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마포구 소재 갤러리 챕터투가 이승애 작가의 개인전 ‘Night Shade’를 준비했다. 이승애는 상상력과 치밀한 기획, 극한의 몰입을 통해 한 장의 종이가 신화적 서사를 지닌 독창적인 모노크롬 애니메이션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선보였다.
이승애는 영국 런던의 왕립예술대학교 회화과서 석사를 취득하고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독특하고 상상력 넘치는 몬스터 시리즈 드로잉으로 2004년 스위스 아트바젤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 미술계의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주목받았다.
종이와 연필
그는 2014년 영국왕립예술대 재학 시절부터 매진한 애니메이션-드로잉 시리즈로 ‘발레리 베스톤 아티스트 프라이즈 2016’를 수상했다. 이 상은 최우수 졸업상에 비견되는 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승애의 개인전 ‘Night Shade’는 향후 그가 어떤 방식으로 예술적 지평을 넓혀갈 것인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지난 1년간 챕터투 레지던시에 상주하면서 새롭게 시도한 탁본 기반의 애니메이션 작업 ‘우연한 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그는 종이와 연필이라는 단순한 재료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며 ‘시각적 천일야화’를 꾸준히 구축해왔다. 일상적으로 자주 머무는 공간의 벽면을 종이와 흑연을 이용해 마치 탁본을 하듯 수십, 수백 번 문지르는 수행적 드로잉 기법을 주로 사용했다. 그 시도와 시행착오가 이번 전시서 선보이는 작품 우연한 밤의 모태가 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주목받아
발레리 베스톤 아티스트 수상
탁본을 통해 드러난 이미지는 원래부터 그렇게 존재했던 것마냥 작가에게 익숙한 이미지였다. 그렇게 보이기까지 이승애는 지속적으로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눈과 손에 익을 만큼 꾸준히 의구심을 가진 결과인 셈이다.
이승애는 벽면에 종이를 한 장씩 대고 탁본을 진행했다. 벽의 표층적 물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러 장의 종이는 원래의 좌표와 다르게 그의 의도에 따라 불특정하게 배열되고 이어 붙여졌다.
그는 이런 과정이 제공한 모종의 배경적 공간서 우연히 발견되거나 연상된 이미지를 그려나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이미지들은 스스로 모양과 존재를 복제하고 증식되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는 특정한 이미지를 재현하려는 의도를 최대한 제어하고 우연히 발견된 이미지들을 연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완성했다. 화면을 통해 발견한 우연한 흔적들은 마치 원래 거기에 필연적으로 있었던 이미지처럼 표현됐다.
이렇게 종이 위에 재현한 우연한 이미지들은 다시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제작됐다. 이승애는 “마치 깊은 동굴에 불을 비춰 거대한 동굴 벽화를 더듬듯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알고 있는 세계를 초월하는 환상의 다른 세계를 발견하는 순간의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탁본하듯 수백 번 문질러서
불특정하게 배열·이어 붙여
탁본을 통해 채워진 배경과 그 위에 알듯 모를 듯 존재하는 이미지들은 밝은 낮에 명징하게 파악되는 이미지와는 달리 마치 어두운 밤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처럼 보인다. 여전히 근대적 이성이 지배하는 시각적 인식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환경서 어색하면서도 특별한 감각을 동원해 외부를 인식하는 체험과 유사하다.
그는 자신의 작업세계에 대해 “우연과 필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를 찾기 위한 회화적 실험”이라고 말했다. 이는 인간 기술의 제어 범주를 벗어난 미지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도 연결된다.
불안과 맞닿아
챕터투 관계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그로 인한 부작용이 속출하는 오늘날, 이승애의 작품은 우리를 둘러싼 복잡한 외부 세계의 존재들에 대해 알거나 모른다는 이분법적 태도서 벗어나 그 모호성을 자신의 긍정적인 일부로 받아들여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시는 다음달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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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애는?]
▲학력
영국왕립예술대학교 회화과 석사 졸업(2016)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2005)
▲개인전
‘Night Shade’ 챕터투 갤러리(2020)
‘달과 구’ 아마도 예술공간(2018)
‘Becoming’ 드 아트 센터(2018)
‘Becoming’ 크리스틴파크 갤러리(2018)
‘Becoming’ 주영 한국문화원(2018)
‘The Valerie Beston Artists’ Trust Prizewinner’ 말보로파인아트(2017)
‘The Monstrum’ 두산갤러리(2011) 외 다수
▲수상
The Valerie Beston Artist’ Trust Prize(2016)
GUCCI 아티스트 재단 그랜트(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