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사건>산부인과 의사와 ‘우유주사’의 두 얼굴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8.15 12: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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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도구가 되고 시체 애호증에 시달리고…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일명 ‘기억상실 우유’라 불리는 마취유도제 ‘프로포폴’. 이 약을 강남의 한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주기적으로 투여 받던 30대 여성이 갑자기 사망했다. 의사는 시신을 여성의 차에 싣고 한강변에 유기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우유주사’ 프로포폴. 희대의 사건에 등장하는 이 약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의사가 프로포폴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건 무엇일까. 캐면 캘수록 나오는 의혹들. ‘산부인과 의사 시신유기 사건’을 심층 취재했다.

산부인과 의사의 시신유기사건 수사가 거듭될수록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은 초기 단순의료과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용의자 김모(45·산부인과 전문의)씨가 숨진 이모(30·텐프로 유흥업소 종업원)씨와 내연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의 전모가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가
놓은 그 주사는…

사건 당일 김씨가 이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밤 11시 병원으로 불러냈다는 점, 이씨의 몸에서 김씨의 정액이 발견된 점, 이씨 사망 후 시신유기 과정에서 김씨의 아내가 가담했다는 점, 수면유도제인 미다졸람과 마취제 프로포폴 투약 뿐 아니라 13가지 약물을 섞어 투여했다는 점 등이 드러나면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날 이 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성수대교 남단 사거리에 있는 H산부인과 병실 안. 산부인과 전문의 김씨는 링거에 담긴 수면유도제 미다졸람 5mg과 생리식염수를 이씨에게 투약했다.

이씨가 “평소 맞던 프로포폴과 다르다”고 하자 김씨는 “이것도 효과가 괜찮다”며 안심시켰다. 수면유도제가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지자 이씨는 이내 잠들었다.


그리고 20여분 후 잠에서 깼다. 이씨가 깨어나자 김씨는 다시 포도당 영양제 1L가 담긴 링거에 수술용 마취제, 진통제, 항생제, 비타민제 등 10여 종류의 약품을 섞은 뒤 투약했다.

약방울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김씨는 이씨와 병실에서 성관계를 갖기 시작했다. 이후  이씨는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두 번째 링거에는 사람의 호흡을 서서히 멈추게 하는 치명적인 약물이 섞여 있었다.

이씨의 사망사실을 알게 된 새벽, 김씨는 부인을 대동하고 다시 병원을 찾아 병실에 숨져있는 이씨의 시신을 휠체어에 옮긴 뒤 한강공원 잠원지구 주차장에 버리고 도주했다.

“우유주사 맞을래요?” 꾀어내 주사 놓고 성관계
의료상식에서 벗어난 마취제 13가지 짬뽕투약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사건 전날인 7월 30일 밤(8~11시로 추정) 이씨에게 먼저 “우유주사 언제 맞을래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이씨 또한 “오늘요 ㅋㅋ”라고 답장했다. 당시 김씨는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자를 받은 이씨가 병원에 도착한 것은 30일 밤 11시쯤. 김씨는 다음날 자정 이씨에게 우유주사를 투여했지만, 그것만 놓은 게 아니었다. 수술용 마취제의 일종인 나로핀, 베카론, 리도카인 및 비타민제 비콤, 진통제 케로민, 항생제 박타신 등 10종류의 약품을 섞어 투약했다.

이 가운데 3개는 마취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장에 영향을 주는 나로핀과 리도카인, 인공호흡기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전신마취제 베카론이다. 낯선 약들이 불안해서인지 이씨는 스마트폰으로 베카론, 리도카인, 박타신의 용도를 검색하기도 했다.


경찰조사에서 김씨는 “수면유도제는 내가 잠을 못 잔다고 간호사에게 직접 받아왔고 마취제는 제왕절개 수술이 끝난 수술실에서 다른 의사와 간호사 몰래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또 김씨가 지난해 6월부터 이씨의 집에 6차례 드나들며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세 차례 투여하고 성관계를 가진 사실을 확인했다.

1년 전 환자와 의사로 알게 된 두 사람은 이씨가 회복된 뒤 함께 식사를 하며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가까워졌고, 이후 3~4개월에 한 번 정도 만나 성관계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로 포장한
의도적 살해?

그렇다면 김씨는 왜 이 많은 약들을 한꺼번에 섞어 이씨에게 투약한 것일까. 김씨는 이씨가 잠이 오지 않고 피곤하다고 해 많은 약을 썼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10년차 전문의가 투약 방법이 다른 마취제들을 섞어 쓸 경우의 위험성을 몰랐다는 건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김씨가 이씨에게 주기적으로 투약한 프로포폴은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을 죽음에 이르게 한 마취유도제다. 우윳빛을 띠고 있어 일명 우유주사라고도 불리는데 수면을 유도해 피로를 풀어주는 약물로 알려져 있어 유흥업소 종업원 사이에서는 ‘힘주사’라고 불린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부작용 발생 시 해독제가 없다는 이유로 이 약을 이른바 ‘죽음의 마취제’라고까지 부른다. 현행법상 향정신성의약품 품목에서 빠져 있어 관리 소홀로 인한 오·남용 소지도 충분하다는 게 이들의 우려다.

