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소신은 이제 자리에서 그만 물러나고 새로운 인재들로 하여금 이 나라의 완성을 기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절대로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행여나 다시는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전하!”
“말씀하세요.”
“지금 당나라가 왜 저리도 기승을 부리는지 그 사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니까 더욱 제 곁에 머물러주셔야지요.”
“헤아려주십시오. 소신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저들은 끊임없이 무리한 요구를 해올 것입니다.”
“여하한 일이 있어도 허락할 수 없습니다.”
두문불출
문무왕에게 사퇴 의사를 전한 유신이 궁궐 출입을 멈추고 두문불출했다.
이에 문무왕은 사사로이는 외숙부(어머니인 문희의 오빠)이며 동시에 매부(동생 지소부인의 남편)인 김유신에 대해 일말의 조처도 취하지 않고, 안석(벽에 세워 놓고 앉을 때 몸을 기대는 방석)과 궤장(지팡이)을 내려주었다.
김유신이 조정 일에 손을 놓고 집에서 아내와 오랜만에 망중한을 즐기며 둘째 아들인 원술의 검술 훈련을 보아주고 있는 중에 동생인 문희(문명왕후)가 방문했다.
“자네가 어인 일이신가?”
“어서 오세요, 어머니.”
“오랜만이에요, 오라버니.”
유신과 지소부인이 느닷없이 방문한 문희를 맞이했다.
순간 원술이 검술 훈련을 멈추고 가까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외할머니.”
“내 손자, 이리 오너라.”
문희가 가까이 다가온 원술을 가볍게 포옹했다.
“원술이 무술 훈련에 열심이구나.”
“저도 커서 훌륭한 장군이 되려고 해요.”
“아무렴 그래야지. 네 아버지처럼 훌륭한 장군이 되어 이 나라의 동량지재가 되어야지.”
“그럼요. 저는 반드시 그리될 거예요.”
문희가 자신있게 말하는 손자며 동시에 조카인 원술의 머리를 가볍게 만져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유신이 원술에게 눈짓을 주었다.
“저는 훈련할 테니 할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랑 함께하세요.”
“이렇게 기특한지고.”
문희가 원술을 품에서 놓아주고는 지소의 안내로 방으로 들어갔다.
“건강은 어떠세요?”
문희가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유신을 주시했다.
“나이가 나이니 만큼 그만그만하지.”
문희가 쓴 웃음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어머니?”
“네 서방이 몸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니 그러지.”
“그게 무슨 소리냐?”
유신이 살짝 말을 높이자 문희가 유신에게 다가앉았다.
“사실 오라버니께 상의드릴 일이 있어 이리 통보도 없이 찾아뵈었어요.”
저간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문희가 지소를 바라보다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무슨 일인데?”
문희, 인문의 일로 김유신을 찾다
왕과 인문, 이간질하려는 당나라
“인문 때문에 그러지요.”
“조카가 왜?”
“오라버니에게 무슨 문제 있나요?”
문희가 인문을 거론하자 유신과 지소부인이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문희가 말을 하다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상세히 말해보게.”
“인문이 금번에 당나라에서 돌아왔어요.”
“언제 말이냐?”
“바로 어제요.”
“그런데?”
반문하는 유신의 얼굴에 불길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당나라에서 인문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긴 것 같아요.”
“같아요는 무슨 말이냐? 여하튼 무슨 일인데?”
유신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올라갔다.
“당나라에 포로로 잡혀 있다 돌아와서 백제 웅진도독부 도위가 된 부여 융과 웅진에서 맹약을 맺으라는 분부를 받들기 위해 돌아왔다고 하데요.”
“뭐라고!”
김유신이 순간적으로 소리를 높이자 지소부인이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서방과 어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금 그 사실을 왕도 알고 있느냐?”
“아직은 모를 겁니다. 어제 신라에 돌아오자마자 어미인 저를 찾아와서 그 사실을 말했으니까요.”
“당나라 이놈들이 간계를 부리는구나, 간계를.”
“저도 그게 걱정되어 급히 오라버니를 찾아왔습니다.”
“장군, 무슨 일인지 속 시원하게 말씀해주세요.”
“이 놈들이 신라를 상대로 이간질하는 게야, 이간질.”
“이간질이라니요?”
“이미 망한 백제의 태자를 다시 웅진도독부 도위로 삼은 일도 그렇고, 또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왕이 있는데 왜 인문을 내세우느냐 이거야. 그러니 왕과 아우인 인문과의 불화를 조장시키려는 게지.”
지소부인의 표정에도 근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라버니와 함께 왕을 만나보기 위해 이리 예고도 없이 찾아왔어요.”
유신이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군, 왜 그러세요.”
“빨리 궁에 들어 왕을 만나야지. 행여나.”
“행여나 뭐에요?”
“왕이 당나라 놈들의 이간질을 알지 못하고 이 사실을 먼저 안다면 인문 조카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야.”
지소부인이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문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유신의 뒤를 따랐다.
유신이 문희와 함께 궁에 들어 문희의 거처로 왕을 불렀다. 물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처사였다.
“소자도 방금 전에 이야기 들었습니다.”
문무왕이 차분하게 말하고 유신의 얼굴을 주시했다.
“인문도 걱정이 되어 왕께 바로 아뢰지 못하고 제 어머니한테 먼저 아뢴 모양인데, 어찌 처리하려 하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사사로이 대화가 이루어졌다.
“외숙께서 답을 주셔야지요.”
“그래요, 오라버니. 오라버니께서 시원하게 답을 주세요.”
“이미 답을 주었지 않소.”
김유신의 답
문희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하고 문무왕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외숙을 치시라는.”
“바로 그런 이야기요. 그렇지 않으면 당나라 놈들은 지속해서 우리 신라를 농락할 거요.”
“그렇다고 어떻게 외숙을.”
문무왕의 얼굴에 근심이 어리고 있었다.
“굳이 그리 생각할 필요 없소.”
“무슨 말씀이신지?”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모든 게 끝이 아니란 말이지요.”
“그래, 이런 식으로도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니?”
문희가 대화에 끼어들자 문무왕이 표정을 밝게 했다.
“그러면 어머니와 외숙의 뜻에 따라 그리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처사 그리고 아우의 일은 어찌 처리해야 하는가요?”
“일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당나라와의 일, 특히 백제의 잔당들을 회유하겠다고 구 백제의 태자를 웅진도위로 삼은 일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일이오.
<다음 호에 계속>