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겨울왕국2>가 국내 영화관을 휩쓸고 가자 한국 블록버스터 3편이 국내 영화관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7~8월 여름과 더불어 국내 영화계 최고 대목으로 불리는 이 시기에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컬쳐웍스, NEW는 수백억원대 제작비 규모의 영화로 관객들을 사로잡을 채비를 마쳤다. 아무리 대목이라고 해도 제품이 형편없으면 손이 가지 않는 법. 세 배급사가 야심 차게 준비한 영화 <시동>, <천문: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 <백두산>을 비교 분석했다.
지난 18일 가장 먼저 개봉했던 <시동>은 드라마 장르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약 90억원의 총제작비가 투입됐으며, 손익분기점은 260만명이다. <글로리데이>를 연출한 최정열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배우 박정민을 중심으로 염정아, 정해인, 그리고 마동석이 핵심 인물로 나온다.
영화는 학교 가기 싫어서 자퇴하고 어영부영 하루를 살아가는 ‘택일’(박정민 분)과 그의 절친 ‘상필’(정해인 분)이 고장난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서 시작된다. ‘공부 좀 해달라’는 배구선수 출신 엄마 ‘정혜’(염정아 분)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모르는 사람들과 시비나 붙고 다니는 철없는 택일은 정혜와의 말다툼 끝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군산의 한 중국집서 배달원이 된다. 그곳서 ‘거석이형’(마동석 분)을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밝고 유쾌한 배경서 음울한 분위기를 넘나드는 이 영화는 세상의 고정관념 속에서 자유를 찾아 방황하는 10대의 얼굴과 희망을 그려낸다.
까칠한 성격 탓에 손해 보는 일을 사서 하면서도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과 정을 붙이면서 사회에 적응해가는 택일의 이야기다. 극을 이끄는 박정민의 양아치 연기는 일품이다. <동주> <사바하> 등 언제나 뛰어난 연기를 펼쳐온 그는 <시동>서 슬랩스틱 코미디마저도 준수하게 선보이며, 다소 과할 수 있는 상상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촘촘한 구성과 유머
갑작스러운 결말
<악인전> <성난황소> 등 비슷한 영화에만 출연해 ‘위기론’이 불거졌던 마동석은 거석이형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관객들과 만난다. 영화의 큰 웃음 중 열에 아홉은 단발머리에 헤어밴드를 한 마동석이 만들어낸다. 정해인과 염정아, 김민재, 윤경효, 최성은 등 등장하는 배우들 모두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웹툰을 기반으로 촘촘한 스토리에 현실성을 벗어난 상상력으로 만화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는 이 영화는 중후반부까지도 밀도 있게 ‘빌드업’한다. 각 캐릭터의 매력을 살리고 개연성 높은 전개가 이어지며, 적재적소서 숨통 같은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정성스럽고 탄탄하게 이야기를 쌓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결말서 강렬한 갈등 없이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야기가 끝나 버린다. 재밌게 보고 있다가 갑자기 ‘휙’하고 끝내버린 느낌이라 허무하다. 아쉬운 대목이 있기는 하나 정의롭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위로하는 메시지는 힐링을 선사하는 데 충분하다.
지난 19일 개봉했던 <백두산>은 남과 북을 집어삼킬 백두산의 폭발을 막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 영화다. 재난 영화는 <부산행> <터널> <판도라> <엑시트> 등 대다수의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정도로 국내서 인기가 많다.
배우 이병헌과 하정우라는 걸출한 투톱에 마동석, 전혜진, 배수지 등이 출연하며 올 겨울 대표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아울러 백두산 폭발이라는 스케일 답게 260억원의 투입됐으며, <신과 함께>를 통해 CG 영역서 엄청난 기술력을 자랑하는 덱스터 스튜디오가 합세했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연출한 이해준 감독과 <감시자들> <신과 함께> 시리즈 등에서 촬영을 맡은 김병서 감독이 공동작업했다.
<백두산>은 백두산이 폭발하면서 북한은 잿더미가 되고 한국도 화산 폭발 여파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빌딩과 도로가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출발한다. 3차례 폭발이 더 있을 예정이며 4차 폭발 여파는 한반도 전역을 뒤엎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나라 전체가 공포에 휩싸이는 절체절명의 순간, 정부는 지질학 교수 ‘강봉래’(마동석 분)의 이론에 따른 작전을 계획한다. 미국에 넘길 예정이었던 북한의 핵폭탄을 탈취해 백두산 갱도에 넣은 뒤 폭발시켜 화산 폭발의 압력을 낮춘다는 게 작전의 요지다. 특전사 EOD 대위 ‘조인창’(하정우 분)을 위시한 대원들은 북한에 잠입, 이중간첩 행위가 발각돼 감옥에 있는 북한 일급자원 리준평(이병헌 분)과 접촉해 백두산 폭발을 막으려 한다.