강남의 D성형외과 이모 원장은 “프로포폴은 수면을 유도해 불면증을 없애고 피로를 해소하며 기분이 좋아지는 환각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어 환각제 대용으로 일부 연예인들이나 유흥업소 종업원들 사이에서 많이 오남용 되기도 한다”면서도 “프로포폴뿐만 아니라 더 위험한 약물들을 두서없이 섞어서 투약했다는 것은 같은 의사가 봐도 비상식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프로포폴 하나만 잘못 써도 사람이 죽을 수 있는데 거기에 또 다른 마취제를 섞었다니 의사가 제 정신이었냐는 것이다.

이쯤 되니 김씨의 ‘고의적 살인’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경찰 역시 혼합한 마취제로 사람이 사망할 수 있다는 전문의 의견을 토대로 미필적 살인을 포함한 ‘고의 살인’으로 보고 엄중 추궁했으나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는 못했다.

알고 보니
시체 성교 애호증?

사건 당시 김씨가 이씨에게 마취제를 투약하고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자 일각에서는 김씨가 술에 취해 강한 성적 자극을 노리고 여러 종류의 마취제를 쓴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관계자는 “김씨의 과거 전력, 그리고 산모가 입원하는 병실에서 성관계를 맺은 정황 등을 볼 때 강한 성적 자극에 집착하는 성도착 증세도 보인다”며 “성적인 불만족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려는 증상을 ‘성도착증’이라고 하는데 사회적으로 성공했더라도 성공하기까지 억압당했던 욕망들이 해소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마취상태에선 사람이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지기 때문에 ‘네크로필리아 증후군’(시체애호증·시신을 상대로 성행위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종의 정신질환)에 가까운 변태성향도 추측할 수 있다”며 “여러 종류의 마취제를 여성에게 투약한 것 역시 자신의 변태성욕을 채워주는 일종의 실험도구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씨가 일종의 약물들을 ‘최음제’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는데 13가지 약물 가운데 ‘리도카인’이라는 것은 흥분을 누르는 약물인 반최음제로 알려져 있다.

즉 최음제와 반최음제의 조합, 혼돈상태로 섞이는 약물들이 이씨를 ‘실험도구’로 이용했을 가능성을 높인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미 몇 차례의 성관계를 나눈 여성을 상대로 자신이 일하는 병원으로 불러내 실험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의살인인가? 변태성욕자인가?’…커지는 의혹
“푸근하고 믿음 가는 의사” 실체에 산모들 충격

두 사람의 금전관계에 대한 의혹도 남았다. 경찰 관계자는 “두 사람의 채무관계에 특별한 정황이 포착되지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가끔 연락을 할 때마다 약을 투약하고 성관계를 맺은 정황을 감안했을 때 김씨와 이씨가 서로 수면유도제와 성을 교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치정에 의한 살인이었을까? 시신유기를 도왔던 김씨의 아내는 “둘의 관계를 전혀 몰랐고 단순의료사고인줄만 알고 남편을 도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를 두고 김씨와 아내가 다퉈 일어난 사건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13가지 약물을 투약한 것인지,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김씨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그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것은 해당 산부인과에서 김씨에게 진료를 받던 산모들이다. 평상시 많은 산모로 붐비던 H산부인과는 고 최진실을 비롯해 김주하 앵커, 축구선수 이동국 등이 거쳐 갈 정도로 강남 일대에서 ‘책임분만제’로 인기를 끌던 곳이다. 책임분만제란 담당의사가 당직이 아닌 날이라도 산모가 한밤중에 오면 달려와서 분만을 봐주는 시스템이다.

김씨 또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임산부 사이에서 ‘실력 있고 친절한 의사’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및 언론 보도 이후 육아 관련 커뮤니티엔 H산부인과와 김씨의 얼굴·실명·프로필 등이 모두 공개됐다.

H산부인과를 다니고 있다는 한 네티즌은 온라인 임신·육아 커뮤니티에 “뉴스를 보고 너무 놀랐다. H산부인과 다니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다른 산모들의 조언을 구했고, 또 다른 네티즌은 “H산부인과 시신유기한 그 의사한테 진료 받고 그 사람이 애 받아준 산모들 지금 너무 화날 것 같다. 아이의 첫 순간을 그렇게 더러운 손으로 받았다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몸서리쳤다.

불륜남녀 침대에
누웠다니 ‘경악’

“가장 축복받아야할 순간이 그런 장소인건 싫다. 불륜남녀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병원의 침대에 눕고 싶지 않다”는 네티즌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땅에 떨어진 의사들의 윤리의식이 재론되고 있지만 동시에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자격을 박탈하는 내용의 관련법 제·개정 문제, 마약류의 관리문제 등이 우리 사회의 과제로 남았다.

이에 앞서 경찰이 단순 ‘사고사’로 정리한 여성의 죽음에 관한 실체적 진실은 어떻게든 밝혀져야 한다. 거짓말만 늘어놓는 의사의 자백에만 의존해 한 생명의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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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