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위기의 스타 강사 설민석

어쩐지 너무 재밌더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스타 역사 강사로 이름을 알린 설민석. 그의 이름 석 자를 내건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가 논란에 휩싸였다. 두 번째 방송까지 시청률 5.9%를 얻으며 순항을 예고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역사왜곡 지적으로 한순간에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설민석과 제작진은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럼에도 여진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 고개 숙인 역사 강사 설민석 ⓒ유튜브

스타 역사 강사 설민석이 세계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설민석은 tvN 예능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콘셉트의 방송이다.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은 지난 20일, 이 프로그램에 대해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게 너무 많아 하나하나 언급하기가 힘들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곽민수 소장은 한양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와 더럼대에서 이집트학을 전공한 전문가다.

전문가 비판
제작진 시인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알렉산드로스가 세웠다는 말이나 프톨레마이오스-클레오파트라 같은 이름이 무슨 성이나 칭호라며 ‘단군’이라는 칭호와 비교한다든가 하는 것들은 정말 황당한 수준”이라며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를 이집트에서 로마로 돌아가 말했다고 한 것 정도는 그냥 애교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곽민수 소장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세워졌다는 것이 정설이며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파르나케스 2세가 이끌던 폰토스 왕국군을 젤라 전투에서 제압한 뒤 로마로 귀국해 거행한 개선식에서 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이외에도 틀린 내용은 정말 많지만, 많은 숫자만큼 일이 많아질 텐데 그렇게 일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생략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미있게 ‘역사 이야기’를 한다고 사실로 확인된 것과 그냥 풍문으로 떠도는 가십거리를 섞어서 말하는 것에 저는 정말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설민석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 문제의식의 극치”라고 강조했다.

곽 소장은 “역사적 사실과 풍문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 이야기를 할 때 관심을 끌기에 분명히 좋은 전략이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그냥 ‘구라 풀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라면 사실과 풍문을 분명하게 구분해 언급해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게다가 이건 언급되는 사실관계 자체가 수시로 틀렸다. 제가 자문한 내용은 잘 반영이 안 돼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보지 마시라”며 “이번 논란 속에서 소위 ‘설민석 류’라고 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조금은 더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틀린 부분 많다” tvN 세계사 강의 파문
뒤늦게 머리 숙여…신뢰 회복 가능할까

이런 상황에 설민석의 과거 역사 왜곡 논란도 재점화되고 있다.

설민석은 2016년 tvN 교양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서 태조 이성계를 여진인이라고 표현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정도전, 이성계, 무학 대사의 조선 건국기를 강의하던 중 이성계가 귀화한 여진인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해당 내용이 방송된 후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이성계의 여진족 설은 학계에서 부정되는 내용이며 여러 자료를 통해 반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설민석은 2013년 인터넷 강의 도중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설민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인 태화관이 있었다. 민족대표들이 그곳에 모여 술을 마시곤 했다”며 “민족대표 33인 중 대부분이 1920년대 친일파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 역사학자 곽민수 ⓒ유튜브

이 같은 내용의 강의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후, 민족대표 33인의 후손들은 “독립선언을 룸살롱 술판으로 변질시키고 손병희의 셋째 부인인 주옥경을 술집 마담으로 폄훼했다”고 주장하며 설민석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자유로운 역사 비평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부득이하게 허용할 수밖에 없는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민족대표들이 1920년대 대부분 친일로 돌아서게 된다고 언급한 부분 등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했다. 

태화관에 있었던 민족대표들 중 3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3·1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인해 옥고를 치르고 나왔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각자 나름대로의 독립운동을 펼쳐 나갔거나 적어도 친일반민족 행위라고 평가할 만한 행위를 하지 않고 지내왔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과거에도 논란
명예훼손 판결

또 민족대표들이 거사 당일 이완용의 단골집인 룸살롱에 갔다고 표현하거나 술에 취해 소란을 피웠다는 표현 등은 “새롭게 건설한 대한민국으로부터 건국훈장까지 추서 또는 수여받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심히 모욕적인 언사이자 필요 이상으로 경멸, 비하 내지 조롱하는 것으로서 역사에 대한 정당한 비평의 범위를 일탈해 그 후손들이 선조에게 품고 있는 합당한 경외와 추모의 감정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하며 총 1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과거 그가 편찬한 삼국지 내용도 재조명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설민석 삼국지 논란’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네티즌들은 ‘설민석 삼국지’ 시리즈에서 유비가 공손찬에게 “손찬 형님”이라고 부르는 부분을 지적했다.

