수당 챙겨

주위 증언에 따르면 김모씨는 딸이 숨진 채 발견되기 전까지 가족 및 주변인에게 아이와 함께 생활한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까지 숨진 딸의 명의로 구미시가 매달 지급하는 양육·아동수당을 받아왔다. 시는 김모씨에게 약 96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모씨의 이상한 행동은 SNS 계정에서도 나왔다. 김모씨가 이사한 지 석 달 후 SNS에 아이 사진을 올린 뒤 “사랑해, 말 좀 잘 들어줘. 제발”이라고 적었다. 신기한 점은 이사한 날 SNS에 게재한 딸 아이 사진을 모두 없앴다가 3개월 뒤에 다시 올렸다는 점이다.

딸을 숨지게 한 혐의로 김모씨와 이를 공모한 석모씨가 경찰에 검거된 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상황이 상황이 바뀌었다. 외할머니로 알고 있던 석모씨가 보람양의 친모로 밝혀진 것이다.

보람양과 김모씨는 자매지간인 셈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숨진 보람양과 구속된 석모씨의 DNA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DNA 검사를 주변 인물까지 확대해 숨진 아이와 석모씨 사이에 친자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애초 외할머니로 알려졌지만 DNA 검사 결과 아이의 친모로 밝혀진 석모씨에 대해 사체유기 미수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석모씨는 끝까지 출산을 부인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석씨가 친모일 확률은 100%에 수렴한다고 밝혔다.

석모씨는 지난 17일 오후 검찰로 넘겨지는 과정에서 ‘숨진 아이가 본인의 딸이 맞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 ⓒ구미경찰서

석모씨는 ‘DNA 검사 결과가 잘못됐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기자의 손을 붙잡으며 “제가 아니라고 얘기할 땐, 제발 제 진심을 좀 믿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며 “진짜 낳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에서 잘못한 점이 없느냐’는 물음에도 “네, 없다”며 “정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국과수는 “유전자 검사 정확도는 케이스마다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다”면서도 “이번 경우에는 친자관계 확률이 99.9999%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국과수는 숨진 여아, 김모씨, 김모씨의 전 남편 등의 유전자 검사에서 친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낳은 적 
정말 없다”

국과수는 결과가 너무 황당해서 여러 번 반복 검사를 하고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경찰은 김모씨의 친정어머니인 석씨에게까지 유전자 검사를 확대한 결과, 석모씨가 3세 여아의 친모인 것으로 확인했다. 모근과 구강상피세포 등을 이용하는 DNA 검사 정확도는 99.9%로 알려져 있다.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는 석모씨의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정상적 가족 관계가 아니었고, 가족 간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 여러 사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며 “유전자 검사로 결과를 남겨 놓자는 취지에서(석모씨를) 검사했는데 외할머니가 친모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경찰은 석모씨가 보람양의 친모일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으며 석모씨와 김모씨의 임신과 출산 시기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석모씨가 자신의 출산 사실을 남편 등에게 감추기 위해 숨진 아이를 손녀로 바꿔치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숨진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당초 숨진 아이의 ‘외할아버지’로 알려진 석모씨의 남편은 친부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석모씨의 출산 경위와 아이를 손녀로 둔갑시킨 이유 등을 조사하면서 숨진 아이의 친부도 찾고 있다. 보람양의 친부를 찾기 위해 친모 석모씨와 관련된 주변 인물 100여명의 DNA 검사에 경찰이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김모씨가 출산한 아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일각에선 또 다른 강력범죄의 가능성마저 제기하고 있다. 자신의 출산 사실을 감추고 숨진 아이를 손녀로 둔갑하는 과정에서 진짜 손녀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석모씨의 딸 김모씨는 2018년 1월 딸을 출산했다. 경찰은 비슷한 시기 석모씨도 출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48세였다. 전문가들은 폐경기에 가까울수록 출산율이 낮지만, 임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보통 폐경기는 50대 전후지만 생리를 하고 난자가 나올 경우 임신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박경동 효성병원 이사장도 “난소 기능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50세가 넘어서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DNA 검사…외할머니가 친모 
친모가 딸 바꿔치기 가능성?

석모씨와 남편은 구미시 상모사곡동 빌라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김모씨가 살던 빌라 위층 집에서 보람양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도 두 사람이 함께 갔다.

