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코로나 확진자들의 동선이 언론을 통해 샅샅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확진자들이 다녀간 장소가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코로나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공공장소도 남아있다. 하지만 코로나 감염 사각지대도 여전히 존재한다.
서울시 구로구 신도림동 코리아빌딩 11층 콜센터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가 집단으로 발생했다. 콜센터 상담사라는 직종 자체가 집단 감염에 취약한 사무환경을 갖고 있는데 환기도 잘 되지 않는 사무실 안에서 다수가 밀집해서 근무하는 구조 탓이다. 하루 종일 말로 응대하는 업무기에 마스크 착용을 한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가 불가능하다. 코로나19 무방비 사각지대인 공공장소들을 모아봤다.
다닥다닥
난감하네∼
▲클럽 =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식당 등 각종 영업점이 매출 부진에 허덕이고 있지만, 서울 강남과 홍대, 이태원 등 일대 클럽은 다른 나라 이야기다. 이곳들은 매주 주말마다 인파가 몰리고 있다.
온라인커뮤니티와 SNS 등에 따르면 서울 강남과 홍대, 이태원 등에 있는 클럽에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인 지난달 22∼23일 주말에도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인파가 몰리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SNS 등에 올라온 사진에는 당시 날짜와 시간을 인증하며 휴대폰을 들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서울 강남의 한 클럽 내부 전광판에는 ‘코로나 따위 개나 줘라’ 등의 문구를 게시하기도 했다. 사진 속에 나온 사람 중 일부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착용하지 않은 채 인파에 휩쓸려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태였다.
클럽뿐 아니라 번화가 술집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골목은 20∼30대 청년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술집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일부는 밖으로 나와 길거리에 침을 뱉는 등 비말(침방울)로 인한 코로나19 감염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시간 종로구 세종마을 음식문화 거리 역시 대기표를 작성하고 식당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SNS서 입소문을 탄 한 주점 앞 대기표에는 8팀이 대기를 걸어놓는 등 코로나19의 영향은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서울 강남에선 한 ‘헌팅술집’에 들어가려고 대기하는 젊은이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헌팅포차는 호프집이나 포장마차처럼 소주, 맥주 등을 파는 일반 술집과 비슷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테이블의 이성과 즉석만남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입소문 난 술집…8팀 대기
“마스크 착용하기도 힘들어”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강남을 비롯한 홍대, 이태원 등의 클럽 등이 자발적 휴업이 이어지자, 놀 수 있는 곳을 찾는 젊은이들이 헌팅포차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클럽 대체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공장 = 서울시 강북구 미아사거리 인근에는 봉제공장들이 밀집해있다. 콜센터처럼 밀집된 환경서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서 “콜센터 집단 감염은 남 일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미아사거리역 근처 지하에 있는 한 봉제공장에 들어가자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재봉질을 하는 직원도 있었다. 직원들은 따로 환기를 하거나 방역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A씨는 “온종일 다 같이 붙어서 일하니 한 명 걸리면 모두 걸리는 거라고 우리끼리 말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콜센터서 단체로 코로나19에 걸린 걸 보고 너무 겁이 났다”며 “우리는 줄 서서 마스크 살 시간도 없고, 자가격리되면 생계에 지장도 갈 뿐더러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봐 무섭다”고 토로했다.
지하에 위치한 또 다른 봉제공장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직원들이 즐비했다. B씨는 “지금 몸살감기 증상이 있는데 말하기 조심스럽다”며 “옆 사람이 걸리면 다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뭘 더 주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2층에 위치한 봉제공장은 상황이 심각했다. 환풍기는커녕 아예 창문을 열 수 없는 구조였다. C씨는 “마스크를 못 구하고 있는데, 한 명 걸리면 모두에게 피해가 가니 겨우 구한 사람이 마스크를 나눠주기도 한다”며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때문에 자가격리되면 생계가 올스톱 된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를 우려해 일용직 노동자를 부르지 않는다는 사업장도 있었다. 한 봉제공장 사장은 “뉴스서 단체로 걸렸다고 보도하는 걸 보면 비슷한 사정인 우리도 걱정이다”며 “따로 체온을 잴 수도 없고 직원들이 열이 안 난다고 하면 믿어야지 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창문도 없는
밀폐된 공간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재택근무를 할 수 없고, 폐쇄 공간서 여럿이 근무해야 하는 환경이라면 담당자를 정해 열이 있는지, 호흡기 증상이 있는지, 신천지 신도인지, 확진자 접촉 가능성이 있는지 등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며 “마스크를 쓸 수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되도록 쓰고 공간 환기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공장 노동자들은 코로나가 두려워도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어 착용하지 않거나 몸살감기 증상이 있어도 생계 문제로 함구한다. 또 일용직 노동자를 부르는 사업체의 경우 이들에 대한 관리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약국 앞 = 지난 12일 서울 강동구 한 약국 앞에서 긴 줄이 늘어섰다. 이날 오후 2시부터 마스크를 판매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오후 1시쯤 도착해도 벌써 시민 50여명이 마스크를 쓴 채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앞사람과 뒷사람 얼굴 간격이 50cm도 채 되지 않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대화를 하면 충분히 서로 얼굴에 침이 튈 수 있을 만한 간격이었다.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서 있는 게 더 위험하다” “너무 가깝다”며 줄을 서는 동안 감염 위험을 걱정하는 말도 종종 오갔다. 밀폐된 장소는 아니지만, 확진자일지 모르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감염 위험이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이날 마스크를 산 50대 홍모씨는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선 것인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있었다. 마스크를 사는 게 안전한 행동인지 좀 헷갈리기도 한다. 인파가 많이 있는 밀집 장소에서는 두려움이 먼저 생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는 협소하고 밀폐된 공간서 다수가 밀집할 경우 전파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불안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놀이공원 =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매표소 앞엔 개장과 동시에 놀이공원에 입장하기 위한 사람 100명이 넘었다. 이날 매표소 앞에 줄을 선 이들 중 상당수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줄을 서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스크 사러
갔다가 헐∼
이날 오전 11시경 롤러코스터의 종류인 ‘아틀란티스’를 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22분이었다. 아틀란티스는 보통 휴일엔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탈 수 있는 놀이기구로 알려져 있다.
