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43·44) 파래, 꼴뚜기젓

건강식으로 으뜸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파래 ⓒpixabay

파래

아내에게 파래 이름이 왜 파래인지에 대해 물었다. 

“색이 파래서 파래 아니야?” 

아내의 이와 같은 대답에 은근슬쩍 거들먹거리며 입을 열었다.

“옛날에 김들이 집단 서식하고 있는 곳에 김과 유사하게 생긴 해초가 슬며시 찾아 들어 마치 김처럼 행세하며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김들이 바다의 신을 찾아가 하소연한 거야. ‘재네들 좀 처리해 달라’고. 


바다의 신이 가만히 관찰해보니 서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엄연하게 달랐거든. 그래서 파도에게 명을 내리고, 파도가 그들을 강하게 때리자 색이 파랗게 변해 김들의 서식지에서 밀려나 바닷가로 도망간 거고, 그래서 파도에 맞아 밀려왔다고 해서 파래(來)라 한 거야.”

아내가 잠시 뜸을 들이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연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어디 있긴. 근거가 없으면 먼저 만들어내는 사람이 임자지.”

“여하튼 결국 그게 그거 아니야?” 

파래는 한자로 靑苔(청태)로 파란 이끼를 의미한다.

태는 이끼라는 의미이다.


잎과 줄기의 구별이 분명하지 못하고 고목, 돌, 습한 곳에 자란다.

그런 이유로 바다에서 자라는 이끼를 해태(海苔)라 총칭한다. 

파래는 필자의 설대로 파도에 너무 맞아서 그런지 생명력 아니, 저항력이 강하다.

이런 연유로 흔히 파래를 바다의 청소부라 칭한다.

실례로 1997년 7월9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내용을 간추려 보겠다.

「파래, 오염된 물 정화하는 바다의 청소부

제주도에 근무하는 두 명의 초등학교 교사가 2년간 연구 끝에 해조류의 하나인 파래가 양식장 등에서 나오는 오염수질을 정화하는 기능을 가진 바다의 청소부임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2년 동안 넙치 양식장에서 파래를 거쳐 배출수를 흘려보낸 결과 화학적 산소요구량이 줄어들었고 부유물질도 감소했다. 또한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인과 질소 등도 수치가 크게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들 물질은 오히려 파래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로 공급돼 양식장의 파래가 바다에 있는 파래보다 빨리 자란 것으로 조사됐다.」

위 글을 읽고 떠오르는 사자성어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 파래가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을 수 없다.

파래는 바다 속 영양의 보고로 칼륨, 요오드, 칼슘, 식물성 섬유소 등 몸에 좋은 성분을 고루 함유하고 있어 웰빙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무기질과 칼슘이 풍부해 골다공증과 조혈작용에도 효과가 있다. 또 항산화 작용을 하는 폴리페놀 성분이 들어 있어 각종 세균을 없애고 치주염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파래의 속성을 살피는 중에 40년을 넘게 흡연해 온 필자에게는 어떤 효과를 미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조사하던 중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파래에 함유된 비타민A가 손상된 폐 점막을 재생하고 보호해 주기 때문에 담배의 니코틴을 해독하고 중화하는 데 좋다고 점이었다.

오염된 물 정화하는 바다의 청소부
오징어 효능에 부드러운 육질 장점

꼴뚜기젓

꼴뚜기 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말들이 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 등이다. 한편 해학적이면서도 꼴뚜기를 상당히 비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여하튼 이 대목에서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에 대해 살펴보자.


꼴뚜기를 비하해도 너무 했다는 느낌 든다.

꼴뚜기 입장에서 살피면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이는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에서 유래됐기 때문이다.

이 말은 망둥이가 자신의 주제도 파악하지 못하고 숭어를 따라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 ▲ⓒpixabay

미끈하게 생기고 힘이 좋은 숭어가 바다에서 물 위로 높이 뛰어오르는데, 바닷가 모래밭이나 개펄에 사는 볼품없는 망둥이가 숭어의 뛰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부러워하며 뛰어오르는 모습에서 생겨난 말이다. 

