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남산의 부장들> <그때 그 사람들> 전격 비교

화려함 속에 뒷걸음 ‘역사 해석력’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1979년 10월26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날이다. 무려 18년 동안 집권했던 대통령을 부하가 시해한 사건으로 인한 충격은 당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워낙 강렬했던 터라 이 하루를 다룬 재연물은 수없이 많았다. <그때 그 사람들>이 10‧26을 다룬 대표작으로 꼽히는 가운데 <남산의 부장들>이 최근 개봉했다. 과연 <남산의 부장들>은 <그때 그 사람들>보다 무엇이 나아졌을까. 15년 간격이 있는 두 작품을 비교 분석했다. 
 

▲ 영화 남산의 부장들

무려 18년 넘게 집권하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대통령이 부하가 당긴 방아쇠로 인해 사망했다. 1979년 10월26일,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총성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뒤흔들어놨다. 이 극적인 사건은 지난 2005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과 2020년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로 영화화됐다. 두 작품은 10‧26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전혀 다른 장르와 거리감, 관점을 갖고 있다.

코미디와 누아르

<그때 그 사람들>은 블랙코미디 장르다. 다소 과장된 표정과 억양을 사용한다. 김 부장(김재규) 역을 맡은 백윤식은 비교적 가벼운 톤의 언행을 일삼는다. 다소 툭툭 내뱉으며, 고뇌보다는 직관적인 행동으로 일관한다. 근엄한 표정을 지어도 가볍다. 목소리 톤도 자주 올라가며, 때론 갈라지기도 한다. 의전과장인 주 과장(박선호) 역의 한석규는 가벼운 욕설을 내뱉을 뿐 아니라 다소 저급한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러닝타임 내내 껌을 씹는다.

차실장(차지철) 역의 정원중은 몸짓이 과하며 대통령 각하(박정희) 역의 송재호는 극단적으로 나약하다. 카리스마는 전혀 없고 여색에 젖은 할아버지로만 표현된다. 전반적으로 연극적인 톤을 가진 인물들 중 그나마 현실감을 부여하는 인물은 민 대령(박흥주‧김응수 분) 뿐이다. 

블랙코미디 장르답게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많다. 육군본부 앞에서 암구호를 외치는 병사에게 “나 참모총장이야”를 부르짖는 정승화 참모총장(정종진)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사건이 이어지는 과정서 철두철미함보다는 오버스러운 언행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10월26일 오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약 24시간을 그려낸 <그때 그 사람들>은 이날을 매우 가볍게 바라본다.


반대로 <남산의 부장들>은 차갑다. 거리를 두고 있기는 하나 이야기 전개는 숨막힌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권력의 이면을 어둡게 표현한다. 카메라는 김규평(김재규) 역의 이병헌, 곽상천(차지철) 역의 이희준, 박통(박정희) 역의 이성민 등의 근육 움직임마저 잡아내려는 듯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목소리는 늘 진하게 깔려있다. 가볍게 행동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대다수 인물들이 다음 스텝을 내다보고, 살얼음 걷듯 조심조심 움직인다. 

웃음기도 쫙 뺐다. 누아르나 스릴러에서조차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유머러스한 장면을 넣기 마련인데, <남산의 부장들>은 웃음기를 거세했다. 웃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림은 세련됐다. 당시 시대상을 그리는 의상이나 건물 등의 고증도 뛰어난 편이고 미장센 역시 훌륭하다. 무거운 톤의 색감을 통해 <남산의 부장들>은 10‧26을 데드라인으로 이전 40일 기간을 중량감 있게 담아낸다.

냉소와 연민

<그때 그 사람들>은 인물들과 철저히 거리감을 둔다. 관객이 인물에게 공감하는 것을 일정 부분 차단한다. 인물의 고뇌가 드러나지 않는다. 임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만을 느끼도록 선을 긋는다. 

그래서인지 특정 인물에게 감정이 이입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중심인물인 김 부장의 끝이 좋지 않음에도 불편함이나 미안함은 남지 않는다. 이는 김 부장과 한편인 주 과장이나 민 대령, 반대편서 죽음을 맞이한 대통령 각하나 차 실장에게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임팩트 있고 극적인 장면을 우스꽝스럽고 심드렁하게 표현한다. 바늘이 연상되는 목소리를 가진 배우 윤여정의 내레이션은 인물에 대한 차가운 톤을 배가시킨다.

