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풀지 못한 구미 사건 미스터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3.22 13:20:32
  • 호수 13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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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바뀌고 아빠 어디로?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막장드라마 줄거리보다 더한 사건 전모가 드러났다. 경북 구미의 한 빈집에 6개월 동안 방치됐다가 숨진 3세 여아의 친모가 최초 발견자였던 외할머니로 밝혀졌다. 정작 당사자는 DNA 검사 결과를 부인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친모가 자신이 낳은 딸과 비슷한 시기에 출산 외손녀를 바꿔치기했다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 구미 3세 여아 살인 사건과 관련해 DNA 검사 결과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석모씨. 석씨는 외조모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검사 결과 친모인 것으로 드러난 상태다.

지난 2월10일 경북 구미시 한 빌라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3세 여자아이인 보람양이 숨져 있는 것을 건물 아래층에 있는 외할머니인 석모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집주인은 보람양의 어머니인 김모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석모씨에게 집 방문을 요청했다. 집을 찾아간 석모씨는 숨진 지 오래된 외손녀 보람양을 발견한 것이다.

3세 여아
반미라 상태 

사건이 벌어지기 약 6개월 전 김모씨는 딸을 두고 혼자 8월경에 이사했다. 이후 홀로 버려진 아이가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조하고 밀폐된 곳이었기 때문에 시신이 완전히 부패하지 않아서 반미라 상태로 발견됐다고 보도됐지만, 사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부패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딸과 함께 살았던 김모씨는 몇 달 전 먹을 것도 남기지 않고, 아이만을 집에 내버려 둔 채 다른 곳으로 떠났다. 수사당국은 전기도 끊긴 상황에서 혼자 남겨진 아이가 아사하고,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뒤 발견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지난달 19일 경찰은 김모씨를 살인, 아동복지법· 아동수당법·영유아보호법 위반 등 4개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김모씨는 진술을 통해 “이사 후 빈집에 아이를 두고 왔다. 아마 죽었을 것”이라며 “전 남편의 아이라 보기 싫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방치돼 반미라 상태가 될 때까지 몰랐던 것은 석모씨와 김모씨가 서로 왕래를 하지 않은 까닭으로 전해진다. 또 보람양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석모씨도 아이의 죽음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아이가 질병이나 폭행, 상해, 학대 등으로 이미 기력을 잃은 상태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김모씨는 남편과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갖고 결혼했다. 지인들에 의하면, 김모씨의 외도로 지난해 4월 이혼했다. 남편과 떨어져 살게 된 김모씨가 아이를 양육하게 된 것이다. 또 김모씨는 지난해 8월 초 딸을 빌라에 남겨둔 채 혼자 재혼할 남성 집으로 이사했다.

당시 한전의 단전 조치로 집에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다. 한국전력공사 구미지점에 따르면 A씨가 전기요금 5개월치를 내지 않아 지난해 5월20일 단전 조치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김모씨는 혼자 집을 나선 8월 초까지 2개월 반 동안 전기 없이 딸과 함께 생활한 것이다.

지난해 8월 딸만 두고 이사
2개월 동안 전기 없이 생활


빌라 아래층에 친정 부모가 살고 있었지만, 왕래를 전혀 하지 않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보람양은 제대로 씻지 못하고 영양 공급도 받지 못해 아사 직전의 비참한 모습이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달 25일 한국전력공사 경북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5월경 김씨와 3세 딸아이가 함께 살던 빌라에 전기요금이 3개월간 체납돼 전류제한기를 설치했다. 빌라는 가구당 월평균 1만2000원정도 전기를 사용하는 미니 투룸 형태다.

전류제한기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주택용 전기에 한해, 최소한의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660와트(W)의 전기를 제공하는 조치로 흔히 ‘단전’으로 알려져 있다. 한전은 전류제한기 설치 후 곧바로 보건복지부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에 단전 사실을 알렸으며, 이후 6월과 7월 두 차례 더 연속해서 단전 사실을 전했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은 단전, 단수 등 공공·민관 기관의 빅데이터를 수집, 분석해 복지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는 사회 취약계층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복지 지원을 돕는 장치다.

