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획특집 봄을 찾는 사람들 ③ 서민들의 고군분투 사연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어느 해보다 힘들게 맞은 2009년에도 어김없이 설날은 찾아왔다. 눈에 띄게 줄어든 상여금으로 차린 초라한 차례상과 지난 명절보다 부쩍 늘어난 친지들의 하소연으로 우울한 명절이다. 그러나 조카들에게 줄 빳빳한 세뱃돈을 뽑는 손길에는 설렘이 묻어난다. 구정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듯 저마다의 인생에도 봄날이 오리란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희망은 누구보다 봄날이 찾아오길 고대하는 이들에겐 더없이 값진 에너지다. 2009년 설날을 맞아 인생의 봄날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미네르바 논쟁, 정부 각료들의 대대적인 물갈이, 구조조정 바람 등으로 시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오랜만에 뵐 부모님과 모처럼 찾아온 연휴로 설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보다 봄날을 찾는 이들이 있다. 구정을 쇠고 본격적인 2009년이 시작되면 그토록 원하던 소망을 이룰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사는 이들이다.

 이 시대의 백수, 백조들도 꿈을 위해 설 명절도 반납하고 언젠가 찾을 봄날을 고대하고 있다. 특히 대학졸업 후 수년간 사회에 발조차 딛지 못한 ‘취업 장수생’들에게 설은 풀어진 고삐를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몇 년째 면치 못한 백수신세가 친척들의 위로와 격려 덕분에 더욱 처량해지는 것이 명절이기 때문이다.
2006년 2월 대학교를 졸업한 정모(28·여)씨도 몇 년째 백수탈출에 실패하고 우울한 설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낸 이력서만 수백 통. 면접이라도 본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력서를 낼 회사도 점점 줄어가고 있다. 일부 기업은 나이에 걸려 원서를 낼 자격조차 주지 않고 있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할 따름이다.
지금 정씨에게 가장 부러운 사람은 새벽밥을 먹고 러시아워에 복잡한 지하철을 타는 평범한 직장인들. 그리고 일찌감치 결혼해 전업주부가 된 또래 친구들이다.
정씨는 “이렇게 오랫동안 취업으로 마음고생을 할 줄 알았다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집’이라도 갈 걸 그랬다”며 “속절없이 나이만 먹은 데다 직장도 없는 신세니 선조차 들어오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그러나 정씨는 2009년엔 반드시 원하던 직장인이 될 수 있으리란 확신을 가지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2월부터 최대의 취업한파가 몰아닥친다고는 하지만 위기는 기회란 말을 곱씹으며 오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막막하기는 대학졸업식을 앞둔 예비 백수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에게 사각모를 씌워드리고 사회로 가는 첫발을 내딛는 날을 축하했던 대학졸업식은 취업난과 함께 썰렁해졌다. 취업을 못한 학생들은 졸업식 전에 졸업장만 찾아 황급히 학교를 떠나기 바쁘고 이미 취업을 한 학생들은 첫 직장에 적응하기 바빠 졸업식은 뒷전이 됐기 때문이다.
오는 2월 서울 모 대학교 졸업을 앞둔 최모(27)씨도 아직 취업을 못한 상태다. 금융권에 취업하기 위해 대학 4년 동안 관련공부를 했던 최씨. 그러나 막상 취업전선에 나가니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스펙들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경쟁자들은 무시무시한 무기들로 중무장한 채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결국 다른 분야로도 눈길을 돌려 부지런히 원서를 내고 있지만 좀처럼 합격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최씨는 “졸업식 날짜를 묻는 부모님에게 괜히 신경질만 부린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서울에 올 차비조차 드리지 못하는 신세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얼른 취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경제활동인 중 한 사람이 되겠다는 백수들의 의지는 어떤 한파에도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기업과 공공기관의 인턴채용 증가, 건설채용 확대 등 조금씩 보이는 불빛은 이들에게 더욱 용기를 북돋우고 있다.