석씨는 DNA 결과가 나온 뒤에도 “나는 출산한 사실이 없다”며 출산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함께 사는 남편에게 과연 9개월 이상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기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남는다. 물론 남편이 석씨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모르는 체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만약 석모씨가 혼외임신을 했기 때문에 임신·출산 사실을 숨겼다면 남편과의 부부관계를 파탄내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의미다. 그렇더라도 몰래 출산한 아이를 자신의 외손녀와 바꿔치기했다는 것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다. 

석모씨의 딸 김모씨가 2018년 1월 출산한 사실은 병원 기록과 담당 의사의 증언으로도 확인된다. 그러나 석모씨의 임신·출산과 관련한 병원 기록은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아직 석모씨의 병원 기록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모씨가 조산원이나 집에서 출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임신·출산의 전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병원을 이용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점도 남는다. 

경찰 관계자도 “DNA는 일치하는데 병원 진료기록이 없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남편이 아닌 남성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식임을 알고 있을 석모씨가 다른 사람 명의의 건강보험으로 병원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모씨와 그의 전남편이 모두 보람양과 친딸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점도 의문이다. 김모씨가 전남편과 헤어진 시점은 지난해 4월쯤으로, 출산 전후인 2018년 1월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때다. 경찰에 따르면 김모씨와 전남편 모두 3세 여아가 숨진 이후에도 자신의 친딸로 알고 있었다. 

김모씨의 전 남편은 지난 11일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자신이 ‘처제’를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부모가 모두 친자식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석모씨는 어떻게 딸을 바꿔치기 했을까. 이에 대해 경찰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과수가 진행한 총 4번의 검사에서는 모두 석씨가 보람양 친모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석모씨의 남편은 친부가 아니었다. 물론 김모씨의 전 남편도 아니었다. 경찰은 석모씨의 내연남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의 DNA도 검사했지만 두 사람 모두 보람양 친부가 아니었다. DNA 검사로는 A양 친모가 석모씨라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 친부는 누구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남편도
몰랐을까?

전문가들은 석모씨가 딸을 바꿔치기했다면 그 행동이 일반적인 범죄 심리와 거리감이 있다고 분석했다. 출산 직후 자신의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그 아이를 숨지게 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지, 아이를 바꿔치기하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석모씨와 김모씨 두 모녀 모두 일을 저지르고 수습하지 못하는 특성을 보였다”며 “석모씨는 보람양이 친딸이란 사실이 알려진다는 결과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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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권 전쟁’ 이재명-한덕수 파워게임