즉 자신의 주제는 망각하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무조건 따라하는 경우를 비하하는 말이다.

그런데 꼴뚜기를 숭어도 아닌 망둥이에 비유했으니 꼴뚜기로서는 굴욕도 이런 굴욕이 있을 수 없다. 

왜 이리도 꼴뚜기를 비하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결국 누군가가 꼴뚜기를 시기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왜냐, 꼴뚜기가 생긴 모습이 뛰어나진 않지만 그 맛은 뛰어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이야기다.

어머니께서 간혹 마른 멸치나 새우를 사오시고는 했는데, 그런 경우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께서 펼쳐놓은 멸치와 새우 사이에 섞여있는 꼴뚜기를 서로 먼저 찾아 먹느라 전쟁을 벌이고는 했다.

정작 멸치와 새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마치 이를 입증하듯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살펴보면 꼴뚜기를 가리켜 바다에서 나는 귀중한 고기라 하여 '고록어(高祿魚)'라 지칭하고 있다.

고록은 말 그대로 높은 녹봉을 의미한다.

어류에 그런 이름을 주었으니 그 진가는 높이 평가돼야 할 일이다. 

또 꼴뚜기 때문에 ‘못생긴 게 맛있다’는 말이 생겨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역시 일어난다.

맛있는 과일의 경우도 새들이나 곤충이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쪼아 먹거나 갉아먹게 되니 생김새가 망가지지 않을 수 없고 꼴뚜기 역시 그런 이유로 비하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꼴뚜기가 왜 이렇게 비하되는지 아니, 왜 정약전은 고록어라 표현했는지 그 이유를 <문화일보>에 실린 기사를 통해 살펴보려 한다. 

「꼴뚜기는 사실 ‘화살 오징엇과’에 속하는 연체동물이다. 일반 오징어처럼 꼴뚜기에도 지방질과 당질이 적은 반면 단백질은 풍부하다. 또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켜주는 타우린도 꼴뚜기에는 풍부하게 함유돼있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오징어나 꼴뚜기가 동맥경화증을 비롯한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징어와 꼴뚜기를 비교한다면 어떤 연체동물이 사람에게 더 이로울까.

일단 성분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국립 수산진흥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꼴뚜기와 오징어 등 오징어류에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타우린(taurine), EPA(아이코사펜타엔산), DHA(도코사헥사엔산)와 같은 고도 불포화 지방산과 핵산 셀레늄(selenium) 등 각종 성인병에 효과가 있는 생리기능성 성분들이 다량 함유돼있다.

또 오징어류의 지방 함량은 1.0%로 쇠고기(안심기준) 16.2%, 돼지고기(삼겹살) 38.3%에 비하여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꼴뚜기에는 오징어가 지니지 못한 강점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부드러운 육질이다.

이에 따라 오징어에 비해 더 소화가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꼴뚜기는 소화기능이 약한 어린이와 노년층을 위한 건강식으로 종종 추천되기도 한다.

이를 살피면 꼴뚜기가 비하되는 그 이유를 알만하다.

