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남북경협 현주소와 앞날

엄동설한 속 군불 지피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한반도 평화 무드부터 경색 국면까지 남북경제협력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국내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앞다퉈 대비했지만 잠잠한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불씨를 키워나가고자 한다. 환경은 녹록치 않다. 남북경협은 힘을 받을 수 있을까.
 

▲ 신년 기자회견 갖는 문재인 대통령

“제한된 범위 내에서 남북 간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관계 개선을 국정 목표로 제시했다. ‘제한된 범위’는 대북 제재다. 남북경제협력이 줄곧 한계에 부딪히는 벽이다. 문 대통령은 5대 협력 사업을 제안했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비무장지대(DMZ) 일대 국제평화지대화 ▲남북 접경지역 협력 ▲스포츠 교류 등이다.

범위 내
얼마든지∼

문재인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잇달아 성사시켰다. 북미정상회담까지 이어졌다. 남북경협에도 불이 붙었다. 국내 유수 기업들의 참여가 점쳐졌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이 이름을 올렸다.

삼성은 사업 경험이 있다. 계열사 삼성전자는 20여년 전 평양서 TV를 생산했다. 삼성물산은 개성공단 입주사에서 상품 일부를 납품 받은 바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남북 간 철도 연결과 도로 확장의 적임자로 언급됐다. 현대건설, 현대제철, 현대로템 등은 현대화 사업, 인프라 구축을 모색할 만한 계열사로 꼽혔다.


SK그룹은 SK텔레콤과 SK건설, LG그룹은 LG전자가 거론됐다. LG전자는 지난 2009년까지 평양서 TV를 생산하는 등 남북경협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북미 관계가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못박았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로 응수했다. 남북 관계도 예전 같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경협을 강조했다. 배경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 교착 속에서 남북 관계 후퇴까지 염려된다”며 “북미대화 성공을 위해 노력해나가는 것과 남북 협력을 증진시켜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진단했다.

살아있는 불씨, 키우려는 ‘문’
관계 개선 여부, 재개 ‘시금석’

남북경협의 상징은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인데 개성공단은 지난 2016년 폐쇄됐고 금강산 관광은 2008년 중단됐다. 문 대통령 당선 뒤 4·27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남북경협 기대도 커졌다. ‘판문점 선언’은 모멘텀이 됐다.

KT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남북협력사업개발TF(테스크포스)’를 신설했다. 정상회담 이후 약 한 달 뒤였다. KT는 대북사업 재개 시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었다. KT는 과거 비슷한 대북사업을 진행했다. 지난 2005년 12월 개성지사를 열었다. 남북 간 민간 통신망(700회선)을 연결했다. 약 10년간 개성공단에 직원이 상주하며 통신지원 업무를 수행했다.
 

▲ 문재인 대통령(사진 오른쪽)와 현정은 현대 회장

기대는 컸지만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남북 관계가 반전되면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개성공단 재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는 문 대통령 신년사에 대해 “공단 재개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이 없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금강산 관광도 같은 맥락이다. 관광 재개 가능성은 위기로 뒤집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0월 남측 금강산 관광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김 위원장은 ‘시설 완전 철거 및 문서 협의’를 요구했다. 이어 “부질없는 주장을 계속한다면 일방적으로 철거를 단행한다”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정부는 ‘대면 협의와 일부 노후시설 정비’라는 입장이다. 현재 당국 간 협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로 전해진다.