결혼적령기를 놓치고 자의반타의반으로 솔로생활을 하고 있는 노총각, 노처녀들도 인생 제2막의 봄날을 찾고 있다. 점차 늦어지는 결혼적령기로 노총각, 노처녀의 개념 또한 무뎌지는 추세다. 20대 후반이면 ‘혼기 꽉 찬 노총각·노처녀로 치부했던 몇 해 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러나 결혼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애써 변명하는 노총각, 노처녀도 설날이 다가오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올해 설에도 나 홀로 고향 길에 나서야 하는 신세가 처량할 뿐만 아니라 연휴 내내 들을 부모님의 잔소리도 두렵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웹디자이너를 하고 있는 직장여성 서모(38)씨도 설 연휴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무리 결혼적령기가 높아졌다 해도 여자 나이 서른여덟은 누구나 노처녀로 인정(?)하는 나이다.
조건만 따져보면 서씨가 아직 미혼인 것을 누구나 의아하게 생각한다. 여러 가지로 결혼하는 데 결격사유가 없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를 나와 10여년 직장생활을 하며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고액연봉을 받고 있고 통장잔고도 꽤 된다. 외모도 빠지지 않는다.
또래 유부녀들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미모에 몸매도 늘씬한 편. 거기에다 패션 감각도 뛰어나 스타일리쉬하다는 말을 지겹도록 듣는 그녀다.
누가 봐도 서씨는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독신여성이다. 흔히 말하는 ‘골드미스’의 범주에 속한다. 그녀 역시 자신의 나이가 적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결혼쯤 못할 것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경기 한파 속에서도 설레는 설날, 새해 계획 재정비하는 이들
명절 반납하며 봄날 찾아 취업준비 매진하는 이 시대 백수들 
이번 설도 혼자 고향 가는 노총각, 노처녀들의 짝 찾기 대장정
내 집 장만, 금연, 성매매 탈피 등 목표 향한 소시민들의 노력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남들의 시선에 쫓겨 결혼을 해치우듯 하기는 싫었지만 마흔이 가까워오자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경제적인 안정도 외로움을 떨쳐내 주지는 못했다. 결국 서씨는 결혼정보회사에 가입도 하고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눈에 차지 않는 남성들과 선도 보는 등 결혼을 위한 각고의 노력 중이다.
대기업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김모(39)씨도 ‘불혹’의 나이가 되기 전 신붓감을 구하려고 종횡무진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30살이 넘는 여자들은 쳐다보지도 않을 만큼 눈이 높았지만 지금은 “결혼할 처녀 찾아 베트남이라도 가야할 판국”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대폭 눈높이를 낮춘 김씨는 “나보다 어리기만 하면 누구든 괜찮다”며 최대목표가 된 결혼을 위해 모든 인맥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결혼을 한 이들 중에도 새 식구를 만드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고통을 받는 이들이 있다. 불임부부들이 그들. 특히 시댁식구와 마주해야하는 설은 아기 없는 며느리들에겐 여간 불편한 날이 아니다.
결혼 4년차인 이모(32·여)씨는 명절이 전혀 즐겁지 않다. 시댁식구를 만나는 것이 최대의 고역이기 때문이다. 이씨 부부는 일부러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기지 않아 못 낳는 불임부부다.
처음 2년간은 그다지 초조하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는 터라 임신이 되지 않은 것이 감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아이를 재촉하는 시어머니의 전화횟수가 잦아졌고 이씨도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결국 그녀는 지난해 3월경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편과 자신에게 별다른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생각과 달랐다.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란 진단이 내려진 것. 임신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난소에 구멍이 뚫려 있어 임신이 쉽게 될 수 없는 병이다.
이때부터 명절은 눈물바람의 연속이었다. 지난 추석에도 이씨는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부엌에서 술안주를 내 오다 “쟤는 언제 아이 가지려고 저렇게 천하태평이냐. 입양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라는 등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남 이야기 듣듯 자리를 지키는 남편도 이씨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이씨처럼 불임으로 고통 받는 이들은 적지 않다. 기혼여성의 불임률이 13.5%에 달하고, 7쌍 중 1쌍이 불임부부란 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무려 140만여 쌍의 부부가 아기의 웃음소리를 기다리며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랜 기다림에 지쳐 임신을 포기할 생각까지 하던 부부들도 새해부터 시작된 각종 정책에 새로운 희망을 얻고 있다. 지자체들의 불임부부 의료비 지원 확대 계획, 임신성공률을 높이는 기술 개발, 다양한 불임부부 지원 프로그램 등 불임부부에게 힘을 주는 뉴스들이 그것.