아울러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라는 말을 ‘꼴뚜기가 뛰니까 숭어도 뛴다’로 바꿔도 좋을 듯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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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는 이미 내란죄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래서 살길을 열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 과연 그 절실함은 ‘방탄’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설은 지난해 9월부터 거론됐다. 한 전 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등 야당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 당시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건재했다. 따라서 모두가 차기 대선이 오는 2027년에 진행될 것이라고 여기던 시점이었다. 윤 어게인 대타 역할?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서 파면돼 정계서 사라졌다. 차기 대선은 오는 6월3일로 앞당겨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란 절대 강적을 이길 방법을 놓고,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에선 다양한 논의가 일어났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그 다양한 논의 중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돼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서 퍼졌던 ‘윤 어게인’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한 전 총리는 지난달 8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주요 보직 임명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이 처장이 내란 공모 혐의 피의자란 사실도 큰 문제였다. 한 전 총리와 이 처장은 이미 지난해 12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2월엔 소환 조사까지 받았다. 이 처장을 지명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였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추후 진행될지도 모르는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 방어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란 거대한 사건의 공범 의혹을 받는 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의심이었다. 이는 곧 “윤 어게인의 구체적 구현일 수도 있다”는 흐름으로 연결됐다. 윤 어게인의 본질은 윤 전 대통령의 복귀 추진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을 지냈고, 파면됐다. 헌법·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다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친윤(친 윤석열)계 진영 일각서도 이를 고려해 “윤 전 대통령의 정신과 노선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본질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 대신 출마하는 것”이란 해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한 전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윤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할 수도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년 중임제인 헌법 규정 때문에 지난 2008년엔 3선을 위한 출마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통합 러시아 대표가 대신 출마해 당선됐고, 푸틴 대통령은 총리로서 실권을 휘둘렀다. 메드베데프 대표는 푸틴 대통령의 첫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치 경력이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 메드베데프 대표조차 대통령 재임 당시 바지사장·허수아비로 통했다. 따라서 한 전 총리가 설령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 전 총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정치 기반은 국민의힘 내 친윤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실적 구도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처럼 총리로서 국정을 주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까지 나온 것이다. 푸틴·메드베데프처럼… ‘윤 총리’ 임명 관측도 이 같은 조롱 섞인 관측에 굴하지 않고,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만 75세의 나이에 강한 정치적 집념을 보이는 이유로는 ‘내란 혐의 피의자’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언급된다. 김 전 장관은 수사기관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엄법 규정대로 한 전 총리를 거쳐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한 전 총리도 비상계엄 실행에 참여한 것이 된다. 물론 한 전 총리는 이를 일관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 소집 협조·참여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건의 회피의 다수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내란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제는 ‘내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사람도 없다. 이렇게 되면, 한 전 총리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사기관에 줄곧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 재판을 거쳐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 전 총리로선 생존을 위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 후보의 집권을 막거나, 자신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대선에 출마해 이 후보의 경쟁자를 자처함으로써, 향후 진행될 가능성이 큰 수사에 대해 “대선 경쟁자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민의힘에도 큰 여파를 남겼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수시로 대표·비상대책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집요하게 당 장악에 집착했다. 지난 2022년 7월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가 공개됐고, 윤 전 대통령은 여기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일컬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지칭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반발하는 것을 ‘내부 총질’로 인식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당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다. 대통령이 당 장악에 집착하면, 내부서 차기 주자를 키우기 어렵다. 국민의힘의 인물난은 전직 대통령들의 지나친 당 장악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면서 외부인을 대선후보로 옹립하는 기조가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국민의힘이 한 전 총리에게 강한 시선을 두는 이유 중 하나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반면교사를 거론할 수 있다. 권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중진들은 겉으로는 윤 전 대통령에게 전혀 반기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감정이 있다. 사실은 당권 경쟁?