‘주도권 전쟁’ 이재명-한덕수 파워게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됨에 따라 한덕수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 그런 한 총리 옆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우뚝 섰다. 국정 주도권이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혼란스러운 한 해가 저물어간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란 대통령이 궐위, 또는 사고로 인해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이를 대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권한대행의 범위는 법으로 정해져 있으며 조약 체결이나 국군통수권을 비롯해 긴급명령·긴급경제명령 발동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헌정사 세 번째 권한대행이지만 구체적인 권한의 범위를 놓고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쌓여가는 요구안 첫 번째 권한대행은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서 고건 전 국무총리가 맡았다. 이후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공백을 채웠다. 윤석열정부서는 한덕수 권한대행이 그 자리를 맡으면서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권한대행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한 권한대행은 경제부총리와 한국무역협회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외교·안보는 물론 주가와 환율 등 경제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한 권한대행은 요동치는 경제 상황 안정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국정 주도권은 법적으로 권한을 가진 한 권한대행이 쥔 것처럼 보이지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입김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은 한 총리에 대한 탄핵 카드를 들고 있을뿐더러 헌법재판관 임명권과 거부권을 놓고 여당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이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무회의 심의 과정에 참여한 점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계엄법 제 2조 6항에 따라 국방부 장관의 계엄 선포 건의가 국무총리를 거쳐서 대통령에게 이뤄졌다면 내란죄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며 한 권한대행을 내란 혐의로 고발했다. 한 권한대행의 탄핵소추안 가결은 야권 의석수만으로도 가능한 만큼 정국의 목줄은 사실상 야당이 쥐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민주당 내부서도 한 권한대행의 탄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부겸 전 총리는 “나중에 (한 권한대행)수사를 하다가 혐의가 드러나면 그때 탄핵을 하면 되지 않나”라며 “당장 법안 하나하나 가지고 ‘뭘 하면 탄핵하겠다’고 하는 것은 국민이 보기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국 민주당은 “국정 혼선을 고려해 일단 탄핵 절차를 밟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전히 당내에서는 한 권한대행에 대한 내란 사태의 책임과 국정 난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국정 안정을 위해 일보 후퇴하겠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의석수로 밀어붙이면 그대로 끝 총리 탄핵 밀당…신중하게 접근 이 대표는 “어제(14일) 한 권한대행과 통화를 했다”며 “이제는 여야를 가리지 말고 정파를 떠나 중립적으로 정부의 입장서 국정을 해나가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한대행은 교과서적으로 현상 유지관리가 주 업무고 현상을 변경하거나 새 질서를 형성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대행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는 국정 공백 상황서 ‘탄핵 남발’ 프레임에 걸려들 경우 사법 리스크를 떠안은 민주당에 화살촉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발 물러섰지만 언제든 탄핵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는 상황인 만큼 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쥔 거대 야당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다. 민주당은 어수선한 정국의 틈새를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바로 다음날인 지난 15일 이 대표는 정국 정상화를 위해 국회와 정부가 함께하는 초당적 협의체인 ‘국정안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크게 휘청인 금융경제, 민생에 관한 정책적 협의를 비롯한 추가경정예산안을 신속히 논의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이 이 대표를 선두로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자연스럽게 대권 행보로 이어가려는 포석을 깔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모든 정당과 함께 국정 안정과 국제 신뢰 회복을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며 “시장 안정화, 투자 보호 조치 등 경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이 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 협조를 요구하며 “거절 시 정당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이전에는 당 소속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무적 판단을 했다면 이제는 그냥 국회 구성원이자 제2당으로서 국정 안전, 민생회복이라는 큰 공통의 목표에 협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국민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서 국민이 직접 선출한 권력기관은 이제 국회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띄운 국정안정협의체 제안에 한 권한대행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지만 국민의힘은 사실상 이를 거절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여전히 여당이고 헌법 규정에 의해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됐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당정 협의를 통해 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정치를 끝까지 하려고 한다”며 “그동안 민주당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어떻게 하면 윤정부를 붕괴시킬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마치 탄핵소추 이후 민주당이 여당이 된 것처럼, 국정 운영 책임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건 옳지 못하고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조기 대선 몸풀기 이에 이 대표는 “모든 논의의 주도권은 국민의힘이 가져가도 좋고 이름이나 형식, 내용이 어떻게 결정되든 상관없다”고 받아쳤다. 특히 “혹시라도 국정 전반에 대한 협의체 구성이 부담스럽다면 경제와 민생 분야에 한정해서라도 협의체를 구성해줄 것을 요청한다”며 거듭 국민의힘의 참여를 요구했다. 민주당이 손을 내밀었지만 여당은 연일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권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이 이 대표의 죄를 덮어주는 ‘대선 출마 허가증’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정국 불안정으로 경제와 외교적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묻지마 탄핵’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대통령이 된 듯 ‘상왕 놀이’에 심취한 이재명 한 명의 존재가 한국 경제와 정치의 최대 리스크”라고 거들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 대표를 겨냥해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난동범일 뿐”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홍 시장은 “범죄자, 난동범을 대통령으로 모실 만큼 대한민국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향해 날을 세웠지만 ‘내란 정당’ ‘내란 공범’ 단어 앞에서는 무뎌질 뿐이다. 