공손찬은 성이 공손, 이름이 찬, 자는 백규로 연의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에게 도움을 주는 성격 좋은 호인으로 묘사된다. 

실제 역사를 다룬 정사에서는 유비와는 노식 선생 밑에서 함께 배움을 받은 사이다. 북방 이민족들을 기마부대 ‘백마의종’으로 몰아치는 장군으로,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공손이 성이고 찬이 이름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초반 중요 인물이다. 

또 과거 방송에서 삼국지 관련 강의에서 손권을 ‘강동의 호랑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강동의 호랑이는 손권의 아버지인 ‘손견’을 지칭하는 별명이다.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측은 방송에서 전해진 사실 관계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tvN은 고심 끝에 지난 21일 밤늦게 입장을 내고 “방대한 고대사 자료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 벌거벗은 세계사 ⓒtvN

이어 “방송 시간에 맞춰 압축 편집하다 보니 역사적인 부분은 큰 맥락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략된 부분이 있었지만 맥락상 개연성에 큰 지장이 없다고 판단해 결과물을 송출했다”며 “불편하셨을 모든 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했다.


tvN은 “재발 방지를 위해 자문단을 더 늘리고 다양한 분야의 자문위원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향후 다시보기 등에서는 일부 자막과 컴퓨터그래픽 등을 보강해 이해에 혼선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사과
엇갈린 반응

설민석도 고개를 숙였다. 설민석은 지난 2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안녕하세요 설민석입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려 “제가 부족하고 모자라서 생긴 부분이다. 제작진은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제 이름을 건 프로그램 중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가 있다. 그런데 지난 2화, 클레오파트라 편에서 강의 중 오류를 범했고, 그 부분을 자문 위원께서 지적해 주셨다”며 “그 부분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tvN 제작진이 정중하게 시청자 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렸다. 제가 판단할 때 제작진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면서 “제 이름을 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모든 잘못은 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설민석은 “제가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서 생긴 부분인 것 같다”면서 “앞으로 여러분들의 말씀들,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여기고 더 성실하고 더 열심히 준비하는 설민석의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로 불편해하셨던 여러분들, 걱정해주셨던 많은 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논란에 휩싸이면서 강사 설민석의 이력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설민석은 1970년생으로 단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후 연세대 교육대학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사회탐구 영역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온라인 교육 플랫폼 이투스, 메가스터디 등의 대표 강사로 활약했고, 최근엔 단꿈교육, 단꿈아이 대표이사이자 방송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성계는 여진인” 과거 논란 재조명
“단순 예능” “역사 왜곡” 엇갈린 반응

생생한 입담으로 학생들뿐 아니라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 <암살> 등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 강의로도 인기를 모았고, 지난해엔 MBC <선을 넘는 녀석들>로 MBC 방송연예대상 버라이어티부문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논란을 두고 네티즌들의 반응은 ‘단순 예능’이냐 ‘역사 왜곡’이냐로 갈렸다.

평소 설민석이 출연하는 방송을 자주 보고 있다고 밝힌 한 40대 직장인 A씨는 “지난 2014년 7월 개봉한 영화 <명량>을 보고 설민석 강사의 팬이 됐다”면서 “영화와 연관한 역사 강의는 정말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번 역사 왜곡 논란으로 그의 다른 강의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30대 직장인 B씨는 “설민석 강사는 방송 출연도 활발하게 하고 대중 영향력도 있는 분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아직 아무런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좀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당 방송 시청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 처지에서도 큰 문제라고 생각된다”며 “구라 풀기, 구라 민석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단순 역사 예능 방송에 불과해 방송사 해명 그대로 편집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대 대학생 C씨는 “역사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동의는 하지만, 예능 방송 아닌가”라면서 “방송사 입장 그대로 편집에 좀 문제가 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예능은 그냥 예능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30대 회사원 D씨는 “조금 과장된 부분에서 지적을 받는 것 같다”면서 “역사라는 것은 결국 후손이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연구하여 입증하는 것인데, 그 입증이 일부 틀리거나 달라질 수 있는 게 역사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는 해석의 영역이라는 말도 있는데, 절대적으로 틀렸다는 지적은 좀 아닌 것 같다. 방송사 편집 문제도 있지 않나”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미지 물거품
신뢰성의 문제

중요한 건 설민석을 향한 시청자의 신뢰가 떨어졌다는 점이다. 그 동안 쌓아온 스타 강사라는 이미지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아무리 방송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하더라도 역사 강사가 역사 논란이 있는 한 입지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설민석을 믿고 보던 시청자들이 설민석을 의심하게 된 이상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선을 넘는 녀석들> 모두 신뢰성의 문제를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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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