▲ 김한탁 구리경찰서장

하지만 보건복지부에서는 한전이 단전 사실을 알린 지 4개월이 지난 9월에야 해당 자치단체인 구미시에 이런 사실을 ‘행복이음시스템’으로 전달했다. 보건복지부는 2개월에 한 번꼴로 단전 등의 자료를 수집해 해당 지자체에 복지 사각지대 대상자들을 통보하고 있다.

구미시가 김모씨의 가정을 위기 가구로 지정하려고 했지만, 김모씨의 거짓말로 무산됐다. 구미시가 해당 절차에 따라 통보받고 동사무소로 통지했다. 동사무소 공무원이 실태조사를 위해 김모씨 집으로 찾아갔지만 사람이 없어 안내문을 현관문에 붙인 뒤 돌아왔다.

안내문을 본 김모씨는 동사무소에 연락해 “나는 현재 근로소득으로 생활하고 있고 남편도 소득이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동사무소 직원들은 간단한 안내만 한 뒤 조사를 마무리했다. 김모씨의 거짓말로 인해 동사무소 직원들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960만원
수당 챙겨

주위 증언에 따르면 김모씨는 딸이 숨진 채 발견되기 전까지 가족 및 주변인에게 아이와 함께 생활한 것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까지 숨진 딸의 명의로 구미시가 매달 지급하는 양육·아동수당을 받아왔다. 시는 김모씨에게 약 96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모씨의 이상한 행동은 SNS 계정에서도 나왔다. 김모씨가 이사한 지 석 달 후 SNS에 아이 사진을 올린 뒤 “사랑해, 말 좀 잘 들어줘. 제발”이라고 적었다. 신기한 점은 이사한 날 SNS에 게재한 딸 아이 사진을 모두 없앴다가 3개월 뒤에 다시 올렸다는 점이다.

딸을 숨지게 한 혐의로 김모씨와 이를 공모한 석모씨가 경찰에 검거된 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상황이 상황이 바뀌었다. 외할머니로 알고 있던 석모씨가 보람양의 친모로 밝혀진 것이다.

보람양과 김모씨는 자매지간인 셈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숨진 보람양과 구속된 석모씨의 DNA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DNA 검사를 주변 인물까지 확대해 숨진 아이와 석모씨 사이에 친자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애초 외할머니로 알려졌지만 DNA 검사 결과 아이의 친모로 밝혀진 석모씨에 대해 사체유기 미수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석모씨는 끝까지 출산을 부인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석씨가 친모일 확률은 100%에 수렴한다고 밝혔다.

석모씨는 지난 17일 오후 검찰로 넘겨지는 과정에서 ‘숨진 아이가 본인의 딸이 맞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 ⓒ구미경찰서

석모씨는 ‘DNA 검사 결과가 잘못됐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기자의 손을 붙잡으며 “제가 아니라고 얘기할 땐, 제발 제 진심을 좀 믿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며 “진짜 낳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에서 잘못한 점이 없느냐’는 물음에도 “네, 없다”며 “정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국과수는 “유전자 검사 정확도는 케이스마다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다”면서도 “이번 경우에는 친자관계 확률이 99.9999%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국과수는 숨진 여아, 김모씨, 김모씨의 전 남편 등의 유전자 검사에서 친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낳은 적 
정말 없다”