탄핵 찬성 의사를 밝힌 한동훈 전 대표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친윤(친 윤석열)계를 앉힌 국민의힘인 만큼 윤 대통령의 불법 계엄을 옹호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초당적 협의체를 제안한 야당과 이를 거절한 여당, 그리고 둘 사이에 낀 한 권한대행 간의 삼각관계는 갈수록 복잡하기만 하다. 권력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사이 이 대표는 ‘개딸(개혁의 딸)’과 거리를 두고 보수 세력과 만남을 가지면서 중도 세력 확장까지 보폭을 넓히고 있다. 우선 지난 16일, 그는 자신의 팬클럽인 ‘재명이네 마을’ 이장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이장직은 재명이네 마을 회원 등급 중 하나로 이 대표만 가진 등급이다. 이 대표는 재명이네 마을에 “삼삼오오 광장으로 퇴근하는 여러분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덩달아 요즘 챙겨야 할 일이 참 많아졌다”며 “재명이네 마을 이장직을 내려놓겠다는 아쉬운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비상시국인 만큼 야당 대표로서 업무에 주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이다. 끝없는 딜레마 앞서 민주당 내 비명(비 이재명)계는 이 대표의 팬덤 정치, 정당 사당화를 비판했다. 그동안 이장직을 내려놓지 않은 이 대표가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자 중도층 확장을 위한 조치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8월 ‘이재명 2기체제’가 출범함과 동시에 금투세 폐지 등 경제 분야서 우클릭을 시도해 왔다. 12·3 내란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에도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TK(대구·경북) 지역을 찾거나 정·재계 보수 인사와 만남을 갖는 등 외연 확장에도 힘을 쏟았다. 지난 대선서 “윤석열은 싫지만 이재명도 싫다”는 비토 세력의 목소리가 컸던 만큼 중도층을 사로잡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 탄핵안을 연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국정 안정을 위해 한발 물러섰지만 한 총리가 ‘양곡관리법’을 비롯한 ‘내란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사용할 경우 탄핵안 발의도 고려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 후 한덕수 권한대행의 거부권 사용에 대해 “상황을 봐야겠다”면서도 “똑같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윤석열 시즌2’가 아닌가. 권한대행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만일 사태에 대비해서 탄핵안은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국정 안정을 위해 한 총리에 대한 탄핵안을 한 차례 보류했지만 윤 대통령과 똑같은 절차를 밟는다면 역시나 같은 결과를 맞이할 것이란 경고를 날린 셈이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한 권한대행은 헌법상 절차에 따른 권한대행일 뿐 선출된 권력이 아님을 명심하시라. 권한대행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헌법상의 필요 최소한의 대통령 권한 행사만 대행해야 한다”며 “권한대행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무시하고 국민의 권한을 침탈하는 입법 거부권과 인사권을 남용하는 것은 헌법 위반으로 또 다른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거부해라, 받아라” “임명해라, 못한다” 여야 사이에 낀 한 총리 깊어지는 고민 반면 국민의힘은 해당 법안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맞불을 놨다. 한 권한대행이 살얼음판을 걷는 사이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가 또다른 변수로 떠올랐다. 여야가 국회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임명 문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면서다. 한 권한대행과 이 대표의 힘겨루기 역시 이 문제를 놓고 절정에 치달았다. 우선 야당은 한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거부권은 불가능하지만 재판관 임명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여당은 대통령 궐위 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직무가 정지된 때에는 임명할 수 없다며 ‘거부권은 가능하지만 재판관을 임명할수 없다’는 반대의 입장을 내놨다. 헌법재판관 임명은 향후 치러질 윤 대통령 심판의 핵심이 되는 축이다. 재판관 3인의 공석으로 인해 ‘6인 체제’로 재판을 치를 경우 한 명만 이탈하더라도 탄핵안은 기각된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위해 민주당이 강경하게 밀고 나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탄핵안 남발로 역풍이 불 것이란 우려가 나오지만 윤 대통령 탄핵이 갈림길에 선 지금 민주당은 ‘이판사판 전투태세’라는 게 한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국민의힘 주장대로라면 머릿수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서 무리하게 심판을 치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비상계엄 여진이 상당히 길다”며 “6인 체제로 심판할 경우 국민 정서에 어떻게 비춰질지 안 봐도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 권한대행을 탄핵하는 것은 결이 다른 이야기”라며 “국가가 불안정한 상태서 지도자를 자주 교체하는 건 대내외적으로 바람직하게 비치지 않는다. 지금 상황서 한 권한대행이 내밀 수 있는 카드가 없다. 협력 방안을 모색하며 여야의 협치에 기대는 게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벼랑 끝 탈출구 윤 대통령의 경우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달리 비상계엄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권한대행 역시 주어진 역할은 같지만 과거보다 활동 폭이 좁아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과거부터 권한대행은 여야 사이서 질타를 받는 위치였다. 잘해도 욕 먹고 못하면 더 욕먹는 고충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벌써 대통령처럼 행동하는 이 대표에게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여당의 제어가 필요하다”며 “여야 불문하고 힘든 시기일수록 협치를 최우선 가치로 둬야 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이 이상 국민에게 실망스러운 정치를 보여드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탄핵 후 처음 만났지만…빈손으로 돌아선 여야 지난 18일 국민의힘 권성동 신임 원내대표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상견례를 가졌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첫 대표급 만남이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입장차만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권 원내대표는 “머리를 맞대면 혼란 정국을 잘 수습할 것”이라면서도 “탄핵소추로 인해 국정이 마비 상태니 그것도 풀어주시기를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고 당부했다. 이 대표는 “국정이 매우 불안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헌정 질서의 시급한 복귀”라며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가 완벽할 수 없으니 국회 1당과 2당 모든 세력의 힘을 합치자”고 말했다. 이들은 여야 간 소통을 강화하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가 ‘자주 만나서 같이 합의하고 결론을 낼 수 있는 게 있으면 보여주자. 오른손으로는 싸우더라도 왼손으로는 합의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