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4주년 특집⑥> ‘포스트 코로나’ 바뀌는 재계 판도

변화 없이 생존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코로나19 후폭풍으로 사회 곳곳에 변화가 감지된다. 규모와 범위는 상당하다.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은 찾아보기 어렵다. 단순한 변환을 넘어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이 점쳐진다. ‘포스트 코로나’가 화두로 떠오른 이유다.
 

▲ 문재인 대통령 ⓒ문병희 기자

포스트 코로나는 ‘접촉 제한’으로부터 비롯됐다. 코로나19의 폭발적 전염력은 거리두기를 동반했다. 시민과 정부는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거리두기를 택하고 권유했다. 그 결과 이전과 상이한 일상이 시작됐다. 예고 없이 다가온 생활 방식은 부작용을 야기했다. 특히 경제 분야서 경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접촉 제한
거리두기

국내 대부분의 경제활동은 접촉을 기반으로 한다. 생산·유통·소비 과정서 최소 2명 이상의 사람들이 접촉한다. 물론 1인 사업장 등 몇몇 예외가 있지만, 국가 경기에 영향을 줄 만한 경제적 요소들은 대부분 사람 사이의 접촉을 피하기 어렵다.

코로나19는 여기에 빗장을 걸었다. 경제 전반에 타격이 가해지면서 경제활동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전과 다른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재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제한된 접촉은 곧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당기게 했다.

코로나19 종식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전까지 변화된 생활 패턴은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국회를 찾아 “경제 분야는 이전보다 훨씬 큰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라며 법과 제도의 재정비를 요구했다.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코로나19처럼 예측불허의 질병이 경제 전반을 타격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정착된 생산·유통·소비 방식은 사실상 훼손된 상태다. 기업 상황은 그만큼 만만치 않다.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실제로 기업 실적은 예전 같지 않다. 최근 발표된 1분기 상장사 순이익은 반 토막이 났다. 코로나19 여파로 제힘을 쓰지 못한 까닭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2분기를 포함해 국내 기업 성적표가 낮은 점수를 기록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발표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2020년 1분기 결산실적’에 따르면 12월 결산 상장사 592개사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9조477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1.20%(8조8328억원) 감소한 수치다.

순이익은 47.80%(10조1032억원) 내려앉은 11조336억원이었다. 흑자를 낸 기업은 411개사(69.43%)였지만, 181개사(30.57%)가 적자를 봤다. 10개사 중 3개사가 적자를 본 셈이다.

대인 접촉 막히면서 뒤바뀐 생활상
기존 경제·산업구조 전방위적 타격

매출액이 증가한 업종은 ▲의약품(16.62%) ▲음식료품(9.07%) ▲운수장비(6.53%) ▲통신업(3.52%) ▲건설업(3.29%) ▲전기전자(3.22%) ▲기계(1.88%) ▲서비스업(1.47%) 등이다.

감소한 곳은 ▲의료정밀(-12.18%) ▲철강금속(-7.05%) ▲섬유의복(-6.61%) ▲운수창고업(-5.66%) ▲유통업(-4.86%) ▲전기가스업(-4.37%) ▲비금속광물(-1.99%) ▲종이목재(-1.65%) ▲화학(-0.17%) 등이다.


흑자가 증가한 업종은 ▲음식료품(156.33%) ▲의약품(110.13%) ▲종이목재(52.14%) ▲의료정밀(5.36%) 등이다. 반면 흑자가 깎인 곳은 ▲서비스업(-75.70%) ▲철강금속(-57.97%) ▲유통업(-39.08%) ▲운수장비(-34.00%) ▲통신업(-11.03%) ▲건설업(-5.20%) ▲전기전자(-2.85%) 등이었다.

종합해봤을 때, 매출과 흑자가 모두 증가한 업종은 음식료품과 의약품이다. 나란히 100% 이상 성장했다. 두 업종은 코로나19로 반사이익을 봤다는 평가를 받는다.
 

▲ ▲ 지난 19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국회를 찾아 경제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하고 있다. ⓒ문병희 기자

음식료품은 대표적인 수혜 업종이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식당을 찾는 발길은 자연스레 줄었다. 반면 모바일·온라인 쇼핑을 통한 음식료품 수요는 증가했다.

통계청이 지난 6일 발표한 ‘3월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그달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지난해에 비해 11.8%(12조5825억원) 증가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농·축·수산물(91.8%), 음식서비스(75.8%), 음·식료품(59.4%)에서 상당한 증가세를 보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유형이 신선식품, 간편식, 배달음식 등으로 고스란히 넘어간 셈이다.

흑자 회사
적자 회사

의약품은 코로나19에 따라 수요가 늘었다. 의료 분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점이 작용했다. 또한 제약업체들의 주력제품인 만성질환제가 코로나19와 관련 없이 꾸준한 수요를 보였기 때문이다.

매출과 흑자 모두 감소한 업종은 철강·금속과 유통업이다. 철강금속 분야는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시장 위축으로 실적이 깎였다. 자동차 생산과 선박 발주 등이 악영향을 받으면서 수요 자체가 얼어붙은 것이다.

철강·금속 가격의 하락도 그 연장선에 있다. 코로나19 재확산 분위기마저 엿보이면서 철강금속 업계에 먹구름이 낀 형국이다.

