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책임론’ 광명 살인사건 전말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3.08 14:05:51
  • 호수 13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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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 출동했다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경찰의 초동대응은 중요하다. 최근 경기도 광명시에서 벌어진 흉기 살인사건은 경찰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경찰의 미흡한 초동대처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민들이 공분을 사고 있다.
 

▲ 경기남부경찰청

최근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정인이 사건’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피해 아동인 정인양은 지난해 초 입양된 이후 3차례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이 학대 증거를 찾지 못해 부모에게 돌려보냈다. 결국 정인양은 지난해 10월13일 양천구 목동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미숙

다시 한 번 경찰의 미흡한 초동대처가 문제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달 17일 생명에 위협을 느낀 40대 여성 A씨가 스스로 신고했지만 휴대폰 위치 추적에 실패한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50분이나 걸렸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A씨는 흉기에 찔려 숨진 상태였다.

특히 신고를 접수한 112치안종합상황실(이하 상황실) 직원이 위치 확인의 단서가 되는 중요한 정보를 빠뜨린 바람에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후 인근 660여가구로 범위를 확대해 ‘기약 없는’ 탐문수사를 벌였고,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골든타임’을 허비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건 당일 오전 12시49분경 경기도 광명시에서 거주하던 A씨는 50대 남성 B씨와 말다툼을 했다. B씨는 A씨에게 “다른 남자를 만나지 말라”고 요구했고, A씨가 거부 의사를 밝히자 둘의 갈등은 심화됐다. 


B씨가 잠깐 담배를 피우러 집을 나간 사이, A씨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A씨는 “알고 지내는 남자가 칼을 들고 나를 죽이려 한다”며 신고했고 상황실 직원이 주소를 확인하려고 했다. 이에 A씨는 “모르겠다. 광명인데 ○○○의 집”이라고 답했다.

상황실 직원과 A씨의 대화는 42초간 이어졌고, 그대로 녹취됐다. A씨는 겁에 질려 있었고, 발음도 명확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는 신고자인 A씨와 지인 관계인 B씨의 이름이다. 접수 요원은 A씨의 신고 내용을 듣고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 위급사항 최고 단계인 ‘코드 제로’를 발령했다. 이후 관할인 광명경찰서로 상황을 전파했다.

생명 위협 느껴 112 신고
이름 누락 50분 만에 출동

코드제로란 납치, 감금,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가 의심될 경우 발령되는 경찰 업무 매뉴얼 중 최고 위급 상황 단계다. 사건은 해당 경찰서로 즉각 전파돼 현장 출동 등 업무 지원이 이뤄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A씨가 언급한 B씨의 이름이 누락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당시 광명경찰서 경찰관 21명은 경기남부경찰청 상황실 직원이 A씨의 휴대전화 위치 조회를 통해 확인한 장소로 출동했지만, 정확한 주소를 알지 못해 신속하게 현장을 찾는 데 실패했다.

A씨 휴대전화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꺼져 있던 탓에, 상황실 직원은 기지국과 와이파이 위치를 통해 얻은 장소의 위치를 전파했다. 기지국과 와이파이를 이용한 위치 조회의 오차 범위 반경은 50∼100m로, 이 사건의 경우 해당 범위에 660여가구가 있었다.

경찰관들의 현장 확인이 늦어지자 광명경찰서 112상황실은 경기남부경찰청 상황실 직원이 받은 신고 전화 내용을 다시 파악했고 B씨의 이름이 누락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B씨의 주소지를 확인한 결과, 인근 주택으로 나타났다.
 


경찰관들은 신고 접수 50여분 만인 오전 1시40분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A씨는 B씨에 의해 살해된 뒤였다.

B씨는 A씨가 다른 남자에게 전화한 것으로 착각하고 둔기와 흉기로 마구 때려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B씨는 “말다툼하다가 화가 나서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B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A씨의 주검 상태와 B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신고 전화 직후 피해자가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현장 도착이 신속히 이뤄졌을 경우 A씨가 생존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철저한 감찰을 진행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접수 요원과 지령 요원이 업무미숙 상태에서 급하게 상황을 전파하려다가 벌어진 일로 보인다”며 “잘못이 명확히 드러나면 엄중히 문책할 것”이라고 밝혔다. 감찰 대상은 출동 경찰과 상황실 직원까지 망라한다. 

휴대폰 위치 추적 실패
현장 도착하니 이미 숨져

이번 사건은 개인의 실수라기보다 항공기 사고나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같은 ‘시스템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이 제시한 ‘스위스 치즈모델’처럼 어느 한 단계만의 실수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오류가 겹쳐 치명적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상황실은 하루 40여건의 코드제로 사건을 다룬다. 시간당 2건 가까운 긴급상황이 발생한다는 뜻으로, 그만큼 원활한 시간 및 인력 운용이 이뤄졌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건을 다룬 접수 요원은 경력이 1년이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령 요원과 야간팀장이 사건을 공청·공유했고, 지휘본부는 경기남부경찰청 상황실이였다. 
 

통상 코드제로 사건이 발생하면 경기남부경찰청 상황실이 최종 지휘부가 돼, 보고를 받고 지휘한다. 다만 실질적인 지휘는 해당 경찰서 112상황실이 맡아 현장의 출동반장과 협업한다. 이와 관련, 경찰은 사건 당시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사건의 핵심인 42초 분량의 녹취록은 접수·지령 요원 외에 경기남부경찰청, 광명경찰서, 현장 출동 경찰에게 모두 공청(함께 들음)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모두 녹취록을 접했지만 정작 가해자 B씨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 

여기에 GPS 기반의 위치추적 체계인 LBS시스템이 사건 당시 무용지물로 전락하면서 초동대응을 위한 두 번째 방어선이 무너졌다.

경찰 관계자는 “상황실은 신고자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도 원격제어 등을 통해 신고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면서도 “당시 신고자의 GPS가 꺼져 있거나 한 장소에 너무 오래 머물러 오류가 난 것으로 보인다. 원격제어 시스템도 가동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공분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범죄로 인해 생명을 잃은 피해자 및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당시 112 신고를 받고 초동조치 감찰을 진행 중으로, 관련자에게는 결과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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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