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21)굴레

더러운 제도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혼인이 정해진 어느 날 허균이 이달과 누나가 어둠 속에서 만나는 장면을 목격했었다.

어둠 속에서 손을 마주 잡고 있던 두 사람이 잠시지만 마치 하나가 된 듯이 꼭 껴안고 있는 애틋한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둘의 결합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주잡은 손

“이 시대에 굴복한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겠지.”

이달이 굳이 회피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저의 누나와 합치면 되지 않습니까.”

이달의 한숨이 공간을 짓누르고 있었다.

“균아, 그 굴레는 우리 둘 사이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란다.”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바로 너희 가문의 굴레 또한 있지 않겠느냐.”

“저희 집 말인가요.”

“너희 집안에 대한 누나의 굴레 말이다.”


“그렇다면 스승님이 기꺼이 원한다고 해도 저의 누나가 그를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라 이 말씀이신지요.”

“네 누나는 이미 그 벗을 수 없는 굴레를 알고 있었고 스스로를 찾는 방법 또한  알고 있었어.”

균이 이달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렇다면 스승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가요?”

“나의 경우?”

“그러하옵니다. 스승님의 경우도 그 굴레로 인해서 조정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변방에서 재능을 썩히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이달이 피식하고 가벼이 웃어버렸다.

“재능?”

“스승님의 경우도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이 조선에서 가장 훌륭한 재질을 갖추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한 신분 제도 때문에 재능을 발휘하기는커녕 멸시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물론 그 친구는 허균의 형인 허봉을 지칭하고 있었다.

허균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전광석화보다 빠르게 자신의 옷을 벗었다.

그 모습을 이달이 놀라기보다는 기이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스승님, 옷을 벗은 저의 모습이 스승님과 다른지요.”

이달이 즉답 대신 다시 피식하고 웃었다.

“균아, 한 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좌우하는 제도를 옷을 입고 벗듯이 저들 편한 대로 만들어 버리니 문제 아니겠니.”

허균이 벗은 옷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


“누가, 무엇 때문에 그 더러운 제도를 만들었습니까!” 

이달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균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 탓이었다.

“균아, 이 조선을 창건한 태조 임금을 알지.”

“물론입니다.”

“그 태조 임금님께서 자신의 적자들을 제치고 왕권을 적자 출신이 아닌 방석 왕자에게 물려주려고 했었던 일이 화근이 된 게야.”

“방석이라면 태종에 의해 역적으로 처단된 인물이 아닌지요.”

“적자인 자신을 제치고 방석 왕자를 세자로 정하자 태종이 난을 일으키고 결국 방석 왕자와 공신들을 제거했지.”

“그게 이 더러운 제도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요?”

이달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라는 듯이 다시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방석 왕자를 제거한 태종이 바로 그 더러운 제도를 만드신 장본인이다 이 말이다.”

균이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하오면, 적자 출신이 아닌 방석 왕자가 한때 세자로 책봉 된 일 때문에 태종 임금께서 이 제도를 만들었다는 말씀이신지요.”

자신의 것을 나누려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
매창, 이달의 사연에서 동변상련을 느끼다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의 결과가 바로 네가 말한 더러운 제도가 탄생한 배경이다.”

“하오면 이제 그 제도를 바꾸어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바꾸어야지, 암 바꾸어야 하고말고. 그런데 누가 바꿀 수 있느냐가 문제지.”

“스승님, 누가라니요?”

“인간의 속성이야, 속성.”

“네?”

“인간이란 원래 자신의 것을 나누려하지 않아. 썩어 문드러져도 결코 남에게 주려고 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 그런데 하물며 권세란 것을 나누어 먹으려 하겠니? 특히 우리 같은 얼자들과 말이야.”

“그러면 정상적이지 못한 방식으로라도 쟁취하면 되는 일이 아닌지요.”

이달이 대답하지 않고  가벼이 소리 내어 웃었다.

“정상적이지 못한 방식이라 하셨는지요.”

“그래요, 정상적이지 못하다고 하였소.”

매창이 힘을 주어 말하는 허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하면서 흡사 어금니를 깨무는 듯했다.

“그러면 제 경우도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매창의 눈가로 이슬이 고이고 있었다.

스승이었던 이달은 관기의 자식이었다.

그런데 묘한 일이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매창의 경우도 관기의 딸이었다.

아마 스승 이달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로 여기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있을 터였다.

“내가 괜한 이야기한 모양이오.”

매창이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급히 정색했다.

“아니옵니다, 나리. 제가 괜히 엄한 생각에 빠져들었던 모양입니다.”

“엄한 생각이라고.”

물론 엄한 생각이 아닐 터였다. 비록 허균의 스승인 이달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는 결국 자신의 첫 사랑이었던 촌은 유희경의 또 다른 이야기였다.

촌은 유희경과의 인연은 자신을 애지중지하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지만 결국 이 사회에서 정당하게 대우받을 수 없는 동병상련의 감정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계량이,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 길인고.”

계량이 유희경에게 바짝 다가섰다.

“이리로 쭉 가면 내변산이 나오고 그 안에 있는 직소폭포가 그만이지요.”

“내변산과 직소폭포라.”

“내변산도 아름답지만 그 산 안에 숨어있는 직소폭포는 그야말로 일품이옵니다.”

자신을 투영

“어느 정도기에 나를 그리로 가장 먼저 이끈다는 말인가.”

유희경을 바라보는 계량의 얼굴에 웃음꽃이 정월 대보름날의 달덩이처럼 피어났다.

“기대하셔도 좋을 듯하옵니다.”

계량을 바라보는 유희경의 얼굴 또한 계량의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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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