놀이공원에 다녀온 20대 구모씨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놀이기구 특성상 사람들이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하며, 줄을 설 때 밀집된 장소서 기다려야 한다. 신경쓰지 않고 놀이공원에 갔지만, 막상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 시국에도 눈치게임 잘하면 누릴 수 있는 건 풀로 누릴 수 있겠네” “경마공원 그 넓은 주차장에 전세 내고 집사람 운전연습시켰다” “이제 이거 보고 사람 몰리는 거 아니냐” “코로나 때문에 사람 없다고 소문나서 갔나 본데, 사람 많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놀이공원 이용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우려의 시각은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하고 타인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야 하는 놀이공원 특성상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놀이공원 특성상 줄을 서고 기구를 탈 때 ‘거리두기’가 안 되는 상황이면 피해야 한다”며 “만약 환자 한 명이 있었다고 하면 동선 파악, 접촉자 파악이 힘들어진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은 분명히 지켜야 한다”면서도 “마스크를 잘 착용한다는 가정 하에 놀이공원 정도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롯데월드 측은 놀이기구 손잡이 등을 소독 분무기와 거즈를 이용해 자주 소독하고 엘리베이터 버튼 등 접촉이 많은 곳에 대해 소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원가 = 공무원 준비생들이 있는 노량진 학원가 역시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각종 시험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기로 가장 바쁠 때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시험은 연기됐다. 그렇다고 수험생들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일부 학원은 당분간 문을 닫아달라는 교육부의 요청에 따라 수험생들 사이의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강의를 중단하고 건물 전체를 폐쇄하기도 했다.
놀이공원서 거리두기?
노량진 수험생 노출
하지만 상당수 학원들은 여전히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수험생들도 노량진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렇다고 문을 연 학원들이 코로나19에 대한 걱정과 경계심을 늦추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확진자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그 학원은 정상 운영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확진자는 물론 접촉자도 시험 응시 자격 자체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평소에 볼 수 없던 조치들을 진행하면서 ‘조심 또 조심’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노량진 학원가에서는 코로나19 초기부터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는 당부가 전달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지난 2일부터 마스크 미착용 시 학원에 들어갈 수 없는 조치까지 취해지고 있다.
당일 아침 학원 앞에 도착해서야 마스크를 집에 두고 온 사실을 알게 된 수험생 지모씨는 학원을 뒤로 한 채 주변 카페로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방에 항상 마스크를 갖고 다니려고 하는데 가끔 까먹을 때가 있다”며 “마스크 때문에 학원서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게 억울하기도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해한다”고 말했다.
노량진역 6번 출구 앞의 또 다른 학원은 건물 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했다. 손 소독제의 경우 엘리베이터 앞, 복도, 창문 틀 등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수험생이 많이 이용하는 교실 앞 손 소독제는 금방 바닥이 드러났다.
수백명의 수강생 앞에서 강의해야 하는 대형 강의 강사들은 현실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강의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고려해 한 학원은 하나의 마이크를 여러 강사가 공유하지 않고, 강사별로 개인 마이크를 나눠주고 강의실 스피커에 연결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물론 이런 대비도 수험생들이나 강사들을 안심시키기에는 충분치 않다.
문 닫을 수도
열어놓을 수도
정부는 서울 구로구 콜센터 집단 감염과 관련해 다른 콜센터는 물론, 노래방·PC방·클럽·스포츠센터·학원 등을 집단 감염 고위험군으로 별도 관리키로 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사람들이 밀집해 비말 감염 우려가 있는 콜센터와 유사한 사업장 등에서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과)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각 부처·지자체 등과 협조해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