엄청난 스케일
잇따른 클리셰
이 영화의 구성은 1998년 개봉한 <아마겟돈>과 궤를 같이 한다. 닥쳐올 재난을 막기 위해 미션을 수행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남과 북,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더해지며 ‘스파이물’의 느낌도 전달한다. 이병헌은 웃겼다가 냉정했다가를 반복하는 과정서 후반부 감정을 건드리는 연기는 물론 액션마저도 훌륭히 해낸다.
하정우는 어리바리한 얼굴로 등장해 이병헌과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백두산 폭발이라는 소재를 스크린 위에 생생하게 구현해낸 이 작품의 CG는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시동> <천문>이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백두산>은 ‘보는 것’에 만족감을 준다.
화려한 볼거리를 배경으로 핵심적인 캐릭터의 갈등구조는 잘 살려냈지만, 후반부로 이어지면서 재난 영화의 클리셰가 반복되는 탓에 긴박감이 떨어진다. ‘방해꾼이 된 무능한 정부’와 같은 진부한 설정들로 인해 영화의 매력이 반감되며 남한과 북한, 미국과 중국의 역학 관계가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후반부는 지나치게 짐작 가능하며 신파까지 곁들어지는 등 재난영화의 공식만 밟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점이 있기는 하나 킬링타임용 영화로는 손색없다는 판단이다. 스케일이 큰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 될 전망이다.
가장 늦게 개봉하는 <천문>은 세종과 장영실을 소재로 삼았다. 이미 미디어서 숱하게 잡은 조선 초기 이야기에 무수한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이다. 155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돼 380만명이 손익분기점이다. <덕혜옹주>로 559만 관객을 동원한 허진호 감독의 두 번째 팩션 사극이다.
관노 출신인 ‘장영실’(최민식 분)에게 종3품 대호군까지 하사한 세종(한석규 분)의 브로맨스에 집중했다. 장영실이 감독한 가마가 부서지자 그 죄를 물어 궁에서 내치고 모든 기록물마저 지워버리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배경을 새로운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영화는 명나라 사신이 영실이 만든 천문 기구를 문제 삼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찮은 계급이 왕의 사랑을 받는 것을 못마땅해 했던 신하들은 때맞춰 왕을 압박한다. 이야기는 20년을 거슬러 올라 세종과 영실의 인연을 보여준다. 당시 세종이 살피던 서역의 책 속 그림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던 건 관노 영실뿐이었다. 조선만의 것을 꿈꾸던 세종에게 영실은 ‘우리 식대로 하면 된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고독한 임금과 어린 천재는 같은 마음으로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연기력은 일품
‘역사왜곡’ 우려도…
<천문>의 가장 큰 장점은 최민식과 한석규의 연기력이다. 두 배우를 향한 호평이야 워낙 자자하다. 최민식은 장영실을 아이처럼 순수하고 귀엽게 표현하며,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서 ‘욕하는 세종’을 연기했던 한석규가 이번에는 섹시한 세종을 구현한다. 두 사람의 연기 조합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을 선사하는데 기여한다.
로맨스물에 일가견이 있는 허진호 감독은 두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만드는 데 공들인다. 두 사람 외에도 신구와 김홍파를 비롯한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감동과 재미를 더한다. 또 장영실이 발명한 물시계, 혼천의 등 각종 발명품이 영화 속에서 완벽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등 새로운 볼거리도 제공한다.
영화는 그토록 서로를 위했던 세종과 장영실이 왜 헤어졌으며, 왜 세종은 임금을 내쳤을지, 평생을 단단히 만들어온 가마를 영실은 왜 허술히 만들었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답을 제시한다. 역사적 사실이 비교적 분명한 가운데 너무 많은 상상력이 가미된 점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장영실을 내쫓는 과정이 두 사람의 불화 때문이 아닌 명나라로 인해 발생했다는 상상은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덕혜옹주>에 이은 허진호 감독의 깊이 있는 사극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