비닐 가림막에 의지해 장사를 하고 있는 노점상인들도 따뜻한 봄날을 위해 강추위를 견뎌내고 있다. 다른 상인들과는 달리 설 대목 특수조차 누리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어엿한 점포에서 장사를 할 수 있으리란 꿈이 있기에 겨울이 그리 춥지는 않다.
또 무점포상인 등 영세상인들을 위한 정책자금과 신용보증이 크게 확대되어 은행돈을 빌리는 것이 한층 수월해지는 등 새로 생긴 정책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봄날을 찾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날로 치솟는 전세, 월세에 지쳐 작은 아파트라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소시민들도 어느 해보다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올해 시행되는 부동산정책으로 어느 때보다 집 마련에 적기이기 때문이다. 세금인하와 규제완화를 통해 시장을 활성화시킨다는 목표로 만들어진 새 부동산정책은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계획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집을 장만하기엔 자금이 부족한 젊은 부부들은 더욱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신혼부부 특별공급제도의 대상이 올해부터 한층 넓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70% 이하였던 것이 100% 이하로, 맞벌이의 경우 120% 이하로 완화됐고 청약통장 가입기간도 12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되는 등 자격이 한층 완화된 것.
이밖에도 새해엔 기필코 성매매에서 벗어나 떳떳한 직업을 갖겠다는 여성들, 몇 번이나 실패했던 금연을 성공하겠다는 흡연자들, 부지런히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외국인 노동자들, 길바닥을 떠나 가정으로 돌아가겠다는 노숙자 등 봄날을 찾는 이들의 고군분투는 설날에도 눈물겹게 이어지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에게 선배가 해주는 조언
“분명한 목표부터 세워라”

인생선배들은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조언으로 분명한 목표를 세울 것을 당부했다. ‘씽굿’과 ‘스카우트’가 성인 789명을 대상으로 ‘취업준비생들에게 필요한 조언’이란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28.90%가 ‘분명한 진로목표를 세워라’ 라고 충고했다.
이어 2위에는 ‘다양한 경력·경험 쌓기’(18.30%)가 올랐으며 ‘영어나 어학공부’(17.50%), ‘인간관계’(13.30%)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어려운 취업난을 헤쳐 나가기 위해 취업준비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로목표를 세워 이에 맞는 다양한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 이외에 ‘자격증 취득’(7.60%), ‘일찍 취업 준비’(5.70%), ‘전공공부’(3.40%), ‘해외여행(어학연수)’(3.00%), ‘취업노하우 습득’(1.90%) 등이 있었다.
한편 취업성공을 위해 꼭 가졌으면 하는 멘토로는 ‘관심분야 전문가’(37.60%)가 1위로 추천됐다. 2위에는 ‘관심분야 직장인’(25.90%), 3위엔 ‘진로분야 커뮤니티’(11.40%)가 올랐다. 이외에 기업인(6.80%), 취업담당 선생님(4.90%), 선배(4.60%), 교수(3.40%), 가족 친척(1.9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60% 상사에 아부 경험
“직장에선 아부도 능력”

직장인 10명 중 6명은 회사에서 상사에게 아부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26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8.0%가 ‘직장에서 아부를 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20.2%는 ‘불황 전보다 아부의 빈도가 늘었다’고 말했다.
아부를 하는 이유는 ‘상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71.9%)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48.2%), ‘상사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27.0%), ‘감원 등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서’(15.3%), ‘승진을 하거나 연봉을 올리기 위해서’(13.6%), ‘원래 성격이기 때문에’(13.4%), ‘주변의 권유로’(4.4%)등 순으로 집계됐다.
자주 쓰는 아부 방법은 ‘재미없는 말도 경청하며 크게 웃어준다’(51.5%)가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커피나 음료를 챙겨드린다’(42.0%), ‘업무능력을 추켜 세워준다’(35.1%), ‘외모나 패션에 대해 칭찬한다’(34.6%) 등이 있었다.
직급에 따라서 사원급은 ‘커피나 음료를 챙겨드린다(41.8%)’가 가장 많았고, 대리급은 ‘재미없는 말도 경청하며 크게 웃어준다’(26.9%), 과장급은 ‘업무능력을 추켜 세워준다’(21.7%), 차·부장급 ‘타인에게 들은 상사에 대한 기분 좋은 말을 전한다’(21.6%), 임원급은 ‘대소사를 챙긴다’(25.0%)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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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