유통업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업종 중 하나다. 특히 대형 오프라인 매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사람들이 대거 몰리는 시설에 대한 발걸음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전망 역시 그리 밝지 않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가 유통업체 10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20년 2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에 따르면 RBSI는 66으로 집계됐다. 100을 기준으로 100 이상은 긍정적 전망을, 100 미만은 부정적 전망을 내놓는 곳이 많다는 뜻이다. 66은 지난 2002년 조사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매출이 줄었지만 흑자가 증가한 업종은 종이 목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택배 물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수혜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내 다양한 지각변동이 관측되면서 정부 차원서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서 ‘한국판 뉴딜’ 추진을 선언한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구체적 사업으로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국가기반시설(SOC) 디지털화 등을 내세웠다. 모두 코로나19와 접촉 제한에 따른 경제 전반적 변화로 등장한 과제들이다.
 

문 대통령은 “비교적 튼튼했던 기간산업이나 주력 기업들마저 어려움이 가중되며 긴급하게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고용충격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선도형 경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개척하겠다. 디지털 경제를 선도해나갈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그린 뉴딜이 포함되기로 결정됐다. 그린 뉴딜이란 친환경 산업을 형성, 기후위기 대응과 일자리 창출을 의미한다. 동시에 기존 일자리를 잃게 되는 노동자들을 위한 고려도 동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판 뉴딜은 크게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 중 비대면 산업 육성에 이목이 쏠린다. 비대면 관련 사업은 IT업계 등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비대면 업무는 코로나19 여파로 업계 전반에 경험이 쌓였다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동시에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업계에선 비대면 산업이 실현될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IT업계 관계자는 “초기에만 하더라도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예상외로 별 문제없이 일하고 있다”며 “회사 차원서도 비대면 업무 활성화를 위해 관련 업체를 찾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1월부터 재택근무 중”이라며 “내근을 해야 하는 몇몇 직원 외 나머지 인원은 모두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공공 분야서도 비대면 업무시스템 활용이 크게 증가했다. 지난 2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비대면 업무시스템 활용률은 지난 1월에 비해 300∼800% 수직상승했다. PC와 노트북 등을 활용한 영상회의나 자택, 출장지서 원격 업무를 처리하는 비중도 늘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비즈니스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옮겨지고,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환경 산업의 성장 가능성도 주목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반면 코로나19 여파로 공장 가동률이 전 세계적으로 줄어들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했지만, 포스트 코로나 이후 급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언급된다. 친환경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경선 텍사스A&M대학교 교수는 한민족과학기술자네트워크(KOSEN)에 ‘코로나19와 기후변화’라는 제목의 동향보고서를 게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의 활동이 멈추면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소’라며 주요 국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를 소개했다.

중국은 2월 초부터 3월 중순 사이 공장 폐쇄로 약 18%, 유럽은 3월 배출량이 전년 동기 대비 27%, 미국은 약 7% 감소가 예상되며 전 세계적으로 약 4%가 하락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 교수는 ‘하지만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배출의 감소를 일시적인 것으로 보며, 경기가 회복되면서 급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일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감소했지만, 경기회복 후 리바운딩 효과로 온실가스 배출이 급증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리바운딩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중국서 공장이 가동을 재개하자 대기오염 및 탄소 배출 수치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덧붙였다.

한국판 뉴딜 선제적 대응 될까
코로나 후 주목받는 신산업은?

특히 보고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에너지전환 산업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풍력, 태양광 발전 등에 필요한 재생에너지 부품의 공급사슬이 마비되고, 노동자 이동이 제한되면서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중지되거나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 달간 미국 내 청정에너지 관련 분야서만 약 1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 ⓒ문병희 기자

우리 정부는 신에너지 산업에 박차를 가하는 분위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9일, 올해 수소추출시설 구축사업 지원 대상을 최종 선정했다. 지난해 1월 정부가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 따른 것이다.

업계 안팎서도 관련 소식이 들려온다.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현대차·CJ대한통운·현대글로비스·쿠팡 등은 지난 20일 수소전기 화물차 보급 시범사업을 위한 상호협력 강화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기존 경유 화물차를 수소전기 화물차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업계 내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진입하면서 새로 정착될 트렌드에 대한 관심도 높다. 신한카드는 지난 19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소비 트렌드 키워드로 ‘S.H.O.C.K.(쇼크)’를 제시했다. 일시적 변화 수준을 넘어 패러다임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키워드 ‘S’는 ‘온라인(Switching On-line)’서 비롯됐다. 오프라인 중심 소비가 빠른 속도로 온라인화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H’는 ‘홈라이프(Home-life Sourcing)’로 감염병 우려로 인한 외출 자제로 주거 지역 내 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반영했다.

비대면
친환경

‘O’는 ‘건강·위생(On-going Health)’서 가져왔다. 코로나19로 건강과 위생 등에 대한 소비가 확산될 것을 의미한다. ‘C’는 ‘패턴변화(Changing Pattern)’를 뜻한다. 고정돼있던 소비 시간·연령·구매 방식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2030세대 중심의 서비스가 4060세대로 확산된 점이 언급됐다. 마지막 ‘K’는 ‘디지털 경험(Knowing Digital)’으로 대면접촉과 외출자제가 요구되면서 생활 속 디지털 경험이 자연스럽게 확산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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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