예술의 자유를 누린 <그때 그 사람들>
정치적 중립성만 유지 <남산의 부장들>

<남산의 부장들>은 인물들이 카메라와 가깝다. 관객들이 김규평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만들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있는 김규평은 틈만 나면 사나운 말을 내뱉는 후배 곽상천으로부터 멸시를 받는다. 일을 제법 잘 처리함에도 박통에게 미운털이 박힌 듯 중심 권력서 제외되는 부분 등 김규평에게 동정심을 갖도록 구성했다.


감정이 절정에 치달은 말미, 총성을 울린 뒤 정신을 놓은 듯 불안이 가득한 김규평의 얼굴을 통해 안타까움을 느끼도록 한다.

박통이나 박용각(김형욱·곽도원 분) 등 다른 인물들에게도 감정이 느껴진다. 충성을 다한 대통령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복수에 이를 갈고 있는 박용각의 얼굴이나, 미국의 압박에 두려움을 느껴 사자후를 쏟아내는 박통의 분노 등 영화 전반에 감정이 진하게 묻어있다. 
 

▲ 영화 &lt;그때 그 사람들&gt;

두 작품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10‧26과 김재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김재규를 생각이 단순한 인물로 묘사했고, 10·26도 별생각 없이 저지른 우발적 사고로 판단한다. 주 과장이나 민 대령, 정 참모 총장, 대통령 각하, 차 실장 등 대다수의 인물이 어리석게 보인다. 

이러한 김 부장의 기질은 현재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남산이 아닌, 육군본부로의 ‘U턴’에 대해서도 꽤 명료하게 설명한다. 정 참모총장과 육본에 있으면 권력이 국민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쐈다는 김재규의 주장을 뒤로하고, 이날의 총성을 다음 단계에 대한 고려 없이 벌인 감정적 행위로 바라본다.

결과적으로 김재규의 행위는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을 통해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놨는데,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영화에 깔려있다. 이날 하루를 그저 ‘지리멸렬한 난장판’ 정도로 해석한다. 

바보와 열사

아울러 영화 뒷부분에 대통령의 죽음에 눈물을 쏟는 당시 국민들의 실제 영상을 통해 ‘국민들의 어리석음으로 이런 바보들이 정치놀음을 했다’는 조소도 느껴지게 한다. <그때 그 사람들>이 시대를 앞서간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이 설득력 있고 용감하기 때문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이 부분서 <그때 그 사람들>에 못 미친다. 당시 상황을 나열하는 데 집중한 <남산의 부장들>이 10.26에 대한 해석을 포기했다. 15년이 지났음에도 진일보한 해석이 전혀 없는데, 그렇다면 이 영화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바가 전달되지 않는다. 1979년 10월26일이라는 커다란 역사를 선택한 우 감독은 역사물서 가장 중요한 ‘연출가의 해석’을 거부함으로 <그때 그 사람들>을 넘지 못하는 길을 스스로 택했다.

극중 김규평은 업무 처리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오랜 친구를 완벽히 매장할 정도로 결단력과 대담함도 지니고 있다. 미국서 유일하게 지지하는 한국 관료로도 표현된다. 차가운 기질이지만 필요한 순간 인간관계서 뛰어난 스킨십도 갖고 있다. 

그런 김규평이 거사를 치루기 위해 내리는 결단은 급작스럽다. 부마항쟁을 벌이는 시위대를 죽이라는 말에 총구를 겨누기엔 러닝타임 동안 인물이 보여준 조심성이 너무 강했다. 어찌어찌 거사를 치룬 후 정신을 놓은 표정을 짓고, 벗겨진 신발로 인해 피 묻은 양말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장면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2시간여 동안 쌓아올린 김규평의 기질이 영화 막판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영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거사를 일으켰다는 김재규의 주장을 충분히 수용할 뿐 아니라 일각서 내세우는 ‘김재규 열사’론에 치우쳐 있지만, 이날의 핵심인 ‘U턴의 이유’를 관객에게 설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설왕설래하는 부분서 한 발짝 발을 뺀 대목은, 미장센이나 고증,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까지 드러나는 <남산의 부장들>이 ‘걸작’의 반열로는 올라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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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