개성공단
금강산

금강산 관광을 상징하는 기업은 현대그룹으로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방북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신년사서 남북경협을 언급했다. 현 회장은 지난 2일 “남북경협을 위한 든든한 자산은 바로 신뢰”라며 “우리 발걸음은 2008년 이후 멈췄지만 희망을 잃지 말자”고 독려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비 중이다. 다만 북측 반응이 걸림돌이다. 현대아산은 초기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이내 차분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경협 사업 중 가장 먼저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서 “금강산 개별 관광은 국제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충분히 모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기관도 즉각 움직였다.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이튿날 개별 관광 추진 의사를 밝혔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곧장 미국으로 떠났다. 이 본부장은 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측과) 한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며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해를 구하는 게 지금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북 간 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에도 눈길이 간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서 “남북 간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남북이 함께 찾아낸다면 국제적인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대를 모았다. 관광은 북한서 집중하는 사업 모델인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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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이미 관련 TF를 구성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6월 ‘북방사업지원팀’을 조직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분위기를 이끌었다. 대우건설은 철도, 도로 등 SOC 인프라와 전력생산발전소 등 플랜트 분야까지 준비했다. 대우건설은 북한서 철도, 도로 사업을 진행한 경력이 있다.

비슷한 시기 포스코도 움직였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포스코그룹이 남북경협의 실수혜자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실제로 포스코건설은 TF를 구성했다.

이해한다지만…
여전히 간극?

최 회장은 포스코켐텍이라는 계열사 사장이었다. 당시 북한서 마그네사이트를 수입하려다가 남북관계 악화로 중단된 바 있다. 포스코는 북한서 철광석을, 북한은 포스코서 건설과 철강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GS건설도 선제적으로 나섰다. 사업부는 인프라와 전력으로 나뉘었다. 이 외에도 삼성물산, 대림산업, 한화건설 등이 동행했다.

비무장지대와 접경지역 협력에는 실제 예산이 투입된다. 지난해 2월 행정안전부는 접경지역에 13조2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크게 ‘남북교류·협력 기반 구축’ ‘균형발전 기반 구축’ ‘생태·평화 관광 활성화’ ‘생활 SOC 확충’ 등 4대 전략이다.

2030년까지 225개 사업에 국비 5조4000억원, 지방비 2조2000억원, 민자 5조6000억원을 투입된다.

2022년까지 비무장지대 인근에 도보여행길이 조성된다. 456㎞(인천 강화∼강원 고성)에 달하는 길이다. 해당 지역 사업을 위해선 지뢰 제거가 동반돼야 한다. 그 연유로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인 기업들이 테마주로 이름을 올렸다.

남북경협 구상은 단숨에 고속도로를 타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북제재를 확고히 한 미국의 반응은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지난 14일(현지시각) 한미 외교장관 회담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한반도 정세 등에 이야기를 나눴다. 강 장관은 문 대통령이 직접 밝힌 ‘남북협력 구상’을 폼페이오 장관에게 설명했다.


재계 TF, 정부만 바라보고…
미, 개별 관광 부정 기류도

강 장관은 “남북 간 중요한 합의들이 있었다”며 “제재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고, 예외 인정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사업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도 우리의 의지와 희망 사항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온도차를 보였다. <로이터통신>이 서울발로 전한 보도에 따르면 해리스 대사는 외신 간담회서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다루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의 지속적 낙관론은 긍정적인 일”이라면서도 “그 낙관론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있어서 미국과 협의를 통해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폼페이오 미 국무부장관 ⓒ외교부

정부는 강행하는 분위기다. 통일부는 지난 15일 브리핑서 미국 정부가 대북 개별관광에 보인 반응에 대해 “남북 협력사업에 한미 간 협의할 사항이 있고, 남북 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며 “남북 관계는 우리 문제인 만큼 현실적인 방안들을 강구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남북경협 TF를 구성한 기업들은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실제로 해당 TF들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동향, 사업 정보 수집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개점휴업이라는 시각도 있다.

상황 주시
대기 상태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구성한 TF 뿌리는 남북미 관계에 있다”며 “뿌리가 흔들리니 줄기가 뻗어나갈 수 없는 노릇”이라고 평가했다. 평화 무드의 순풍을 타고 꾸려진 TF들이 현재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주시하고 있을 뿐”이라며 “다른 쪽 상황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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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