국과수는 결과가 너무 황당해서 여러 번 반복 검사를 하고 경찰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경찰은 김모씨의 친정어머니인 석씨에게까지 유전자 검사를 확대한 결과, 석모씨가 3세 여아의 친모인 것으로 확인했다. 모근과 구강상피세포 등을 이용하는 DNA 검사 정확도는 99.9%로 알려져 있다.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는 석모씨의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정상적 가족 관계가 아니었고, 가족 간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 여러 사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며 “유전자 검사로 결과를 남겨 놓자는 취지에서(석모씨를) 검사했는데 외할머니가 친모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경찰은 석모씨가 보람양의 친모일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으며 석모씨와 김모씨의 임신과 출산 시기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석모씨가 자신의 출산 사실을 남편 등에게 감추기 위해 숨진 아이를 손녀로 바꿔치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숨진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당초 숨진 아이의 ‘외할아버지’로 알려진 석모씨의 남편은 친부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석모씨의 출산 경위와 아이를 손녀로 둔갑시킨 이유 등을 조사하면서 숨진 아이의 친부도 찾고 있다. 보람양의 친부를 찾기 위해 친모 석모씨와 관련된 주변 인물 100여명의 DNA 검사에 경찰이 나섰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김모씨가 출산한 아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일각에선 또 다른 강력범죄의 가능성마저 제기하고 있다. 자신의 출산 사실을 감추고 숨진 아이를 손녀로 둔갑하는 과정에서 진짜 손녀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석모씨의 딸 김모씨는 2018년 1월 딸을 출산했다. 경찰은 비슷한 시기 석모씨도 출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48세였다. 전문가들은 폐경기에 가까울수록 출산율이 낮지만, 임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보통 폐경기는 50대 전후지만 생리를 하고 난자가 나올 경우 임신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박경동 효성병원 이사장도 “난소 기능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50세가 넘어서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DNA 검사…외할머니가 친모 
친모가 딸 바꿔치기 가능성?

석모씨와 남편은 구미시 상모사곡동 빌라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김모씨가 살던 빌라 위층 집에서 보람양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도 두 사람이 함께 갔다.

석씨는 DNA 결과가 나온 뒤에도 “나는 출산한 사실이 없다”며 출산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함께 사는 남편에게 과연 9개월 이상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기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남는다. 물론 남편이 석씨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모르는 체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만약 석모씨가 혼외임신을 했기 때문에 임신·출산 사실을 숨겼다면 남편과의 부부관계를 파탄내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했다는 의미다. 그렇더라도 몰래 출산한 아이를 자신의 외손녀와 바꿔치기했다는 것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다. 

석모씨의 딸 김모씨가 2018년 1월 출산한 사실은 병원 기록과 담당 의사의 증언으로도 확인된다. 그러나 석모씨의 임신·출산과 관련한 병원 기록은 어디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아직 석모씨의 병원 기록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모씨가 조산원이나 집에서 출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임신·출산의 전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병원을 이용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점도 남는다. 

경찰 관계자도 “DNA는 일치하는데 병원 진료기록이 없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남편이 아닌 남성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식임을 알고 있을 석모씨가 다른 사람 명의의 건강보험으로 병원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모씨와 그의 전남편이 모두 보람양과 친딸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점도 의문이다. 김모씨가 전남편과 헤어진 시점은 지난해 4월쯤으로, 출산 전후인 2018년 1월에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때다. 경찰에 따르면 김모씨와 전남편 모두 3세 여아가 숨진 이후에도 자신의 친딸로 알고 있었다. 

김모씨의 전 남편은 지난 11일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자신이 ‘처제’를 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부모가 모두 친자식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석모씨는 어떻게 딸을 바꿔치기 했을까. 이에 대해 경찰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과수가 진행한 총 4번의 검사에서는 모두 석씨가 보람양 친모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석모씨의 남편은 친부가 아니었다. 물론 김모씨의 전 남편도 아니었다. 경찰은 석모씨의 내연남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의 DNA도 검사했지만 두 사람 모두 보람양 친부가 아니었다. DNA 검사로는 A양 친모가 석모씨라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 친부는 누구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남편도
몰랐을까?

전문가들은 석모씨가 딸을 바꿔치기했다면 그 행동이 일반적인 범죄 심리와 거리감이 있다고 분석했다. 출산 직후 자신의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그 아이를 숨지게 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지, 아이를 바꿔치기하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석모씨와 김모씨 두 모녀 모두 일을 저지르고 수습하지 못하는 특성을 보였다”며 “석모씨는 보람양이 친딸이란 사실이 알려진다는 결과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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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