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2022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한다”는 취지의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했다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일각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어 부위원장직서 해임됐고, 당 대표 출마마저 저지당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이 주도하던 혁신위원회와의 갈등 끝에 사퇴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대표직 유지를 조건으로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지만, 김 의원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 대한 격노를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던 날 윤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뭐하는 거야, 이게 지금”이라고 말하는 등 순간적으로 반발 심리를 드러냈다. 이렇듯 국민의힘 주요 중진과 경선 출마자 중 상당수는 윤 전 대통령과 상당한 갈등 끝에 손해를 본 기억이 있다. 이들이 윤 전 대통령 같은 강성이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원할 가능성은 적다. 이번 대선서 범 국민의힘 계열 대선후보들은 이 후보와의 승부서 이길 가능성이 적으므로, 경선은 사실상 당권 경쟁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대권후보들도 당권에 강한 아쉬움이 있다. 당 대표에 취임했다가 당내 주류들과의 갈등 끝에 힘없이 물러났던 경험이 있고, 당으로부터 등을 떠밀려 출마했던 선거서 패배해 치욕을 겪은 적이 있다. 이들이 다시 당권주자로 등장하는 것을 중진들이 원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따라서 당 대표를 다시 세운다고 하더라도, 의원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갈 사람을 선호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평생 관료로 살았고, 국민의힘·민주당 정권서 모두 총리를 지냈던 한 전 총리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위헌이 아니라고 인정했다지만, 한 전 총리는 “여당 대표와 정기적으로 회동하면서 책임총리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과도 정부체제를 발표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들은 적도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한 전 총리가 이래도 따르고, 저래도 따를 것”이라고 인식했을 여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에게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수사 피해 대선 출마? 자당 대선후보와 외부 대선후보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자당 대선후보에 대한 적대감으로부터 비롯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의 단일화도 노 전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당시 새천년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이하 후단협)를 구성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한 후 진행됐던 것이었다. 이 갈등은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으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직계 의원들과 함께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협조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의 후단협은 지금도 안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외부 정치 원로에게 단일화 지원을 요청했단 것은 당내 대권주자들과의 불신·갈등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다. 한 전 총리는 현재 내란중요임무종사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형법 제87조 제2호에 따르면, 내란중요임무종사자는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혐의가 적용돼 수사를 받고 있어서 국민의힘의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지원을 매개로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은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이란 구호로 함께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점이 있다고 해서 아무 목소리도 못낼 것이란 기대는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한 전 총리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은 한 전 총리의 부인 최아영 여사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해 12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최 여사는 화가이자 미술계의 큰손”이라며, “무속에 너무 심취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무속의 지배를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부인 무속·해몽 일화 정치 공세 가능성도 최 여사에 대해선 한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서도 같은 논란이 제기됐던 적이 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최 여사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여성이 강남에 있는 유명 점집을 함께 드나드는 사이란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공직 생활 동안 명리학에 대한 배우자의 관심이 공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최 여사가 무속에 관심을 가진단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지난 2014년 8월 <조선일보> 연재 칼럼 <조용헌 살롱>서 최 여사의 해몽 과정을 언급했다. 칼럼에 따르면, 최 여사는 한 전 총리가 무역협회장이 되기 전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자신의 침실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이 되기 전엔 헬리콥터 조종사가 권총으로 부부를 쏘는 꿈을 꿨다. 부총리가 되기 전엔 스프링 콩콩을 타고 뛰는 꿈을 꿨다. 현재 소유 중인 주택을 사들이기 전엔 집이 물에 잠겨 물바다가 되는 꿈도 꿨다. 최 여사는 특이한 꿈을 꾸면 ‘영험한 해몽가’로 알려졌던 고 임훈씨와 해몽 상담을 했다고 전해진다. 최태민씨 일가가 박근혜 전 대통령 일가에 접근한 연결고리 중 하나가 해몽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심상치 않은 대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해몽은 야심을 동반한단 측면서 의미심장하다. 신라 원성왕과 조선 태조 이성계 등 권좌에 오른 사람의 설화 중엔 꿈과 해몽이 곁들여진 사례가 많다. 최 여사가 정기적으로 해몽가를 방문했단 것이 사실이라면, 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두 전직 대통령의 전례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의힘이 세 번째 배신을 당할 가능성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임기 내내 주변인의 구설수로부터 야당의 공세가 시작돼 파면됐단 공통점이 있다. 대선서 낙선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로부터 파상 공세를 당해 체면을 구기거나 끊임없이 이어질 정치 공세의 소재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한 전 총리까지 포함한 빅텐트를 친다고 해서,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후보는 시종일관 강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명백한 중범죄자를 봐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지는 국민 판단에 따를 일”이라고 말했다. 압도적 의석 이재명 경고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이 후보가 윤 전 대통령 등 비상계엄 관련 사안에 대해선 이를 적용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면, 압도적 의석을 가진 여당과 그 여당을 일극 체제로 지배하는 대통령을 배경으로 진행될 각종 수사 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이 후보는 한 전 총리에 대해서도 “내란 주요 종사자들과 부화뇌동자들이 여전히 정부의 중요 직책을 갖고 남아있는 것 같다”며 “내란 세력이 끊임없이 귀환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의 발언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의 ‘몸부림’은 이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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